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기자들이 2년 전부터 시행한 재량근로제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9일 조선일보 노동조합(위원장 김인원)이 발행한 조선노보를 보면, 조선일보의 부장·차장급 기자들은 52시간을 넘겨서 일하면서도 근무시간표를 52시간에 맞춰서 작성하고 있다.

조선일보 노조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5월까지 11개월 동안 편집국에서 초과근무로 대체 휴무가 발생한 인원은 총 72명(중복포함)이다. 72명 중 부장은 없고, 차장은 15명, 사원은 57명이다. 노조는 “통계 수치만 보면 부장·차장은 비교적 52시간을 잘 지켜 일하고, 사원들만 집중적으로 초과근무를 하는 것이다. 물론 실제 편집국 상황은 이 같은 수치와는 완전히 딴판”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조선미디어그룹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조선미디어그룹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노조는 52판 마감까지 확인하고 퇴근하는 날이 허다해 근로시간이 52시간을 훌쩍 넘는 조선일보 차장급 A기자 이야기를 전했다. A기자는 “출근 시간을 오후로 넣어보았는데 너무 게으른 사람처럼 보여서 마음에 걸리더라. 추가 휴게 시간을 매일 4~5시간씩 넣어보기도 했는데 그것도 출근해서 계속 노는 것처럼 보여서 찝찝하다. 근무시간을 어떻게 써 넣어봐도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건 마찬가지더라. 그런데 이걸 대체 왜 고민해야 하는지 한숨이 나온다”고 말했다.

노조는 이어 차장급 B기자 사례를 설명했다. B기자는 근무시간을 일괄적으로 ‘오전 9시 출근~오후 7시 퇴근’으로 기입했는데, 그는 몇 달이 지나서야 ‘오후 7시 퇴근’으로 적을 경우 야근 수당을 전혀 받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현재 조선일보 편집국 야근 수당은 오후 8~10시 퇴근 1만원, 오후 10~12시 퇴근은 1만5000원, 자정~새벽 2시는 3만원, 새벽 2시 이후 퇴근은 4만원이다.

조선일보 기자들은 선배들의 근무시간 왜곡부터 개선해야 재량근로제가 제대로 시행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현재 편집국에는 주6일 근무하는 차장들이 여럿 있다. 그러나 초과근무가 발생한 72명(중복 포함)에서 누구나 다 알만한 그들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알아서 근무시간을 ‘깎아’ 적고 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조선일보 기자들은 “재량근로제 취지를 살리려면 편집국에 만연한 근무시간 왜곡부터 사라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노조는 재량근로제 재협상과 관련, 회사 측에 초과근무로 발생한 대체 휴무를 사용하지 못했을 경우 금전적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합의서 개정 의사를 전달한 상태라고 한다. 노조는 “그러나 근무시간을 실제와 다르게 기입하는 현재 상황을 내버려 둘 경우 자칫 합의서 개정이 더 심한 근무시간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했다.

조선일보의 C기자는 “대체 휴무 쓰는 것도 눈치가 보여 근무시간을 제대로 적지 못하는데, 수당을 받는 문제와 연관된다면 더 심한 눈치보기 상황이 생길 것 같다”고 말했다.

노조 대의원을 맡은 조선일보 기자들은 지난달 24일 열린 대의원 회의에서 “근무시간을 축소해 유지하는 재량근로제는 지속 불가능하다. 재량근로제 재협상에서 근무시간 입력 방식과 그 기준까지 새롭게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D기자도 “회사 측에서 편집국 구성원들의 근무시간을 살펴보면 얼마나 실제와 동떨어져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회사가 이런 상황을 외면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노조는 추석이나 설날 등 명절 당직에 저연차 기자들이 주로 배정되는데 추후 휴무를 꼭 보장하자고 이야기했다. 5년차 미만의 E기자는 “설 연휴 때 다들 4일 쉬었지만 나는 3일만 쉬었다. 나중에 하루 더 쉬게 해준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바쁘게 돌아가는 부서에서 아무도 쉬라고 챙겨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조선일보 기자들은 “다른 부서원들을 위해 희생하는 만큼 당번 근무로 못 쉰 휴무는 꼭 보장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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