한국 언론의 아동학대 보도가 불필요한 반복·재생산, 흥미 유발에 치중했다는 지적이 연구결과로 증명됐다.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는 24일 ‘아동학대 보도의 현주소: 아동 인권과 젠더 담론’ 주제로 세미나를 열고 관련 논의를 가졌다.

이날 최미경 서강대 박사(신문방송학)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아동학대’ 보도 10건 중 약 7건은 사건·범죄처벌 중심의 스트레이트 기사로 나타났다. 아동학대 관련 보도량이 많았던 지난해 6월1일부터 올해 5월31일까지 ‘중앙지’로 분류되는 11개 신문(경향신문, 국민일보, 내일신문, 동아일보, 문화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보도 465건을 살펴본 결과다.

아동학대 보도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66.9%가 스트레이트 기사인 반면 기획·분석·심층 기사는 28.0%에 그쳤다. 주제별로 분류해도 사건·범죄처벌이 69.9%, 정책입법 관련 주제는 16.1%에 불과하다. 언론이 보도한 아동학대 종류는 신체적 학대가 60.9%로 가장 많았고 기타(23.4%), 방임·유기(9.2%), 정서적학대(3.4%), 성적학대(3.0%) 순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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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4일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주최,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으로 ‘아동학대 보도의 현주소: 아동 인권과 젠더 담론’ 특별세미나가 진행됐다. 사진=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유튜브 생중계 갈무리

최미경 박사는 중계에 치중한 아동학대 보도의 원인을 과도한 경쟁에서 찾았다. “사건은 한두개인데 끊임없이 반복 보도가 나온다. 뉴스가 아닌 시사프로그램이 같은 사건을 반복하는 것을 보셨을 것이다. 아동학대 범죄는 보통의 살인사건 등과 달리 사회적으로 ‘우리가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가지게 하면서 더 많이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취재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언론이 실제로 아동학대 사건을 다룬 프레임 역시 ‘흥미위주’에 집중됐다. 전체 기사에서 정황중심(45.8%), 흥미중심(19.8%) 프레임의 보도가 차지하는 비중이 65.6% 수준이다. 반면 정책대안 제시는 19.8%에 그쳤고, 예방(3.7%)이나 사회적 문제로서의 프레임(4.1%)은 각각 5%에도 미치지 못했다.

최 박사는 “아동학대 뉴스는 엽기적이고 잔혹한 방식으로 학대를 한 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되어 집중 보도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사건 발생 초기부터 수사 단계에 따라 ‘속보’를 달고 뉴스화되며, 정황중심 프레임으로 보도를 하면서도 학대 방법과 도구는 점점 구체적으로 묘사 된다”며 “흥미중심 프레임은 자극적인 내용이나 방법, 학대 현장, 학대 동기 등에 대해 독자의 흥미를 끄는 자극적인 내용이나 발언, 상세한 장면 묘사에 치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흥미중심 프레임 보도는 아동학대 피해자 인권보호에 소홀하고, 사회적 편견을 강화하는 양상을 보였다. 흥미중심 프레임으로 보도된 기사(92건) 중 42.4%가 피해 아동의 사진을 사용했고, 38%는 ‘계부’ ‘계모’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피해아동 사진 사용을 금지하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2014년 제정), 아동학대 관련인물을 특정하는 정보나 편견을 조장하는 표현을 사용해선 안 된다는 ‘아동학대 사건 보도 권고기준’(2018년 제정) 등이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이런 문제는 전국민적 관심을 모은 사건일수록 뚜렷하게 드러났다. 3세 아동이 방임 등으로 사망한 ‘구미 여아 사망 사건’의 경우 ‘친모 찾기’ ‘친부 찾기’ ‘사라진 아이 찾기’ 등에 집중한 언론 보도로 논란이 확산됐다. 김은영 고려사이버대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방임으로 아동이 사망한 사건인데 의혹의 핵심이 미스테리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친부’ ‘친모’와 ‘계부’ ‘계모’ 등을 대비시키면서 이혼과 재혼이 아동 학대로 이어진다는 낙인을 부여하는 행태도 그대로 반복됐다는 평가다.

김은영 교수는 언론이 가해자를 다루는 과정이 젠더화되는 경향도 확인됐다고 밝혔다. 가해자의 얼굴형이 ‘계란형’이라는 표현을 비롯해 그의 외모나 옷차림을 묘사하면서 ‘외모를 꾸미는 미인형’일 거라는 인상을 주고, 이와 관련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식이다.

▲9월24일 ‘아동학대 보도의 현주소: 아동 인권과 젠더 담론’ 특별세미나에서 발제 중인 김은영 고려사이버대 교수. 사진=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유튜브 생중계 갈무리
▲9월24일 ‘아동학대 보도의 현주소: 아동 인권과 젠더 담론’ 특별세미나에서 발제 중인 김은영 고려사이버대 교수. 사진=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유튜브 생중계 갈무리

이는 “모성을 버린 ‘섹슈얼’한 여성들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나이 먹은 여성, 48세 (가해자) 석씨의 출산 능력에 대한 의심을 보도하거나 아이를 낳은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보도가 이어졌다”며 ‘부도덕한 여성 가해자’라는 프레임이 형성됐다고 분석했다.

동시에 김 교수는 “사건 보도에 등장하는 (피해 아동의) ‘아버지들’은 얼마나 범죄에 무관한지 설명하는 발언들이 인용됐다. 이들은 오히려 가해자인 김씨, 석씨 등 때문에 고통받는 존재가 됐다”며 “돌봄 양육의 주 담당자는 여성으로 보고 남성은 방관자임에도 책임이 면제되는 것으로 표현됐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언론의 보도가 대안 제시, 갈등 해결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힘을 주어 강조했다. 최미경 박사는 “모든 사회 구성원과 정부, 관계 기관 등이 대대적인 협조를 하여 예방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며 “언론 또한 아동인권 보호와 아동학대 예방에 앞장서기 위해 폭력적인 기존 보도 관행을 완전히 바꿀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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