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링블링’하게 빛나는 셀러브리티, 화려한 무대 뒤에 가려진 이들이 있었다. 방송국의 화려함은 결국 이 가려진 노동자들로부터 나왔다. 그런데 대부분 ‘계약서 작성’조차 못했다. ‘프리랜서’란 미명이 노동권을 가렸다. 방송계 문제라선지, 방송 보도는 드물었다. 그럼 의원인 나라도 나서야지. 그래서 더 들여다봤다.”

이수진(비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방송 비정규직’ 현장에서 알려진 이름 중 하나다. 언론·방송계 노동 문제는 보도가 지극히 드문 데다 언론과 연관된 이해관계 탓에 공인들의 관심도 상대적으로 낮다. 이 가운데 사회적 관심의 사각지대에 처한 현장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는 의원으로 알려졌다.

활동 내용도 여러 가지다. 방송계의 프리랜서 남용은 심각했으나 누구도 구체적인 현황을 몰랐다. 지난해 국정감사 기간, 직접 공공부문 방송사 프리랜서 인력 현황 파악을 시도해본 이유다. 이후에도 불공정 계약과 ‘무늬만 프리랜서’ 관행이 점철된 방송사에 공개적으로 쓴소리하며 전국 방송사에 대한 근로감독도 요구했다. 드라마 스태프와 방송작가들이 방송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면 현장을 찾아 힘을 보탰다.

국회 환경노동위 소속인 이 의원은 ‘노동법 사각지대’ 해결에 특히 관심을 가졌다. ‘5인 미만을 고용한 회사’도 법 적용을 받는 근로기준법 개정 추진, 전체 특수고용노동자 및 플랫폼노동자 280여만명에게 고용보험을 확대 적용하는 법 개정 추진 등이 예다. 방송 비정규직에 대한 관심도 이 연장선에 있다.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이 의원을 만나 지난 1년 의정활동 얘기를 들었다.

▲지난 19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한 이수진 의원. 사진=이수진 의원실.
▲지난 19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한 이수진 의원. 사진=이수진 의원실.

 

“MBC는 작가 노동자성 인정하라”

최근 가장 힘쓴 사안은 ‘방송작가 노동자성’ 문제다. 10년간 MBC 뉴스투데이에서 일하다 부당해고된 방송작가들 사건이다. 이들은 계약 기간을 6개월 남겨둔 때, 전화 한 통에 해직 통보를 받았다. 작가들은 10년간 정직원과 다를 바 없이 일했다는 억울함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넣었고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이겼다. 방송작가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은 사상 최초의 사건이다.

의원실은 이 사건을 “밀착 체크”했다. 당사자들과 만나고 방송작가유니온과 소통하며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 대응 과정과 결과를 함께 챙겼다. 이 의원도 사건의 중요성을 알았다. 그는 “전문성과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이 그 세계에서 부당함에 직접 나섰다는 점이 특히 대단했다”며 “사람을 소모품 취급한 사건이 일어난 곳이 보도국이다. 얼마나 많고 다양한 비정규직 현실을 취재해 전하는 곳이냐. 방송사가 내부의 노동 문제엔 공감하지 않는다는 안타까움이 남았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판정 직후 MBC에 “행정소송을 포기하라”고 밝혔으나 MBC는 행정소송을 택했다. 프리랜서인 방송작가를 노동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의원은 “공공부문 대형 방송사답게 두 작가를 전향적으로 복직시켰다면 아주 큰 의의가 있었을 텐데, 너무나 예상대로 중노위 판정에 반기를 들었다”고 꼬집었다.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가 4월27일 서울 KBS 본관 앞에서 KBS 드라마 제작현장의 장시간 노동 중단 및 표준근로계약서 도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왼쪽에서 두 번째가 이수진 의원. 사진=손가영 기자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가 4월27일 서울 KBS 본관 앞에서 KBS 드라마 제작현장의 장시간 노동 중단 및 표준근로계약서 도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왼쪽에서 두 번째가 이수진 의원. 사진=손가영 기자

 

방송작가, 불안정·저임금 ‘여성 노동’ 문제

이 의원은 방송작가 문제가 ‘여성노동’의 문제 같다고도 했다. “방송사에서 일하는 많은 젊은 여성들 중에서 특히 방송작가 직군에 여성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대부분의 일터에서 젊은 여성의 목소리는 구조적으로 잠식당할 때가 많다”며 “결국 경제력으로 귀결되는데, 비정규·불안정 일자리, 일한 대가에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 등의 문제를 겪는다. 자기 목소리를 내기 더 힘들게 만드는 환경이다. 더 마음이 쓰이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 의원실이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과 지난해 48개 공공부문 방송사를 조사한 결과 프리랜서는 총 2659명으로 전체 15.9%였고, 이 중 여성이 71%를 차지했다. 직군별 여성 프리랜서 비율은 △분장·코디(100%) △작가(85.5%) △아나운서(73.2%) 등이었다. 프리랜서 월평균 임금은 180만3000원으로 집계됐다.

