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31일 ‘예술인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대한민국은 직업으로서 예술인의 가치와 권리를 법률로 보장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에 발맞춰 음악인 단체인 뮤지션유니온은 지난 5~7월 ‘정책연구 릴레이 포럼: 음악같이, 음악가치’를 열고 코로나19 시대를 지내며 일자리 위협과 생활의 불안정에 시달리는 음악인의 삶을 드러내고 나아갈 방향을 모색했다. 포럼 논의 내용을 기획 연재한다. -편집자 주

지난 2월27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소규모 공연장 ‘네스트나다’에 마포구청 위생과 직원이 방문했다. 서울시 방역 지침이 개정됐다며 공연 진행을 막았다. 네스트나다 측이 “공연 개최 전 미리 마포구청 홈페이지의 방역 수칙을 확인했고, 공연장 관계자가 지난달 15일 직접 마포구청 위생과에 유선으로 문의하여 공연 진행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설명했지만 구청 측은 막무가내였다. 공연 시작 30분 전이었다.

▲사진=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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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구청 홈페이지, 블로그, SNS 어디에도 개정된 지침에 대한 안내를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다음달 3일, 한 마포구청 관계자는 이 조치에 대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세종문화회관 같은 곳이 공연장”이라며 “일반음식점에서 하는 칠순잔치 같은 건 코로나19 전에야 그냥 넘어갔던 거지, 코로나19 이후에는 당연히 안 되는 것 아니겠냐”라는 발언을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거대한 재난 앞에서 방역수칙을 철저하게 지키며 살얼음판 걷듯 공연을 준비해 온 ‘직업적’ 공연장 관계자들, 어렵게 만들어진 공연을 위해 수많은 시간 동안 음악을 만들고 연습해온 ‘직업적’ 음악가들, 그 공연을 응원하고 향유하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지정된 좌석에 앉아 박수쳤던 다양한 ‘직업’의 관객들. 사전안내 한마디 없이 이 모두의 노동과 노력이 공연 시작 30분 전에 깨끗하게 무시된 셈이다.

이 사건이 시사하는 문제점은 명확하다. 하나는 현존하는 소규모 공연장에 대한 현실적 공연장 기준이 미비해서 단순히 ‘일반음식점’으로만 분류되는 문제, 다른 하나는 음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특정 ‘직업’ 분야에 대한 무지와 폄하이다.

나는 11년차 ‘음악가’다. 나는 음악을 만들고 악기를 연주하고 무대에서 노래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직업을 음악가라고 말할 때마다 쭈뼛거렸다. 왠지 모를 쑥쓰러움도 한몫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시장성’, 혹은 ‘경제성’이었다. 음악창작 활동을 통한 수입은 있었지만 일상을 유지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그래서 나의 일을 ‘직업’이라고 얘기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뮤지션유니온 조합원들이 2019년 5월30일 ILO핵심협약비준 버스킹을 진행하는 모습. 사진=뮤지션유니온
▲뮤지션유니온 조합원들이 2019년 5월30일 서울 정동길에서 ILO핵심협약비준 버스킹을 진행하는 모습. 사진=뮤지션유니온

내 직업을 잠시 들여다보자. 많은 직업이 그러하듯 나는 음반이라는 일종의 결과물을 만든다. 먼저 작사, 작곡을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영감을 받아 휘리릭 나오는 게 아니라 수많은 시간 동안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다. 완결 구조를 갖춘 음악들을 모아 음반을 기획한다. 스스로 하기도 하고 프로듀서와 함께 콘셉트를 짜기도 한다. 콘셉트에 맞춰 편곡하고 연주자들을 섭외한다. 악기, 보컬 연습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레코딩 스튜디오를 결정해 녹음을 한다. 음악을 반영할 시각적 이미지를 만들어 줄 디자이너, 영상팀, 포토그래퍼 등과 의견을 나누며 아트워크를 만든다. 녹음을 마친 음원은 믹싱과 마스터링으로 이어진다. 아트웍과 완성된 음악을 연계해 음반에 담아내려던 내용을 정리하고 유통사를 결정해 발매 일정을 잡는다. 혹은 스스로 유통한다. CD제작까지 원활하게 진행되어 음반이 세상에 나오면 발매기념 공연, 코멘터리룸 등의 이벤트를 만든다. 짧게 나열해도 역시 보통 일은 아니다.

