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5차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에서 이주민을 배제해 차별 논란이 이는 가운데, 조선일보가 이와 관련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화면을 인용해 “조선족 반응”이란 제목의 기사를 냈다. 이주인권단체들은 공동성명을 내 “기사가 아닌 내놓기 부끄러운 혐오표현”이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13일 “‘X한민국, 도끼 들자’…재난지원금 못 받은 조선족 반응”이란 제목의 기사를 냈다. 보도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재난지원금 못 받은 중국 동포의 커뮤니티 근황’이라는 게시물이 올라왔다”며 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했다고 밝힌 중국 동포의 불만을 담은 캡쳐화면을 인용했다.

기사는 말미에 “네티즌들은 ‘욕하면서 받을 건 받아먹으려는 심보’ ‘경제활동을 하면 세금을 내는 건 당연한 거고, 국민이 아니기 때문에 재난지원금을 주지 않는 것’ 등의 반응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이후 SBS와 파이낸셜뉴스가 같은 내용을 기사화했다.

▲지난 13일 조선일보 보도 갈무리
▲지난 13일 조선일보 보도 갈무리

이에 공익법센터 어필·이주노동자평등연대 등 39개 이주인권단체가 지난 18일 공동성명을 내고 “부끄러운 혐오표현을 멈추라”고 밝혔다. 해당 보도가 재난지원금 관련 국가인권위원회 권고나 국제 흐름, 국내 중국동포의 일상은 언급하지 않은 채 차별을 확대재생산한다는 지적이다.

단체들은 성명에서 “기자는 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표출한 ‘거친 욕설과 불만’이 사회적으로 위험하다고 생각했는지 기본 사실 확인이나 취재윤리는 버려둔 채 서둘러 단신 보도했다”며 “언급된 표현의 수준만 보면 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한 한국 사람들이 인터넷 게시판에 표출한 분노에 비하면 점잖은 수준이며 댓글에 남겨진 수많은 혐오표현과는 견주기가 민망하다”고 했다.

이들 단체는 “(기사는) 지원금을 받지 못한 이주민의 불만은 여과 없이 전하면서 그 원인인 재난지원금 차별지급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침묵한다”고 했다. 미국과 일본, 독일, 캐나다 등 정부는 장기거주 외국인에 정부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도 지난해 6월 서울시와 경기도가 외국인 주민에 재난지원금을 배제하는 것은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자 평등권 침해라며 개선을 권고한 바 있다.

▲민주노총, 한국이주인권센터 등 110여개 단체가 지난 7월6일 청와대 분수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주민에게도 차별없이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사진=노동과세계 제공
▲민주노총, 한국이주인권센터 등 110여개 단체가 지난 7월6일 청와대 분수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주민에게도 차별없이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사진=노동과세계 제공

단체는 “경기 부양을 위해 소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국적을 떠나 지급하는 것이 재난지원금의 본래 목적에 부합하다는 전문가들 의견보다 누군지 알 수도 없는 혐오 댓글이 보도할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조선족이 감히 정부 정책에 대해 불만을 가진다는 차별·혐오의 감정만 그대로 전하고 있을 뿐”이라며 “혹시 이것이 기사의 의도라면 그건 결코 기사라 부를 수 없다. 밖으로 꺼내놓기 부끄러운 혐오표현”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한국기자협회를 포함한 9개 미디어종사자 단체의 ‘혐오표현 반대 미디어 실천 선언’을 언급한 뒤 “사회적 연대가 어려운 재난의 시기에 소수자에 대한 배제와 혐오는 늘 사용되어온 쉬운 출구전략”이라며 “모든 언론인에게 이주민에 대한 부끄러운 혐오표현, 증오와 폭력의 선동을 멈추고 평화와 공존을 위한 성찰에 동참하여 줄 것을 호소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월 발표된 혐오표현 반대 미디어 실천 선언은 “혐오표현의 개념과 맥락, 해악을 충분히 인식하고, 다양한 사회현상과 발언 등에 혐오표현이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고 전달하겠다”며 “특히 경제적 불황, 재난 상황에 혐오표현이 많이 발생한다는 점을 이해하고, 인권의 측면에서 더욱 면밀하게 살피겠다”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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