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발표됐다. 내년도 예산안은 사상 최초로 정부 총지출이 600조원을 초과했다. 604조원이면 많은 것일까 적은 것일까? 한국 재정 현실이 감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일까? 코로나19 상황에서 정부가 적극적 역할을 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을까? 정답은 없다. 다만 틀린 답은 있다.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걱정해도 되고, 적극적 재정역할을 강조하는 논리도 맞다. 어느 입장을 택했는지가 중요하지는 않다. 각각 입장에 따라 나름의 논리적 완결성을 갖췄다면 둘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판단 근거가 되는 자료가 논리적 정합성이 떨어지면 틀린 얘기다. 틀린 보도를 보자.

사상 최대 예산액이 편성됐기 때문에 ‘슈퍼예산’이라는 말은 틀린 보도다. 많은 언론은 2017년 예산안을 사상 최대라며 ‘슈퍼예산’이라고 표현했다. 2017년은 긴축 재정이었다. 2017년 총지출 증가율은 불과 3.7%다. 경상성장률 5.4%에도 미치지 못했다. 당시 언론들의 ‘슈퍼예산’이라는 근거가 무엇일까? 386조원에서 400조원으로 앞자리가 ‘사상최초’로 4자로 바뀌었다는 것이 거의 유일한 논리였다.

▲ 2017년도 예산안이 역대 최대 슈퍼예산이라는 2016년 당시 언론보도. 그러나 2017년도는 사실상 긴축예산
▲ 2017년도 예산안이 역대 최대 슈퍼예산이라는 2016년 당시 언론보도. 그러나 2017년도는 사실상 긴축예산

2018년도도 통합재정수지가 31.2조원의 역대급 흑자를 기록할 정도의 긴축 예산이었다. 큰 폭의 재정 수지 흑자로 국가채무 비율이 오히려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언론들은 지출규모가 사상최대라며 ‘슈퍼예산’이라고 표현했다. 특히 2017년보다 더 커졌다며 ‘초슈퍼예산’이라는 단어도 일부 언론에 등장했다.

▲ 2018년 예산안이 사상 최대 슈퍼예산이라는 2017년 당시 언론보도. 결산 수치를 보면 2018년도는 사실상 긴축예산
▲ 2018년 예산안이 사상 최대 슈퍼예산이라는 2017년 당시 언론보도. 결산 수치를 보면 2018년도는 사실상 긴축예산

경제규모는 매년 커지고 복지 등 국가 역할도 계속 증대하니, 사상 최대 수치를 매년 갈아치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언론에서 슈퍼예산보다 ‘초슈퍼예산’이라는 단어를 더 선호할 때는 언제일까? 앞자리가 400조원에서 500조원으로 바뀔 때, 그리고 600조으로 바뀔 때다. 결국 매년 사상최대 수치를 갱신하는 국가재정은 항상 ‘슈퍼예산’이고, 앞자리 숫자가 바뀌면 ‘초슈퍼예산’이다. 한번 예측해 본다. 한국 예산안도 언젠가는 1000조원이 넘게 된다. 그때는 언론들이 ‘울트라 초슈퍼 예산’이라고 부르지 않을까?

이번 예산안이 사상최대이기 때문에 슈퍼예산은 아닌 것은 확실하다. 하나, 둘, 셋 다음에 ‘많다’가 아닌 것처럼 앞자리가 500조원에서 600조원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초슈퍼예산이 아닌 것도 확실하다. 그럼 604조원이 넘는 예산이 과연 확장예산인지, 슈퍼예산인지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

첫째, 절대 액수가 아니라 증감률을 따져봐야 한다. 절대액수는 매년 최대가 되는 것이 정상이다. 그렇다면 전년도보다 얼마나 증가했는지 증감률을 최근 총지출 증감률과 비교해보자. 본예산 기준 총지출 증가율은 2019년, 2020년, 2021년 각각 9.5%, 9.1%, 8.9%이다. 내년도 총지출 증가율은 8.3%다. 최근 총지출 증가세가 좀 꺾였다. 슈퍼예산은 정상예산(노멀예산)과 대비되는 말이다. 3년 만에 가장 낮은 증감률을 보인 내년도 예산을 슈퍼예산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좀 어색하다. 다만 코로나19 이전 연평균 증감률보다는 다소 높다. 그래서 슈퍼예산은 아니지만 확장적 예산이라고는 할 만하다. 

둘째, 경상성장률, 세입확대규모, 재정수지 등 다른 재정지표를 통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상식적으로 경상성장률이나 세입 증대율보다 지출 증대율이 낮으면 긴축적 예산이다. 경상성장률은 경제성장률에 물가성장률을 더한 개념이다. 재정지표는 경제성장률보다는 경상성장률과 상관관계가 더 크다. 올해 경상성장률 예측치는 6.2%로 최근 10년 내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인다. 내년도 총수입 증가율은 무려 13.7%다(추경기준 6.7%). 이 또한 10년 내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올해 높은 경상성장률 예측치에 힘입어 내년도 세수증가가 13.7%나 되니 내년도 8.3% 증대는 그리 ‘슈퍼’스럽지는 않다. 다만, 내년도 GDP 대비 통합재정수지 규모를 보면 -2.6%로 코로나 이후 2020년(-3.7%), 2021년(-4.4%)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코로나 이전보다는 큰 폭의 적자 규모다. 즉, 10년 내 최대 증가인 경상성장률이나 총수입 증가를 고려해 보면 ‘슈퍼’까지는 아니다. 통합재정수지 적자를 보면 확장적 성격을 띠고는 있다. 확장적 성격은 있으나 그 추이는 꺾여서 코로나19 출구전략을 모색한 정도라는 평가가 적절해 보인다. 

▲ 자료=이상민
▲ 자료=이상민

셋째, 통시적 시각으로 과거와 비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시적 시각으로 OECD 국가와 비교하는 것도 중요하다.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년도 한국 재정수지 적자는 GDP 대비 -2.6%다. OECD 평균 -6%에 비하면 매우 건전하다. 다만, -1.6%인 독일보다는 낮다. 그래도 독일은 코로나가 한창인 2020년과 2021년도 한국보다 더 큰 규모의 재정수지 적자를 감내했기에 2022년도는 상대적으로 건전한 것으로 해석가능하다. 

▲ 자료=이상민
▲ 자료=이상민

언론은 단어를 고를 때 주의해야 한다. 특히, 제목에 정확한 단어를 써야 한다. ‘슈퍼예산’이라는 단어를 썼다면 왜 정상(노멀)예산이 아닌 ‘슈퍼예산’인지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사상 최초로 앞자리 숫자가 6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초슈퍼예산’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국가부채가 사상 최초로 앞자리 숫자가 1천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슈퍼예산’이라는 설명도 적절하지 않다. 정상 범위를 벗어났다는 ‘슈퍼’라는 감정적 단어를 쓰면서도 정확한 설명이 없다. 자, 복습이 필요하다. 재정 수치를 판단하는 기준은 첫째, 절대액수가 아닌 증감률. 둘째, 경상성장률, 세입, 재정수지 등 다른 재정지표를 고려한 종합적 판단. 셋째, OECD 국가 등과 공시적 비교. 이를 통해 긴축인지, 확장인지 슈퍼인지 판단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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