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열린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에는 정치·경제·행정권력자들의 경우 허위조작보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평범한 시민들이 허위보도로 억울한 피해를 입었을 때 이를 구제하기 위한 법인 만큼 이를 권력자들이 자신을 향한 비판을 막기 위해 악용할 소지를 막겠다는 취지다. 지역신문 기자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서울시 은평구를 취재하는 지역신문인 은평시민신문은 지난해 은평구청의 부구청장의 차량을 운전하는 운전직 공무원(운전원)의 과잉노동·과잉의전을 비판하는 기사를 썼다. 은평구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받은 차량운행일지를 근거로 보도했지만 구청 측은 왜곡보도라며 보도 이후 신문사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신문사의 추가 정보공개청구가 마땅하다는 정보공개심의회 위원들 의견에도 해당 신문사에는 정보를 줄 수 없다는 결정을 하는 등의 태도를 보였다. 그럼에도 신문사는 은평구청장 등이 세금으로 개인휴대전화 요금을 낸 사실 등도 추가 보도하는 등 행정권력 견제를 이어갔다. 구청 측의 압박이 시작됐다. 은평구청장, 부구청장, 운전원 등이 각각 500만원씩 총 1500만원의 손해배상을 언론중재위원회에 청구했다. 이후엔 정정보도를 청구하는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징벌적 손배청구, 권력자 제외한다고 해결되나

해당 사건을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 소송으로 가정해보자. 만약 언론중재법에서 권력자의 범위를 지자체장으로 정한다면 해당 사건에서 구청장은 해당 사건에서 징벌적 손배청구를 할 수 없다. 부구청장까지 권력자로 정하면 부구청장도 청구인에서 빠지면 된다. 그러면 구청 측의 지원으로 운전원이 지역신문사를 상대로 최대 5배에 해당하는 징벌적 손배를 청구할 수 있다. 권력자의 징벌적 손배 청구를 금지했지만 신문사는 행정권력 비판을 이유로 징벌적 손배 압박을 받을 수 있다. 

박은미 은평시민신문 편집장은 미디어오늘에 “언론중재법 개정안에서 고위공직자 등은 제외라고 하지만 이 말이 얼마나 허울 좋은 말인지 우리는 안다”며 “고위공직자 뒤엔 무수히 많은 공무원들이 있어 마음만 먹으면 행정력을 동원해 얼마든 언론사를 압박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지역신문은 기초자치단체와 가장 밀접한 위치에서 막중한 역할을 함에도 언제든 보복성 압박을 당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은평시민신문 구성원은 편집장과 기자 합해서 총 2명이다. 

▲ 은평구 지역신문인 은평시민신문이 구청 조치에 항의하며 발행한 1면 백지
▲ 은평구 지역신문인 은평시민신문이 구청 조치에 항의하며 발행한 1면 백지

언론중재법 개정안에선 보복·반복적으로 허위보도를 할 경우 고의·중과실이 있다고 추정한다. ‘보복·반복적’이란 표현에 역시 지역신문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소위 서울중심의 중앙언론에선 주요 현안에 따라 이슈를 갈아타지만 지역언론에선 고질적인 해당 지역 현안을 꾸준히 보도해야 한다. 

비판기능을 수행해온 언론사들은 이미 위축된 상태로 보도를 하고 있다. 이현경 옥천신문 기자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국회에선) 차떼고 포떼고 다 열어놨다지만 지역사회안에 대기업·중견기업이 어딨나. (언론중재법으로) 토착세력들이 더 심각한 부패에 빠질 수 있다”며 “이미 언론중재법(징벌적 손배)dl 아니더라도 힘 있는 이들은 법을 악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옥천신문은 최근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구제, 영유아보육법 위반으로 자격정지된 어린이집, 방역수칙 위반한 공무원 등 상대적으로 명확한 사건을 보도했다는 이유로 언론중재위에 출석하며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 이 기자는 “반론권을 행사하지 않고 도망다니거나 소송걸겠다고 압박하다 보도가 나오면 언론중재위에 사소한 것 잡아서 정정보도나 반론보도가 나오면 그걸 이용해서 기사 자체가 틀린 것처럼 주장한다”고 말했다. 

