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2021년 현재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는 쇼핑 플랫폼이 ‘쿠팡’이라는 것을 부정하기는 힘들 것이다. 본래 ‘위메프’나 ‘티몬’과 더불어 2010년대 초반 한창 주목받던 ‘소셜커머스’ 플랫폼을 표방하며 2010년 서비스를 시작한 쿠팡은 일본 소프트뱅크 투자를 바탕으로 한 공격적 경영 전략으로 점차 사세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막대한 적자폭으로 인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2021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에 성공하는 등 쿠팡은 확장적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있다. 특히 독자적 물류 센터를 갖추며 확고한 자신만의 생태계를 형성하는 동시에 산업 생태계와 노동 측면에서는 무수한 비판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쿠팡은 그야말로 ‘한국의 아마존’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기업이 됐다.

미국 아마존닷컴과 닮은 쿠팡의 행보는 ‘미디어 영역’에서도 그대로 벌어지고 있다. 바로 쿠팡의 OTT 플랫폼 ‘쿠팡 플레이’다. 2020년 12월 첫 서비스를 시작해,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 중인 쿠팡 플레이는 본래 미디어와 인연 없던 기업의 OTT 사업 진출이라는 점에서 단숨에 주목을 받았다.

미국 아마존닷컴의 OTT 플랫폼인 ‘프라임 비디오’가 자사 유료 회원 서비스인 ‘아마존 프라임’ 고객들을 위한 부대 서비스 기능을 겸하는 것처럼, 쿠팡 플레이 역시 쿠팡의 유료 회원 서비스 ‘쿠팡 와우’ 고객을 위한 부가 서비스를 겸한다는 점에서 아마존과 무척이나 유사한 행보임은 분명했다.

많은 이들이 쿠팡 플레이의 성공 여부를 반신반의하는 가운데, 쿠팡 플레이는 다른 후발 OTT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새 고객 유치를 위한 행보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바로 ‘독점 콘텐츠’ 확보다.

처음 쿠팡플레이가 확보하기 시작한 콘텐츠는 ‘스포츠’다. 박지성에 이어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서 환상적 기량을 선보이고 있는 축구선수 손흥민이 소속돼 있는 구단 ‘토트넘 핫스퍼 FC’ 경기 중계권을 확보하는 것에서 시작해, 축구선수 이강인이 소속돼 있는 스페인 구단 ‘RCD 마요르카’, 황의조가 소속된 프랑스 구단 ‘FC 지롱댕 드 보르도’ 등 한국인이 관심을 가질 만한 축구 클럽 중계권을 속속 확보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 쿠팡 플레이는 한국 축가 국가대표팀 중계권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비록 무수한 논란 끝에 무산되기는 했지만 지난 6월에는 2020 도쿄 올림픽의 온라인 중계권을 독점하려고 했다. 쿠팡 플레이는 스포츠 독점 콘텐츠를 거침없이 확보하며 사람들 주목을 끌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쿠팡플레이 화면.
▲쿠팡플레이 화면.

‘스포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거액으로 인기 구단이나 스포츠 중계권을 확보해도, 중계권은 영구히 지닐 수 있는 권리는 아니다. 계약을 통해 약속한 독점 기간이 끝나면, 다시 새롭게 인상된 금액으로 또다시 협상에 나서며 중계권을 방영하는 입장에 놓일 수 밖에 없다. 스포츠 중계는 좋아하는 시청자와 싫어하는 시청자가 극명하게 나뉘는 콘텐츠이기도 하다. 어떤 식으로든 쿠팡 플레이가 스포츠 외에도 다양한 콘텐츠를 확보하리라고 사람들은 생각했고, 예상대로 쿠팡 플레이는 스포츠 장르가 아닌 독점 콘텐츠를 서서히 준비하기 시작했다.

독점 콘텐츠 중 하나의 베일이 공개됐다. 바로 지난 2011년 첫 방송을 시작해 2017년까지 9개 시즌에 걸쳐 CJ ENM의 케이블 채널 tvN에서 방송된 코미디 프로그램 ‘SNL 코리아’가 쿠팡 플레이에서 재개한다는 소식이었다.

