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성향 기독교단체 ‘에스더기도운동본부’가 가짜뉴스 공장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해 가짜뉴스 유포자로 지목된 이들이 한겨레와 기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및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제기한 결과 대법원이 상고심에서도 원고 패소 판결을 냈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지난 19일 차별금지법과 동성애 등에 대해 가짜뉴스를 유포했다고 한겨레 보도에서 지목된 이아무개씨 등 6명이 한겨레와 기자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및 정정보도 청구의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고 소송 비용은 원고가 부담하라”는 판결을 확정했다.

2018년 9월27일부터 한 달여간 한겨레 탐사팀은 “‘가짜뉴스’의 뿌리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에스더기도운동본부 중심의 반동성애 단체와 인사들이 사실과 다른 내용을 담은 허위 정보를 퍼뜨리는 과정을 추적했다. 한겨레는 해당 보도에서 가짜뉴스가 유통되는 유튜브 채널 100여개, 카카오톡 채팅방 50여개를 전수조사하고 연결망 분석 기법 등을 이용해 에스더기도운동본부를 ‘가짜뉴스 유통 공장’이라고 결론 냈다.

▲2018년 9월28일자 한겨레 4면.
▲2018년 9월28일자 한겨레 4면.

 

▲2018년 10월1일자 한겨레 1면.
▲2018년 10월1일자 한겨레 1면.

그러자 같은 해 10월11일 에스더기도운동본부와 이용희 에스더기도운동본부 대표는 한겨레 기자들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형사 고소했다. 검찰은 2019년 12월31일 한겨레 기자들을 모두 ‘불기소’ 처분했다. 이에 불복해 항고했지만, 검찰은 똑같은 결론을 냈다. 이들은 재정신청까지 했는데, 지난 6월22일 기각됐다.

민사 소송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2월 한겨레 보도를 허위사실로 판단할 수 없고, 보도의 중요 부분이 진실에 합치되며 공익성도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에서 “핵심은 ‘내용의 진실성 여부, 즉 정보에 포함된 사실이 실재하는가’, ‘정보의 전달과정에 어떠한 의도가 있는가’인데,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유튜브채널에 올라온 동영상에서 원고가 허위조작정보 또는 오정보를 전달하고, 결국 동일한 취지의 콘텐츠가 계속 올라오는 특정 유튜브채널을 통해 이러한 허위조작정보 또는 오정보가 전파되는 것을 원고가 가짜뉴스를 전파한 것이라고 표현한 것은 진실에 부합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동성애가 합법화되면 수간(동물과 성행위)도 합법화할 수 있다.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에서는 수간과 근친상간까지 합법화됐다’는 내용의 에스더 측 강연내용을 두고 “동성결혼 합법화와 수간 등 합법화 사이에 어떠한 연관 있다는 객관적 자료는 없고, 네덜란드에서는 2001년 동성결혼 합법화 이후 2010년 수간을 불법화하는 법률이 제정됐다”고 짚었다. 차별금지법이 ‘동성애를 정상이라고 인식할 때까지 처벌해 생각을 뜯어고치겠다는 무서운 법’이라는 내용의 에스더기도운동본부 측 강연에도 재판부는 “(강연) 당시 발의된 차별금지법안을 보면 동성애에 반대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2018년 퀴어축제현장. 사진=미디어오늘.
▲2018년 퀴어축제현장. 사진=미디어오늘.

이후 에스더기도운동본부 측은 항소·상고했지만, 고등법원과 대법원은 1심 판결을 유지했다.

보도 이후 한겨레 기자들은 지난 3년여간 소송에 시달렸다. 기자들은 기사를 쓰다가도 연달아 오는 소장에 대비해 자신들의 보도가 정당했다는 자료를 준비해야 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24일 소송을 마친 김완 한겨레 기자를 전화로 만났다.

-3년여간의 소송이 완전히 끝났다.

“보통 소송은 당사자가 한 명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번 건은 시차를 두고 여러 명이 소장을 계속 보냈다. 아시다시피 소송에 걸리면 기자들이 일일이 대응해야 한다. 똑같은 내용이지만, 소장에 대한 자료를 계속 제출해야 한다. 하나가 끝나면 또 하나가 남아있고, 그 과정의 연속이었다. 민·형사 모두 대응했다. 일단 끝나서 후련하다.”

-확정 판결 이후 언론중재법을 우려했다.

“언론중재법이 통과되면 여러 명이 한 번에 소를 제기하는 일이 비일비재해질 거로 생각한다. 그쪽 사람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서 기자들을 괴롭히자는 이야기가 오갔다. 실제로 보도에 빈틈이 없어도 소송당하면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괴롭다. 만일 언론중재법이 통과돼서 저 사람들이 ‘악의적 보도’라고 주장하면 ‘악의가 없었다’는 입증을 기자가 해야 한다. 법안 도입 전에 이 소송처럼 저쪽에서 악의가 있었다는 걸 입증해도 괴로운데, 기자 입장에서 악의가 없었음을 어떻게 입증을 하겠나. 그건 입증대상이 아니다. 언론이 괴로워질 것이다.”

-언론 보도가 위축될 것이라고 보는가.

“언론이 고발 보도를 하는데, 고발당한 당사자가 ‘저 보도는 악의’라고 주장을 하면 언론사가 악의가 아니라 사실에 부합한다는 걸 입증해야 한다. 입증 책임이 전환돼 그걸 입증하려면 취재 과정을 공개하거나 취재원을 밝히는 방법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런 경우 취재원을 보호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 취재원 보호라는 가치와 소송을 피하려면 어쩔 수 없다는 기자의 입장이 충돌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언론은 예민하고 민감한 보도는 피할 수밖에 없다. 지금도 충분히 편집국에서는 기사를 쓰면서 소송에 걸릴 것을 대비하는 기능이 작동하고 있다.”

-소송 걸리면 입증 책임이 기자에게 어느 정도 있지 않나?

“사실 지금도 기자에게 입증 책임이 없는 게 아니다. 지금도 어느 정도 입증을 기자가 해야 한다. 언론중재법의 문제는 입증 책임을 기자한테 의무화한다는 것이다. 저쪽의 주장이 말이 안 된다는 상황에서 지금은 법이 한겨레가 충분히 근거 갖고 보도할 만하다고 하면 기각이 된다. 하지만 반대가 될 것이다. 그럼 취재를 기자들이 안 하게 될 것이다.”

-표현이 자유가 갈수록 위축될 거라고 보나?

“지금 당장은 언론의 문제로 보인다. ‘조국 딸이 포르쉐 탔다’는 건 유튜브에서 퍼진 내용이다. 유튜버들은 제어가 안 된다. 그럼 정보통신망법을 개정해 적용할 거다. 망법을 손보고 나면 책과 관련된 출판법이 보일 것이다. 나중에는 출판도 규제하자는 말이 나올지도 모른다. 장르별로 형평성이 있어야 하니까. 점점 더 표현의 자유는 광범위하게 침해될 것이다.”

-탐사 보도가 앞으로 더 어려워질 거라고 보는지.

“법안을 보면 보복적이거나 반복적인 허위·조작 보도로 피해 가중이라는 부분이 있다. 반복적 보도가 바로 악의가 되어버린다. 대부분의 탐사물이 연속 보도인데, 그 반복성 자체를 악의로 재판부가 추정해버리면 탐사 보도뿐 아니라 여러 보도가 제약을 받을 것이다. 텔레그램 성착취 보도 역시 조주빈이 악의적이라고 주장하면 한겨레가 다 입증해야 한다. 수사 기밀도 있는데, 그런 걸 다 공개해야 하면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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