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으로 비웃지 마세요…만 14살, 정치하기 딱 좋은 나이”(한겨레)
“혐오·욕설 NO! ‘슬기로운 초등 유튜브 생활’, 우리가 직접 만들어요”(경향신문)
“시각장애 어린이, ‘엉뚱발랄 콩순이’ 뭐하는지 알고 싶어요”(미디어오늘)
“‘신문은 선생님’과 하루 10분... 읽고 따라 쓰며 세상을 배워요”(조선일보)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보도된 기사 제목들의 공통점은? 어린이나 청소년이 주체로 나선 정치·문화 등 활동을 다루고 있다. 공통점은 하나 더 있다. 제목 속 화자가 독자를 향해 존칭을 쓴다는 점이다. 민서연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는 “언론은 어린이·청소년이 등장하지 않는 기사엔 보통 제목에 존댓말을 쓰지 않을 뿐 아니라 보도의 핵심을 요약해 전달한다”고 했다.

‘어린 사람’을 ‘아랫사람’으로 대하는 언론의 취재 관행과 보도 문화를 짚고 변화를 꾀하는 자리가 열렸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은 2일 온라인을 통해 ‘어린사람을 아랫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언론보도 문화 조성을 위한 토론회’를 진행했다.

발제에 나선 민서연 활동가는 “예능이나 영상매체에서 어린이·청소년을 희화화하고, 이들은 보호 받아야할 대상으로만 재현하는 글들이 나온다. 언론사들 역시 예외가 아니다”라며 “언론은 사회 구성원을 비청소년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하대하며, 이런 나이주의적인 언어문화로 비청소년만을 위한 매체로 인식된다”고 말했다.

▲청소년기후행동이 정부 기후대응 정책에 기본권 침해 헌법소원을 청구한 지난 3월13일 현장 사진. 청소년기후행동 제공
▲청소년기후행동이 정부 기후대응 정책에 기본권 침해로 헌법소원을 청구한 지난 3월13일 현장 모습. 청소년기후행동 제공

기사가 어린이나 청소년 취재원을 부르는 방식이 가장 흔한 사례다. ‘학생’이나 ‘~군·~양’이란 표현이다. ‘학생’이란 말의 전제는 청소년의 ‘본분’을 학습으로 규정하는 한편 학교 밖 청소년의 존재는 지운다. 민 활동가는 ‘양·군’의 사전적 의미는 “친구나 아랫사람을 친근하게 부르거나 이르는 말”(표준국어대사전)이라고 짚었다. 칭하는 대상을 공적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한편 성별 이분법도 전제하는 단어다.

취재원의 이름을 전하며 성을 뺀 채 “◯◯이”로 부르는 경우도 많다. 민 활동가는 ‘민식이법’이란 호칭을 ‘김영란법’의 경우와 대조하면서 “이 같은 표현 방식은 취재원이나 등장인물에 대한 차별을 깔고 있다”고 했다.

언론은 어린이·청소년이 정치적 주장을 펼쳐도 이들을 ‘미래를 꿈꾸거나 어른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존재’로 묘사하는 데 그친다. 기후위기 대응 활동을 하는 청소년 시민단체 ‘청소년기후행동’의 김보림·윤현정 활동가는 토론에서 “단체 활동 3~4년차가 되니 꽤 많은 보도가 나왔다”며 “그러나 동등한 시민으로 헌법소원과 정책 요구를 해도 ‘꿈꾸는 당찬 청소년’으로만 비춰지는 상황을 지금까지 마주한다”고 했다.

▲3월13일 청소년기후행동의 정부 기후대응 정책에 대한 헌법소원 청구 소식을 보도한 MBC 리포트 캡쳐.
▲3월13일 청소년기후행동의 정부 기후대응 정책에 대한 헌법소원 청구 소식을 보도한 MBC 리포트 캡쳐.

지난해 9월 청소년들이 정부에 온실가스 대책을 요구한 집회 소식을 전하면서 “우리는 공부할게, 기후는 어른들이!”라고 제목에 전하거나, 정부 기후대응 정책에 ‘기본권 침해’로 헌법소원 청구한 데엔 “기후변화 경고 ‘헌법소원’…미래 꿈꾸는 ‘당찬 청소년’”이라고 전한 경우가 일부 사례다. 

두 활동가는 이 같은 보도가 이들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가리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우려했다. 이들은 청소년기후행동이 교육부 장관을 면담한 뒤 취재진들로부터 “누가 가장 친절했느냐” 등 질문을 받은 점을 들었다. 정작 이들이 면담 내용을 밝히며 ‘기후위기 문제를 논하고 탈석탄 선언을 요구했다’고 하자 “‘환경교육’ 얘기만 해주시면 안 되느냐”고 요구 받았다. 인터뷰나 기고에 정책·정치적 요구를 담았는데 결과물에선 빠지고, ‘우리 함께 환경 사랑을 실천하자’거나 ‘국회의원님들 해결해주시리라 믿어요, 기다릴게요’ 등 하지 않은 말이 들어가 있기도 했다.

