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질의 일자리는 기업에게 가장 큰 혜택이다. 좋은 일자리 없이 경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또 고용 정책보다 기업 지원에 훨씬 더 많은 세금이 투여된다. 정부는 산업 활성화를 위해 각종 인프라도 확충해준다. 그러나 언론은 숲 없이 나무만 본다. 선택적·정치적 보도 문제가 심각하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경영학) 교수는 “기회가 되면 1년치 일자리 보도를 전수 분석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일자리는 시민들 삶에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인데, 심각한 결함이 있는 일자리 보도를 자주 봤다는 이유에서다. 사안을 종합하지 못하는 부족한 분석력부터 의도가 의심되는 선택적 보도까지 문제 종류는 다양했다.

문제의 이유는 ‘무지’와 ‘의도’ 두 가지로 나뉘었다. 무지는 일자리 정책에 대한 언론인의 이해도가 낮아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문제다. 의도는 ‘알면서도 왜곡하는’ 문제다. ‘최저임금 때문에 일자리 줄었다’는 보도가 대표적이다. 상당수는 관련 정부 정책이 결정될 시기 맞물려 나왔다. 정 교수가 “정치적 의도가 의심될 수밖에 없다”고 언급한 이유다.

정교수는 지난달 31일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와 언론노조가 주최한 ‘일자리 보도의 문제와 올바른 고용 정책의 방향’ 강연에서 이같이 밝히면서 일자리 보도의 대표적인 왜곡·오류 문제를 3가지로 분류해 비판했다.

▲8월31일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와 언론노조가 주최한 ‘일자리 보도의 문제와 올바른 고용 정책의 방향’ 강연 자료 중.
▲8월31일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와 언론노조가 주최한 ‘일자리 보도의 문제와 올바른 고용 정책의 방향’ 강연 자료 중.

가난한 삶 더 옥죄는 “시장에 맡겨라” 보도

정 교수는 중앙일보 “인건비 90조 vs 86조…공무원의 나라 됐다”(7월27일 자) 기사를 문제로 꼽았다. 한해 공공부문 총 인건비(89조5000억원)가 500대 민간 기업 인건비(85조9000억원) 합보다 많다며 “결국 미래 세대에 막대한 비용 청구서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지적한 보도다. 공공부문 일자리가 ‘비대하게’ 늘고 있다는 취지다.

“이게 뭐랑 같냐면요. 미국의 3억 명 인구 인건비와 한국 2천만 명 인건비를 비교하는 거에요.” 정 교수는 “공공부문 일자리 숫자가 얼마인지 아느냐? 민간 500개 기업의 고용인원이 100만명은 넘느냐”고 물으며 “차라리 1인당 인건비를 비교해야지, 기사에 이런 내용은 안 나온다. 결국 공무원 인건비가 기업보다 많다는 뉘앙스의 잘못된 보도”라고 꼬집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공공부문 일자리는 260만 2000개, 이 중 일반정부 일자리는 222만개다. 공공부문 일자리는 전체 취업자수의 9.5%, 일반정부 일자리는 8.1% 가량이다. 2018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7개국의 일반정부 일자리 비중은 평균 17.7%다.

▲정흥준 교수는 지난 8월31일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와 언론노조가 주최한 월례강연 ‘일자리 보도의 문제와 올바른 고용 정책의 방향’의 강연자로 나왔다. 사진=화상강연 갈무리.
▲정흥준 교수는 지난 8월31일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와 언론노조가 주최한 월례강연 ‘일자리 보도의 문제와 올바른 고용 정책의 방향’의 강연자로 나왔다. 사진=화상강연 갈무리.

공적 부문과 민간 부문을 대조해 공적 지출의 ‘낭비’를 강조하는 건 일자리 보도의 전형적인 프레임이다. 중앙일보도 2017~2020년 동안 공공부문 인건비는 25.4%(18조1000억원) 급증했다며 “같은 기간 500대 기업 인건비 상승률(14.1%, 10조6000억원)의 약 2배”라고 강조했다. 중앙일보 기사의 원래 제목은 “[단독]‘철밥통 천국’ 한국···공공 인건비, 500대 기업 넘었다”였다.

정교수는 “500대 기업의 인건비 금액은 이미 굉장히 높은 편이다. 30대 기업 경우, 차장급 정도면 억대 연봉이다. 모수 자체가 다른데 인상률을 단순 비교할 수 없다”며 “공무원도 공무원 나름이다. 임금이 직급에 따라 다르다. 인상률은 구체적으로 비교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또 “보도가 나온 시점은 (국무회의에서) 2022년 예산안을 결정한 즈음”이라며 “일자리 예산을 둘러싼 쟁점이 있었을 때 ‘인건비가 이리 들어가는데, 공무원 증원하면 안 된다’는 시그널을 주려고 한 게 아닌가”라고 추측했다.

