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에 취재를 가고 싶어도 외교부에서 입국 금지를 했기 때문에 갈 수가 없다. 2008년 미국 국무부가 언론의 정보 접근을 위해 마련한 이라크 미군 임베딩(종군기자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도 한국 외교부가 여권법 위반으로 나를 고발했다. 분쟁지역 취재란 현행법을 위반하는 일이 된다.”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PD의 말이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고 난 뒤 아프가니스탄 관련 보도가 쏟아지지만, 사실 국내 보도 가운데 아프간 현장을 직접 취재해 전하는 기사는 없다. 현지 취재가 어려운 상황 탓이다.

이를 감안해도 사안을 왜곡하는 보도 양상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국제보도 전문 언론인들은 지적한다. 언론이 아프간 민간인 관점에서 현지 상황을 조명하거나 20년 간의 전쟁 책임을 분석하기보다 ‘강건너 불구경’ 식의 단편적 기사를 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언론사의 장기적인 국제 분야 투자 부족이 한 원인으로 꼽힌다.

▲아프가니스탄 협력자와 그 가족들이 지난 26일 오후 우리 공군 다목적 공중급유 수송기를 이용해 인천공항에 도착, 코로나19 PCR 검사를 마친 뒤 공항을 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협력자와 그 가족들이 지난 26일 오후 우리 공군 다목적 공중급유 수송기를 이용해 인천공항에 도착, 코로나19 PCR 검사를 마친 뒤 공항을 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아프간을 비롯한 해외의 첨예한 분쟁 지역은 현재 한국 언론인의 접근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김영미 PD는 “2008년 여권법 위반을 이유로 입국할 수 없게 돼 나는 ‘CNN 기자는 저기 있는데 나는 왜 못 가느냐’고 항의했다”며 “현재도 비슷하다. 아프간 취재를 가려면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이것부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 PD는 “근접 국가인 이라크로 가려고 해도 취재 아이템을 자세히 적고 입국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언론사들도 이렇게까지 해서 가려 하지는 않는다”고 전했다.

현재 한국에서 아프가니스탄 보도는 내근하는 국제부 소속 기자가 외신을 인용하거나 근접 국가의 특파원이 소식을 전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KBS는 워싱턴지국과 중동지국에서 각각 아프간 소식을 전한다. SBS에선 현재 워싱턴 특파원이 아프간 소식을 전하고 있다. MBC의 경우 현재 중동 특파원은 배치하지 않은 상태다. MBC 관계자는 “현재 중동 특파원은 없고 ‘중동 순회 특파원 제도’를 준비해왔는데, 코로나19로 인해 해외 입국 자체가 어려워 지연되고 있다”고 전했다.

조회수 수단된 국제보도, 미국 시각·‘강건너 불구경’


국제 보도를 전문적으로 해온 언론인들은 한국 언론이 분쟁지역 취재에는 투자를 줄이는 한편 국제 보도를 ‘조회수’ 높이기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장 큰 이유는 이른바 ‘가성비’ 논리다. 김영미 PD는 “분쟁 지역 취재는 일반 해외 취재보다 3~4배 비용이 든다. 일회성으로 완결된 취재를 얻기 어렵다”며 “자본주의 논리에서 볼 때 분쟁 지역 취재는 비용만 들고 여러 문제를 야기하니 언론사가 점점 투자를 줄이는 것”이라고 했다.

▲아프가니스탄 지도. 구글맵
▲아프가니스탄 지도. 구글맵 캡쳐

미얀마 쿠데타와 아프간 점령 상황을 연이어 표지이야기로 보도해온 주간경향의 박병률 편집장은 “언론사들은 현재 배치한 특파원도 거둬들이는 분위기”이라며 “현지를 취재한 기사는 잘 ‘팔리지’ 않는 데다, 온라인 SNS 활성화로 받아쓰면 된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언론이 외신 단순 인용을 되풀이하면서 국내 언론엔 서방 중심 시각이 확대된다. 박 편집장은 “한국 언론은 미국 등 서방의 외신 의존도가 높은데 일차적으로 미국의 시각을 장착한 뉴스들이다. 여기에 더해 기사가 많이 소비돼야 하니 해석보단 사건 중심의 단편 보도를 많이 낸다”고 했다.