의혹 보도 옥죄는 언론중재법

최근 석산업체 등은 완주신문 측에 언론중재위원회 정정보도 신청과 수사기관에 형사처벌을 요청했다. 전북 완주 일대에는 약 30년간 석산개발로 주민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산에서 돌을 채취하는 등의 공사가 진행되면 돌가루가 인근 마을로 날아들어 빨래를 밖에다 내걸지 못할 정도이고, 암 발병 주민들이 늘고 있다. 이에 완주신문에선 꾸준히 주민들의 목소리와 석산개발의 문제 등을 보도하며 당국에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유범수 완주신문 기자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형사 건이 끝나면 민사로 손배청구할 가능성이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는 대다수 비판보도를 막으려는 측에서 취하는 방법이다. 해당 언론사를 고소고발과 손배 소송으로 압박하는 동시에 다른 매체의 추가 보도를 막는 효과다. 

▲ 전북 완주군 고산면 석산개발현장 인근 마을 모습. 사진=유튜브 말하랑게TV 갈무리
▲ 전북 완주군 고산면 석산개발현장 인근 마을 모습. 사진=유튜브 말하랑게TV 갈무리

유 기자는 “큰 언론사야 법률 자문이 있으니 괜찮을지 몰라도 현재 있는 법만으로도 작은 언론사는 부담이 크고 공익성으로 위법성이 조각된다지만 현행법상 사실적시도 명예훼손이 될 수 있고 명확한 기준이 있는지 의문인 가운데 언론의 순기능까지 옭아맬 수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게다가 민주당은 최근 수정안에서 ‘명백한’ 고의중과실 사유에서 ‘명백한’을 삭제했고, 허위조작보도 규정에서 ‘피해를 가중시키는 경우’를 삭제했다. 즉 징벌적 손배 대상범위, 고의중과실 추정사유를 넓히는 방식으로 법을 수정했고, 언론사 입장에선 입증책임이 커진 꼴이다. 완주신문 사례처럼 석산개발이 암 환자의 증가에 영향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정부의 조사와 대책을 촉구하는 기사가 많은데 이는 언론사가 객관적 증거를 내놓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김주현 설악신문 기자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지역신문은 흙탕물에 오염수를 방류하는 문제나 불법매립 등을 보도하는데 다 물증이 없는 의혹보도”라며 “관련 업체에서 피해받았다고 징벌적 손배를 제기하면 언론사가 당해낼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오염수 방류나 불법매립 의혹은 주로 주민들의 증언, 주변 정황증거들로 보도하고 당국이 나서서 조사해 문제를 해결한다. 또한 보도 자체로 예방효과도 있다. 그러나 불법현장을 기자가 포착하지 않는 한 객관적 물증이 없는 기사다. 

이현경 기자는 “지역에선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가 있는데 이를 보도하면 ‘반복적인 상황’이라고 주장하고 언론중재위도 거쳤는데 보도하면 ‘보복이야’라고 할 수 있다”며 “안 그래도 부족한 인력과 시간을 이런 대응을 위해 소모해야 하고 좋은 뉴스를 만드는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고 말했다. 

