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14일 오후,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은 소란스러웠다. ‘정인이 학대 사망 사건’의 피의자인 양부모에 대한 1심 선고를 앞둔 날. 피켓과 플래카드를 든 어머니들은 양부모를 태운 호송차가 법원 안으로 들어서자 “사형, 사형”을 외치며 울부짖었다.

‘양모 무기징역, 양부 징역 5년.’ 숨 죽이며 선고 결과를 기다리던 시위대엔 환호와 탄식이 뒤섞였다. “사형이 아니라 무기징역이라고?” “아… 진짜야?” 검찰이 구형했던 형량보다 낮은 1심 선고 결과에 시민들은 술렁였고,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법원 앞을 서성거렸다.

현장을 취재했던 신정은 SBS 기자는 그 모습을 실시간 뉴스로 내보냈다. 그곳은 SBS 뉴스도, 유튜브 라이브도 아니었다. SBS 뉴스 틱톡 채널(@sbsnews)이었다. 당시 1심 선고 현장엔 언론사와 방송국 카메라가 수십 대 있었지만 틱톡으로 현장을, 그것도 즉석에서 5편이나 방송을 내보낸 이는 신정은 기자 뿐이었다.

▲ 신정은 기자는 지난 5월14일 진행된 ‘정인이 학대 사망 사건’ 피의자 1심 선고 현장을 틱톡으로 생중계했다.
▲ 신정은 기자는 지난 5월14일 진행된 ‘정인이 학대 사망 사건’ 피의자 1심 선고 현장을 틱톡으로 생중계했다.

틱톡과 뉴스, 고개가 갸우뚱하다. 유튜브나 트위터, 페이스북이라면 모를까. 누가 틱톡에서 뉴스를 보겠어? 신정은 기자는 이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그는 틱톡을 새로운 뉴스 플랫폼이라고 보고 직접 뛰어들어 부딪혔다. 그 결과는 지금까지는 성공적이다.

매체 파워보다 메신저 파워가 중요한 플랫폼

신정은 기자는 2017년 SBS에 입사했다. 첫 부서는 사건팀. 한동안은 현장을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정신없었다. 1년 뒤, 그는 뉴미디어국 사업부에 자원했다. 저널리즘 플랫폼으로서 소셜 미디어의 가능성을 본격 탐구해보고 싶었단다. 대학생 시절부터 관심 있게 살펴보던 주제이기도 했다.

▲ 신정은 SBS 기자의 틱톡
▲ 신정은 SBS 기자의 틱톡

그 무렵 눈을 돌린 게 틱톡이었다. 틱톡은 짧은 동영상이 소비되는 ‘숏폼 모바일 동영상 플랫폼’이다. 짧게는 3초, 길게는 1분 이내의 동영상으로 소통하는 공간이다. 중국 바이트댄스가 2016년 서비스를 시작해, 지금은 한국을 비롯해 150개 이상 나라에서 7억 명이 넘는 사용자가 쓴다. 2018년에는 유튜브나 페이스북을 제치고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다운로드 된 앱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주로 10대 초·중반 청소년들이 즐겨쓴다.

“틱톡은 굉장히 빠르게 성장하는 채널이고, 미래의 독자가 모여 있는 채널이라고 생각했어요. 당시 몇몇 언론사가 틱톡 계정을 활용하고 있었는데, 마땅한 수익모델이 없는 탓에 중도에 포기한 곳들이 많았죠. 우리는 틱톡이 SBS란 매체 파워보다 메신저, 즉 이야기 전달자의 캐릭터가 훨씬 강조되는 공간이라고 판단했어요. 사후 수익모델도 마련될 수 있을 거라고 봤고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플랫폼을 들여다보고 공부하기 시작했죠.”

▲ SBS NEWS 틱톡 댓글 갈무리.
▲ SBS NEWS 틱톡 댓글 갈무리.

단조로운 동영상만 올라가던 ‘SBSNEWS’는 신정은 기자의 기획이 보태지며 본격적인 ‘뉴스’로 변신한다. 뉴스를 전달하는 ‘프레젠터’가 등장하고, 동영상 편집과 자막이 더해졌다. 댓글과 답글이 길게 늘어졌고, 퀴즈나 대화처럼 전달 형식도 다양해졌다.

초반엔 하고픈 걸 마음껏 시도할 수 있었다. ‘사고’도 쳤다. “지난해 개학 관련한 교육부 브리핑을 틱톡 라이브로 진행한 적이 있었어요. 당시 틱톡 뿐 아니라 유튜브로도 라이브 방송을 내보냈는데요. 유튜브에선 100명 남짓 들어왔는데, 틱톡은 동시접속자만 8천 명이 넘었어요. 댓글도 터지고, 말 그대로 난리가 났었죠. 정확히 타깃팅된 독자에게 원하는 정보를 주었을 뿐인데 독자가 코 앞으로 다가온 경험을 그날 했습니다. 회원 수가 10만 명이 넘고 사내에 소문이 나면서 회사에서도 응원도 많이 해주고 관심도 늘었어요.”

