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자리가 뭘까? 나는 그간 온갖 청년 문제의 핵심 해결책이 일자리 문제라 주장해왔다. 지역, 주거, 취업, 공정, 학자금, 젠더 갈등, 미래 불안, 온갖 고충들이 좋은 일자리가 없어 나온 문제라고 봤다. 근데 막상 청년 정책을 조언해야 할 상황이 오니 그 ‘좋은 일자리’의 이미지가 쉬이 떠오르질 않았다.

조건이야 금방 생각난다. 돈 많이 주는 데다 퇴근 시간 보장하고, 사내 복지 좋으며 상사 갑질 없고, 근속을 길게 가져갈 수 있는 직장. 이렇게 요소만 나열하고 보면 결국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선, 대기업에 일자리 나눠 달라고 회장님들께 조르거나 공무원 채용 늘려달라고 나랏님께 조르는 선택지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짧은 생각이 금세 막다른 길에 다다르자 의문이 들었다. 애초에 왜 ‘나쁜 일자리’가 많은 걸까?

높은 자부심과 낮은 임금

한 KBS 프로그램에 출연해 현재 떠도는 공정 담론에 대한 소신을 밝힌 적이 있었다. 공룡과 토끼가 싸우는 게 무슨 공정이냐. 애초에 비정규직을 뽑는 게 불공정 아니냐. 이 말에 수많은 반론이 달렸다. 대체로 “다 정규직 시켜주면 누가 노력하겠느냐”라는 뉘앙스였다. ‘비정규직은 노력하지 않았다’라는 주장 속엔 노동 가치를 얕잡아보는 시선이 깔려 있었다. 이렇듯 ‘좋은 일자리’를 두고 펼쳐지는 ‘공정 담론’은 지극히 시장 논리에 기반한 주장만 오간다. 정작 직업 종사자의 자부심이나 사명감을 완전히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대다수가 비정규직인 물류나 배달 노동자들은 고된 업무 속에서 물건을 제때 수령 받은 고객들의 미소를 떠올린다. 청소 노동자도 개판이었던 자기 구역이 말끔하게 정돈된 모습에 흐뭇해한다. 일개 하청 용접공인 나도 마찬가지다. 분주하게 도시를 오가는 지하철, 공사판에서 바닥 갈아엎고 있는 중장비, 모래사장 내달리는 대형 트럭을 볼 때마다 내 노동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깨닫곤 한다.

이 외에도 돌봄, 가사, 교육, 예술, 기타 온갖 종류의 노동이 임금 이상의 실제 가치를 지닌다. 이 노동자들이 일하지 않으면 세상은 정지한다. 당장 필수 업종 파업 시에 겪어야 하는 불편함을 떠올려보라. 곧바로 삶의 방식에 변화가 오는 걸 느낄 수 있다. 가장 하찮은 취급을 받는 노동이 외려 없어선 안 될 노동인 셈이다. 그런데 대체 왜 이토록 필수적인 노동이 대체로 ‘나쁜 일자리’에 속할까. 제대로 대우 받기는커녕 때때로 열정 페이나 과로 노동의 늪에 빠지곤 하는 이유가 뭘까.

▲ 3월11일 라이더유니온 관계자들이 서울 송파구 우아한형제들 앞에서 ‘번쩍배달 수입감소·위험증가 배달의민족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3월11일 라이더유니온 관계자들이 서울 송파구 우아한형제들 앞에서 ‘번쩍배달 수입감소·위험증가 배달의민족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중간 착취자를 걸러내고 노동 가치를 높여야

플랫폼 기업들은 최신 기술로 법의 담벼락을 살포시 넘어 중간착취를 구사하고 있다. 헌데 이런 대기업만 노동자 등에 빨대를 꽂는 게 아니다. 지방 제조업 하청업체를 전전하다 보면 기시감이 느껴진다. 사장님들 대다수가 기업의 부장이거나 하급 임원 출신이었다.

이 ‘사장님들’ 대다수가 별로 하는 일이 없다. 관리 혹은 서류 업무는 ‘기사’, 현장-사무를 오가는 중간관리직이나 ‘경리’, 사무실 상주 노동자가 전부 해결한다. 심지어 사장님 중 한 분은 병원에 장기 입원한 적도 있었는데, 두 달 동안 회사는 정말 아무런 문제없이 잘만 돌아갔다. 현장 직원은 한 명만 쉬어도 일의 난이도가 널뛰기하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저런 ‘사장님들’ 일보다 현장 일이 훨씬 많은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게 합당하지 않은가.

이들의 착취는 겉으로 간단히 드러나지 않아 더 문제다. 인터넷에선 중소기업 사장들 풍자할 때 ‘매년마다 차가 바뀌더라’라는 말을 클리셰처럼 사용한다. 겪어보면 실제로 그렇게 노골적으로 티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더더욱 노동자는 언제, 얼마나, 어떻게, 무엇을 착취당했는지 알 길이 없다. 원청에서 노임비로 책정한 금액에서 자기 월급을 제외하는 방식으로 추정만 가능할 뿐이다.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 당연히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중간에서 새어나가는 돈을 잡아 노동자에게 돌려주는 게 우선이다. 구태여 좋은 일자리의 허상만 좇지 말고 필수적인 일자리의 고용을 늘리고 합당한 임금을 줘야 한다. ‘나쁜 일자리’란 없다. ‘나쁜 일자리’를 만드는 ‘나쁜 사람들’이 존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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