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두고 논쟁이 뜨겁다. 가짜뉴스에 대해 언론사에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하겠다는 내용인데, 이 정도 장치는 있어야 언론이 자정한다는 의견과 거액의 소송에 휘말릴 위협 속에서 언론기능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갈린다. 기자협회 등 언론계와 야당이 반발하는 가운데 여론은 지지세다. 이달 초 YTN이 시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번 개정안에 대한 찬성 응답은 56.5%로 과반을 넘었고, 이어서 TBS 의뢰 여론조사에서도 찬성 54.1%로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언론중재법을 다루는 기사들의 내용을 보면 찬성 여론이 무색하다. 이번 개정안을 둘러싼 절차적, 법적 미비점을 지적하는 것은 응당하지만, 언론 스스로 그동안의 보도 행태를 자성하며 균형을 맞추는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23일 정찬형 YTN 사장은 “언론중재법 보도시 이해충돌을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민변도 같은 날 성명에서 언론계를 향해 막연한 비판보다는 책임있는 대안을 제시할 것을 촉구했다. 그럼에도 언론계 반발 목소리는 25일 단독 처리 가능성이 높은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언론중재법 처리와 비슷한 시기 이루어진 공영방송 이사 선임에 대한 반응은 어떨까. EBS, KBS, MBC 세 개 공영 방송사 노조가 비판 성명을 냈지만, 다른 언론단체들의 무관심 속에 외롭게 느껴질 정도다. 육참골단(살을 베어내 주고 상대의 뼈를 끊음)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던 여당의 의지도 온데간데없다. 지난 6월만 해도 언론중재법과 함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안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었다. 야당의 보이콧 때문에 불발 됐다는 입장이지만, 정말일까. 이달 초 새롭게 구성된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에 정부 여당은 문재인 대선 캠프 출신을 포함한 친여권 인사를 대거 기용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 8월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장 앞 복도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 처리를 반발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 8월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장 앞 복도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 처리를 반발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언론중재법을 두고 ‘언론자유’를 수호해야 한다는 언론, ‘언론개혁’을 해야 한다는 여당 모두 공통된 해답인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에는 시큰둥하니 이상한 일이다. 과거 언론은 처절한 반성을 통해 거듭나겠다고 했다. 그 약속을 지킨다면 스스로 공정한 미디어가 되기 위한 자성의 시각에서 언론중재법을 마주해야 한다. 그런 다음, 여당 인사가 다수 추천되는 현재의 특권을 내려놓고 굳게 약속했던 공영방송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하라고 촉구해야 한다. 언론법에 유례없는 단독 처리를 강행하는 ‘추진력’으로 말이다. 

지난주부터 회사 로비에 이용마 기자 회고물이 내걸렸다. 돌아가신 지 2주기다. 생전 해직 투쟁을 하셨지만, 본인의 복직보다도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소망하셨다고 기억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 이용마 기자를 찾아 그 염원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취임 100일 기자 회견에서는 “지배구조 개선을 제도적으로 보장해 정권이 언론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입법을 통해 노력하겠다”고 공언했다. 동료들은 “세상은 바꿀 수 있다”던 그의 말을 되새기며 고인이 풀고자 했던 숙제를 짊어지기로 다짐했다. MBC 구성원들도 그 뜻을 잊지 않으려 보도국 중앙에 고인의 사진을 걸어 놓았다. 

▲KBS ‘저널리즘토크쇼 J’ 에 출연했던 고(故) 이용마 MBC기자. 그는 눈을 감기 전까지 국민이 공영방송 사장을 선출하는 지배구조 개선을 강조했다. 사진=저널리즘토크쇼 J 갈무리
▲KBS ‘저널리즘토크쇼 J’ 에 출연했던 고(故) 이용마 MBC기자. 그는 눈을 감기 전까지 국민이 공영방송 사장을 선출하는 지배구조 개선을 강조했다. 사진=저널리즘토크쇼 J 갈무리

그러나 ‘언론자유’와 ‘언론개혁’이 기이하게 맞붙은 사이, 이용마 기자와의 약속은 올해도 지켜지지 못한 채 소란한 8월이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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