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30일 경기도 김포 CJ대한통운의 한 대리점주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CJ대한통운 택배대리점연합회는 “유서를 확인한 결과 고인이 조합원들과의 갈등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으며 조합원 12명 이름을 구체적으로 지목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고인과 갈등을 빚었다는 조합원은 전국택배노동조합(이하 택배노조) 소속 노동자들이다.

언론부터 정치권까지 대리점-택배노조 갈등 부추기기

주요 언론은 일제히 택배노조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에 대한 비난기사를 쏟아냈다. 조선일보는 9월1일 1면 기사로 <“민노총 노조 괴롭힘에 하루하루 지옥” 세 아이 둔 택배대리점 소장 극단 선택>을 실었고, 3면 전체를 할애한 해설 기사와 사설 <“민노총을 견딜 수 없었다”는 택배대리점 사장의 극단 선택>을 썼다. 매일경제는 9월1일 <민노총 택배노조 괴롭힘에… 대리점장 극단선택> 기사와 9월2일 <“민노총 노조 괴롭힘에 지옥” 택배대리점주 사망 철저한 규명을> 사설을 연이어 실었다.

이를 계기로 정치권에서도 민주노총 때리기와 강성·귀족노조 망국론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연합뉴스는 9월1일 <이준석, 사망 택배대리점주 조문… 하태경 “민노총의 타살”>에서 “제가 대통령이 되면 민노총이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지 못하게 ‘민노총 갑질 처벌법’을 발의하겠다”라는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의 SNS 글을 소개했다. 같은 당 대선 예비후보 홍준표 의원은 “대통령 긴급명령권을 통해 강성 귀족노조의 패악을 막고 노동 유연성을 높이도록 하겠다”고 공약했다.

40대 젊은 대리점주의 억울한 죽음에 택배노조 조합원들과 갈등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택배노조가 강성·귀족노조라니? 근거는 무엇이며, 대리점주와 택배기사 간 갈등의 원인은 무엇인지에 대해 보수언론이나 보수야당 정치인 누구도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오로지 ‘민주노총 소속 노조=강성·귀족노조’라는 노동조합 혐오 프레임만 반복하고 있다. 대체 강성·귀족노조의 개념은 무엇인가?

노동자가 목소리 내면 강성인가

부친 농지법 위반 시비로 대선 후보와 의원직을 사퇴한 윤희숙 전 의원은 대선공약 1호로 노동개혁을 제시하면서 “귀족노조 죽어야 청년이 산다”고 주장했는데, 그는 SNS를 통해 “대기업의 ‘지불능력’과 법제도가 보장해 준 ‘힘의 우위’를 백분 활용해 귀족노조는 자신들 임금만 극대화해왔습니다. 하청근로자나 비정규직의 처우개선, 일자리 확대에는 일절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요” 라고 귀족노조에 대해 정의했다.

그렇다면 코로나19 여파로 폭증한 택배물량으로 지난 한 해만 15명이 과로사한 택배노동자가 귀족노동자라는 말인가? 아니면 대기업의 무분별한 외주화 전략에 맞서 하청노동자, 비정규직들의 권익을 위해 투쟁하는 택배노조가 강성노조라는 말인가? 홍준표 의원의 진주 도립의료원 강제 폐업에 저항한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무슨 이유로 강성·귀족노조가 되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한 가지 유추할 수 있는 가설은 투쟁의제가 자신들만의 임금 극대화가 아닌 사회정의를 위한 것이거나 투쟁 주체가 하청노동자, 비정규직이냐를 불문하고 ‘민주노총 소속 노조라면 자동으로 강성·귀족노조’라는 프레임밖에 없다.

▲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둔 9월16일 오전 송파구 서울복합물류단지에서 택배사 관계자들이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둔 9월16일 오전 송파구 서울복합물류단지에서 택배사 관계자들이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노동자 간 갈등, 원인 찾아 해결 돕는 게 언론

한편 한국일보는 9월13일 1면 머리기사 <“악덕 직업소개소”가 된 타워크레인 노조>를 시작으로 3부작 ≪건설노조 갑질, 철거가 필요하다≫는 기획 기사를 내보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소속 건설노조가 경쟁적으로 자기 조합원을 채용하라고 타워크레인 장비 임대업체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다는 건설현장의 문제점을 고발하면서 “저가수주 굴레에 고용 외주화 자충수…‘수퍼 을’의 횡포 불렀다”고 분석했다. 외환위기 이후 대형건설사가 직접 고용한 건설장비 분야가 비용절감과 노무관리 용이성을 이유로 외주화되면서 하청업체와 하청노동자들 간 저가수주 경쟁과 채용경쟁 등 노사갈등이 악순환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경향신문은 9월14일 1면 머리기사 <택배기사·대리점 갈등 낳고 뒤로 숨은 택배사>를 통해 “갑인 택배사와 을인 대리점주 병인 택배기사로 이뤄진 택배산업”의 구조 문제를 진단하고 계속되는 과로사 등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했으나 갑인 원청 택배사의 교섭회피로 을과 병의 싸움터로 변해버린 택배산업의 현실을 폭로했다.

강성·귀족노조로부터 공격을 당한다는 택배산업 대리점주와 건설현장 인력파견업체 사장은 모두 재벌의 외주화 결과로 탄생한 가짜 사용자들이다. 윤희숙 전 의원 주장처럼 지난 한 해 3200억원 넘는 영업이익을 달성한 ‘지불능력 있는’ 진짜 사용자 CJ대한통운과 택배노조가 하청노동자 처우개선과 좋은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직접 교섭하게 만드는 일이야말로 또 한 분의 억울한 죽음을 막는 유일한 길이다. 투쟁할 때만 귀족소리를 듣는 택배노동자와 건설노동자. 그 누구도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 <언론포커스>는 언론계 이슈에 대한 현실진단과 언론 정책의 방향성을 모색해보는 글입니다. 언론 관련 이슈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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