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린 칸 유엔(UN) 의사표현의자유 특별보고관이 우리 정부에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를 전하며 해명을 요구하는 서한을 전달했다. 칸 보고관이 국회의원들에게도 이 같은 내용의 우려를 공유해달라고 촉구했으나 정부는 이 서한을 받고도 본회의가 예정된 당일까지 사흘동안 국회의원들에 전달하지 않고 은폐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2일 오후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을 통해 이 같은 의혹을 제기하고 숨긴 경위를 해명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이 서한은 지난달(8월) 27일 정부에 전달됐다. 최 의원은 칸 보고관이 8월30일 국회 본회의 표결 전 이 같은 국제사회의 우려와 걱정을 국회의원들에 공유해주기를 간절히 촉구한다고 쓴 서한 내용을 들어 “그러나 우리 정부인 외교부와 서한을 수령할 문체부는 국회를 속였다”며 “27일에 왔는데 30일까지 언급하지 않았고, 우리가 30일 알았을 때는 비공개라면서 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최 의원은 “유엔에서 이 서한을 공개했다”며 “그날 정부는 의원실에 원문을 보내왔다”고 전했다.

최 의원은 “국제사회, 조약 당사국으로서 유엔의 호소를 외면하고 국회를 기만하는 중대한 사유에 해당한다”며 “정부의 누가 국회의원 문서 공유를 막았는지, 국감이나 외통위 문체위 전체회의를 통해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그는 “정보를 통제하고 국제사회의 여론 흐름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며 “앞으로 더 큰 재앙이 닥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다”고 덧붙였다.

아이린 칸 특별보고관은 앞서 지난달 30일 유엔 사이트에 공개된 통신문서를 통해 한국정부가 ‘시민의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ICCPR)’ 19조에 규정된 조항을 준수하기 위해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다시 개정해줄 것을 촉구했다.

칸 특별보고관의 서한 보면, 칸 보고관은 “국회에서 심사중인 언론중재 및 언론보도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 개정안(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추가적인 수정 없이 채택된다면 언론의 정보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심각하게 제한할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칸은 “내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당국의 목적은 ‘언론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구축하는데’에 있다”며 “그러나 추가 수정 없이 채택되면 새 법은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심각한 우려가 든다”고 썼다.

▲아이린 칸 유엔 의사표현의자유 특별보고관이 지난 27일 정부에 보낸 서한의 마지막 페이지 중 국회의원들과 공유하기를 촉구한다고 쓰여진 부분. 사진=유엔 사이트 갈무리
▲아이린 칸 유엔 의사표현의자유 특별보고관이 지난 27일 정부에 보낸 서한의 마지막 페이지 중 국회의원들과 공유하기를 촉구한다고 쓰여진 부분. 사진=유엔 사이트 갈무리

 

칸은 특히 법률의 적법성, 필요성, 비례성 등 세가지 측면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우선 칸은 ‘법률의 적법성’에서 볼 때 지난 2017년 유엔 특별보고관의 ‘표현의 자유와 가짜 뉴스, 허위 정보와 선동 등에 관한 공동선언’에서 정보와 사상을 전할 인간의 권리는 정확한 주장에 한정돼 있지 않고, 놀라거나 불쾌하게 하거나 남에게 방해되는 정보와 사상도 보호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칸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당국에 과도한 재량을 부여해 독단적 이행으로 이어질지 모른다” 걱정했다.

‘법률의 필요성’ 면에서 볼 때 칸은 언론중재법 개정안 제30조의2(허위조작보도에 관한 특칙)를 두고 “(이 조항의) 매우 모호한 표현은 언론보도와 정부·정치지도자·기타 공적 인물에 대한 비판, 인기가 없거나 소수 의견을 포함해 민주 사회에 필수적인 광범위한 표현을 제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칸은 이어 “그러한 우려가 2022년 3월 차기 대선을 앞두고 정보 접근과 사상의 자유의 흐름이 특히 더 중요한 이 시기에 더 높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나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언론의 자기 검열을 초래하거나 공익적 문제들에 대한 중요한 토론들을 억압할지 모른다는 것을 심각하게 우려한다”고도 썼다.

특히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히는 ‘제30조의2의 고의 또는 중과실 추정’과 관련해 칸 보고관은 “언론인들이 유죄 추정에 반박하기 위해 자신의 취재원을 누설하게 만들 수 있으며 이는 언론 자유에 중대한 위험을 제기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유머나 패러디로서의 허위정보, 허위성을 인지하지 않고 보도했을 경우에도 책임질 상황에 놓일지도 모른다는 점도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칸 보고관은 “8월30일에 있을 국회에서 나는 정부가 이 우려들을 국회의원들과 공유할 것을 촉구한다”며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국제인권법, 특히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9조의 적법성, 필요성, 비례성 측면에서 정부의 책무와 어떻게 부합하는지 설명해달라”고 촉구했다. 그는 또한 “법 개정안을 국제인권 기준에 맞게 수정할 것을 촉구한다”고도 했다.

▲아이린 칸 유엔 의사표현의자유 특별보고관이 우리 정부에 보낸 서한 내용 중 대선을 앞두고 우려가 높아진다고 언급한 대목 표시. 사진=유엔 사이트 갈무리
▲아이린 칸 유엔 의사표현의자유 특별보고관이 우리 정부에 보낸 서한 내용 중 대선을 앞두고 우려가 높아진다고 언급한 대목 표시. 사진=유엔 사이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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