▲김보림·김현정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는 “동등한 시민으로 헌법소원과 정책 요구를 해도 ‘미래를 꿈꾸는 당찬 청소년’으로만 비춰지는 상황을 지금까지 마주한다”며 제목 예시를 밝혔다. 사진=토론회 자료집
▲김보림·윤현정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는 “동등한 시민으로 헌법소원과 정책 요구를 해도 ‘미래를 꿈꾸는 당찬 청소년’으로만 비춰지는 상황을 지금까지 마주한다”며 제목 예시를 밝혔다. 사진=청소년기후행동 발제문 갈무리

발제자들은 언론의 시각이 “어린이·청소년은 사회에서 벗어나있다”는 전제를 담고 있다고도 했다. 윤현정 활동가는 “발표 자료 만드는데 범주를 나누기가 어려웠다. 그만큼 청소년 혐오의 방식이 다양했다”며 “언론은 사회에 목소리를 전달하는 창구라 생각하지만 그 과정에서 청소년을 배제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하어영 한겨레 기자는 토론에서 “고백부터 하면 기사 ‘우리는 공부할게, 기후는 어른들이!’는 제가 한겨레21 정치팀장일 당시 정치팀이 쓴 기사다. 전혀 (문제로) 의식을 못했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겠다”며 “걸러내지 못한, 생각지도 못한 지점인데 반성했다”고 했다. 그는 “언론사들도 실제로 이것에 대한 고민이 깊지 않다. 우리 언론도 좀 더 고민을 깊게 가져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하 기자는 거리 청소년을 취재한 경험을 언급하면서 “관계 형성에서 평등이 어떤 것인가를 다른 면에서 느꼈다”고 했다. 그는 “앞서 두 경험(청소년 기후위기 운동과 아동학대 취재)과 비교해 완전히 상황이 역전됐다. 이들이 지내는 천막 안에서 내가 소수이고, 다수가 거리 청소년이었다. 어떤 상황에서 제가 소수로 대화 주도권을 잃는 경험은 여기가 처음”이라며 “이들은 서로를 이름이 아닌 별칭으로 부르고, 정말 편하게 얘기하더라. 그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발화하는 걸 있는 그대로 보는 순간이 신선했다”고 했다.

▲지난 2월 거리 청소년을 취재한 한겨레 “천막은 설에도 쉬지 않는다” 보도 갈무리. 출처=하어영 기자 토론회 발제문
▲지난 2월 거리 청소년을 취재한 한겨레 “천막은 설에도 쉬지 않는다” 보도 갈무리. 출처=하어영 기자 토론회 발제문

유지영 오마이뉴스 기자는 청소년 관련 보도를 하는 각 단계마다 겪는 고민을 공유했다. 그는 “대치동 학원가에서 코로나에 영향받은 학원생들을 취재한 적이 있다. 저만의 원칙은 ‘성인과 동등하게 정중히 명함을 내밀고 취재요청을 할 것’이었다”고 했다. 그는 “당시 청소년이던 취재원은 전부 기사에서 익명 처리했다. 실명이 나가면 학생이 피해 입지 않을지 생각했다”며 “학부모로부터 항의를 차단하기 위해서, 또 혹여나 (기자와) 위계에 의해 취재에 응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가려내기 어려워 익명 취재를 선택했다”고 했다. 

유 기자는 “연예부 취재 당시 아역 배우의 경우 소속사 관계자가 동행해 배우가 소속사 기조에 어긋나는 발언을 하지 않는지 점검하더라”라며 “언론인들도 이들을 배우로 인터뷰하는 것인데도 드라마 자체에 대해 묻기보다 일상생활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경향이 더 많았다”고 했다. 그는 “기자 스스로가 반말 사용하지 않기, 기특하다면서 개인 사생활 묻지 않기 등 청소년 배우를 동등하게 존중하려 노력하는 동시에 소속사도 이들의 발언을 제약하는 분위기를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자신을 교사로 소개한 진냥씨는 독자들이 구체적 요구에 나설 것을 제안했다. 그는 “한겨레와 오마이뉴스 등 매체에 여러 번 글을 썼다. 그런데 ‘그 사람이 그렇게 말했을 때’라고 써 놓으면 언론사가 꼭 ‘사람’을 ‘학생’이나 ‘아이’로 고친다”며 “어린이와 청소년이 등장하는 기사에만 친근한 정서를 강조하거나 감성에 호소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독자인) 우리가 ‘이런 표현을 보기 싫다’고 행동으로 밝히고 구체적으로 말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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