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진천 인재개발원에 망원 렌즈가 등장했다. 아프가니스탄을 떠나 입소한 ‘특별기여자’들의 모습을 담기 위해서다. 눈물을 흘리는 한 소녀 모습과 빨래하는 한 어머니의 일상적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그리고 그 사진은 기사화됐다. 심지어 몇몇 매체는 아침신문에 관련 사진을 실었다.

망원 렌즈를 활용해 유의미했던 보도로는 대표적으로 ‘우병우 팔짱’ 사진이 꼽힌다. 과연 아프간 특별기여자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취재가 같은 선상에 있을 수 있을까.

논란이 불거지자 관련 보도를 했던 매체들 가운데 한국일보가 사과에 나섰다. 한국일보는 모자이크 처리도 되지 않은 아프간 특별기여자 사진을 온라인에 송고하고 지면에도 실은 바 있다. 한국일보 관계자는 “논란이 된 부분에 대해선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지난 2016년 11월7일 자 조선일보 아침신문에 실린 팔짱 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모습. 사진=조선일보 갈무리
▲지난 2016년 11월7일 자 조선일보 아침신문에 실린 팔짱 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모습. 사진=조선일보 갈무리

충북 진천 인재개발원에 등장한 망원 렌즈

아프간 특별기여자들의 숙소 모습을 촬영한 매체는 한국일보, 뉴스1, 뉴시스 등이다. 민영뉴스통신사인 뉴스1과 뉴시스 사진을 받아 보도한 곳은 서울신문, 이데일리, 머니투데이 등이다. 머니투데이는 뉴스1, 뉴시스와 같은 계열사이다.

특히 한국일보는 지난 29일 “[사진잇슈] 답답함일까, 걱정일까…아프간 소녀의 눈물”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9장의 사진을 온라인에 송출했다.

뉴스1, 뉴시스, 머니투데이, 서울신문, 세계일보, 이데일리 등이 아프간 특별기여자들 얼굴에 모자이크를 입힌 것과 달리 한국일보는 눈물 흘리는 소녀의 모습 등을 있는 그대로 내보냈다. 서울신문과 한국일보는 관련 사진을 30일자 아침신문에 싣기도 했다.

불과 1년 전 같은 장소에서 같은 논란이 있었지만 논란은 또 반복되는 모습이다.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연합뉴스는 지난해 2월 진천 인재개발원에 격리 중인 중국 후베이성 우한 지역 교민들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비판을 받은 바 있다.

▲30일 자 한국일보 아침신문에 실린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들의 모습. 사진=한국일보 갈무리
▲30일 자 한국일보 아침신문에 실린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들의 모습. 사진=한국일보 갈무리

당시 연합뉴스는 교민들의 인상착의를 포함해 빨래 거는 모습과 앉아서 휴대전화를 만지는 모습 등을 가감 없이 보도했다. 대다수 언론사가 연합뉴스와 사진 전재계약을 맺고 있는 만큼 이 사진은 다른 언론사들을 통해서도 보도됐다.

‘신문윤리실천요강’ 제2조 취재준칙 5항 도청 및 비밀촬영 금지에 따르면, 기자는 개인의 전화 도청이나 비밀 촬영 등 사생활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특히 한국일보는 이와 관련한 자체 보도 준칙을 갖고 있다. 한국일보 취재 보도 기준 시행세칙 ‘민주주의의 기본원칙 존중에 관하여’ 파트에는 “공공이익과 관련 없는 개인의 사생활은 보호돼야 한다”는 내용이 네 번째 조항으로 담겨있다.

언론단체가 공동 제정한 보도 준칙과 별개로 세부 사안별 보도 준칙을 만들어 시행하는 곳은 많지 않다. 한국일보는 정면으로 자신들의 보도 준칙을 위배한 것이다.

▲30일 자 서울신문 아침신문에 실린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들의 모습. 사진=한국일보 갈무리
▲30일 자 서울신문 아침신문에 실린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들의 모습. 사진=한국일보 갈무리

“비교적 윤리 준칙 잘 따르는 한국일보까지…”

전문가들은 한국일보에 실망감을 내비쳤다. 한국일보는 자체 규정이 마련돼 있는 몇 안 되는 언론사이기 때문이다.

