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에 반대 목소리가 거세다. 언론중재법 개정이 ‘표현의 자유’를 위협할 수 있어 적극적인 비판 보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같은 보도는 동시에 ‘언론 스스로의 이익을 위한 보도 아니냐’는 물음에 마주하고 있다.

54개 언론 8월 한 달 간 3296건 기사 쏟아내

2021년 6월1일부터 8월30일까지 뉴스 빅데이터 분석 서비스 빅카인즈(54개 언론)에서 언론중재법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 관련 보도는 3753건으로 나타났다. 8월 1일부터 30일까지 관련 기사만 3296건에 달한다. 본격적인 입법 국면이 시작되면서 갈등이 수면 위로 올랐고, 관련 기사가 급증한 것이다.

주요 일간지 가운데 중앙일보가 220건으로 보도량이 가장 많았다. 이어 세계일보 204건, 조선일보 195건, 동아일보 137건, 경향신문 134건, 서울신문 131건, 국민일보 127건, 한국일보 108건, 한겨레 94건 순이다. 

▲ 언론중재법 기사 연관 키워드(54개 매체, 6.1~8.30)
▲ 언론중재법 기사 연관 키워드(54개 매체, 6.1~8.30)
▲ 언론중재법 키워드 보도 추이(54개 매체,6.1~8.30)
▲ 언론중재법 키워드 보도 추이(54개 매체,6.1~8.30)

54개 언론 보도의 공통 연관어를 보면 ‘중과실’ ‘최대 5배’ 등이 주요 키워드로 꼽힌다. 두 키워드는 법안에 대한 오남용 가능성을 지적하는 기사에서 주로 언급됐다. ‘언론5단체’ ‘언론단체’도 주요 키워드로 등장했다. 여러 언론단체에서 해당 법안에 반대했는데 이를 전한 기사가 많았다는 의미다. ‘민주주의’ 키워드도 연관어로 나타났는데, 민주주의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담은 기사들로 인해 연관어에 뜬 것으로 보인다. 여야 충돌이 이어지면서 윤호중, 김기현 양당 원내대표의 이름도 주요 키워드에 언급됐다.

한겨레‧경향신문 ‘진정한 언론개혁’ 요구

언론이 이구동성으로 언론중재법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논조 차이가 있다. 

빅카인즈 분석 결과 한겨레와 경향신문의 관련 기사 연관어로 ‘언론개혁’ 키워드가 눈에 띈다. 언론개혁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도 중재법 개정은 적절한 방법이 아니라고 지적하는 기사가 많았다. 한겨레는 “가짜뉴스 엄벌은 진정한 언론개혁 아니야” “진정한 언론개혁의 의미를 되돌아볼 때다” 등 기사와 사설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을 강조했다. 또한 “‘언론개혁’ 속도전 와중 걸음마도 못 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 기사를 통해서는 공회전을 거듭하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문제를 짚었다.

▲ 한겨레와 동아일보 사설 제목.
▲ 한겨레와 동아일보 사설 제목.

경향신문 역시 사설에서 “제대로 된 언론개혁을 위해 더 많이 숙의하고 입법의 정도를 걷기 바란다”고 밝히며 ‘제대로 된 언론개혁’을 요구했다. “손해배상액만 높이면 언론개혁?…‘언론 압박’에 혈안된 민주당” 기사에서는 “정작 보도의 공정성과 질을 높이기 위한 다른 언론개혁 정책들은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보수언론에서는 언론개혁의 필요성과 피해 구제를 위한 대응에 동의하는 기사를 찾기 어려웠다. “내년에 누가 정권을 잡든 그간 억눌러 뒀던 권력형 비리가 터져나올 텐데 문 대통령이 이 법에 의탁하고 싶어지지 않겠나”(중앙일보) “언론을 위축시키려는 것”(조선일보) 등 악의적 의도를 가졌다는 전제에서 인식 차가 드러났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언론 피해 구제 취지에 부합하면서도 오남용 소지가 없는 제도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촉구하는 반면 보수언론은 ‘폐기’를 요구하는 점도 차이다. 경향신문은 사설을 통해 “사회적 합의기구를 통한 논의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힌 반면 동아일보는 “여 언론중재법 숙의론 확산, 속도 조절 아닌 폐기가 맞다”는 제목의 사설을 냈다.

보수언론 인용의 특이점 ‘윤석열’과 ‘시민단체’

한겨레와 경향신문에선 주요 연관어에 꼽히지 않았지만,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에선 주요 연관어에 꼽힌 키워드가 있다. ‘윤석열’이다.

조선일보의 관련 기사는 “윤석열 ‘언론중재법은 권력비리 보도 막겠다는 것…얼마나 비리 많길래’” “尹 ‘사악한 시도’ 崔 ‘비리 덮는 것’ 安 ‘언자완박’ … 與 언론법 폭주 비판” “윤석열 ‘언론 오보 최대 피해자지만, 언론중재법 단호히 반대’” 등이다. 중앙일보 역시 “윤석열 ‘언론중재법, 與 위한 한풀이 법안인가’” “尹 ‘與 언론중재법 강행 목적은 집권연장’” “윤석열 ‘언론중재법, ‘권력이 언론 감시’ 세상 될 것’” “尹 ‘민주화했다는 정권이 언론장악… 집권연장 꾀하려고’” 등 윤 전 총장 발언을 전하는 기사를 반복적으로 썼다.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총장을 ‘언론중재법 반대’의 스피커로 활용하는 모양새다. 