방송계 노동 문제는 2018년 당내 을지로위원회 노동분야 최고위원으로 활동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접했다. 당시엔 ‘표준용역계약서’조차 상용화하지 않는 방송사가 논의 대상이었다. 드라마 스태프부터 방송작가를 포함한 ‘무늬만 프리랜서’ 상당수가 계약서를 쓰지 않거나 방송사에만 유리한 불공정 계약서를 썼다. 이 무계약·불공정 계약 관행은 3년이 지난 지금도 개선되지 않아 국회에 숙제로 남았다.

“과방위·문체위 위원들 관심 좀…전국 방송사 근로감독해야”

이 의원은 지난 국정감사 때 외주제작사 PD 출신인 김기영 방송스태프지부장(희망연대노조)을 증인으로 섭외해 시사·교양 분야 스태프들의 열악한 처우를 알렸다. 지난 도쿄올림픽을 앞둔 때엔 프로그램 결방에 따른 스태프들의 ‘무료노동’ 문제를 비판했다. “방영 여부가 아닌 근로 제공 자체에 임금을 지급하라”는 건 방송 비정규직들의 일관된 요구다. 방송계엔 방영분에만 대금을 연계하는 관행이 있다. 2~3주간 특별 편성이 잡히는 올림픽 기간엔 주 1회 방영 프로그램이 월 1회 방영되면서 월 50~70만 원으로 버티는 사례가 속출했다.

드라마 스태프들이 희망을 걸었던 ‘지상파방송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 공동협의체(4자협의체)’는 결렬 상태다. 4자 협의체는 지상파 2개사(KBS·MBC)와 전국언론노조,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가 참여한 기구다. 초미의 관심사는 표준근로계약서 체결이었다. 노동자로 일하지만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한 스태프들의 상황이 근본 문제였기 때문이다. 결렬도 드라마제작사협회가 근로계약서 체결 수용을 거부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지난 19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한 이수진 의원. 사진=이수진 의원실.
▲▲지난 19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한 이수진 의원. 사진=이수진 의원실.

 

이 의원은 “우리(의원실)도 이 문제를 논의 중이다. 방송사 관계자를 만나면 ‘드라마 현장이 예전보다 엄청 좋아졌다’고 하는데, 여전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죽어나가거나 누려야 할 마땅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며 “오는 국정감사에서도 드라마 제작 스태프 문제를 짚어야 할 것 같다. 드라마 제작 환경과 관련해선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문화체육위원회 등과 같이 해결할 부분이라 을지로위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공동 대응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과기방통위와 문체위 위원들의 관심과 협력을 간곡히 바란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방송계 특수성’을 이유로 근로기준법 준수가 어렵다는 항변은 설득력이 없다고 봤다. “알바노동자도 근로계약서를 체결한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필수유지업무인 병원도 종사자들과 근로계약을 다 체결한다. 방송계는 업무 일정이 불규칙할 뿐이지 방송계만 열외를 두는 건 비합리적”이라는 이유다. 그는 “불규칙한 업무 관계와 법적 권리를 어떻게 조율할지는 당사자들이 모두 모인 4자 협의체에서 논의하고, 노동부도 이 문제를 하나하나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의원은 “입법 측면에서 방송계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방법은 아직 고민 중”이라면서 “근로기준법이라는 기본조차 지켜지지 않는 현장을 바꾸는 데 함께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KBS와 MBC에 교섭 요구를 할 예정으로 안다. 이에 방송사들이 제대로 교섭에 응하게끔 압박할 것”이라고 했으며 “각 방송사 프리랜서 인력 현황과 관련해 자체 조사도 진행 중이며, 자료가 나오면 면밀하게 분석해 고용노동부의 역할을 따져 볼 것”이라고 예고했다.

나아가 이 의원은 고용노동부가 전국 방송사를 대상으로 근로감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용노동부는 현재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에 한해 근로감독을 진행 중이다. 이 의원은 “현실을 제대로 헤아리고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선 전면적인 근로감독 확대가 가장 적절하고 시급한 방법”이라며 “여전히 지역 방송사에선 무늬만 프리랜서들을 자유롭게 해고하고 있다. 근로감독을 전국 방송사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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