채영길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터질 게 터졌다는 생각”이라며 “개인의 과잉 취재라기보다 매체 자체에서 이 같은 취재에 나선 것 아니겠는가”라고 바라봤다.

이어 “우연히 찍거나 다른 반응 취재에 나선 것이 아니고 심리적으로 불안한 아프간 특별기여자를 두고 어떠한 장면을 얻으려고 했는지 의문스럽다”며 “단지 누굴까 하는 감각적 호기심만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기사”라고 바라봤다.

채 교수는 또 “어떠한 메시지를 내놓고 어떠한 여론을 형성하려고 했는지 의문이 드는 기사”라며 “이번 건은 기자 개인의 윤리적 문제가 아니라 회사(한국일보) 자체의 저널리즘 규범 자체에 대한 문제”라고 꼬집었다.

▲특별기여자 신분으로 입국한 아프가니스탄 인들이 지난 27일 김포 마리나베이호텔에서 임시 숙소인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노컷뉴스
▲특별기여자 신분으로 입국한 아프가니스탄 인들이 지난 27일 김포 마리나베이호텔에서 임시 숙소인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노컷뉴스

김언경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소장은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북한 응원단이 왔을 때도 화장실까지 쫓아갔던 일이 있지 않나”라며 “또 숙소 멀리서 망원 렌즈를 통해 TV를 보고 쉬는 모습을 담기도 했는데 여전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한국일보가 가이드라인이 잘 돼 있고 비교적 인권에 관심 있는 언론사인데 이번에는 실수한 것 같다”며 “사진이 절묘하기도 했고 우리가 ‘미라클 작전’을 잘했다는 생각에 관련 보도를 하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렇지만 가장 좋은 것은 사생활을 보호해주고, 언론은 제도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며 “결과적으로는 우리가 말하는 언론 보도 윤리상 적절치 않은 보도였다”고 꼬집었다.

논란 불거지자 하루 만에 사과 나선 한국일보

이 같은 비판이 일자 한국일보는 사과에 나섰다. 29일 오후 5시20분에 송고됐던 “[사진잇슈] 답답함일까, 걱정일까…아프간 소녀의 눈물”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30일 오후 3시57분 수정됐다. 한국일보는 해당 기사에 사과문을 실으며 아프간 특별기여자들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했다.

한국일보는 “본보는 탈레반의 위협으로부터 탈출에는 성공했으나, 먼 타국으로 떠나온 막막함과 두고 온 지인들에 대한 그리움, 걱정에 시달릴 특별기여자들의 힘든 현실을 눈물짓는 소녀 사진이 담고 있다고 판단, 이들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응원을 요청하는 의미로 해당 사진을 보도했다”며 “소녀의 얼굴이 이미 손으로 가려져 있고, 이를 모자이크 처리할 경우 표현에 한계가 있는 점을 고려해 별도의 처리는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29일 오후 5시20분 온라인에 출고됐던 “[사진잇슈] 답답함일까, 걱정일까…아프간 소녀의 눈물” 기사. 30일 오후 3시57분 기사가 수정되며 사과문이 담겼다. 사진=한국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29일 오후 5시20분 온라인에 출고됐던 “[사진잇슈] 답답함일까, 걱정일까…아프간 소녀의 눈물” 기사. 30일 오후 3시57분 기사가 수정되며 사과문이 담겼다. 사진=한국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이어 “하지만 기사 게재 후 눈물짓는 아프간 특별기여자의 얼굴을 모자이크하지 않아 신상정보가 노출될 수 있고, 만에 하나 테러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이에 본보는 이런 지적을 받아들여 해당 사진에 모자이크 처리했다”고 덧붙였다.

이영태 한국일보 편집국장은 3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현장에 나갔던 기자가 생생한 아픔을 전달하고 싶어서 취재한 부분이 있었다”며 “여러 지적이 제기된 것을 확인했고 기사에 사과문을 올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처음 취재 의도는 그게 아니었는데 사생활 부분에 대한 지적이 일리가 있다고 판단이 들어 수정했다”며 “그런 부분(취재 보도 준칙)들에 관해 좀더 기준을 강화해 운영하겠다”고 재차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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