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언론이 김연아 근황을 전하며 “색기 넘친다”는 표현을 썼다는 한국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이 같은 소식을 전하며 한국 네티즌들이 분노하고 있다는 반응도 기사에 담겼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잘못된 해석”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김연아. ⓒ민중의소리
▲김연아. ⓒ민중의소리

의역 아닌 직역 거치며 한국서 관련 보도 쏟아져

국내 언론은 지난 2일부터 일본 언론에서 김연아를 두고 “색기 넘친다”는 표현을 썼다고 보도했다. 네이버 검색 기준 13일까지 총 22건의 온라인 기사가 보도됐다.

첫 보도는 조선일보였다. 정확하게는 조선일보 온라인담당 자회사 조선NS 소속 기자가 작성한 기사다. “日매체, 김연아 근황 전하며 ‘색기 넘친다’…韓 네티즌 ‘역겹다’”라는 제목으로 보도됐다.

조선일보는 “일본 매체가 ‘피겨 여왕’ 김연아의 근황을 전하며 ‘섹시하다’, ‘색기가 넘친다’는 표현을 써 국내 누리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해당 기사를 통해 네티즌들의 분노도 표출됐다. 조선일보 관련 기사에는 네이버 기준으로 총 2300여개의 댓글이 달렸다.

중앙일보는 “‘김연아 색기 짙다’ 아사다 마오와 엮는 日매체, 선 넘었다”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한국의 네티즌 반응이라고 전하며 “‘표현을 가려서 해달라’ 등의 의견이 나왔다”고 했다. 중앙일보 역시 온라인담당 부서인 ‘EYE 24팀’에서 해당 보도를 했다.

이 밖에도 여성조선, 매일신문, 데일리안, 서울신문, 파이낸셜뉴스, 한국일보, MBN, 한국경제, 헤럴드경제, 머니투데이, 위키트리, 이데일리, 동아일보, 스포츠경향, 메트로신문, 세계일보, 매일경제, FT스포츠 등이 유사한 내용으로 보도를 이어갔다.

반면 뉴스1은 조금 다른 보도를 냈다. 뉴스1은 “日매체 ‘아사다와 너무 다른 김연아, 요염하고 색기 넘친다’”는 제목으로 기사를 냈다. 다른 언론들과 달리 일본 언론의 보도를 전하면서 한국 네티즌들의 분노한 반응을 인용하지 않았다. 일본 네티즌들이 ‘극찬했다’고 전한 일본 기사 원문을 그대로 옮겼다.

한국 언론이 인용한 기사는 지난달 31일 보도된 일본 ‘뉴스포스트세븐’의 기사다. 뉴스포스트세븐는 “김연아는 색기 넘치는 미녀로! 아사다 마오와 전혀 다른 은퇴 후 인생”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은퇴 후 모습을 다뤘다.

▲일본 뉴스포스트세븐을 인용한 한국 언론 기사들.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은 부정적 뉘앙스로 관련 보도를 전한 가운데 뉴스1은 다소 다른 뉘앙스로 보도했다. 사진=네이버 뉴스 갈무리
▲일본 뉴스포스트세븐을 인용한 한국 언론 기사들.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은 부정적 뉘앙스로 관련 보도를 전한 가운데 뉴스1은 다소 다른 뉘앙스로 보도했다. 사진=네이버 뉴스 갈무리

의역 시 전혀 다른 뉘앙스 기사라는 지적 제기

제목에서 볼 수 있듯 실제 원문 기사에서도 김연아에게 “색기(色気·이로케) 넘친다”는 표현이 등장하기는 했다. 그러나 일본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색기라는 표현과 일본에서의 이로케라는 표현은 다르다고 지적했다. 일본 언론이 김연아를 모욕하기 위한 취지로 해당 단어를 쓴 것이 아니고 한국 언론은 과장된 해석을 했다는 것이다.