이조차도 내 경험에 한정된 서술이며 밴드이거나 다른 장르의 음악일 경우 위에서 언급하지 않은 또 다른 과정이 존재한다. 다른 직업과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매달려 최선을 다해 일하며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이어가는 것이다.

다만 이 직업의 특이점이 있다면 바로 ‘자발성’과 ‘무형의 가치’이다. 나와 동료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일상을 유지하기 힘든 수익도 감당해내며 이 일을 한다. 밤을 지새고 며칠을 쉬지 못해도 우리 안에서 음악이 나오는 이상 멈출 수 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계약관계에 놓인 음악가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렇게 동시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교감하고 싶은 내용을 담아 끊임없이 창작하고 생산한다. 그것은 또한 사회·문화적 자산이 된다.

결과물의 가격은 노동시간과 생산비 등을 고려해 생산자(음악가)가 정하는 게 아니라 이미 형성된 사회적 합의와 제도 속에서 결정된다. 500만원을 들여 만든 앨범이든 1억원으로 만든 앨범이든 대부분의 정규앨범 가격은 1~3만원 안팎이고 업체를 통해 제공되는 스트리밍 서비스나 음원의 가격은 동일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노동자인가, 사용자인가? 과연 이분법적 사고로 규정지을 수 있는가?

▲문화예술노동연대는 지난 3월9일 서울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1년 문화예술노동자 요구안’을 발표했다. 사진=문화예술노동연대 제공
▲문화예술노동연대는 지난 3월9일 서울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1년 문화예술노동자 요구안’을 발표했다. 사진=문화예술노동연대 제공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5월 발간한 한국직업사전 통합본 5판에 따르면 총 1만 6891개의 직업이 현존한다. 게다가 4차를 넘어 5차 산업혁명이 거론되는 지금, 단순히 사용자에 대한 ‘사용종속관계’나 ‘종속관계의 연속성’만으로 노동자를 규정지을 수 없다. 노동은 장소·시간 면에서 고정된 업무에서 벗어난 지 오래이며 블록체인, NFT 시장에서 보듯 사이버 공간에서도 작업과 생산이 가능하다. 이렇게 다양해진 직업을 몇 가지 분류기준 속에 구겨 넣으려 하니 사회적 불협화음이 이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음악 활동을 업(業)으로 한다는 것은 특수한 창작노동, 실연노동으로 경제적 소득을 얻는 행위다. 마땅히 노동자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올바른 비용 지급과 지위 보장이 이뤄져야 하며 다른 직업군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국민으로서 보호를 받아야 한다. 기존 규정에 ‘특례’를 만들어 편입시킬 게 아니라 서로 다른 현장을 면밀히 분석하고 사회 구성원이 납득할 수 있는 조건으로 보편 타당한 사회보장제도를 창설하는 것은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당사자성을 담보한 투명한 입법 과정을 통해 제도를 개선해 문화예술 관련 직업의 경제·사회적 실태가 부디 안정되길 바란다.

나는 스무 살부터 지금까지 먹고 살기 위해 쉼 없이 일을 했다. 카페·식당 아르바이트, 학습지교사, 언론사·대기업 노동조합, 출판사 등을 거쳐 핸드메이드 장신구를 만들어 파는 노점, 바(bar) 사장, 공간디자이너, 작가 어시스턴트 등을 하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선택했던 일도 있고 흥미를 느껴 즐겁게 뛰어든 일도 있다. 그 밖에 다양한 일도 동시에 해왔지만 누군가 내게 ‘직업이 뭐에요?’라고 물으면 주저 없이 대답한다. 제 ‘직업’은 음악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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