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로 국가보안법이 제정 50주년을 맞았다. 참으로 치욕스런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전체주의시대가 물러나고 문명화의 길로 치닫는다는 지금,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같은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법률을 반세기 동안이나 보듬고 있었다는 것은 누가 뭐래도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이땅의 민주화와 조국통일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철창안에 가두고 세상으로부터 격리시켜 버린 법률, 가족이 가족을 고발하는 패륜적 행위를 조장해온 악법이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국민의 정부’가 들어섰다는 지금도 그 위세를 잃지 않고 있는 것은 아마도 민족사의 한 치부로 기록될만하다.

그러나 국가보안법만이 아니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 전체주의 시대에서나 통했음직한 법률이 지금도 우리 언론을 옥죄고 있다. 바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이 그것이다.

이 법은 언론의 사전검열을 강요한다. 비록 사전검열을 명시한 조항은 없지만 방북 사후보고 의무를 명시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사전검열에 이르도록 하고 있다.

당국은 김일성주석의 ‘항일투쟁’과 같은, 남북간에 이견이 존재하는 사안이 여과없이 보도되는 것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처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이는 누가 보더라도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다. 더구나 통일부는 물론 안기부까지 나서 불법적으로 사전검열을 하고 있다는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햇볕이 내리쬐는 화해의 시대라고들 입을 모은다. 이미 북한을 방문한 언론사가 여러 곳이 있으며, 금강산 뱃길도 활짝 열렸다. 바야흐로 남북간 화해와 교류의 시대가 육중한 철문을 열어제끼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방북기를 사전 검열한다는 것은 날아가는 시대를 뜀박질로 따라가겠다는 발상에 다름 아니다. 앞으로 남북간 교류가 더욱 활성화될 게 필지의 사실이고, 이에 따라 방북기도 다양한 장르에 걸쳐 봇물 터지듯 나올텐데 이를 일일히 검열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에 지나지 않는다.

당국의 방북기 사전검열을 탓하는 이유는 이것만이 아니다. 좀더 근본적이고 원칙적인 문제가 있다. 방북기의 사전 검열에는 ‘적’이라는 개념이 도사리고 있다. 북한은 남한 사회의 적으로서 행여 적을 이롭게 하는 보도를 내보내면 사회기강을 무너뜨릴지도 모른다는 사고가 깔려있는 것이다.

한때나마 국방부마저 북한을 ‘주적’에서 제외한 바가 있는데 통일의 견인차라고 하는 통일부가 냉전적 사고의 포로가 되어 ‘적’의 개념을 고수코자 한다는 것은 논란의 소지가 다분한 것이라 하겠다.
이뿐만 아니다. 방북기 사전검열에는 또 하나의 편견, 아니 잘못된 사고가 자리하고 있다.

바로 언론과 국민에 대한 불신이 그것이다. 사전에 기사를 검열하겠다는 것은 언론사가 보도논조와 핵심, 그리고 ‘팩트’를 잘못 설정할 개연성을 인정하는 데서 기인한다. 한마디로 우리의 언론사를 찬물 더운물도 가리지 못하는 ‘어린아이’ 정도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행여 언론사가 잘못된 보도를 내보냈다 치더라도 그것은 국민들의 자체 수용능력에 맡기면 그만이다. 언론의 보도가 잘못된 것이라면 국민들의 자유로운 토론과정에서 여과될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더구나 최근들어 수용자들의 자발적인 언론비평활동이 활성화되고 있지 않은가.

정부당국은 지금이라도 사전검열과 관련된 일체의 행위를 없애야 한다.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내용 가운데 사후보고 또는 통일부의 지휘·감독 권한의 한계를 분명히 명시토록 함으로써 당국의 자의적인 사전검열의 폐해를 근절토록 해야 한다.

오히려 언론의 자유로운 방북취재와 보도를 적극 권장하고, 취재를 제한하고 있는 북한 당국에 시정을 요구하는 것이 마땅하다. 언론이 민족화해와 통일의 한 견인차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해 이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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