▲ SBS NEWS 틱톡 계정
▲ SBS NEWS 틱톡 계정

그들이 반응하는 뉴스를 그들의 문법으로 전달하라

틱톡의 주된 이용자는 초등학생들이다. 요즘 초등학생들이 뉴스에 관심이 있을까. 틱톡이란 플랫폼이 애당초 짧고 자극적인 동영상이나 연예인 소식에만 예민하게 반응하는 공간 아니었던가.

“그들이 모든 뉴스에 관심 있는 건 아니지만 자기 일상과 밀접한 이슈, 예컨대 개학이나 온라인 수업, 코로나19, 청소년 대상 백신 접종 같은 이슈엔 무척 관심이 많아요. 중국이나 일본 관련 뉴스에도 열정적으로 대응하고 정인이 사건이나 아동학대, 조두순 사건에도 뜨겁게 반응합니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로 교육 공백이 생기면서 이른바 ‘가짜뉴스’가 많이 퍼지고 이를 접하는 일도 늘어나더군요. 그래서 뉴스 종사자 일원으로 책임감 있는 역할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SBSNEWS와 별도로 ‘정은 기자’(@giza_unnie)로 틱톡에 섰다. SBSNEWS가 일터로서의 뉴스 플랫폼이라면, ‘정은 기자’는 ‘부캐’다. SBSNEWS 계정은 코로나19 관련 이슈를 담당한 김덕현 기자가 신정은 기자와 함께 프레젠터로 참여하고 있다. 나머지는 사안에 따라 사건을 맡은 기자들이 소식을 전해준다.

‘정은 기자’ 계정은 지상파 방송에서 다루기 애매한 궁금증들을 해결해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틱톡 공식 계정 인증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범죄를 소개하는 ‘보이스피싱도 아닌 진드기 피싱?’, 평소 보기 힘든 방송기자의 일하는 모습을 소개하는 ‘뉴스 녹음 어떻게 할까?’같은 동영상이 그렇다. 2021년 8월말 현재 SBSNEWS 틱톡 공식 계정 팔로워는 13만2600여 명, ‘정은 기자’ 개인 계정은 3만3600명에 이른다. ‘기자 틱톡커’로는 국내 으뜸이다.

▲ SBS NEWS 틱톡 정은 기자
▲ SBS NEWS 틱톡 정은 기자

망가져도 좋지만, 순발력이 필요해

신정은 기자는 뉴미디어국 2년을 거쳐 지난해부터는 다시 시민사회팀 소속으로 사건 현장을 뛴다. 그래도 1주일에 한 편 정도는 꾸준히 동영상을 올리려고 노력한다. “스튜디오에서 찍을 수 있는 영상도 있지만, 현장에 대한 갈증도 있었어요. 사건팀에 와서 선배들께 말씀드렸더니 다들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셨어요. 지금은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현장을 틱톡 영상으로 찍어 올리고 있어요.”

유튜브는 지난 8월 초 ‘유튜브 쇼츠’란 이름으로 15초에서 1분 남짓한 짧은 동영상을 공유하는 서비스를 공개했다. 페이스북도 지난해부터 인스타그램을 통해 ‘릴스’란 이름으로 숏폼 동영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럼에도 틱톡이 1위를 굳건히 유지하는 비결은 뭘까. 신정은 기자는 틱톡만의 특징이자 문화로 ‘즉각성’을 꼽았다. “유튜브는 도덕성이 무척 높은 플랫폼입니다. SBS에 대해 기대하는 독자의 관점도 있을 텐데요. 유튜브와 틱톡은 톤앤매너, 즉 일관된 콘셉트가 다르죠. 유튜브가 완제품이라면 틱톡은 즉석에서 편집하는 즉각성이 있습니다. 편집 도구 사용법도 어렵지 않고요. 그러다보니 틱톡에선 유튜브보다 순발력이 필요하죠.”

아이템을 선정하는 데도 선명한 기준이 있다. 독자들 즉 틱톡 또래집단의 관심사여야 하고, 그들의 문법으로 사안을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둔다. ‘코로나 백신 곧 나올까?’나 ‘가짜 마스크 찾는 방법’같은 공통된 관심사부터 ‘언제 등교하나요?’, ‘고교학점제 40초 핵심 설명’처럼 학생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학교 관련 뉴스, 조두순 출소나 성착취 동영상 제작·유포자를 검찰에 송치하는 사건·사고 현장과 BTS ‘다이너마이트’ 표절 의혹, ‘에이프릴 왕따 논란’ 같은 연예뉴스 팩트 체크, 한부모아빠에게 피자를 선물한 피자가게가 ‘돈쭐’난 사연같은 미담까지 어느 하나 지나칠 수 없는 주제들이 그득하다.