본래 미국 NBC 방송국에서 1975년부터 현재까지 40년 넘게 방송 중인 미국 간판 코미디 프로그램 ‘SNL’은 ‘Saturday Night Live’라는 정식 명칭대로 매주 토요일 밤마다 방송하며 정치부터 연예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온갖 분야를 거침없이 패러디하고 풍자하는 생방송 콩트 프로그램이다.

2011년 한국에 처음으로 들어온 SNL은 콩트 코미디가 많이 쇠락한 한국의 코미디 지형 속에서, 정치를 포함해 젠더 문제 등 민감한 영역에 대한 풍자가 상당히 쉽지 않은 환경 요인까지 겹쳐 많은 부침을 겪었다. 그럼에도 ‘여의도 텔레토비’나 ‘베이비시터 면접’을 포함해 여러 화제가 됐던 코미디 스킷을 배출하는 등 2010년대 한국 코미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프로그램이었다.

허나 2017년 ‘SNL 코리아’ 방송이 중단된 지 약 4년 만에, 신생 OTT 서비스 ‘쿠팡 플레이’로 프로그램이 제공된다는 소식은 금세 많은 이들에게 화제가 됐다. 그것도 신동엽, 김민교, 안영미, 정이랑, 권혁수 등 tvN 시절 SNL 코리아를 이끈 크루진과 제작진을 거의 그대로 확보한 것과 더불어 1화 게스트부터 이병헌을 비롯해 하지원, 조정석 출연까지 이미 확정됐다는 소식은 더더욱 SNL 코리아 부활을 많은 이들에게 주목받도록 만들었다.

지난 4일 토요일 쿠팡 플레이판 SNL 코리아 1화가 공개됐다. tvN 시절 제작진이 거의 그대로 CJ ENM을 퇴사해 외주 제작사를 만든 뒤 쿠팡 플레이판 SNL 코리아 제작에 참여한 상황에서, 쿠팡 플레이 SNL 코리아 느낌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tvN 시절과 큰 차이가 없었다. TV 방송 없이 온라인으로 방송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살짝 더 수위가 상승한 감은 있으나 시사나 사회 현안에 대한 풍자는 여전히 밋밋했고 1화 게스트 이병헌과 크루진의 개인기에 의존한 면이 없지 않았다.

물론 한국에서 콩트 프로그램은커녕 코미디 프로그램 자체가 거의 다 사라진 가운데, 코미디언 유튜브 채널로는 충족하기 어려운 감각을 원하는 이들에겐 그럭저럭 만족할 수준의 코미디 프로그램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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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플레이의 SNL.

그보다 더욱 필자 이목을 끌었던 것은 SNL 코리아 1화 재생이 시작되기 전에 뜬 하나의 문구였다. 한국의 법적 규정상 VOD를 비롯해 OTT 서비스로 상영되는 모든 영상물은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사전 등급 심의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재생 전 해당 영상의 상영 등급을 의무적으로 고지해야만 한다.

그런데 쿠팡 플레이판 SNL 코리아 1화 시작 전 등급 고지에는 난데 없이 방송 심의 등급이 나와 있었다. 그것도 대다수 시민들이 익히 잘 알 법한 방송국이 아니라 2021년 현재 존속 위기 상황에 놓여있는 지상파 DMB 방송사 ‘QBS’에서 9월8일 당일날 방송을 해 발급됐다고 적힌 등급 심의 결과였다. 처음에는 등급 고지가 잘못 나온 줄 알고 황급히 QBS 홈페이지에서 9월8일 방송 편성표를 찾았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QBS 편성표에는 매우 분명하게 ‘SNL 코리아 1화’가 방송됐다고 적혀 있었다.

분명 해당 작품은 ‘쿠팡 플레이 오리지널’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쿠팡 플레이에서만 독점적으로 제공되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대체 어찌해서 쿠팡 플레이에 정식으로 SNL 코리아 1화가 공개되기 전에 난데 없이 다른 방송사에서, 그것도 지상파 DMB 방송사에서 공개된 것일까?

