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 진중권씨는 2019년 조국 사태 때 진보진영과 갈라섰다. ‘어용 지식인’이라는 말이 상징하듯 일부 진보 인사들은 어용을 자처했다. 그들을 필두로 한 강성 지지자들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수호’하고자 했다. 이들에게 공직자 검증을 요구하는 언론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그해 조국 보도는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고 가십거리로 조국 일가를 난도질하는 기사도 적지 않았다. 검찰 소스의 일부 기사도 논란을 불렀다. 그러나 조국 지지자들의 비난을 감수하면서 재판 하나하나를 기록하고 검증하는 기자들도 존재했다.

야당을 대신한 여당 견제 역할

이처럼 ‘옥석’이 있건만 대다수 진영인사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언론을 한 묶음으로 여론재판 교수대에 올리기 바빴다. 반면, 진씨는 조 전 장관 배우자 정경심 교수의 동료였음에도 조 전 장관 일가 위선을 비판했다. 무력한 야당을 대신해 여당을 견제하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지난해 1월1일 언론을 주제로 한 JTBC 신년 토론회였다. 진씨는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발언을 보도한 유희곤 경향신문 기자를 거론하며 “내가 유희곤 기자를 만나 취재 과정을 들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런 거(검찰과의 결탁)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연합뉴스
▲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연합뉴스

토론회 상대 패널이었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정준희 교수는 ‘검찰 받아쓰기 보도’ 등을 이유로 레거시 미디어에 비판적 입장이었다. 두 패널은 여러 방송에서 ‘조국은 언론과 검찰에 희생됐다’는 서사에 부합하는 발언을 주로 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유 이사장의 알릴레오 방송은 유 기자를 직격하며 검언유착 의혹을 확산시켰다. 이에 진씨는 “검찰과 유착돼서 (기사를) 받아먹고 그걸 하나 주면 데스크에서 물어다줄 거라는 둥 음모론을 폈다”고 반박한 뒤 패널들에게 “여러분들은 유희곤 기자를 만나는 봤느냐”고 되물었다. 오피니언 리더들이 매체에 나와 검증 없는 무책임한 의혹이나 음모론을 쏟아내고 있는 현실에서, 사실을 확인하려는 진씨의 노력은 나름 의미가 있다고 봤다. 

조국 사태 2년, 진중권의 인상비평

조국 사태로부터 2년. 정경심 교수는 자녀 입시 비리와 사모펀드 관련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 받고 상고심을 기다리고 있다. 이 재판에선 조 전 장관이 직접 딸 스펙을 위조했다는 사실도 인정됐다. 여전히 ‘조국은 언론과 검찰에 희생됐다’는 서사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밀어붙이는 동력이 되고 있지만, 법의 엄중한 심판을 되돌아보면 언론의 공직자 도덕성 검증이 왜 중요한지 새삼 일깨운다.

그러나 진영을 넘나드는 진씨 논평도 ‘인상비평’에 그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이를 테면 지난 7일 오후 CBS 시사 라디오 ‘한판승부’ 방송이다. 이날 고정 패널인 진씨와 열린민주당 대변인 김성회씨는 같은 날 오전에 있었던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인터뷰를 주제로 논평을 주고 받았다.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이해찬 전 대표는 최근 논란이 된 윤석열 전 총장의 여권 인사 고발 사주 의혹에 관해 “작년 총선 당시 감사원 쪽에서 하나, 검찰에서도 2개 (정치 공작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는데, 이번에 보니까 2개 중 하나는 이거였고 하나는 유시민 건”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진씨는 “(이해찬 발언은) 사후 조작, 사후 공작이라고 본다”며 “(채널A 기자의 취재윤리 위반 사건에 관해) 검언유착이라고 공작을 했다가 결국 자기들이 줄줄이 유죄판결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한 뒤 “(이해찬 발언은) 검언유착(이 거짓으로 드러난 것)까지도 (윤석열 고발 사주 의혹으로) 뒤엎으려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김성회씨는 “인터뷰 내용을 안 들어보신 것 같은데, 검언유착 내용이 잘못됐다거나 잘됐다는 이야기는 인터뷰에서 하지 않았다. 어떤 부분을 조작이라고 말씀하시는지, 인터뷰 내용을 모르고 조작이라고 하시는 건 무리가 있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목소리를 높이며 “이해찬 인터뷰 내용을 전혀 모르시고 무조건 조작이라고 선언하시는 것은 패널로서 맞지 않는 태도 아니냐”고 되물었다.