지역신문, 언론중재법에 관심이 적은 이유 

지역신문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지방정부를 비판·감시하는 곳과 지방정부의 스피커 역할을 하며 홍보비로 연명하는 곳이다. 전자의 수가 압도적으로 부족하다. 한국기자협회 차원에서 나서서 언론중재법 반대하면서 지역언론 기자들도 반대서명에 동참했지만 해당 법안을 반대하는 것과 해당 법안을 당사자의 문제로 보는 것은 다른 문제다. 소송 걸릴만한 기사를 쓰지 않는 언론사나 기자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법 적용대상자들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손주화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국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사실 비리를 폭로하고 지자체를 비판하는 기사는 극소수니까 많은 기자들이 당사자라는 생각이 떨어지는 것 같다”며 “정치권 공방을 중계하는 느낌으로 지역에서는 체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당사자로서 깊이있는 보도가 적다는 지적이다. 실제 미디어오늘 취재에 응한 다수 기자들은 많은 지역신문 기자들이 언론중재법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박주현 전북의소리 발행인(언론학 박사)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지역언론사들이 언론중재법에 시큰둥한 것도 애초에 언론사들이 무리수를 두지 않기 때문”이라며 “예를들어 전북도지사 측근이 투기 의혹으로 경찰수사하고 전북도에서 감사가 이뤄졌는데 16개 일간지가 한줄 제대로 못 쓰고 전북CBS와 전북의소리 정도만 열심히 보도했다”고 말했다. 즉 대다수 매체들은 지역현안인데도 타사의 비판보도를 관전해왔기 때문에 징벌적 손배도 남 얘기란 뜻이다. 

이에 박 발행인은 “이 법이 통과되면 더욱 (지역언론사가) ‘친관 대변지’가 되지 않겠나 싶다”며 “지역에는 관에 기댄 관변단체들이 많아 진보매체, 대안매체들의 설 땅이 좁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관변단체는 징벌적 손배를 청구할 수 없는 ‘권력자’에 들어갈 가능성이 낮다. 

지역신문 기자들이 이 법에 관심이 적은 두 번째 이유는 어차피 소송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압박에 대응하고 처리하느라 하루하루 힘들기 때문이다. 법조항, 단어 한두개까지 들여다볼 여력이 안 된다는 의미다. 

유범수 완주신문 기자는 사실 언론중재법 내용에 대해 자세하게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완주신문은 약 2년전 기존 지역신문의 한계를 깨닫고 자신이 직접 창간해 만든 대안매체로 그동안 혼자 운영하고 있다. 지역현안을 보도하고 언론중재위나 형사 건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는 상태다. 지속적인 항의, 반론 무대응, 광고비, 구독료, 언론중재위, 형사고소나 손배소송 등을 1~2명 수준의 지역신문이 감당하긴 벅찬 게 현실이다. 

▲ 서울 여의도 국회. 사진=장슬기 기자
▲ 서울 여의도 국회. 사진=장슬기 기자

셋째는 지역의 언론현실을 고민해 만든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초단체 단위로 가면 지역신문의 비판 대상은 지역 토착세력 내지 기득권세력인데 국회에서 이들을 논의했는지 의문이다. 또 양당이 지지층 결집을 위해 이 이슈로 충돌하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신아일보는 8월25일자 기자수첩 “언론중재법 대선 정국 이슈로 부상하나”에서 “대선 승리를 위해 언론의 역할이 중요한데 유리한 입장을 선점하기 위해 당정청이 언론중재법을 들며 언론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의견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여권에서 법 적용을 대선 이후로 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반쪽짜리 해명이다. 이미 비판보도를 이어온 기자들은 현장에서 위축을 느끼고 있고, 일각에선 지지층 결집을 위한 수단으로 언론중재법을 보고 있어서다. 

김주현 기자는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지자들을) 결집하려고 보수·진보를 갈라놓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손주화 사무국장도 “정치권에서 니편·내편으로 싸우는 분위기”라고 지적했다. 

이현경 기자는 “지역에 큰 기업이 없더라도 지역 안엔 기득권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언론중재법에서 말한 권력자로 분류할 수 없는 지역사회 내 기득권자가 많다는 지적이다. 또한 이 기자는 “홍보성 기사만 써주고 광고받는 언론은 소송당할 위험이 없으니 언론중재법이 통과되든 사실 신경쓸 필요가 없다”며 “언론중재법이 아니어도 위축되고 있는 언론사만 옥죄는 법이 아니라 좋은 뉴스를 만드는 환경을 만드는데 언론개혁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그래픽=안혜나 기자
▲ 그래픽=안혜나 기자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지역신문발전기금 사업비를 삭제하려던 방침을 지역언론계 등의 반발 이후 철회했다. 지역신문발전 3개년 계획에 따르면 160억원을 편성해야 하지만 문체부는 내년 사업비 예산으로 82억원을 책정했다. 대다수 지역신문이 지자체에 기생해 홍보지로 전락하는 현실을 막고 건강한 지역신문이 성장할 수 있는 정책적 고민도 언론개혁 과제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무너진 언론신뢰는 언론 탓