왜 굳이 QBS였는지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된 이유는 무척이나 분명하다. 영상물등급위의 심의 기간을 기다릴 수 없어 방송사를 통해 기습적으로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사전 등급 의무 규정을 넘어간 것이다. 앞서 ‘모든 영상물들은 영상물등급위의 사전 등급 심의’를 거쳐야 한다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이 규정에는 몇 가지 예외 조항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방송 프로그램’이다.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3조에는 매우 분명하게 ‘방송프로그램을 동일한 내용으로 해 제작한 비디오물’, 다시 말해 방송사를 통해 방송된 프로그램을 수록한 비디오나 DVD, 그리고 VOD는 심의 대상에서 제외됨을 명시하고 있다.

이는 방송사를 통해 방영된 프로그램이 1차적으로 방송사의 자체 심의를 거치며, 2차적으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사후 심의를 거치기 때문에 중복 심의를 방지하기 위해 삽입된 조항이다. 그러나 이 조항은 일단 어떻게든 방송됐다는 것을 증명하면, 영상물등급위 심의를 우회할 수 있어 이전부터 다양한 편법을 위해 사용된 조항이기도 하다. 이전에는 제대로 된 저작권 계약을 맺지 않고 무단으로 출시되는 비디오들이 ‘해당 작품이 TV나 케이블 채널에서 방송됐음’을 명목으로 영상물등급위 심의 과정에서 이뤄지는 저작권 확인 절차를 회피하는 용도로 널리 사용된 전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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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BS 편성표에 명시된 SNL코리아. 

2010년대에 들어서는 이전과는 다른 용도로 이 조항이 매우 절찬리에 활용되고 있다. 바로 OTT 플랫폼들이다. 2016년 넷플릭스를 시작으로 한국에 본격적으로 OTT 서비스가 도입된 후 영상물에 대한 등급 분류 심의를 총괄하는 영상물등급위에는 이전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비디오물 등급 분류 요청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이미 그 전에도 IPTV 서비스나 VOD 서비스 대두로 인해 심의 신청작들이 늘어나 조금씩 심의 인력을 확충하는 상황이었지만 2016년 이후에는 그런 식으로는 한꺼번에 밀려드는 영상물 심의는 결코 어렵다는 사실이 2021년 현재도 최소 2~3주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 기약 없이 심의 결과 발표가 밀리는 심의의 적체 현상으로 입증됐다.

심의 결과가 계속 지체되자 시청자들은 점차 불만을 가지기 시작했다. 특히 ‘넷플릭스’ 같이 글로벌 서비스를 하는 OTT 플랫폼이 문제가 됐다. 다른 나라에서는 한날한시 동시에 공개되는 콘텐츠들을 한동안은 심의 결과 지연을 이유로 한국에서만 상당히 뒤늦게 보게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동시에 일본 콘텐츠 수입은 더 지연되는 것도 함께 지적받았다. 표면적으로는 2004년 ‘제4차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통해 이전까지는 영화는 국제 영화제 수상작만, 이외 일본어가 삽입된 방송물(애니메이션은 ‘더빙’을 거친 동시에, 철저히 일본색을 숨겼기에 방송이 가능했다)이나 음악은 철저히 수입이 제한되던 규제는 사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일본 콘텐츠는 2021년 현재까지도 수많은 제약에 놓여 있다. 일본 영화는 이제 제약 없이 수입, 개봉이 가능하고, 지상파 방송사를 제외하면 케이블 방송사를 통해 일본 드라마를 바로 감상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정작 일본 영상물을 ‘개봉이나 방영 절차 없이 그대로 비디오물로 수입하는 것’은 여전히 금지돼 있다.

