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성평등센터, 한겨레 젠더 데스크, 서울신문 젠더 연구소, 한국일보 젠더 뉴스레터 ‘허스토리’. 각 언론사에서 형태는 다르지만 조직 내 젠더 문제와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지, 또 저널리즘적 해법은 무엇일지 고민하고 실행하는 움직임이다.

지난 3일 미디어오늘이 주최한 ‘저널리즘의 미래’ 컨퍼런스 ‘젠더와 저널리즘 라운드 테이블’에 참가한 서영주 KBS 성평등센터장, 이정연 한겨레 젠더데스크, 이슬기 서울신문 젠더연구소 기자, 이혜미 ‘허스토리’ 기획자(한국일보 기자)가 각자의 경험을 발제했다. 발제자들은 각 조직의 역할, 조직이 만들어지게 된 과정과 변화에 대해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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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이 주최한 '2021 저널리즘의 미래' 컨퍼런스 '젠더와 저널리즘' 라운드 테이블 세션. 

2018년 방송사 최초로 만들어진 KBS 성평등센터. KBS 성평등 문화조성에 관한 공적 책임을 이행하는 플랫폼으로 △임직원 등의 성인지 감수성 향상 △성평등 조직 문화 구현 및 성차별 개선 △성희롱 성폭력 예방 및 사건 조사 업무를 맡고 있다. 성평등 기본규정 제정, 성평등위원회 구성, 성평등 제작 현장 가이드라인 등을 제작했다.

한겨레 젠더데스크는 2019년 5월 만들어진 직책으로 성인지 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모니터링, 가이드라인 등 내부점검 업무를 맡는다. 이정연 젠더데스크는 이 직책이 생긴 이후의 변화로 △기준의 공유 △답습 아닌 학습 △질문의 시작 △데스크의 변화를 꼽았다. 젠더 보도를 하며 이전에는 누구한테 질문해야할지 몰랐던 구성원들이 데스크가 생긴 이후 질문할 곳이 생겨, 더욱 적극적으로 고민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이러한 경험들을 정리해 ‘한겨레 젠더보도 가이드라인’도 만들게 됐다.

이정연 데스크는 “가해행위를 사실대로 쓰는 것이 문제인지, 가해자의 발화 내용은 무조건 배척해야하는지 등 성평등 보도에 대한 논쟁은 끝이 없다”며 “정답이 있을 수 없지만, 위력에 의한 폭력이나 성차별과 피해자다움 등에 대한 비판적 고려 없이 정답만을 요구하는 태도는 안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성평등 보도를 위한 설득과 설명은 당분간 과제일 수밖에 없으며 의사 결정권자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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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연 한겨레 젠더데스크의 발제문 중 일부. 한겨레에서 젠더데스크가 만들어진 과정. 

서울신문의 젠더연구소(소장 김균미)도 독특한 조직이다. 2019년 6월 설립된 서울신문 젠더연구소는 사장 직속 기구로 △여성 서사 가시화 △성평등을 위한 방안 모색 △색다른 콘텐츠를 위한 고민 △사내 젠더감수성 제고 역할을 맡고 있다. 기획 기사인 ‘더 많은 여성 서사가 필요해’, ‘이슬기의 대담한 언니들’을 발행하고 이슈에 대한 포럼을 열고 사내 강연도 만든다.

한국일보 ‘허스토리’는 젠더 이슈를 다루는 뉴스레터다. 올 1월 한국일보 사내공모 기획을 통해 출범했다. 구독자수는 수천명 수준이며 오픈율은 40% 안팎의 뉴스레터다. 타 조직의 사례처럼 조직적 인사를 통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성평등을 위한 목소리를 내는 언론사 내 움직임으로 분류했다.

이혜미 ‘허스토리’ 기획자는 뉴스레터를 기획한 이유로 “기성 매체의 한계를 극복하는 연결의 경험을 만들고 싶었으며 포털 전송을 통한 일방적 노출이 아닌 공유하는 가치관으로 독자와 관계를 만들고 싶었다”며 “파편화된 뉴스 생태계에서 사회 의제들이 조각조각났다. 타깃 독자에게만이라도 공동체 유지를 위한 저널리즘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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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공개된 미디어오늘 '2021 저널리즘의 미래: 젠더와 저널리즘' 라운드 테이블 세션.

성평등 의식 낮은 언론사 조직, 독자 신뢰 잃을 수밖에

이러한 조직들이 언론사 내 다양성을 높이는 측면뿐 아니라, 언론사의 경쟁력과 신뢰도를 높이는 수순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서영주 KBS 성평등센터장은 “시청자 상담실에 접수되는 성평등 관련 건수가 전년 대비 3배로 늘었다”며 “최근 시청자분들의 젠더 감수성 상승과 이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대중의 수준이 높아진 만큼 언론사 조직도 꾸준히 목소리를 내야하고 이것이 경쟁력에 기여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서 센터장은 통계와 데이터를 가지고 논리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슬기 서울신문 기자는 “서울신문에 젠더연구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성평등을 지향하는 보도를 위해 노력하는구나’ 인식시킬 수 있다”며 “젠더연구소 역시 여성가족부처럼 언론사 내 성평등이 이뤄진다면 존치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차별 문제가 여기저기 터져나오는 시점에서 성평등을 추동하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일방적 주장을 하기보다는 ‘연구소’인 만큼 과연 성평등한 보도가 무엇인지 토론하는 장을 내외부에서 만들고 피드백을 받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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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 서울신문 젠더연구소 기자의 발제문 중 일부. 서울신문 내 성평등 보도를 위한 노력을 짚었다. 

이혜미 ‘허스토리’ 기획자는 ‘성평등한 언론사 조직은 언론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바꿔 ‘성평등하지 않은 언론사 조직은 독자에게 신뢰를 받을 수 있는가’ 되물었다.

이 기자는 “성평등이라는 가치는 이제 ‘민주주의’라는 가치처럼 사회의 디폴트, 기본값이 됐다”며 “젠더 감수성이 떨어지는 기사를 내는 언론사는 독자들에게 질책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뒤처지고 있다는 평을 듣게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성평등과 관련한 조직에서 업무를 할 때 스스로가 속한 조직을 비판해야하거나, 외부에서의 비판이나 공격을 감수해야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어려움은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이슬기 기자는 “어떤 조직이든 젠더 이슈에서 완전히 일치된 의견을 만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조직 내에서 첨예한 논쟁이 진행될 때 서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기사를 써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언론사 조직 내에서 변화를 위한 목소리를 내는 것도 기사를 쓰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서영주 센터장은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다양성 보고서를 보면 여성 주인공이 과반을 넘었다고 한다. 그 원인은 핵심 제작 인력에 여성 인력이 많아졌다는 것”이라며 “여성이 다양한 분야에서 적절하게 배치되고 일할 수 있는 조직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이유”라고 밝혔다.

한편 ‘저널리즘의 미래’는 1년에 한 번 미디어 업계의 도전과 실험, 시행착오로 얻은 경험을 공유하는 미디어오늘이 주최하는 컨퍼런스로, 올해 컨퍼런스는 9월6일부터 24일까지 티켓 구매자에 한해 VOD로 다시 볼 수 있다. (2021 저널리즘의 미래 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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