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을 중심으로 추진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사회적 소수자들을 대변하는 언론매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잘못된 보도로 인한 피해를 구제한다면서 되레 목소리가 작은 이들의 창구를 좁힐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장애인 언론 ‘비마이너’는 최근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두고 “시설법인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를 보도하는 본지 또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영향을 크게 받을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30일 “언론중재법 개정안 통과? 소수자 목소리 전달하는 언론 ‘치명적’”이란 제목의 기사에서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따르면 법원은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다고 추정하는 허위·조작보도에 대해서 실제 피해액의 최대 5배 손해배상을 결정한다. 법원이 ‘고의·중과실’을 판단하는 기준은 △보복적이거나 반복적인 허위·조작보도 △정정·추후보도가 이뤄진 보도를 검증 없이 복제·인용 △기사 본질적 내용과 다른 제목·시각자료 등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비마이너는 개정안의 부작용이 드러날 수 있는 유형으로 과거 ‘형제복지원’ 사건을 언급했다. 1970~1980년대 ‘부랑자 수용’을 명목으로 만들어진 형제복지원에서의 인권유린은 처음 문제가 드러난 지 31년이 지난 2018년에야 국가적 사과가 이뤄졌다. 비마이너는 “형제복지원이 국가폭력으로 인정받게 된 싸움의 시작에는 2011년 피해생존자 한종선 씨의 국회 앞 1인시위와 이후 ‘살아남은 아이’ 책 출판이 결정적이었다”며 “개정안을 적용해본다면 형제복지원은 과거 기억에 의존한 한 씨의 증언이 허위·조작이라며 이를 보도한 언론사를 대상으로 손쉽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강혜민 비마이너 편집장은 지금의 개정안을 “문제제기에 대한 시작조차 봉쇄될 수 있는 법안”이라 표현했다. 그는 “시설 문제는 대부분 의혹, 학대 정황, 추론이 누적된 문제에 대해 지방자치단체와 보건복지부에 전수조사를 요구하고, 조사가 이뤄져 형사고발이 된 뒤에야 법원에서 겨우 피해를 인정 받는” 현실을 강조했다. 또한 2016년 알려진 ‘희망원’ 사건, 지난해 드러난 ‘성락원’ 사건 등 지속적 인권침해를 고발해야 하는 사안이 ‘반복적 허위·조작보도’로 간주될 우려도 전했다.

개정안에도 공익적 보도를 위축시키지 않도록 하는 단서 조항은 있다. 공익신고자보호법상 공익침해행위,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김영란) 위반 행위 및 언론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는 보도는 징벌적 손배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대목이다. 대통령·국회의원 등 고위공직자와 대기업 주요 주주·임원은 법에 따른 손배소송을 제기할 수 없도록 돼 있다. 결국 사실을 보도했다면 법정에서 판가름이 되지 않겠느냐는 반론도 있다.

▲8월30일 비마이너 보도 갈무리
▲8월30일 비마이너 보도 갈무리

그러나 강 편집장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하면 평균 1년 후에 결정이 나온다. 피해자는 그동안 가해자와 기본적인 분리조차 되지 않는다”며 “장애인 인권 단체에서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가해자를 고발해도 지자체 등에선 ‘소송 중이니 결과가 나오면 조치한다’는 말을 주로 한다. 기사를 쓰지 않으면 이런 건 ‘없는 목소리’가 되는 것”이라 말했다.

