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둘러싼 ‘언론개혁’ 논란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김대중 정부, 참여정부, 문재인 정부의 임기 후반마다 ‘언론개혁’이 있었다. 왜 민주정부는 항상 ‘언론개혁’의 주체가 되려 할까. 

지지층이 원한다. 민주당 지지층은 민주정부에서 언론자유가 일정 부분 개선됐다고 판단해 언론의 사회적 책임 강화를 요구한다. 언론의 핵심가치가 ‘자유’와 ‘책임’이라면, ‘자유’에서 ‘책임’으로 우선순위가 달라지는 것이다. 민주당은 그런 지지층을 대변하고자 ‘언론개혁’에 나서지만 항상 보수언론의 강력한 반발에 더해 진보언론과 진보적 시민단체 대다수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최근의 논란도 과거 정부의 ‘언론개혁’ 사례에 비춰보면 “자유주의 규범론과 진보주의 목적론 간의 모순”(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이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김대중 정부 초기에는 언론개혁 의제를 사회조합주의 방식으로 추진했다. 1999년 방송개혁위원회 출범을 주도한 것이 일례다. 그러나 방송사, 언론현업단체, 시민단체 누구도 만족할 수 없는 결과가 나왔다. 김대중 정부는 국가가 직접 언론 문제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신문시장을 통제해야 한다는 언론운동진영의 요구도 수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2000년 안티조선운동이 시작되고 햇볕정책을 향한 저주에 가까운 보도가 더해지며 생각이 달라졌던 것 같다. 
 
김대중 정부는 2001년 보수신문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와 공정거래위원회 부당 내부거래 조사를 진행했다. 조선‧중앙‧동아일보에 대한 세금 추징이 이뤄졌으나 후폭풍이 컸다. 세무조사는 자유주의적 규범을 따르면서 ‘언론개혁’ 의제를 실현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으나 진보 보수 양쪽의 비판을 받았다. 언론개혁이 국가 주도 세무조사로 변질되며 정부의 언론통제로 비쳤고, 언론운동진영은 정부의 ‘들러리’를 선 꼴이 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

참여정부는 역대 민주정부 중 ‘언론개혁’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열린우리당의 2004년 ‘4대개혁입법’ 중 하나가 언론관계법이었다. 핵심은 신문사 시장점유율이 1개사 30%, 3개사 60%를 넘어설 경우 시장지배사업자로 규정, 공정거래위원회 규제를 받도록 하는 것(신문법 17조)이었다. 이 대목은 2006년 6월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판결을 받았다. 1인 사주의 소유지분 제한 등 핵심 대목이 빠져 ‘누더기’라는 비판 속 그 해 12월31일 신문법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같은 해 추진한 ‘언론피해구제법’에선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추진했으나 언론계 반발에 부딪히며 폐기했고, 명칭도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언론중재법)으로 바꿨다. 

참여정부는 기자들의 ‘취재 관행’에 변화를 주려 했다. 이 과정에서 기자실 개방, 브리핑 제도 도입, 정책 모니터링시스템을 제도화했고 임기 말 ‘취재 지원 시스템 선진화방안’으로 이어졌다.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기자실을 대규모 통합형 브리핑룸으로 옮겨 특정 언론사끼리 담합구조로 돼 있는 기자실을 방송사 PD나 인터넷 매체 등 다양한 언론인에게 확대 개방하겠다”(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는 취지였다고 했지만, 대다수 언론은 “기자실 대못질”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문재인 정부 ‘언론개혁’, 전환점은 조국사태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정부 차원의 ‘언론개혁’ 의제가 보이지 않았다. MBC‧KBS‧YTN 언론인들은 파업을 통해 스스로 공영방송 정상화에 나섰고, 이명박정부 때 해직된 기자들이 회사로 돌아갔다. 국경없는기자회의 ‘세계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은 아시아 1위를 기록하며 참여정부 수준을 회복했다. 정부는 소위 ‘가짜뉴스’에 대항하겠다고 했지만 무리한 입법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았다. 남북관계 ‘훈풍’ 속에 정부 지지율은 상당 기간 고공 행진했다. 정부는 언론의 반발을 불러올 것이 뻔한 골치 아픈 ‘언론개혁’에 나서지 않았다.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 비서실장이자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으로선 노무현 대통령의 ‘도전’과 ‘실패’를 반면교사 삼았을 가능성도 있다. 일례로 노 대통령은 그 누구보다 자주 TV에 출연하면서 문제를 정면 돌파하려 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직접적이고 진정한 소통’은 지지자를 실망시키고 적대자에게 얕잡혀 보였으며 시민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평가를 받았다. 문 대통령은 임기 내내 TV 출연을 비롯해 기자회견 등 언론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모습이다. 임기 초 ‘언론개혁’ 의제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도 과거 경험에 기반한 것일 수 있다. 

