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조작 보도에 실제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조만간 국회 본회의 처리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법률가들이 자신의 의견을 SNS에 올리고 있다. 이 중 진보적 인권변호사로 알려진 권영국‧양홍석‧임자운 변호사의 입장이 눈길을 끈다.  

민주노총 초대 법률원장 출신으로 정의당 노동본부장을 역임한 권영국 변호사는 “지난해 3월부터 올해 3월까지 1년 동안 쿠팡, 쿠팡 물류센터, 쿠팡하청업체 노동자 9명이 심근경색 혹은 심정지로 사망했다. 언론이 사망 사건을 집중적으로 보도하자 쿠팡은 기자 개인을 상대로 5000만원에서 1억 대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쿠팡의 산재사망 문제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공영방송사의 한 기자는 쿠팡으로부터 억대 손배소송을 당한 후 쿠팡에 대한 취재를 중단했다. 두렵다고 했다”고 전했다. 

권영국 변호사는 이어 “포항MBC 기자는 ‘그 쇳물을 쓰지마라’라는 제목으로 포스코의 암 유발 작업환경과 심각한 직업성 암의 발병 현황에 대해 폭로했다.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던졌다. 그러자 포스코는 기자 개인을 상대로 50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고 전하면서 “민주당이 발의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기업이나 유명인의 전략적 봉쇄소송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고를 일으키는 기업은 대기업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유명인에는 정무직 공무원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가짜뉴스를 잡으려고 하다 진짜뉴스를 잡는 결과를 초래할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권영국, 임자운, 양홍석 변호사.
▲왼쪽부터 권영국, 임자운, 양홍석 변호사.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 출신으로 전 스포츠월드 기자 김용호씨를 상대로 홍가혜씨가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홍씨 변호를 맡았던 양홍석 변호사는 “5배(한도) 배상은 징벌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손해배상액 현실화 정도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운용할 수 있으므로 큰 문제가 아니라 보고, 정정보도 등 청구방식 개선은 필요하고, 개인적으로 열람차단청구제도도 해볼 만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양 변호사는 다만 “고의‧중과실 추정규정은 삭제하고 열람차단청구는 요건과 절차를 좀 더 손봐서 새로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법안의 합의처리를 기대했다.

양홍석 변호사는 “언론중재위원회 조정기일에 가보면 틀린 보도를 하고도 당당하게 말하는 분들이 많다. 우리 사회가 그동안 언론사, 기자들에게 상당한 정도의 혜택을 주어온 결과”라면서 “취재 과정의 합리성에 대한 느슨한 잣대로 수많은 오보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는 물론이고 사회적으로 면책시켜줬다. 언제까지 이렇게 할 것인지는 고민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언론중재법 때문에 BBK‧국정농단류 보도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것은 지나친 기우”라고 반박했으며 “근본적으로 이 법을 통과시켜도, 허위‧조작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나”라고 되묻기도 했다. 또 “기성 언론보다 개인‧단체의 허위‧조작 정보 생산‧유통에 대한 대책을 고민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오랜 시간 삼성직업병 피해자를 변호했으며 KBS ‘저널리즘토크쇼J’에서 미디어비평가로 고정출연했던 임자운 변호사는 “악의적 허위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배는 꼭 필요하다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 제도는 무엇보다 요건이 명확해야 한다. 그런데 이 법은 조작보도의 정의부터 모호하고 고의‧중과실 추정규정도 다 모호하며, 징벌적 손배 특칙 배제 조항에 적힌 ‘공적 관심사와 관련한 사항’ 또한 모호하다. 이러한 모호성은 언론 종사자들을 크게 위축시킬 수 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임 변호사는 “고의‧중과실에 대한 입증책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면, 지금처럼 고의‧중과실이 추정되는 경우를 열거할 게 아니라, 고의‧중과실 없음이 간주되는 경우를 열거하는 방식이 차라리 낫지 않았을까”라고 덧붙였다.

임자운 변호사는 그러면서 “법안에 대한 언론 종사자들의 분노에 공감한다. 하지만 그 분노에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도 꼭 생각해 주면 좋겠다. 기자들 스스로 자정해 내지 못한 문제가 좀 많은가. 이참에 뭐든 바뀌긴 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이 법에 찬성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 변호사는 “기자협회 같은 단체에서는 제발, 무조건 반대만 하지 말고 악의적 허위 기사에 대한 법률적 책임을 강화하는 다른 대안을 함께 제시하면서 반대했으면 좋겠다. 만일 그랬다면, 논의가 지금보다는 나은 방향으로 흐르지 않았을까. ‘지금 이대로가 딱 좋다’는 게 당신들 입장이 아니라면 말이다”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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