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의 지배구조(G) 세탁

8월26일 저녁,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사익편취 관련 기사가 나왔다. SK는 2017년 1월 LG로부터 실트론 지분 51%를 경영권 프리미엄이 포함된 주당 1만8천원에 인수했다. 이후 4월에 경영권 프리미엄이 빠져 30%가량 할인된 잔여지분을 주당 1만2천871원에 인수했는데, 잔여지분 49% 중 19.6%만 인수하고 나머지 29.4%는 최태원 회장이 인수했다.

이것이 문제가 됐는데, SK가 잔여지분 전량을 인수할 수 있었는데도 최 회장이 싼값에 지분을 인수해 사익편취를 하게 했다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사건을 조사한 결과 위법성이 인정된다고 보고 SK와 최 회장에 대한 제재안을 담은 심사보고서를 SK측에 곧 발송할 예정이라고 기사는 전했다.  

○ 관련기사 : 공정위, SK실트론 사익편취 조사 마무리… 내주 심사보고서 발송 (연합뉴스 2021년 08월26일)

최태원 회장의 실트론 지분 인수가는 2500억원 정도인데 5년여 지난 지금 해당 가치는 최소 1조원 이상 되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SK실트론은 비상장 기업인데, 상장 시 기업가치가 최소 4조원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이 지분인수로 보유하게 된 실트론 지분은 최태원 회장의 유일한 계열사 지분이다. 때문에 상황에 따라 지주회사인 ㈜SK와 SK실트론 합병으로 최 회장의 지주회사 지분율을 높일 수단도 된다. 가령, 노소영 관장과의 이혼과 재산분할 요구로 만약 SK그룹의 지주회사인 (주)SK의 최태원 회장 지분이 분할된다면, SK와 SK실트론의 합병으로 분할된 지분의 상당부분을 회복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사건이 사익편취라고 최종 결론이 난다면 금전적 이득뿐 아니라 지배구조 상에서도 상당히 유리한 조건을 부여하는 심각한 문제로 볼 수 있다.

▲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익편취 조사 기사, 20여건에 불과하다. 사진=네이버 뉴스 검색화면 갈무리
▲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익편취 조사 기사, 20여건에 불과하다. 사진=네이버 뉴스 검색화면 갈무리

연합뉴스 보도 이후 20여개 언론사에서 이 문제를 보도했다. 그런데, 다음날 8월 27일 아침 9시부터 전날 폐막한 SK그룹 주최의 ‘이천포럼 2021’과 폐막식에서 최태원 회장 연설 기사가 도배되기 시작했다. 내용도 거의 같은 수백 건의 기사가 포털에 올라왔다. 결국 최태원 회장의 사익편취 기사를 이천포럼 연설 기사로 뒤덮은 꼴이 됐다.

▲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이천포럼 연설 기사는 수백건에 이른다. 사진=네이버 뉴스 검색화면 갈무리
▲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이천포럼 연설 기사는 수백건에 이른다. 사진=네이버 뉴스 검색화면 갈무리

최태원 회장은 환경위기와 사회문제 해결, 지배구조의 투명성 등을 경영의 중심 가치로 놓는 ESG경영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 최 회장이 사익편취를 했다는 공정위 조사보고서는 최 회장은 물론 SK그룹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SK그룹과 최 회장은 ESG 경영 중에서도 특히 지배구조(G)와 관련해서는 어떤 계획도, 전진된 입장도 보이지 않고 있다. 재벌그룹 중에서도 SK그룹은 가장 낮은 총수 지분율로 악명이 높다. 최태원 회장의 그룹 전체 지분율은 고작 0.025%이고 총수일가 전체도 0.49%에 불과하다. 이런 낮은 총수 지분 때문에 지주회사를 통한 계열사의 주식보유로 그룹을 지배하고 있는데, 자기주식을 5% 이상 보유한 계열회사가 10개로 대기업 집단 중에서도 가장 많은 숫자다. 결국 이런 문제들로 인해 SK그룹은 자체 ESG평가 기준을 만들어 발표하고 있지만, 지배구조 평가와 관련해서는 ‘기준마련 중’이라며 아직까지 평가기준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 관련기사 : [홍석만의 경제 매뉴얼] SK그룹 성과급 논란과 사회적 가치의 허상 (미디어오늘 2021년 2월14일)