탈레반의 아프간 점령 사태 보도도 같은 문제를 되풀이하고 있다. 지난 2007년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와 동부 잘랄라바드 현지를 취재했던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는 “국내 아프간 관련 보도 특징은 전쟁에 대한 고정된 시각”이라고 지적했다. 세 언론인은 모두 탈레반을 앞뒤 없이 ‘악의 무리’로만 조명하는 양상을 그 사례로 들었다.

이 기자는 “대다수 보도가 ‘탈레반은 악이고 반대편에 선 미국은 아프간을 구하는 입장인데, 그 작전이 실패했다’는 관점에 그친다”며 “탈레반 폭정뿐 아니라 미국의 드론 공격 등 공습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 이것이 어떻게 민간인을 적으로 돌렸는지, 탈레반은 어떻게 세를 확장했는지 등 훑어볼 사안이 많다. 한국언론에선 특히나 찾기 어려운 보도”라고 했다.

국제부 담당 기자들도 국제부를 ‘내근직’이자 ‘조회수 담당’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고충을 토로한다. 한 인터넷언론사 국제부 기자는 “국제부 외 부서도 조회수 부담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지만, 국제부가 내근직으로 여겨지다보니 조회수를 높이 역할을 주문 받는다”며 “물론 국내 전문가들을 취재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해도 (조회수 높이기에) 효율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니 외신을 받아 제목이나 첫 문장을 바꾼 기사를 내놓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3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아프간 철군과 그 시한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알자지라 유튜브 캡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3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아프간 철군과 그 시한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알자지라 유튜브 캡쳐

미국 실패·책임 분석, 한국 시각 소화 필요


지금과 다른 아프간 취재와 보도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근본적으론 언론사의 국제보도 담당 기자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이 기자는 “전문 기자를 키워야 하는데 양성하는 시스템이 전무하다. 이는 수십년 째 되풀이되는 문제”라며 “최소한 국제 담당 기자에게 취재할 ‘시간’이라도 내줘야 한다” 했다. 그는 “언론사와 데스크 차원에서 기자가 현장이 아닌 책상에 앉아서라도 그 주제를 계속 파도록 하고 원거리 인터뷰 지시해야 한다”고 했다.

기자 개인으로선 전문가 활용도 중요한 취재 기법이다. 이 기자는 “누가 이 이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한데, 한국언론의 취약한 부분”이라며 “국내에도 전문가 풀이 좁지만 없지 않고, 한국 밖으로도 눈을 돌려 전문가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예컨대 카불 기반의 AAN(아프간분석네트워크) 등 싱크탱크는 생생한 현장조사자료도 제공한다”고 했다.

이들은 “국제보도는 ‘핫 토픽’이나 ‘강건너 불구경’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한국은 아프간에 파병한 전력이 있는 만큼 당사자일 뿐만 아니라, 아프간 난민 문제 등 사태는 현재 한국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들은 아프간 민간인 관점에서의 보도, 한국이 보여야 할 입장을 다룬 보도가 더 필요하다고 했다.

박 편집장은 “타국 시각의 국제뉴스를 해석해 우리 것으로 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얀마와 아프간 사태에도 우리는 어떻게 대응하고 입장을 보일지 알기 위해 뉴스를 보는 것”이라고 했다. 최근 주간경향은 이번 아프간 특집호에서 중동 전문가 인터뷰 3꼭지를 각각 4페이지씩 실었다. 미국의 대외 전략, 동북아에 미칠 파장 등 지정학을 기사로 다뤘다.

이 기자는 “미국이 29일 드론 공격을 해 일가족 10명이 죽었고 그 중 8명이 어린이다. 미국은 사과도 하지 않았다. 미국이 어떤 방식으로 전쟁을 해왔는지를 보여주는 단편”이라며 “한국 언론도 이에 대해 관점을 가지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미국이 여성 인권을 위해 전쟁을 한다고 했지만 실제 아프간에서 자생한 여성 인권 단체는 보호받지 못하고 망명에 이른 현황도 살펴볼 주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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