진씨는 “(이해찬은) 당시(지난해)에 제기했던 의혹을 지금 다시 제기하는 것”이라며 “그때도 (이해찬은 검찰을 겨냥해) ‘검은 그림자’라고 했는데 그 검은 그림자는 한동훈-채널A 사건이었고, 이 사건은 (민주당 진영의) 정치공작으로 드러났다. 그걸 반복하는 걸로 나는 파악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오늘 아침 (이해찬) 인터뷰에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재차 반박했다.

▲ CBS 라디오 한판승부 출연진. 왼쪽부터 김성회 열린민주당 대변인, 박재홍 CBS 아나운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사진=CBS 제공
▲ CBS 라디오 한판승부 출연진. 왼쪽부터 김성회 열린민주당 대변인, 박재홍 CBS 아나운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사진=CBS 제공

‘언론 불신’ 부를 진중권의 비평

진씨 비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이 전 대표는 윤석열 검찰의 여권 인사 고발 사주 의혹을 ‘검찰의 공작’으로 단정하고 꿰맞췄다. 평론가로서 충분히 이 전 대표의 정치적 의도를 비판할 수 있다. 노회한 정치인의 주장을 검증하거나 반박 질문 없이 흘려보낸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진행자 김어준씨의 편향성도 우려한다.

다만, 진씨가 비판 대상이 어떤 맥락에서 어떤 발언을 했는지 보지도 않고 비판하고 있다는 취지의 김씨 지적은 뼈 아픈 비판이다. 한 청취자는 유튜브에 “진중권씨 그때 검언유착 공작으로 여당의 누가 처벌을 받았나요? 사실을 호도하면 안 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는데, 이는 채널A 기자의 취재윤리 위반 사건 이후 오히려 여당이 “줄줄이 유죄판결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는 진씨 발언에 대한 반박이다.

이와 관련해 SNS에 이동재 기자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의 1심은 현재 공판 중이다. 선고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채널A 사건 수사팀장이었던 정진웅 검사가 지난달 유죄를 받은 까닭은 압수수색 과정에서 한동훈 검사장을 독직 폭행했다는 혐의가 인정돼서다. 정치권을 겨냥해 “공작을 했다가 줄줄이 유죄판결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는 진씨 주장은 이 점에서 잘못됐다.  

진씨의 섣부른 비평을 우려하는 까닭은 ‘언론 신뢰’에 있다. 인플루언서가 냉철하고 차분하게 기사를 비평하기보다 언론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다 보면 대중은 언론을 불신하게 된다. 조국 전 장관 검증 보도 자체를 비난했던 일부 지지자들과 같은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진씨는 8일 오전 SNS에 지난 2018년 7월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공유하며 “이재명과 국제마피아. 바로 이 사건이었지요? 이해를 못하겠네. 왜 이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는 거지? 미리 쉴드 치려고 프레임 까는 모양”이라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전날 KBS가 보도한 검찰의 이재명 경기도지사 표적 수사 의혹에 대한 반응으로 비쳤다.

KBS는 7일 검찰이 2017년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 비위 사실을 털어놓으라며 이준석 전 코마트레이드 대표를 별건·과잉 수사로 압박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2018년 SBS 그알은 이준석 전 대표가 경기도 성남의 조직폭력집단 국제마피아파 출신이라는 의혹을 제기하며 이 지사와의 관계에 의문을 제기했다. 

진씨는 KBS 보도가 이 지사에 편향적이라는 취지로 SNS 글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재석 KBS 기자는 “검찰의 수사 관행이 그동안 얼마나 잘못됐는가를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명료한 사례”라며 “이재명은 등장하는 어떤 이름일 뿐”이라고 밝혔다. ①이준석 전 대표는 조폭설을 전면 부인하고 있고 ②이 전 대표가 조폭과 연루됐다는 의혹은 무혐의로 결론 났으며 ③만약 조폭이라고 가정해도 과잉·별건수사를 무조건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게 KBS 취재진 입장이다. 

