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여야가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를 9월 말로 미루고 협의체 구성에 합의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숙성의 시간을 갖기로 한 것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냈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며 사회적 갈등이 심할 당시 대통령 입장을 요구했지만 침묵하다 여야가 협상에 성공하자 뒤늦게 입장을 냈다는 비판이 나왔다. 

31일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언론중재법 협의체 구성에 대한 문 대통령의 입장이라며 “여야가 개정안에 대해 추가 검토를 위해 숙성의 시간을 갖기로 한 것을 환영한다”며 “언론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둥이고 국민의 알권리와 함께 특별히 보호받아야 해서 관련 법률이나 제도의 남용의 우려가 없도록 면밀히 검토돼야 한다”고 전했다. 여권이 밀어붙이던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허점과 오류를 뒤늦게 인정한 꼴이다.

문 대통령은 “악의적인 허위 보도나 가짜뉴스에 의한 피해자의 보호도 매우 중요한데 신속하게 잘못된 보도를 바로잡고, 정신적․물질적․사회적 피해로부터 완전하게 회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또 언론의 각별한 자정 노력도 필요하다”고 주장한 뒤 “언론의 자유와 피해자 보호가 모두 중요하기에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회적 소통과 열린 협의를 통해 국민적 공감대가 마련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 31일 국무회의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 31일 국무회의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이에 국민의힘은 “언제는 대통령이 언론자유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지 않아 언론재갈법을 밀어붙였나”라며 “국민들은 자신이 필요할 때 등장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 필요할 때 나타나는 대통령을 원한다”는 입장을 냈다. 

허은아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구두논평에서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며 “이미 길고 긴 침묵 속에서 문(文) 정권은 언론자유를 수호할 의지가 없다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난 마당”이라고 지적한 뒤 “견해를 밝혀달라는 수많은 외침에도 대통령은 침묵했고 ‘해석은 자유롭게 하시라’는 청와대의 무책임과 의회 무시 속에서 민주당의 입법열차는 폭주했다”고 했다. 

지난 23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이 ‘언론중재법에 대한 청와대의 침묵은 묵시적 동의라고 할 수 있다’고 하자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해석은 자유롭게 하라”고 말했다. 

허 수석대변인은 “이제 와 ‘환영’을 운운하며 ‘뒷북’ 입장 발표를 하는 것은 또 다른 이름의 무책임이요 국민기만”이라며 “오히려 여야협의가 어떠한 방향으로 이뤄질지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언론의 자정능력’을 핑계로 여론 눈치를 보다가 언론재갈법을 밀어붙이려는 속내가 아니기를 바랄 뿐”이라고 비판했다. 

▲ 지난 30일 오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 회의실에서 연린 현안 관련 긴급보고에 참석한 모습. 사진=국민의힘
▲ 지난 30일 오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 회의실에서 열린 현안 관련 긴급보고에 참석한 모습. 사진=국민의힘

 

청와대는 협의체 구성에 대한 환영 입장 외에는 말을 아꼈다.

기자가 ‘대통령과 정부 입장에서 어떤 영향이 미쳤는지, 처음부터 다시 논의를 시작하라는 입장이 있었던 것인지’를 묻자 청와대 관계자는 “언론중재법의 구체적 조항에 대해선 국회에서 머리를 맞대고 협의하며 만들어 갈 일”이라며 “어제도 고의중과실 추정 관련해 수정안이 제시됐고 야당에서 징벌적 손배 자체를 빼자는 제안 등이 국회에서 이뤄졌는데 그건 9월27일까지 국회에서 논의할 일”이라고 답했다. 

또한 기자가 “청와대가 여당의 강행 처리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이건 청와대가 밝혀온 ‘국회가 논의할 사안’이라는 기존 입장과 다른 태도다”라며 “청와대 입장이 뒤늦게 바뀐 것인지, 그렇다면 이유가 궁금하고, 여야 합의가 이르게 된데 문 대통령 의중이 반영된 것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청와대 관계자는 “오늘 대통령 말씀을 협의체 구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고 ‘언론의 자유와 피해자 보호 모두 중요하기 때문에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협의 과정을 거치는 것’ 여기에 대한 입장”이라며 “협의체 구성은 오늘 여야 원내대표 간 합의사항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한편 정의당은 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만의 협의체를 만든 것과 다른 언론개혁 과제를 포함하지 않은 것을 지적했다. 

이동영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양당 합의로 언론중재법을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고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한 것은 다행이고 의미있는 결정”이라면서도 “합의문에서 협의체 구성을 양당 의원과 양당 추천위원으로 한정한 것이나 협의과정에서 거론됐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방송법과 1인 미디어, 포털관련 법안을 논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언론개혁 관련 법률 등이 빠진 것은 유감”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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