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부터 중국 광전총국(방송 규제기구)이 ‘예쁜 남자 아이돌’을 퇴출시킨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광전총국이 전날 대중문화 분야 고강도 규제를 담은 ‘문예 프로그램과 관계자 관리 강화에 대한 대한 통지’를 발표했는데 여기에 이 같은 내용이 담겼다는 것이다.

‘냥파오’(娘炮) 해석 잘못한 한국 언론들

네이버 검색 기준으로 가장 먼저 기사를 쓴 곳은 한국경제다. 한국경제는 3일 오전 9시51분 베이징 특파원이 “‘예쁜 남자 아이돌 활동 금지’…연예계 통제 더 강화하는 中”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이후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연합뉴스, 한국경제TV, 동아일보, 서울신문, 중앙일보, 세계일보, 서울경제, YTN, 뉴시스, 조선비즈, 스포츠경향, 아시아경제, MBC, 한국일보 등이 관련 보도를 이어갔다. 연합뉴스는 특파원이 작성한 스트레이트성 기사에 이어 영상 기사도 추가로 전송했다.

▲사진=Getty Images Bank
▲사진=Getty Images Bank

이들 언론이 주목한 것은 ‘냥파오’(娘炮) 라는 단어다. 한국 언론들은 냥파오를 ‘여자 같은 남자’, ‘예쁜 남자’라고 표현했다. 아울러 냥파오를 두고 “화장을 하거나, 중국 전통문화에서 언급되는 남성적 이미지를 내세우지 않는 남성 연예인의 활동을 금지한다는 의미”라는 취지로 보도했다.

대표적으로 한국경제는 이와 관련해 “광전총국은 이번 통지를 통해 그동안 사회적 문제로 지적됐던 여성적인 남성 아이돌에 대한 과도한 팬덤도 금지했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는 “중국에서는 아이돌 문화의 인기를 타고 냥파오를 둘러싼 논란이 벌어져 왔다”며 “화려한 아이돌 문화에서 ‘여자보다 예쁜 남자’와 같은 표현이 등장하는 등 여성적인 남성 아이돌이 인기를 끌자 청소년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고 했다.

중국 광전총국의 발표 내용은 △덕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을 단호히 배척한다 △오직 유동량(트래픽)만 중시하는 것을 단호히 배척한다 △모든 것을 예능화하는 경향을 단호히 배척한다 △고가의 출연료를 단호히 배척한다 △업계 종사 인원의 관리를 강화한다 △권위 있는 전문가의 문예 비평을 전개한다 △관계 업계가 조직적 역할을 충분히 발휘한다 △관리 책임을 철저히 이행한다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중 냥파오에 대한 내용은 3항인 ‘모든 것을 예능화하는 경향을 단호히 배척한다’에 포함돼 있다. 3항은 “팬 오락화를 단호히 배격한다. 문화적 자신감을 확고히 해 중화의 우수한 전통문화, 혁명문화, 사회주의 선진문화를 대대적으로 일으킨다. 프로그램의 올바른 미적 지향점을 세우고 배우와 게스트의 선택, 연출 스타일, 의상 등을 엄격히 파악해 냥파오 같은 기형적인 미적 감각은 단호히 차단한다. 부유한 취미를 과시하고, 스캔들의 사생활, 부정적 이슈, 저속한 인터넷 인기, 막장 등의 성향을 단호히 배격한다”는 내용이다.

전문가들은 냥파오에 대한 언급이 ‘여자 같은 남자 퇴출’, ‘화장하는 남성 연예인 퇴출’이라는 취지로 설명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욱연 서강대 중국문화학과 교수는 “이번 중국 발표 내용 중에 화장에 대한 내용은 없다. 냥파오라고 하는 것은 남자가 여성스럽게 보이는 행위로 이해하면 된다”며 “이를 이번 규제에서는 ‘기형적인 심미관’이라 표현하고 있다. 패왕별희에 나오는 장국영 캐릭터 같은 것을 근절시키겠다는 것이 광전총국 규제 내용”이라고 말했다.

임진희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연구교수는 “냥파오는 예전 중국 사회에서 경극처럼 여성스러운 행동을 하거나 여성스럽게 꾸몄던 남성을 의미하는 말”이라며 “최근 화장하는 아이돌을 중국에서 비하할 때 등장하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이를 겨냥한 단어는 아니고 전통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남성상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화운동가인 손이상 작가는 “3번 조항에 분장이 들어가 있는데 이게 화장하고는 다른 것이다. TV에서 괴상한 분장 시키는 것을 금지하겠다는 것”이라며 “경극도 여기에 포함된다. 화장 자체를 금지한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중국 광전총국이 지난 2일 발표한 ‘문예 프로그램과 관계자 관리 강화에 대한 대한 통지’ 일부. 사진=중국 광전총국 홈페이지 갈무리
▲중국 광전총국이 지난 2일 발표한 ‘문예 프로그램과 관계자 관리 강화에 대한 대한 통지’ 일부. 사진=중국 광전총국 홈페이지 갈무리

SCMP 보도 받아 쓰며 구체적 내용 검증 안 해

한국 언론 보도들의 공통점은 출처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라는 점이다. 한국경제 기사가 SCMP를 인용한 가운데 후속 기사들 역시 이를 기반으로 기사를 작성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SCMP가 우려점을 담는 과정에서 과장된 해석을 한 가운데 한국 언론들이 이에 대한 검증을 하지 않은 채 받아쓴 것으로 바라봤다.

이 교수는 “중국어를 영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해석상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며 “규제는 분명한데 우리가 과잉해석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손 작가는 “광전총국에서 나온 발표자료를 보면 SCMP 보도가 부풀려서 해석된 부분이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언론들의 잘못된 해석을 지적하면서도 이번 중국 광전총국 규제의 핵심은 남자 아이돌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TV 예능 프로그램 출연에도 국가관을 도입시키려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전반적으로 보면 자본 시장의 문제가 TV 예능 프로그램 출연까지 연결되는 것”이라며 “연예 시장이 확장되면서 자본이, 시장이 당을 넘어서는 상황이 오자 이를 잡아야겠다는 배경에서 이런 규제 조치가 나온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연예계도 국가가 통제하겠다는 사회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것인데 1항이 가장 위험해 보인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실덕’이라는 표현이 있다”며 “덕이라는 것은 국가관, 도덕적, 일반적인 규범에 문제가 있는 사람을 쓰지 말라는 것인데 여기에 국가관 문제가 들어가니 가장 위험한 조항으로 보인다. 당과 국가관이 하나로 엮여 있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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