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토론 프로그램이 국회에서 협상 카드로 농락당했다. 

30일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주제로 MBC ‘100분 토론’에 출연 예정이었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측은 이날 오후 9시55분경 토론에 나갈 수 없다고 제작진에 최종 통보했다. 생방송 40분 전이었다. ‘100분 토론’ 제작진은 사안의 중대성과 국민적 관심사를 고려해 편성을 하루 앞으로, 방영시간도 한 시간 앞당겼던 상황이었다. 시청자들은 허탈할 수밖에 없었다. 

당황스러운 건 ‘불방’에 대한 당 대표 인식이다. 어젯밤 국회 현장에 있던 기자들에 따르면 이준석 대표는 저녁을 먹고 들어오는 길에 기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협상) 결과 나오는 것 보고 토론 불발로 판을 키워야지.” 그럼 MBC는 뭘 내보내냐고 어떤 기자가 물었다. 그러자 이준석 대표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동물의 왕국.” 

국회에서 법안을 둘러싸고 여야가 갈등하는 것과 ‘100분 토론’ 출연 여부는 전혀 별개 사안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방송프로그램 출연을 협상 수단으로 활용했다. 아무 비판 없이 이번 일이 지나간다면 앞으로 다른 정치인들도 생방송 직전 ‘출연 보이콧’에 나설 것이다. 협상 카드로 ‘방송 출연’을 꺼내는 일이 빈번해질 수 있다. 계속 정치인을 상대해야 하는 방송사 입장에선 이번 일에 별 입장을 내기 어려울 것이다.

설령 농담이었더라도, 언론의 자유와 책임에 대해 고민했을 시청자들에게 ‘동물의 왕국’이나 보라는 제1야당 대표의 인식은 놀랍다. 어제의 불방은 방송사를 상대로 한 정치인의 ‘갑질’이다. 지금껏 ‘100분 토론’이 이처럼 불방된 사례가 있었던가. 이례적 사건이지만 정작 비판 기사는 찾기 어렵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0분 토론’ 보이콧에 나섰다면 어땠을까. 여야 가릴 것 없이 시청자와 약속을 우습게 보면 안 된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사진=국민의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사진=국민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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