고위공직자 등 예외 조항과 관련해서도 강 편집장은 “시설법인 중엔 종교 단체들이 소유하거나 운영하는 곳들이 많다. 최근 천주교가 탈시설을 반대하는 토론을 연 것을 보면서 ‘탈시설 운동이 종교와의 전쟁이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며 “모두가 그렇진 않지만, 힘이 센 종교 단체들이 자신들에 대한 비판적 보도에 (개정안을 들어) 충분히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실제로 일부 종교 단체나 종사자들은 기존의 법률로도 활발하게 보도에 대응하고 있다. 개신교 언론 ‘뉴스앤조이’도 소위 ‘반동성애 진영’의 오랜 소송을 겪었다. 지난달 30일 뉴스앤조이는 그간 김지연 약사(한국가족보건협회), 길원평 교수(부산대 은퇴), 염안섭 원장(수동연세요양병원), GMW연합, KHTV, 이용희 대표(에스더기도운동본부)가 제기한 소송 9건 중 화해권고 1건을 제외한 8건에서 승소했다고 밝혔다. 약 3년간의 법정다툼 끝에 얻어낸 결과다.

뉴스앤조이에 소송을 건 이들 중 대다수는 자신들을 ‘가짜 뉴스 유포자’라 칭한 기사를 문제 삼았다. 앞서 뉴스앤조이는 ‘동성애=에이즈’ 또는 ‘페미니즘=동성애’라는 공식이나 ‘퀴어 퍼레이드’ 현장과 관련한 허위·왜곡 정보를 검증하면서 이를 유포한 이들을 ‘가짜 뉴스 유포자’라 칭했는데, 이 표현을 문제 삼은 것이다.

다만 이용필 뉴스앤조이 편집장은 “정치적이거나 악의적 의도가 아닌 팩트 위주로 보도를 하고 있기 때문에 대형 교회나 목사가 만들어질 법안을 얼마나 악용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며 언론중재법 개정으로 큰 영향을 받진 않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소송을 제기하는 반동성애 진영에서도 법원 판단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기존의 입장을 유지하면서 취재하고 보도를 해나가면 되지 않겠느냐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8월30일 뉴스앤조이 보도 갈무리
▲8월30일 뉴스앤조이 보도 갈무리

그럼에도 뉴스앤조이가 승소하기까지의 재판 과정이 시사하는 점이 있다. 지난해 1월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14부의 1심 재판부는 김 약사에게 1000만원, GMW연합에 1000만원, KHTV에 1000만원 등 총 3000만원을 뉴스앤조이가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들을 가짜뉴스 유포자로 칭한 보도는 “원고의 신뢰를 저하시킬 의도”로 “인격권을 훼손하는 행위”라는 판단이었다. 재판부에 따라 의도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수 있고, 여전히 허위·조작 정보나 가짜뉴스 등 정의가 명확하지 않은 현실을 반증한 셈이다.

역시 기독교 단체 ‘에스더기도운동본부’와 소송을 치른 한겨레 사례도 돌아볼만 하다. 한겨레는 2018년 이 단체를 “난민·동성애 혐오 가짜뉴스 생산기지”이자 정치권 가짜뉴스 유포 주체로 보도한 뒤 3년간 법정에 섰다. 지난달 대법원에서 승소한 김완 기자는 당시 미디어오늘에 “언론중재법이 통과되면 여러 명이 한 번에 소를 제기하는 일이 비일비재해질 것”이라며 “‘저 보도는 악의’라 주장하면 악의가 아니라 사실에 부합한다는 걸 입증해야 한다. 그걸 입증하려면 취재 과정을 공개하거나 취재원을 밝히는 방법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우려에 비춰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전면 재논의해야 한다는 당부가 나온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은 “장애인, 교계, 지역 비리 등을 고발하는 보도의 대상에는 개정안이 규정한 (배액 배상) 예외범주에 해당하지 않는 집단들이 상당히 많다”며 “사회의 영역마다 그 영역에 특정한 기득권이 예외 대상에서 빠져나가고, 그로 인해 소송이 한번 성립되면 후속보도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김 위원장은 “언론은 무조건 나쁜 보도를 하고 시민은 피해자라고 단순화해 법안을 만들었을 때 그렇지 않은 사례는 어떻게 할 건가”라고 되물으며 “시민의 피해를 구제하겠다는 법안으로 오히려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 시민의 알 권리까지 동시에 침해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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