이런 문제를 우회하기 위해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플랫폼들은 2010년대 후반경 결국 특단의 수단을 쓰고 만다. 지체 없이 심의 통과가 이뤄지지 않으면 곤란한 글로벌 동시공개 오리지널 콘텐츠, 특히 여전히 뿌리 깊은 규제가 강한 일본산 콘텐츠의 경우 ‘방송 프로그램은 심의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규정을 활용해, 케이블 채널을 통해 기습적으로 틀어 ‘방송 심의 결과’를 받아내는 방식을 활용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 프로그램들은 특정 OTT 플랫폼을 통해 독점적으로 방송돼야 하는 작품들이기 때문에 소위 OCN 같이 유명한 채널들에서는 이들 작품을 틀지 않는다. 척봐도 평균 시청률이 1%는커녕 0.1%도 넘기지 않을 것 같은 군소 케이블 채널에서, 사람들이 더더욱 보지 않을 새벽 시간에 기습적으로 방영한다.

이 방법은 아무리 유명하지 않은 케이블 채널에서, 대다수 사람들은 취침 중일 새벽 시간에 한정해 방영한다고 할지라도 어떤 식으로든 자신들의 독점 콘텐츠가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치명적 한계가 있다. 그래서 2020년 이후부터는 잘 보이지 않게 된 방법이지만 쿠팡 플레이는 SNL 코리아에서 이런 행태를 똑같이 반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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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L코리아. 

왜 쿠팡 플레이는 이렇게까지 SNL 코리아 등급 심의를 우회하려 한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SNL 코리아가 tvN 시절에도 그랬던 것처럼 매주 제작해 매주 방송하는 프로그램인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미리 사전에 모든 촬영을 마치고 한꺼번에 비디오 심의를 받으면 이런 촌극을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SNL 코리아는 비록 이젠 생방송을 하지 않더라도 제작 과정 자체는 매주 이뤄지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허나 영상물 등급 심의가 결코 1주만에 끝날 수 없으니 다른 OTT 플랫폼이 그랬던 것과 같은 행태를, 이제는 지상파 DMB가 지원되는 스마트폰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이름 없는 케이블 채널보다도 상황이 더욱 열악한 지상파 DMB 방송국을 그 대상으로 골랐으리라.

물론 이는 ‘철저하게 합법적인 행위’기에 법적인 처벌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2021년까지도, 그것도 어중이 떠중이가 아니라 쿠팡 플레이처럼 강력한 사회적 영향력을 지닌 대형 쇼핑몰이 운영하는 OTT에서 이런 행태가 벌어진다는 것은 많은 고민을 하게 한다.

왜 넷플릭스에 이어, 쿠팡 플레이까지도 이런 길을 가게 되는 것인가? 가장 큰 문제는 여전히 영상물등급위를 넘지 못하는 현 영상물 심의 제도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영상물 심의 적체 현상이 고질적 문제가 되자 영상물등급위에서 심의 절차를 계속 간소화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리 절차를 간소화해도 심의 인력이 최소 1번 이상은 해당 영상물을 감상하는 절차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2020년에 들어서 본래 영화 평점 사이트로 시작한 ‘왓챠’가 본격적으로 OTT 서비스를 개시하고, 2020년 서비스를 시작한 쿠팡 플레이를 포함해 올해 11월에는 이미 전세계를 뒤흔든 글로벌 OTT 플랫폼 ‘디즈니 플러스’가 한국에 진출한다. 이 외에도 국내외 기업들이 한국에서 OTT 서비스 진출을 위해 논의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현재 시스템에서 영상물 심의가 적체되는 현상은 아무리 심의 자체를 간소화한다 하더라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하게 나오는 말은 ‘해외처럼 영상물 심의를 자율화해야 한다’는 주장일 것이다. 분명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기 곡사 연출의 ‘자가당착’을 비롯해 한국 사회 민감한 영역을 다루거나 수위가 높은 영화들이 대거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나 심지어는 한국에서 사실상 정상적 상영이 불가능한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는 일이 일어나자 심의 체계를 근본적으로 해외처럼 ‘자율 심의’로 뜯어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을 받기 전후로 불거져 나왔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문제와 연계해 심의 문제에 대한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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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물등급위원회 홈페이지. 