쟁점 중 하나가 문재인 정부의 공약인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증대’다. 이 지점에서 ‘양질의 일자리’에 대한 언론의 비일관적인 태도도 발견된다. 정 교수는 “대략 한국 사회 정규직(상용직)은 1300만명, 비정규직은 700만명 정도다. 81만개는 상용직의 5% 가량으로, 양질의 일자리가 늘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민간으로 확산되진 않았다”며 “경찰, 근로감독관, 소방관 등 민생 부문에서 18만개, 돌봄·사회서비스 부문에서 34만개가 늘었다”고 밝혔다. 경제지와 보수언론은 비정규직 등 질 나쁜 일자리의 양산 책임을 정부에 묻는 동시에, 사회적으로 선호되는 공공 일자리 증가도 반대하는 셈이다.

▲8월31일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와 언론노조가 주최한 ‘일자리 보도의 문제와 올바른 고용 정책의 방향’ 강연 자료 중.
▲8월31일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와 언론노조가 주최한 ‘일자리 보도의 문제와 올바른 고용 정책의 방향’ 강연 자료 중.

‘최저임금 보도’엔 악의가 개입

악의적 보도의 대표 사례는 최저임금 보도다. 경제지,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률을 줄인다”는 기사는 연중 내내 나온다. 최저임금이 고용에 악영향을 준다는 인과관계는 학계에서 확인된 적이 없다. 상관관계가 가능한지도 논란이 분분하다. 전문가들이 보도가 잘못됐다고 꾸준히 지적했지만 언론은 같은 오류를 반복한다. ‘악의’를 의심하는 이유다.

정 교수는 매일경제 “최저임금 올려놓고 세금으로 달래는 정부…일자리안정자금 1년 더 연장”(8월22일자), “"일자리 13만개 더 사라질것"…文정부 5년간 최저임금 42% 올렸다”(7월13일) 기사를 예로 들었다. 내년 최저임금이 9160원으로 올해보다 5.1% 오르자 매일경제는 일자리 13만 4000개 감소가 예측된다고 분석했다.

정 교수는 “일자리도 오늘은 13만개, 어제는 30만개, 그제는 52만개가 감소한다고 보도가 나오는 식”이라며 “학계에선 최저임금 인상으로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도 절반 정도다. 그만큼 시장에 돈이 풀려 다른 영역의 일자리가 늘어나는 확산효과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지배적인 최저임금 관련 보도는 “불명확한 근거이기에 정치적 의도가 의심된다”며 “최저임금 인상을 막으려고 사실관계를 왜곡해선 안된다”고도 강조했다.

▲8월31일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와 언론노조가 주최한 ‘일자리 보도의 문제와 올바른 고용 정책의 방향’ 강연 자료 중.
▲8월31일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와 언론노조가 주최한 ‘일자리 보도의 문제와 올바른 고용 정책의 방향’ 강연 자료 중.

“종합 능력 결여… 나무만 봐 아쉽다”

사실관계를 통합적으로 보는 시각도 부족하다는 평가다. 통계청이 올해 1분기 임금근로 일자리 동향을 발표한 지난달 26일 보도들이 예다. 상당수 보도가 ‘80조원을 쏟아부었지만 20~30대 청년 일자리는 10만개 감소했다’며 대조 구도를 택했다. 지난해 1분기 대비 20대 이하 일자리는 1.1%, 30대 일자리는 1.5% 줄었고 50대 일자리는 2.8%, 60대 이상 일자리는 12.5%(29만2000개) 증가했다.

정 교수는 “통합적 시야가 없어서 아쉽다”고 평했다. “80조원을 투입해 일자리 25만개가 늘었는데, 안타깝게도 청년층에서 10만개가 줄었고 효과는 50대 이상이 봤다는 의미”라며 “생애주기상 50대는 직장에서 은퇴해 비정규 일자리를 가지거나 코로나로 실직한 경우일 수 있다. 노인 빈곤이 심각해 노인 일자리 정책이 매우 중요하다. 청년 일자리 이슈도 중요하지만 50대 이상에서 정책 효과가 있었다는게 문제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선택적·정치적 보도는 굉장히 자제해야 한다”며 “일자리는 국민 삶과 직접 연관이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언론에 △사실확인 △기사 작성 전 사안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 △역량과 자원이 있는 매체의 적극적인 대응 등을 당부했다. “매체도 기업이기에 중립적·객관적 보도가 불가능한 매체가 있을 수 있으니” 객관 보도를 할 수 있는 매체의 역할을 강조했다.

언론의 협소한 시야가 기업의 협소한 관점과 일맥상통한다는 지적도 했다. 그는 기업 관계자들로부터 ‘정부가 시장에 간섭 좀 안 했으면 좋겠다’는 토로를 들은 경험을 전하며 “기업에 대한 정부의 직접적 재정 투자, 인프라 구축 등의 지원은 간과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정부가 인프라를 수거하면 기업은 몇 달도 버티지 못한다”며 “일자리도 그 인프라이며, 저임금의 질이 낮은 일자리가 많은 상황은 기업에게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또 “일자리는 기업이 제공하는 게 아니라 정부, 기업, 노동자 서로의 필요(노동력, 보수, 세금)에 의해 형성된 시스템”이라며 “일자리는 기업의 시혜적인 전유물이 아님을 알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양질의 일자리는 일차적으로 정부가 아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며 “(시장주의자로 알려진) 밀턴 프리드먼 조차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주주에 책임을 다하고 고용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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