▲ 8월26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경기도 이천 SKMS연구소에서 열린 ‘이천포럼 2021’ 퀴즈 이벤트에서 퀴즈 참가자들과 함께 퀴즈를 풀고 있다. 사진=SK그룹 홈페이지
▲ 8월26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경기도 이천 SKMS연구소에서 열린 ‘이천포럼 2021’ 퀴즈 이벤트에서 퀴즈 참가자들과 함께 퀴즈를 풀고 있다. 사진=SK그룹 홈페이지

현대차그룹의 환경(E) 세탁

비슷한 일이 현대차그룹에도 있었다. 현대건설은 올해 5월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 한국위원회가 발표한 ‘2020 CDP KOREA 명예의 전당’에 들었다며 “기후변화 대응 경쟁력이 세계 최고 수준임을 대외적으로 인정받았다”고 홍보에 열을 올렸다.

그런 현대건설은 CDP의 탄소배출저감을 뒤로하고 불과 한 달 후인 6월17일 베트남 석탄발전소 건설을 수주 받았다. 여기에 현대건설은 인도네시아 찌레본2 석탄화력발전소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다 주민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지역 군수에 뇌물을 줬다는 의혹으로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도 알려졌었다.

이 때문에 지난 7월1일 노르웨이 중앙은행은 석탄사업과 부패 연루를 이유로 일종의 환경 블랙리스트인 ‘투자 관찰 기업’에 현대건설을 올렸다. 이 사실은 7월6일부터 국내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 관련기사 : 현대건설, 노르웨이중앙은행 블랙리스트 올라 ‘환경파괴 우려’ (이코리아 2021년 7월6일)

그런데, 바로 다음날 7월7일 현대차그룹은 보도자료를 내고 현대차·기아, 현대모비스, 현대위아, 현대트랜시스 등 주요 5개사가 7월 중 '한국 RE100 위원회'에 가입신청서를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RE100은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 100%'의 약자로, 2050년까지 기업 사용 전력량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것을 기업이 서약하는 캠페인이다. RE100에 참여하는 기업은 가입 이후 1년 이내에 중장기 재생에너지 전력 확보 계획을 제출하고 매년 이행 상황을 점검받는다. (환경단체들은 이런 RE100 캠페인도 환경파괴 기업들에 면죄부를 주는 그린워싱이라고 비판한다.)

○ 관련 사이트 : 현대자동차그룹 5개사 ‘RE100’ 참여 (현대자동차그룹 2021년 7월7일)

▲ 현대차그룹 RE100 참여 기사는 백여건이 넘는다. 사진=네이버 뉴스 검색화면 갈무리
▲ 현대차그룹 RE100 참여 기사는 백여건이 넘는다. 사진=네이버 뉴스 검색화면 갈무리

대부분의 언론은 현대차그룹 RE100참여를 그대로 받아써 또 뉴스포털을 도배했고 이 기사로 현대건설의 ‘투자 관찰 기업’ 등재 보도를 덮었다.

그런데, 7월 중 RE100 가입신청서를 제출하겠다고 한 현대차그룹은 그 이후 신청서를 제출했다는 얘기가 없다. 통상 가입신청서를 제출하고 한 달여 정도면 가입승인이 나는데, 어떤 이유인지 9월 초 현재까지 RE100 공식홈페이지(there100.org)에 관련 소식이 없고 멤버 명단에도 등록되지 않았다. 신청서를 제출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7월 7일에 RE100 가입 신청 보도자료 배포가 얼마나 급하게 이뤄졌는지를 알려주는 일이기도 하다.