스토리를 전달할 때도 틱톡 팬들의 눈높이를 충실히 따른다. 아이템을 고르고, 원고를 직접 쓰고, 틱톡용 영상을 찍고 편집하고, 자막을 넣는 것까지 혼자 도맡는다. 처음에는 반나절 이상 걸리던 일이 손에 익자 1시간30분 안팎으로 줄어들었다. 평소엔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지만, 카메라 앞에선 자신을 내려놓는다. 할로윈데이를 앞둔 코로나19 시국을 소개할 땐 직접 할로윈 분장을 했고, 때론 팬들을 위해 화면 속에서 춤도 춘다.

새로운 소통 방식, “1분 안에 독자를 사로잡아라”

“처음에는 ‘독자들이 이런 걸 궁금해할 거야’라고 지레짐작으로 콘텐츠를 만들었어요. 전형적인 공급자 관점이었죠. 그러다가 틱톡은 댓글로 궁금한 걸 곧바로 물어보는 플랫폼이란 걸 알게 됐어요. 그 뒤부터는 독자들이 질문하는 주제 위주로 아이템을 만들고 대답해주고 있어요. ‘심슨 만화에서 12월에 좀비 바이러스가 나올 것을 예언했다’거나 ‘조 바이든이 미국 대통령이 되면 전쟁이 난다’는 얘기도 또래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는데요. 이런 또래집단의 궁금증을 팩트체크를 통해 해결해주곤 합니다.”

선택은 적중했다. 신정은 기자 틱톡 계정엔 소위 ‘대박’난 동영상이 수두룩하다. 지난해 9월 올린 ‘고등학생이 재난지원금 못 받는 이유’ 동영상을 보자. 30초 동안 신 기자가 직접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설명했는데, 신 기자 개인 틱톡 계정에서만 50만 회가 넘는 조회수에 4천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우리집 마스크가 가짜인지 확인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동영상은 85만여 명이 시청했고 5만4700개의 좋아요와 517개 댓글이 달릴 정도로 큰 관심을 모았다. 6월29일 보도한 ‘불법 개농장의 충격적인 도살 현장’은 20만 회가 넘는 조회수에 6578개의 ‘좋아요’와 395개의 댓글이 달렸다.

▲ SBS NEWS 틱톡 댓글 갈무리.
▲ SBS NEWS 틱톡 댓글 갈무리.

신정은 기자는 틱톡에서 새로운 미디어의 가능성을 봤다고 했다. “새로운 독자 관계 형성도 가능하겠다는 걸 틱톡에서 봤어요. 그 전까지는 기자와 독자 간에 굉장한 거리감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틱톡을 하며 제 캐릭터를 자연스레 녹일 수 있게 됐고, 그걸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독자들도 점점 많아졌습니다. 방송 포맷도 말랑말랑해졌고, 스토리텔링 훈련도 많이 됐고요.”

틱톡은 기존 뉴스를 재가공해 내보내는 공간인 동시에 새로운 뉴스를 발굴하는 취재처다. 사건팀으로 옮긴 지금도 그는 뉴미디어국 시절 독자들과 만남 공간으로 개설한 오픈채팅방에 수시로 참여한다. 방송하면 좋을 주제도 받고 서로 토론도 한다. 채팅방에서 독자에게 받은 사진을 보도에 활용하기도 했다.

“틱톡에서 청소년 가출 영상이 유행한 적이 있었어요. 가출한 청소년에게 낯선 아저씨가 말을 거는 모습이나 술자리 장면도 있었고, 가출해서 수면바지 입고 놀이터에 숨어 있는 영상도 올라왔어요. 진위 여부는 확실치 않아도, 이런 영상이 ‘밈’처럼 떠도는 건 문제 있다고 생각해서 기사화했죠. 지금은 틱톡에서 ‘가출’을 검색하면 1388 청소년전화 페이지가 뜨도록 바뀌었습니다. 카메라 바깥에 방치돼 있는 사각지대는 분명히 있습니다. 커뮤니티 가이드라인도 필요하지만, 이런 차원의 관심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미디어가 틱톡에 올라타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SBS에 입사하기 전부터 신정은 기자는 비즈니스로서 뉴스의 가능성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입사 1년 뒤 뉴미디어국에 지원할 때도 제작부서가 아닌 사업부를 선택했다. 새로운 콘텐츠 형식이나 플랫폼, 수익모델과 저널리즘의 미래 등을 고민하는 부서다. 신 기자는 “다음 세대에 살아남는 건 결국 현장에서 뉴미디어 도구를 사용해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미디어일 것”이라며 “스스로 그런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고, 또 그런 동료들을 많이 만들려고 노력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직 기자이자 틱톡 ‘인싸’로서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9월2~3일 열리는 ‘2021 저널리즘의 미래’ 컨퍼런스에서 공유한다.

※ 주니어 미디어오늘 : “요즘엔 기자도 틱톡 하네?… 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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