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를 놓고 언론계와 여권의 충돌이 강대강으로 치닫고 있다. 언론계는 개정안을 놓고 ‘언론재갈법’이라고 비판하고 이에 여권은 ‘대안 없는 비판’이라고 주장한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언론 자유 측면에서 정당한 공익적 보도를 막는 위험성을 최대한 줄이면서도 악의적 언론 보도 피해를 예방하는 효과를 가질 수 있도록 심사숙고해 처리해야 할 것이다. 언론계와 여권의 갈등에 두 가지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개정안이 권력 비판 보도를 막을 수 있다고 우려하는 언론계 입장을 이해하지만 정권과 언론이 유착한 무수한 사례를 시민이 기억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보수-진보 성향 언론 문제를 떠나 과거 권언유착이 돼 결국 다수 시민이 피해를 봤던 낯부끄러운 일을 반성해야 한다.

지난 2009년 용산참사를 두고 정권이 보도지침을 내리고 언론은 이를 충실히 따른 사례는 정권과 언론이 ‘합작’한 대표적인 흑역사에 해당한다. 당시 청와대 행정관은 “용산참사로 빚어진 경찰의 부정적 프레임을 연쇄살인사건 해결이라는 긍정적 프레임으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언론이 경찰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니 계속 기삿거리를 제공해 촛불을 차단하는 데 만전을 기해주시기 바란다”며 ‘연쇄살인범 홍보지침’을 경찰청 홍보담당관에게 보냈다.

경찰은 언론과 접촉해 살인사건 담당 형사 인터뷰를 추진하고 사건 증거 등을 공개했다. ‘용산 철거현장 화재사고 관련 조치 및 향후 대응방안’이라는 문건에 따르면 경찰이 언론계 인사를 접촉해 홍보한 구체적인 현황이 담겨있었는데 한 중앙일간지 논설 주필은 “경찰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으로 가고 있으며 법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이번 사태에 대해 경찰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또 다른 일간지 기자는 “전철연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사실에 입각한 폭력성을 부각할 필요가 있다”고 했고, 한 논설위원은 “조만간 경찰 입장을 홍보하는 칼럼을 게재하도록 노력”한다고 했다. 경찰의 과잉진압 문제를 지적하는 논조는 철거민의 폭력성을 부각하는 논조로 급격히 바뀌었다. (참고 문헌 이명박근혜정권의 언론통제_김주언 지음)

▲ 서울 용산 철거민 농성 진압과정에서 시위대 5명과 경찰 특공대원 1명이 폭발사고로 사망한 가운데, 2009년 1월21일 서울 용산 사고현장에 투입된 경찰 과학수사요원들이 현장감식 준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서울 용산 철거민 농성 진압과정에서 시위대 5명과 경찰 특공대원 1명이 폭발사고로 사망한 가운데, 2009년 1월21일 서울 용산 사고현장에 투입된 경찰 과학수사요원들이 현장감식 준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언론을 장악하려는 정권에 항거하기보다 보조를 맞춰 권언유착의 퍼즐을 완성시킨 건 언론이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언론 탄압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여론이 호의적이지 않은 이유도 권력에 빌붙은 정파적인 언론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편집위원회를 의무적으로 설치해 언론사 내부 보도를 견제 감시할 수 있도록 한 신문법 개정안에 신문협회 등이 반대하고 있는 것은 권언유착 문제에 반성할 여지가 없음을 보여준다.  

여권은 과거 그렇게 반대했던 전략적 봉쇄 소송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한다. 2014년 참여연대 공익법센터가 발간한 ‘이명박 정부 이후 국민입막음소송 사례’에 따르면 이명박 정권 기간 30건의 민형사사건 소송이 있었다. 소송 대상은 대부분 진보성향 언론이었다.

국가기관과 공무원에 대해 명예훼손을 했다는 이유로 형사 고소를 하고, 민사상 손배청구 소송을 하는 것에 더해 이명박 정권은 사이버 모욕죄까지 추진했다. 당시 언론탄압이라며 명예훼손죄 폐지를 주장하고 사이버 모욕죄를 정면에서 막아섰던 게 여권이었다.

특히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관련 법리적 근거를 제시했는데 명예훼손죄 등은 그대로 둔 채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에만 목을 매고 있는 게 민변 출신 여당 의원이라는 것도 역설적이다. 

▲ 박주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직무대리가 8월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가결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박주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직무대리가 8월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가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여권과 언론계는 ‘치킨 게임’을 중단하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 언론계(언론현업단체)가 제안한 ‘언론과 표현의 자유위원회’ 구성 제안은 타당하다. 언론계도 저널리즘 가치와 신뢰를 회복하는 방안을 내놔야 한다.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에 승자와 패자는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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