그러나 문 정부 임기가 1년도 남지 않은 지금, 그 이전 십여 년간 나왔던 심의 문제 이야기는 사실상 보이지 않는다. 물론 정부 차원에서 계속 ‘토종 OTT 육성’을 명목으로 ‘OTT에 한정해’ 영상물을 자율 심의하는 움직임이 전개됐고, 지난 5월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의 개정안을 제출하며 3년 기한으로 자체등급분류사업자를 지정하는 식으로 OTT 플랫폼이 자체적으로 영상물을 등급 분류할 수 있는 골자의 정부입법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해당 입법안의 세부 사항에는 결국 아무리 자율심의 문을 열더라도, 실질적으로는 영상물등급위의 관리와 감독, 주기적 심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여전하다. 동시에 ‘OTT 플랫폼’에 한정해 자율심의를 도입한다는 점은, 왜 영화인들이 지난 두 정권을 비롯해 지난 1980~1990년대 사전 검열 폐지를 요구했는지 망각하는 태도라는 점에서 상당히 문제적이다.

이 망각은 비단 ‘심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한동안 뜨겁게 달아오르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문제는 민관 합동으로 진상 조사를 하는 단계에 이르렀지만, 조윤선이나 김기춘 등 고위급 핵심 인사에 대한 법적 고소를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책임자 처벌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설사 고소나 파면 등 행위를 했더라도, 이전에도 공무원의 불상사로 인한 해고 행위 상당수가 법적인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취소됐던 것처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가담했다고 지목받은 이들 역시 같은 길을 걷고 있다.

단순한 책임자 처벌을 넘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라는 정부 차원의 전방위적 문화예술 개입을 가능케 한 ‘지나친 관료 중심의, 수직 하향식 문화예술 정책 체계’에 대한 개선은 사실상 이뤄지지 않았다. 현장 문화예술인 목소리를 듣겠다면서 여러 위원회를 만들고, 위원 선임 폭을 넓혔지만 그게 전부였다. 관료가 중심이 되는, 성과 중심 체계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계속 이어졌으며 2020년부터 코로나19가 급속도로 전파되며 오프라인 문화예술 활동이 심각한 속도로 움츠러들며 위기를 맞은 가운데 경직된 사고 양식이 달라지지 않으며 연쇄적 위기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리고 어디 그뿐일까. 졸지에 ‘SNL 코리아’를 쿠팡 플레이보다도 빠르게 방송하게 된 QBS가 존속 위기에 놓여 있는 지상파 DMB 방송사인 것처럼, 미디어 정책 상당수도 매우 지엽적 차원에 놓여 있다. DMB나 4K UHD 방송 같은 기술적 측면에 있어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방송’과 ‘영화’, ‘온라인 콘텐츠’가 쉽게 구별되지 않고 경계가 흐릿해지는 상황에서도 한국의 미디어 정책은 문화예술 정책과 더불어 함께 경직되고, 쉽게 바뀔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쿠팡 플레이나 이전 넷플릭스가 그랬던 것처럼, 자본은 경직돼 있는 제도와 정책을 자신들의 힘을 이용해 쉽게 우회하고 그 사이 미디어 공공성도, 대안적 시도 가능성도 모두 적절하게 구현되고 고민할 시기를 찾지 못한 채 지난 5년 내내 뒷전으로 밀렸을 따름이다.

그런 점에서 ‘SNL 코리아’를 비롯해 OTT 서비스들의 ‘법률을 우회하는 행동’은 단순한 해프닝이나 어쩔 수 없는 일에서 그치지 않는다. 시기에 맞게 적절한 정책과 어젠다를 제시해야 할 정부, 필요한 변화의 목소리를 장기적으로 다양하게 담아내야 할 장르의 영역, 그리고 서로가 지켜야 할 룰을 우회하지 않고 최대한 준수해야 할 자본까지 모두 기능 부전 상황에 놓인 가운데 도의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일이 ‘합법’의 가면을 쓰고 버젓이 난립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입법안처럼 OTT 플랫폼 사업자에게 자율심의 권한을 준다고 문제가 사라질까. 보다 근본적 문화 예술의, 미디어의 로드맵을 바로 보지 않는다면, 지난 몇 달 간 큰 파장을 낳았던 언론중재법 이슈와 같이 매우 부차적이며 도리어 더 큰 부작용을 줄 수 있는 사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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