김동규 한국외대 일본어문화학부 교수는 “의역을 해야 했다. 직역해서 논란이 일어난 것”이라며 “언어에는 의미영역이 있다. 어떠한 단어가 가지는 의미영역을 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언어가 달라지면 의미영역이 반드시 겹친다고 할 수 없다”며 “한일이 문법적으로 어순이 같고 하다 보니 단어만 잘 해석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은데 의미 영역 상 차이가 발생한다. 이는 이로케라는 단어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유양근 서강대 일본문화전공 강사는 “사회문화적 뉘앙스의 미묘한 차이가 있다고 보인다. 색기가 우리나라에서 상당히 부정적으로 수용되는 반면, 일본에서 이로케는 성숙해졌다는 의미와 섹시미 등이 함축된 뉘앙스로 받아들이는 편”이라며 “단순히 섹시미, 요염함 등 여성에게 부여되는 편향적 뉘앙스에 가까운 색기로 번역했을 때는 비하나 폄훼로 오인할 수도 있다”고 바라봤다.

오현석 서울신학대 일본어과 조교수는 “너무 과장된 번역이다. 일본어 이로케는 좀더 포괄적 의미로 사용된다”며 “‘김연아가 섹시함이 넘치는 미녀로’, ‘김연아가 성적 매력이 넘치는 미녀로’ 정도가 무난한 해석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해미 경희대 일본어학과 강사는 “일본어 이로케와 한국어 색기는 완전히 다른 단어”라며 “한국어로는 성적 욕구를 자극하는 매력의 의미이지만 일본어로는 사람을 매료시키는 매력의 의미”라고 했다.

임서연 서울시립대 글로벌외국어센터 일본어 강사는 “이로케라는 단어는 일본에서 한국보다는 덜 부정적으로 쓰인다. 섹시하다, 남성 본능을 자극하는 매력이 있다는 의미 정도”라며 “특히 여성스러움, 품위 있음과 같이 내적인 부분에도 많이 사용된다”고 강조했다.

▲한국 언론들이 인용한 일본 뉴스포스트세븐 기사 일부. 사진=뉴스포스트세븐 갈무리
▲한국 언론들이 인용한 일본 뉴스포스트세븐 기사 일부. 사진=뉴스포스트세븐 갈무리

전문가들, 현지 특파원 한목소리로 “잘못 해석한 것”

단순히 단어에 대한 해석을 넘어 기사 자체도 긍정적 의미로 쓰였다는 해석도 이어졌다.

이창민 한국외대 융합일본지역학부 교수는 “직역하면 색기이지만 부정적 의미로 보도됐다기에는 모호하다. 김연아에 대한 칭찬 차원에서 작성된 것”이라며 “우리나라 사람 입장에서는 어떻게 김연아에게 그럴 수 있냐는 반응이 나온 것인데 전혀 나쁜 뜻으로 쓴 게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또 해당 기사가 김연아를 욕한다기보다 아사다 마오와 비교하며 또 칭찬하는 기사다. 일본에서 늘 이어져 왔던 기사”라며 “마냥 비판하기 위한 보도가 아니고 부러움을 표하는 기사”라고 했다.

조유미 경희대 일본어학과 강사는 “기사 전반적 분위기도 김연아를 긍정적으로 보도하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이로케는 일본에서 동경의 대상인 여성을 나타낼 때, 여성으로서 매력이 있음을 칭찬하는 말로 사용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일본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지상파 방송사 특파원 역시 전문가들과 같은 해석을 내놨다.

A특파원은 “우리말 색기와 달리 이로케는 일본에서 나쁜 의미로 쓰지는 않는다. 보통은 좋은 의미의 섹시하다와 비슷한 어감으로 성인 여성이 여성스럽게 매력적이고 아름답다는 의미로 쓴다”며 “일본 원문 기사에서 쓴 의미도 색기가 있다는 의미보다는 ‘좋은 의미의 섹시하다’, ‘매력적이다’ 정도로 해석하는 게 맞다. 나쁜 의미의 색기가 있다는 말은 ‘추잡하다’(いやらしい) 또는 ‘야하다’(エロい) 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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