또한 현대차는 9월6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IAA 모빌리티 2021’ 보도발표회에서 2035년까지 유럽 시장의 판매 라인업을 배터리 전기차와 수소 전기차로만 꾸리고, 2040년까지 미국과 한국 등 다른 주요 시장에서도 순차적으로 모든 판매 차량의 전동화를 완료하고, 2045년 탄소중립을 이루겠다는 전략을 발표했다.

○ 관련기사 : 현대차 2035년에 유럽서 전기차만 판다… “2045년 탄소중립 목표” (연합뉴스 2021년 9월6일)

그러나 이런 현대차의 계획은 탄소중립과 환경을 위한 선도적이고 과감한 조치라기보다는 시장상황 때문에 그렇게 일정을 맞춘 조치에 불과하다. 지난 7월 유럽연합 집행위는 2035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 금지법을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유럽에서 2035년 이후 내연기관차를 판매할 수 없는데, 2035년부터 유럽 시장에 전기차만 팔겠다는 선언은 어떤 의미일까?

▲ IAA 2021 참가한 현대자동차. 사진=현대자동차 홈페이지
▲ IAA 2021 참가한 현대자동차. 사진=현대자동차 홈페이지

노르웨이는 이보다 10년이나 앞선 2025년, 영국은 2030년에 내연기관 자동차의 판매를 금지한다. 중국과 일본은 2035년부터 금지할 계획이고, 미국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캘리포니아 주와 워싱턴 주도 2035년까지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금지하겠다고 나섰다. 이렇게 보면, 2035년 유럽 시장 전동화와 2045년 모든 차량 전동화 계획은 각국의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 금지 시점에 맞춘 계획일 뿐이며,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오히려 소극적이고 뒤처진 계획이라 할 수 있다.

게임사의 소셜(S) 워싱

올해 1월 금융위원회는 2025년부터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모든 국내 상장 기업들의 ESG 정보 공시를 의무화 한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엔씨소프트가 지난 3월 ‘ESG 경영실’을 신설한 데 이어 넷마블, 넥슨 등 대형 게임사들이 줄줄이 ESG 관련 조직을 신설하거나 태스트포스팀(TFT)을 만들었다. 이들은 ESG경영을 한다며 주로 게임문화단체 후원, 기부, 봉사활동 등을 계획해 왔다.

이에 대해 콘텐츠진흥원은 ‘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2021년 7+8월호)에서 “게임 내에서는 불투명하고 사행적인 확률형 아이템 문제로 시끄러운데,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지원 사업을 하겠다고 나선다면 비록 사회적으로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의심의 눈초리를 받을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게임사가 ESG경영을 한다며 보여주기 식 교육지원이나 기부를 할 게 아니라 게임중독이나 '확률형 아이템'에서 비롯된 과다지출 문제부터 해결하라고 꼬집은 것이다.

그러면서 콘텐츠진흥원은 “게임 사업과 ESG 경영이 연관성을 갖지 못하고 분리돼 실행된다면 소위 ‘ESG 세탁’의 위험성이 발생한다”며 “ESG 세탁은 돈세탁과 마찬가지로 기업의 비윤리적이고 반사회적인 활동을 가리고, 부도덕한 기업을 오히려 존중받을 만한 기업으로 오인하게 만드는 기만적인 행위다”라고 강조했다.

▲ ESG 자료사진. 사진=gettyimagesbank
▲ ESG 자료사진. 사진=gettyimagesbank

눈 가리고 아웅하며 모르는 척 입 다물고, 알고 보면 ESG투자 유치를 위해 보여주기 식 사업을 하고, 문제를 가리고 물타기 하기 위해 언론 플레이를 통해 여론 조작을 일삼는다면 그게 ‘ESG 세탁’이다. 앞서의 지적대로 ESG 세탁은 돈세탁만큼이나 위험하다. 특히 환경세탁(그린워싱)은 돌이킬 수 없는 기후 위기에 빠뜨린다는 점에서 더욱 치명적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