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행정심판을 넣었다. 두 건의 정보공개 청구에 부당한 비공개 처분을 해서다. 

하나는 방통위가 21개 지상파 방송사에 보낸 ‘문서 양식’이다. 21개사 산하 162개 방송국은 올해부터 4월마다 ‘비정규직 인력 현황 및 근무 실태’를 방통위에 보고하는데, 이와 관련해 방통위가 방송사에 일괄로 보낸 ‘보고 양식’이다. 회사별로 상황이 다르니 통일된 틀로 정리하기 위해 방통위가 언론계 등의 자문을 거쳐 제출 양식(이하 제출 양식)을 만든 것. 

나머지 하나는 방통위 정보심의위원회 회의록이다. 방통위가 앞선 자료를 비공개해 이의를 제기했고, 정보심의위는 이의제기를 심사해 같은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 이에 심사 회의록 공개를 청구하자 방통위는 또 비공개했다. “구체적인 발언 내용이 공개되면 향후 위원들의 자유로운 논의 과정이 위축될 수밖에 없어 상당한 지장을 초래한다”는 이유다. 

▲사진=pixabay.
▲사진=pixabay.

 

모두 공무원 재량권 남용이다. 공공기관의 정보는 공개가 원칙, 비공개가 예외인데 방통위 처분은 이를 역행한다. 방통위가 활용한 법조는 정보공개법 제9조 1항 5호(이하 5호)다. ‘감사·감독 등 업무에 있어 공정한 업무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경우’ 비공개를 허용하는 조항이다. 그런데 제출 양식 자체와 정보심의회의록 공개가 업무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까. 
 
방통위는 그렇다고 주장한다. 5호 적용 대상은 “감사, 감독, 검사, 시험, 규제, 입찰계약, 기술개발, 인사관리에 관한 사항” 등이다. 방통위 지상파방송정책과는 제출 양식이 ‘감독’과 ‘인사관리’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비공개했다. 나아가 정보심의위는 이의제기에 “최초의 양식이라 지속 보완이 필요하다”며 “공개되면 방송사 종사자 등 국민들에게 혼선을 야기하거나 비정규직 관련 정책 수립과 재허가 조건 이행점검 업무 등에 지장을 초래한다”고 공개를 거부했다. 

▲해당 '제출 양식' 공개 청구를 기각한 방통위 사유(위)와 이의제기에 다시 비공개 결정을 내린 방통위 사유(아래).
▲해당 '제출 양식' 공개 청구를 기각한 방통위 사유(위)와 이의제기에 다시 비공개 결정을 내린 방통위 사유(아래).

 

과잉 해석이다. 5호는 단순한 감독·인사관리 관련 정보 모두에 적용할 조항이 아니다. “업무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상당한 이유가 있다”는 조건이 필수적이다. 행정안전부 정보공개 가이드라인은 “증거인멸 등 감독의 목적 달성이나 실효성을 손상시킬 우려가 있는 정보”를 예로 든다. 인사관리 정보라 하더라도 소청(징계)심사위원회 회의록, 소청서, 심사조서, 승진심사위원회 내용 등이 비공개 사례다. 방송사들에 매년 반복적으로 제출을 요구할 ‘양식’이 이 자료들과 유사한 기밀성을 지닌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또 제출 양식은 알 권리 대상이다. 방통위의 행정 작용이 감시 대상이기 때문이다. 지상파의 비정규직 인력 현황 제출은 방송계 비정규직 남용 문제가 여러 차례 큰 사회적 논란에 휩싸인 끝에 마련된 대안이다. 논란엔 2017년 CJ ENM의 고 이한빛 PD와 지난해 청주방송 고 이재학 PD의 비극적인 사망 사건이 있다. 방통위는 이에 지난해 12월 지상파 재허가 조건으로 비정규직 인력 현황과 처우 개선 방안 제출을 신설했다.

▲제출 양식 비공개 처분에 이의를 제기해 정보심의위원회가 열렸고, 위원회도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 이에 심의위 회의록 공개를 청구하자 비공개 처분(위 사진)됐다. 이에 이의를 제기했으나 같은 사유로 비공개(아래 사진)됐다. 방통위가 근거로 인용한 판례는 심의회 관련 '내부 결재 기안지'와 '발언자의 인적사항' 관련으로 이번 청구와 내용이 다르다.
▲제출 양식 비공개 처분에 이의를 제기해 정보심의위원회가 열렸고, 위원회도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 이에 심의위 회의록 공개를 청구하자 비공개 처분(위 사진)됐다. 이에 이의를 제기했으나 같은 사유로 비공개(아래 사진)됐다. 방통위가 근거로 인용한 판례는 심의회 관련 '내부 결재 기안지'와 '발언자의 인적사항' 관련으로 이번 청구와 내용이 다르다.

 

시민들은 방통위의 업무 의지와 양태를 알 권리가 있다. 최초 양식이라 계속 수정 중이라면, 그 전후 사정을 시민들에게 충분히 설명하면 된다. ‘최초라 공개가 불가하다’는 방통위 주장에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실제 방통위는 올해 초 배포한 양식을 수정해 지난 7월께 자료를 다시 취합했다고 알려졌다. 이 경우 방통위가 “올해 중순 업무 수행이 완료되니 그때 완료된 제출 양식을 공개하겠다”고 밝히는 게 법 취지에 맞다. 

회의록 비공개에선 ‘거만함’도 엿보인다. 회의록은 심의회 운영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위해 공개를 해야 할 자료다. 그래서 이미 여러 공공기관이 공개하고 있는, 다툼의 여지가 적은 자료다. 일부 지방정부는 홈페이지에 선제적으로 회의록을 게시한다. 방통위는 “위원들 자유로운 의사 표명에 방해된다”고만 밝혔다. 이후 이의제기도 기각했다. 

공공 정보는 공무원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방통위는 공공의 소유물을 자의적으로 관리한다. 자의적 해석은 남용을 낳는다. 방통위 논리라면 모든 정부 부처 조사 업무의 ‘최초 제출 양식’은 비공개 대상이다. 이번 사례에도 여러 의문이 남는다. 올해 초 배포한 양식은 비공개이고, 지난 7월 취합한 양식은 공개 대상인가? 아니면 둘 다 비공개 대상인가? 그것도 아니면 내년이 돼야 양식을 공개할 수 있나? 법상 비공개 대상이 아닌 자료는 모두 공개해 행정 작용을 투명하게 밝히는 게 헌법상 알 권리에 부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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