▲2019년 서초동 집회에서 한 시민이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 ⓒ박서연 기자
▲2019년 서초동 집회에서 한 시민이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 ⓒ박서연 기자

하지만 2019년 하반기 ‘조국사태’를 기점으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정부 지지율은 하락했다.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수많은 민주당 지지층은 서초동에서 “검찰개혁 다음은 언론개혁”이라고 구호를 외치며 매우 직접적으로 언론 보도에 따른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요구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향한 무리한 보도가 공분을 일으키자, 이를 해소할 방안으로 법조기자단 해체와 함께 등장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인수위 시절부터 언론의 오보에 강력하게 대처했다. 가장 빈번한 방법은 언론중재위원회에 반론 및 정정보도를 청구하는 것이었다. 악의적 보도에 대해선 명예훼손에 따른 민사소송으로 대응했다. 대통령과 정부의 언론중재위 조정신청과 민사소송은 임기 내내 일관된 정책이었다. 노 대통령은 정부에 대한 언론의 악의적 보도에 대해 법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당당하고, 정당한 방법이라고 보고 모든 정부부처가 언론 보도를 모니터링해 적극 대처하라고 지시했다. 이 과정에서 참여정부 인사들은 언론중재법이 피해구제에 부족하다는 문제의식, 민사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손해배상액이 피해구제에 충분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에 도달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만능열쇠’처럼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열린우리당 시절 언론발전특별위원회 간사로 언론관계법을 담당했던 정청래 의원이 21대 국회에서 자신의 1호 법안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담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것이 상징적 장면이다.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은 참여정부 시절 ‘언론개혁’의 방향성과 문제의식을 담은 것으로, 이 법이 정부의 언론통제로 비칠 수 있다는 지적을 반영해 민주당은 자신들을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대선을 6개월 가량 앞둔 시점에서 민주당 지지층은 민주당의 ‘8월 본회의 처리’ 움직임에 결집하는 모양새다. 

▲지난 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항의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항의하는 모습. ⓒ연합뉴스

 

민주당의 ‘언론개혁’은 반복될 것이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언론계 대부분의 비판 속에 20년 전 방송법처럼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법안이 나오거나, ‘고의‧중과실 추정’ 같은 일부 조항의 경우 15년 전 신문법 17조처럼 위헌 판단을 받을 수도 있다. 여러 상황이 김대중 정부와 참여정부 당시 ‘언론개혁’과 유사한 흐름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본회의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민주당은 본격적인 대선국면 돌입 전 지지층이 ‘언론개혁’의 성과로 받아들일 만한 법 통과가 필요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과 언론 때문에 생을 마감했다’고 생각하는 지지층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문재인정부는 그 어떤 민주정부보다 ‘언론개혁의 서사’가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민주당은 언론계의 강한 반대가 당연하거나, 오히려 반가울 수 있다. ‘서사’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언론개혁법안’의 목표는 과정 그 자체에서 달성될 수도 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찬성하는 한 국회의원은 “언론중재법 개정안 입법은 지지층을 만족시키기 위한 상징적 싸움이 되었다”면서 “법안이 통과된다고 실제 언론이 달라질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사실 여권에서는 포털의 알고리즘 문제와 신문사 편집권 이슈를 꺼낼 수 있는 신문법, 혹은 공영방송 지배구조의 정치적 후견주의를 극복할 방송법을 ‘언론개혁’ 의제로 먼저 던졌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민주당의 선택은 징벌적 손해배상이었다. 낮은 언론의 신뢰도 속에서 ‘가짜뉴스를 처벌하는 민생법안’이라는 메시지를 택한 것이다. 

▲박주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직무대리가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가결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주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직무대리가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가결하고 있다. ⓒ연합뉴스

역대 민주정부는 ‘왜 정부가 나서서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유도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부딪혀왔다. 정부의 ‘언론개혁’은 자유주의 언론관에 모순된다. 그리고 매번 실패했다. ‘언론개혁’의 주체는 본질적으로 언론 그 자신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과연 언론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회의적 시각이 많다. 과거 언론은 신문과 방송이란 플랫폼을 독과점하는 형태로 신뢰도와 영향력을 사실상 ‘강요’해왔다. 그러나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이 등장했고, 기자는 ‘정보 또는 허위정보’ 생산자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기자들의 ‘전문직주의’는 붕괴하고 있다. 모두가 부수 부풀리기의 ‘공범’이었고, 이용자를 기만하는 기사형 광고와 협찬 방송은 산업이 되었다. 뉴스이용자들은 언론을 향해 ‘누가 질문하고 쓸 수 있는 권리와 권위를 주었느냐’, ‘자격증이라도 있느냐’며 냉소적으로 되묻는다. 이를 애써 무시하고 “언론자유 위축”을 지면과 화면에 쏟아내더라도 언론이 스스로 달라지지 않는다면, 민주정부에서의 ‘언론개혁’은 등장하고 실패하며 다시 등장하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참고 자료=‘노무현 정부의 실험-미완의 개혁’,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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