KBS 보도가 사실에 부합하는지는 시간을 두고 검증할 필요가 있다. 진씨가 유희곤 기자를 만나 사실관계를 따져보려 했듯 말이다. KBS 보도에서 이재명 이름 석 자를 빼놓고 보면, 남는 것은 검찰의 무리하고 강압적인 별건 수사다.

진중권 “미디어오늘 비판, 난 신경 안 써”

진씨와 8일 오후 통화했다. 그는 이해찬 전 대표 인터뷰 내용 전체를 본 것은 아니고 인터뷰를 요약한 대본을 숙지하고 발언했다고 했다. 그는 “인터뷰를 다 보고 안 보고 간에, 인터뷰 내용이 정리된 원고를 보고 이야기한 것”이라며 “요약 내용이 인터뷰 취지를 왜곡했다면 문제가 되지만, 그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진씨는 ‘인상비평’ 지적에 “황당하다. 세상에 나오는 모든 걸 내가 다 읽고 논평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요약을 보는 건데 그 요약문이 잘못 요약됐다면 그걸 비판하는 게 맞다”고 반박했다.

그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밀턴 프리드먼을 인용했다가 비판받았던 사례를 꺼내며 “(윤 전 총장의) 밀턴 프리드먼 인용 발언을 비판했던 사람들이 밀턴 프리드먼을 읽고 비판하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전체 내용을 봤느냐 안 봤느냐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진씨는 KBS 보도에 관해서도 “큰 맥락에서 패턴이 보인다”며 “피의자와 전과자를 증인으로 내세우는 패턴이 벌써 4~5번째 반복되고 있다. 이 차원에서 KBS 보도 취지를 의심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권언유착’ 당시 KBS 태도가 있지 않나. 그래서 KBS 보도에 의구심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KBS는 지난해 7월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이 (202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신라젠 주가 조작 연루 의혹을 제기하자고 공모했다는 정황이 확인됐다”고 단정해 보도했으나 이는 오보였다. 

한 검사장은 KBS 기자들을 상대로 5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채널A 기자 사건과 이재명 표적 수사 의혹은 별개 아이템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지난해 KBS ‘검언유착’ 오보가 부실한 데스크 아래 긴박하게 진행되면서 참사가 빚어진 것이라면, 이재명 표적 수사 보도 취재진은 “법률적 진단을 위해 이번 사건과 무관한 복수의 전문가를 별도의 자문단으로 꾸려 사건 관련 자료 3000여 쪽을 분석했다”고 말한다. 좀더 지켜볼 만한 취재물인 것.

▲ 왼쪽부터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방송인 김어준씨,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사진=미디어오늘, 연합뉴스
▲ 왼쪽부터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방송인 김어준씨,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사진=미디어오늘, 연합뉴스

자신의 영향력 간과하는 진중권

진씨는 기자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내 판단은 다르다”라며 “KBS 보도는 윤석열을 공격하는 맥락 속에 정확히 배치돼 있다”고 했다. 이어 “페이스북 글에 내 의구심을 암시는 해놨지만 보도가 허위다, 조작됐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담지 않았다”면서 “내가 그렇게 이야기할 때 비판하는 게 맞다”고 반박했다.

언쟁이 이어지자 진씨는 “미디어오늘에서 뭐라고 보도해도 하나도 신경 쓰지 않는다”며 “그러니까 보도를 그냥 하시라. 미디어오늘이라는 매체도 난 잘 안 믿는다. 대단한 발언을 한 걸 들고 오면 정식으로 반론을 펴겠는데, 말도 안 되는 걸로 트집을 잡고 있다. 나를 공격하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고 강조했다.

기자가 재차 사실관계를 따져보지 않는 인상비평에 문제의식이 있다는 뜻을 전하자 진씨는 “내가 칼럼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인상비평을 하면, 그때 비판하면 된다. 본격적으로 글을 쓴다면 사실확인을 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은 지난 2년 진중권의 입을 주목했다. 집권 여당의 ‘내로남불’을 풍자하는 그의 입은 점점 더 전투적이고 거칠어졌다. ‘진중권 (인용) 저널리즘’이라는 조어가 나올 정도로 언론은 받아쓰기 바빴다. 쉽게 진씨 발언을 주워담으며 조회수를 챙겼다. 게으른 언론은 논객 진중권의 영향력이 여전한 막강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진영논리를 무비판적으로 설파하는 유시민·김어준 만큼, 이제 진중권에 대한 비판과 논쟁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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