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재정 ‘곳간’ 아니라 ‘펌프’라고 해야 할 이유
정부 재정 ‘곳간’ 아니라 ‘펌프’라고 해야 할 이유
언론노조·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정부 예산안 긴급토론회

언론은 재정과 지출을 단지 상충관계(trade-off)로만 보도한다.

재정과 지출은 양립할 수 없다는 투다. 공공사회복지 지출이 늘면 재정 고갈 위험이 있고, 결국 곳간이 거덜 난다는 것이다. 통상 후자에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진다. 재난지원금 대상과 규모를 두고 여당과 갈등을 빚었던 ‘곳간 지기’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 논리이기도 했다. ‘균형재정’(세출과 세입이 균형을 이루는 재정)은 오랜 세월 도그마로 군림했다.

“정부 재정을 곳간”이라고 비유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전국언론노조와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가 14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주최한 토론회(‘포스트 코로나, 2022년 예산안 보도 긴급 토론회’)에서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정부 재정을 곳간에 비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이날 발제문을 통해 “마치 정부가 돈을 많이 벌어서 곳간을 채워놓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상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곳간’ 비유는 잘못됐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국민에게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세금을 걷는다”며 “단순히 세금을 걷어 기금에 적립해놓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가 흉년 때 곳간을 헐어 쓰는 것이 정부 역할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 연구원은 “정부 역할은 시장 효율성과 형평성을 높이고자 돈을 돌리는 것”이라고 했다. 재정의 목적으로 △자원의 효율적 배분 △소득의 공정한 분배 △경제의 안정적 운영 등을 강조한 것. 이어 “경제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경제 과열에는 긴축재정을, 불황에는 적자재정을 편성해야 한다”며 “곳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펌프’가 더 어울린다”고 강조했다.

▲ 전국언론노조와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는 14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포스트 코로나, 2022년 예산안 보도 긴급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언론노조 유튜브 화면
▲ 전국언론노조와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는 14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포스트 코로나, 2022년 예산안 보도 긴급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언론노조 유튜브 화면

언론은 정부 재정을 비판할 때 ‘자극적 단어’를 활용한다. ‘슈퍼예산’이 대표적이다. 이 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 예산안 발표 당시 다수 언론은 400조원 규모의 2017년 예산안을 전년도 386조원과 비교해 ‘슈퍼예산’이라고 보도했다. 앞자리가 ‘사상 최초’로 ‘4’자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7년 총지출 증가율은 불과 3.7%였다. 경상성장률 5.4%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걸 고려하면 사실상 긴축재정이었다. 슈퍼예산이라는 단어 사용 기저에는 과도한 지출에 대한 우려가 깔려 있다. 그렇게 쓰다 보면 곳간이 거덜 난다는 결론이다.

이 연구원은 “예산안이 발표될 때마다 많은 언론이 ‘슈퍼예산’이라고 표현하는 근거는 예산 규모가 사상 최대이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매년 경제성장률이 오르고 세수가 증가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총지출 규모가 증가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는 확장 재정기조임을 증명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여한 이왕구 한국일보 논설위원은 정부 예산과 재정을 다루는 언론 보도가 천편일률적인 현상에 대해 먼저 “예산 정보와 자료를 부처와 공무원이 독점하고 있다”고 지적한 뒤 “재정부처가 사회부처보다 우위라는 인식도 영향을 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돈줄을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 위상과 영향력은 타 부처보다 높다. 언론사 내에도 이런 분위기와 인식이 있다. 이 논설위원은 “한국일보에도 ‘재정’을 강조하거나 ‘복지’를 중요시하는 분 등 여러 색깔의 언론인들이 있다”며 “그러나 주요 결정을 하는 분들은 아무래도 재정 쪽에 있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논설위원은 “‘재정 절벽’이라는 식의 보도가 ‘보장성 확대’를 강조하는 보도보다 눈길을 끈다. 독자들이 즉각적으로 반응하게 된다”며 “전체적으로 사회보험과 복지가 왜 중요한지 고민이 부족하다. 재정 자체를 신성시하는 관성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MBC PD수첩 ‘K-방역의 그늘, 자영업자’ 편을 연출한 소형준 PD는 “대한민국은 의료진 희생과 국민들의 적극적 협조로 방역에 성공한 국가로 분류된다”면서도 “그 이면에는 자영업자들의 아픔이 있다. 이들 손실을 보상할 필요가 있지만 홍남기 부총리는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라며 반대 입장”이라고 지적했다.

소 PD는 “PD수첩 방송을 연출하면서 정부가 예산을 책정하는 데 있어서 재정적 이론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며 “국가 재정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아영 YTN 공정방송추진위원장은 “4년 만에 (예산 총지출이) 200조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라며 “이 부분에 대한 지적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자사 보도 등 사례를 들어 “방송의 경우 신문처럼 뾰족하게 보도하기보다 예산안이 어디에 쓰이는지 전달하는 수준에 그친다”고 분석한 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방송에 출연하면, 이어서 정부 예산안에 비판적 목소리를 전달하는 정도로만 보도되곤 한다. 예산안에 대한 엄밀한 분석 보도가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상민 연구원은 “국가재정의 적극적 역할과 재정의 지속 가능성 사이에서 황금 비율을 찾아야 한다”며 “그러나 황금비율을 찾을 수 있는 경제적, 재정적 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변화한 경제, 사회, 재정 환경에 따라 동태적 황금비율을 국민적 합의를 통해 도출해야 한다. 국민적 합의 핵심은 언론 보도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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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분께 2021-09-14 18:52:27
"펌프"라는 표현을 쓴 사람은 기자가 아니라 기사 본문에 나오는 이상민 연구원입니다. 기자는 그 표현을 제목에 그대로 옮긴 것 뿐입니다.

"펌프"보단 "마중물"이 더 적합한 비유라는 데에는 동의합니다만, "펌프"가 아니라 "마중물"이라고 쓰려면 애초 "곳간" 또한 "곡식"이라 고쳐 쓰는 게 맞을 테지요.

근래 수준 떨어지는 기자들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비판을 하는 시민들도 덮어놓고 비난이 아닌 합리적 비판을 하는 문화가 정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카이엔 2021-09-14 17:02:06
펌프가 아니라 마중물.
펌프는 소상공인들이 할 일이고, 정부는 펌프에 마중물(재정)을 부어주는 일.
기자들이란 양반들이 어휘력 하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