반면 언론개혁, 언론피해 구제 등의 취지에 공감하기 때문에 일단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통과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김태창 안산신문 편집국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지역에는 일부를 제외하고 기사를 쓸 줄도 모르는 사람을 기자라고 발령을 내서 보도자료 실어주고 돈 주고 받고 협박하는 경우들이 있다”며 “악의적인 보도를 하는 경우 신문사가 망하든 기자가 망하는 사례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중재법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것이라는 지적에 김 국장은 “최선을 다해도 기사는 완벽할 수 없지만 최선을 다한 흔적을 보이면 최종적으로는 처벌받지 않는다”며 “끝까지 취재를 해서 보도를 하고 취재가 안 되면 기사를 쓰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중재법의 여러 헛점에도 국회 통과 찬성 여론이 높은 이유는 그만큼 언론신뢰도가 바닥이기 때문이다. 

이승환 경남도민일보 뉴미디어부장은 “동의하지 않지만 반대할 수 없다”는 칼럼에서 “(법의 문제·우려 등에도) 시민은 지금 규제가 저널리즘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언론 스스로 증명하라고 요구한다”며 “어느정도 손해와 위험도 기꺼이 감수하면서 구호 말고 보도로 말이다”라고 주장했다. 법의 허점은 지적할 수밖에 없지만 언론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자기반성과 함께 기사의 질이 달라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주현 발행인은 “처음 언론중재법 제정할 때(2005년, 징벌적 손배 제외)나 김영란법 만들 때도 언론계에서 ‘언론자유 침해’라고 비판을 많이 했지만 통과되고 시행하면서 좋은 쪽으로 기능하지 않았나”라면서 “이번 개정안도 시행과정에서 올곧은 지역언론이 위축된다면 다시 (개정)운동이 일어나며 정의로운 방향으로 갈 수 있다”라고 말했다. 

▲ 유튜버 등 1인미디어도 명예훼손 등 민형사상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가운데 민주당은 이들을 대상으로 한 징벌적 손배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사진=getttyimages
▲ 유튜버 등 1인미디어도 명예훼손 등 민형사상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가운데 민주당은 이들을 대상으로 한 징벌적 손배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사진=getttyimages

한편 취재하다보면 지역의 사이비언론, 특히 1인미디어들이 허위정보를 퍼뜨려 여론을 왜곡하는 경우가 심각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동이 태안신문 기자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허위정보로 관을 압박해 광고비를 뜯거나 공무원을 협박해 개인사업에 이용하는 경우를 봐온 터라 관련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며 “심지어 가짜뉴스를 SNS 등으로 퍼트려 호도하고 주민들은 가짜뉴스를 근거고 피해보상 요구하는 사례까지 있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이는 지역신문 기자 다수가 느끼는 부분이었다. 김주현 기자도 “1인 미디어들 허위입장에서 사실관계 맞지 않는 것들이 많은데 이런 것들을 정화시키는 것이 더 시급하지 않나”라고 지적했고, 매일신문도 8월26일 사설에서 “개인 유튜브 방송을 통해 미디어역할을 하며 ‘아니면 말고 식의 거짓’을 마구 퍼뜨리지만 처벌을 받거나 제지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비판했다. 

현행법으로도 허위조작정보를 유포하면 1인 유튜브 방송이나 누리꾼도 처벌받는다. 다만 이런 사례가 드문 가운데 언론사만 규제를 강화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이런 여론을 고려한듯 윤영찬 민주당 의원은 ‘1인 미디어 징벌적 손배’에 해당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이미 발의했고 현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회부돼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