▲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인용한 조선일보 보도
▲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인용한 조선일보 보도

이번 국면에서 보수언론들이 좀처럼 인용하지 않는 언론학계와 언론단체, 언론시민단체를 인용한 보도가 늘었다는 점도 이례적인 장면이다.

신문 스크랩 서비스 아이서퍼를 통해 2015년 1월 이후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자유언론실천재단’의 성명, 논평, 기자회견 등을 보도한 내역을 보면 언론중재법 문제에 대한 기자회견을 다룬 보도가 유일하다. 조선‧동아 해직언론인이 주축이 된 이 단체는 그간 언론 관련 여러 현안에 적극 활동해왔음에도 주목하지 않다가 언론중재법 국면에서 처음 단체 주장을 인용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군부 정권 시절 자유 언론 수호 투쟁을 벌였던 원로 언론인들이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반대하고 나섰다”며 ‘언론자유의 상징’으로 설명했다. 

▲ 자유언론실천재단을 인용한 조선일보 기사. 조선일보가 자유언론실천재단의 입장, 성명, 논평, 기자회견문 등을 인용한 건 처음이다.
▲ 자유언론실천재단을 인용한 조선일보 기사. 조선일보가 자유언론실천재단의 입장, 성명, 논평, 기자회견문 등을 인용한 건 처음이다.

위헌적 ‘5인 미만 언론’ 폐지 ‘옹호’했던 언론은?

언론중재법 개정 움직임에 언론이 반발하는 이유는 언론 활동에 위축 효과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언론 활동이 위축되면 시민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이 측면에선 언론 보도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

그렇다면 적극적인 보도 경향을 보이는 언론사들이 유사한 문제에도 일관된 목소리를 냈을까. 박근혜 정부는 언론중재법 개정처럼 ‘문제적 보도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언론자유 위축 소지가 분명한 정책을 추진한 적 있다. 2015년 5인 미만으로 구성된 인터넷신문의 등록을 취소하는 신문법 시행령 개정을 강행한 것.

당시 군소 언론사들이 기업 등에 대한 악의적인 허위보도로 광고를 받아가는 이른바 ‘사이비언론’ 문제가 광고주들에 의해 불거진 직후로 기업과 정권의 이해관계가 일치해 나온 대응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됐다. 민주 국가에서 기자 수가 5인 미만이라고 언론의 등록을 취소하는 경우는 찾을 수 없었고, ‘나쁜 보도’와 5인 미만 언론의 상관관계도 찾기 힘들어 과한 조치였다. 당시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의당,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 등이 반발했고, 위헌 소송 끝에 1년 만에 위헌 결정을 받고 ‘폐지’됐다.

▲ 신문법 시행령 개정안의 문제를 연속으로 짚은 한겨레
▲ 신문법 시행령 개정안의 문제를 연속으로 짚은 한겨레

이 과정에서 주류언론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신문법 시행령 개정안 논란이 시작된 2015년 10월부터 위헌 결정을 받은 2016년 11월까지 빅카인즈에 나타난 관련 보도량은 89건에 그쳤다. 한겨레가 10건을 보도해 종합일간지 가운데 가장 보도량이 많았다. 조중동 등 보수 언론의 보도는 각각 5건 미만으로 관심이 높지 않았다. 당시 빅카인즈에 일부 언론의 기사가 빠져 있고, 국회법 개정 과정에서 주요 현안으로 부상한 언론중재법 개정과 시행령 개정에는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언론의 ‘외면’은 분명하다. 일부 언론은 오히려 ‘개악’에 힘을 보탰다. 

종합일간지 중에서는 한겨레가 “‘유사언론’ 잡는 신문법, 애꿎은 대안매체 잡는다” “‘5인 이상 돼야 인터넷신문’은 허가제 금지한 헌법에 위반” 등 보도를 통해 위헌적이고 언론자유 침해 소지가 분명하다고 비판했다. 

▲ 신문법 시행령 개정에 앞서 '사이비언론' 규탄 기사를 연달아 냈던 보수언론들. 시행령 개정 국면에서 이들은 언론 자유 침해 문제를 조명하지 않았다.
▲ 신문법 시행령 개정에 앞서 '사이비언론' 규탄 기사를 연달아 냈던 보수언론들. 시행령 개정 국면에서 이들은 언론 자유 침해 문제를 조명하지 않았다.

반면 2015년 10월 보수 언론사들은 일제히 광고계의 성명을 전하며 인터넷신문 등록요건 강화 요구를 전했다. “광고계, 인터넷신문 설립요건 강화 촉구”(중앙일보) “사이비 인터넷매체 횡포 조속 규제를”(동아일보) “인터넷신문 난립 막을 신문법 개정안 시급 광고계 공동성명서”(조선일보) 등이다. 동아일보, 문화일보 등은 군소 언론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획 기사를 쓰기도 했다. 언론시민단체의 반발 목소리는 일절 보도하지 않았다. 당시 사이비언론 퇴출 프레임을 통해 언론 수를 줄여 자사 몫의 광고비를 늘리기 위해 이 같은 보도를 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찬형 YTN 사장은 최근 “언론중재법 이슈는 우리가 당사자이면서 보도하게 되는 이해충돌 사안이라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언론이 공공의 이익보다는 자사가 관여된 이슈이기에 핏대를 세운다고 보는 시선이 있다. 언론중재법 개정 국면에서 언론의 비판 보도는 정당성이 있다. 다만, 정권의 언론자유 침해 시도에 대한 논조가 일관되게 나타나지 않고 정파 또는 자사 이해관계에 따라 선별적으로 적용됐다면 진정성을 납득시키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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