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징벌적 손해배상과 열람차단청구권 등을 내용으로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두고 공방을 벌이는 가운데 ‘윤석열 검찰의 고발사주 의혹’,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의 투기의혹’ 등의 보도가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언론중재법 협의체에 참여하고 있는 김용민 더불어민주당은 이 두 사안을 거론하며 “공적인 사안이므로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여야가 최근 의혹보도를 두고 언론중재법을 이해관계에 따라 이용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국일보는 9일 “민주당이 박수치는 고발사주 의혹 보도, 언론중재법 있어도 가능할까”란 기사에서 “이달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해당 개정안이) 통과되면 권력의 비위를 들추는 고발·탐사보도는 극도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윤석열 후보, 손준성 검사, 김웅 국민의힘 의원 등이 기사 제목이나 본문 내용을 문제 삼아 기사차단을 요청할 수 있고, 손 검사나 윤 의원의 부친은 고위공직자에 해당하지 않아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내용의 기사다. 

▲ 9일자 한국일보 정치면 보도
▲ 9일자 한국일보 정치면 보도

한국일보는 최종적으로 의혹을 제기한 언론사가 배상판결을 받는 것을 떠나 기자들이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신문은 “일단 소송이 걸리면 의혹 관련 후속 보도는 어려워진다”며 “고의중과실 추정 요건 중 하나로 ‘반복적 허위조작보도’를 든다”고 했다. 이어 “고의중과실 입증책임을 언론사에 넘긴 대목도 문제”라며 “언론사는 고의가 없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고발사주 의혹 제보자 혹은 윤 의원 아버지 관련 증언한 제보자를 노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언론의 위축 효과’에 대해선 배제한 채 해당 보도들이 징벌적 손배나 열람차단의 대상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모두 공적인 보도이기 때문에 열람차단청구권이나 징벌적 손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김 의원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마치 공익을 위한 보도를 막는 법으로 호도하고 있다”며 “언론에 주어진 사명, 공익을 위한 비판은 보호하고 가짜뉴스로 인해 선량한 국민이 입는 피해를 막는 법안”이라고 했다. 결국 최종 판단은 법원이 하기 때문에 김 의원 주장에는 의혹을 보도하는 기자들이 실질적으로 겪는 ‘위축 효과’에 대한 답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정치권에서 언론중재법을 사안에 유리한 맥락에서 꺼내기도 한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에서 최서원(옛 최순실)씨가 안민석 민주당 의원을 상대로 한 손배 소송에서 승소한 것을 거론하며 “국회의원에게도 5배의 배상 조항을 도입해야 하는지 민주당에 묻고 싶다”고 했다. 

▲ 사진=pixabay
▲ 사진=pixabay

뉴스버스가 고발 사주 의혹을 처음 보도한 지난 2일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는 “이런 충격적인 기사를 메이저 언론에서 왜 안 쓰는지 알 수 있나”라고 말했다. 이에 경향신문은 “최 대표 발언은 가짜뉴스에 다른 피해가 막대하다며 언론의 신중한 사실 확인을 강조한 언론중재법 개정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야권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을 비판하면서도 ‘고발사주 의혹’에 대해 윤석열 캠프가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반응한 것도 비판했다. 이진동 뉴스버스 발행인은 같은날 TBS라디오에서 “윤 전 총장이 직접 언론에 재갈 물리는 법을 만들면 안 된다고 얘기했는데, 비판 보도가 나왔다는 이유로 법적 대응을 한다는 건 좀 모순되지 않나”라고 비판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도 이날 당 최고위원회에서 “언론이 언론 재갈 물리기를 하는 이런 사람(윤 후보)을 옹호하면서민주당의 언론중재법을 저지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라고 말했다. 

언론중재법을 다루는 언론사 역시 이해당사자로서 기사가 다소 단순한 논리에 기반하는 경우가 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 이슈가 달아오르던 지난달 다수 매체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있었다면 국정농단 관련 보도가 없었을 것이라는 내용을 기사제목으로 뽑았다.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19일 국회 문체위 전체회의에서 “이 법이 있었다면 최순실씨(최서원)가 징벌적 손배로 바로 소송할 만한 무서운 법”이라고 비판하면서 이러한 메시지의 기사가 대량으로 쏟아졌다. 

▲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있었다면 국정농단 보도가 없었을 것이라는 기사들
▲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있었다면 국정농단 보도가 없었을 것이라는 추측성 기사들

결국 언론보도에 대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대응하면서 언론중재법을 꺼내 든 셈이다. 

심지어 여권과 각을 세우고 있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지난달 30일 “언론재갈법을 폐기해야 한다”며 “언론중재법이 전두환 정권 때 있었다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보도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 대표는 “최순실(최서원) 사건과 조국 사태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덧붙였다. 정치적 맥락이나 민주적 사회 분위기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언론중재법이 모든 의혹보도를 막는 것처럼 주장하다보니 전두환 정권 시기를 마치 표현의 자유가 보장됐던 시기처럼 묘사하는 극단적 상황에 이른 것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