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과거 국가정보원 기획에 의해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명 ‘논두렁 시계’를 언론에 흘리는데 자신이 관여했다는 식의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며 제기한 정정 보도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했다. 

지난 19일 서울고등법원 제8민사부(장석조 김길량 김용민 부장판사)는 이인규 전 중수부장이 노컷뉴스(CBSi)와 ㄱ논설위원, ㄴ기자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1심을 깨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냈다. 항소심 재판부는 정정보도와 함께 CBSi와 ㄱ논설위원이 공동으로 3000만원, CBSi와 ㄴ기자가 공동으로 1000만원을 이인규 전 부장에게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노컷뉴스가 “(이인규가) 시계수수의혹 보도에 관여했다고 암시하거나, 검찰이 국가정보원의 요청에 따라 시계수수의혹에 관한 정보를 언론에 흘렸다는 사실을 시인했다고 적시했는데, 위와 같은 사실은 시계수수의혹 보도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의 지위에 있던 원고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내용”이라고 판시했다. 

노컷뉴스는 2018년 6월21일자 노컷뉴스에서 ‘이인규 미국 주거지 확인됐다, 소환 불가피’란 제목의 기사를, 6월23일엔 ‘[논평] 이인규는 돌아와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칼럼을 게재했다. 해당 기사는 “이인규 전 부장은 2009년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이 ‘시계 수수 의혹’을 받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키우려는 목적으로 언론에 정보를 흘린 것에 이 전 부장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썼다. 

칼럼에선 “2009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한창 진행될 무렵, 노 전 대통령이 고가의 명품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의혹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며 “이런 내용을 언론에 흘린 것이 검찰이었고, 이는 당시 원세훈이 원장이었던 국정원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확인됐다. 이인규씨는 노 전 대통령에게 도덕적으로 타격을 주기 위한 국정원의 기획이었다며, 사실을 시인했다”고 썼다.

이에 이인규 전 중수부장은 “위 보도는 국정원 요청에 따라 내가 시계 수수 의혹을 언론에 흘렸다는 것을 암시함과 아울러 내가 그러한 사실을 시인했다고 적시했으나 진실이 아니다”라 주장하며 정정보도와 함께 각각의 기사와 칼럼에 1억1000원씩, 총 2억2000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노컷뉴스 측은 “의혹이 있다는 사실을 보도한 것에 불과하고 이씨의 반론을 함께 보도하고 있으므로 허위사실을 보도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논평에 대해선 “시계수수 의혹 보도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선 이인규씨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제시로, 이씨가 시인했다고 보도한 대상은 ‘시계 수수 의혹 보도를 기획한 주체가 국가정보원’이라는 점이므로, 허위사실을 보도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연합뉴스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연합뉴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노컷뉴스 기사를 가리켜 “‘국가정보원이 노 전 대통령의 시계수수의혹에 관한 정보를 언론에 흘린 것에 원고가 관여했다’는 사실을 암시함으로써 원고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구체적 사실을 적시하고 있다”고 판단하며 명예훼손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기사에서) 원고 입장을 기재하고 있기는 하지만, 바로 뒤이어 ‘하지만 경찰의 조사를 앞두고 돌연 출국해 도피성 출국 의혹을 받아왔다’라고 적시함으로써 원고의 해명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을 우회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고도 밝혔다.  

논평의 경우 ‘시계수수의혹을 언론에 흘린 것이 검찰’이라는 표현에 대해선 “그 내용이 검찰에 속한 특정인에 대한 것이라고 해석하기 어렵다”고 밝혔으나 ‘이인규씨는 노 전 대통령에게 도덕적으로 타격을 주기 위한 국정원의 기획이었다며, 사실을 시인했다’는 대목에 대해선 “내용과 흐름, 문구의 연결 방법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보면 명예를 훼손하는 사실적시”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노컷뉴스를 향해 “시계수수의혹과 관련해 여러 차례 수사와 조사가 진행되었으나 여전히 그 진상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상태임을 인정했으며, 원고가 국정원 간부로부터 시계수수의혹을 언론에 흘리는 방식으로 활용하면 좋겠다는 요청을 받은 사실이 인정될 뿐 실제로 원고가 해당 정보를 언론에 흘리는 데 관여했음을 인정하기에 충분한 증거는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재판부는 “피고가 보도 사실의 존재를 수긍할 만한 소명자료를 제시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허위라 결론 냈다. 더불어 노컷뉴스 보도와 논평이 “이미 알려진 언론보도 등을 참고한 외에는 이 사건 기사에 암시되거나 적시된 각 사실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위법성 조각사유를 인정하지 않았다. 

▲2009년 5월13일 SBS 메인뉴스 보도화면.
▲2009년 5월13일 SBS 메인뉴스 보도화면.

2009년 4월22일 KBS는 메인뉴스에서 노 전 대통령이 명품 시계를 받았고 검찰이 뇌물죄 적용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같은 해 5월13일 SBS는 한 발 나아가 “권양숙 여사가 1억 원짜리 명품 시계 두 개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노 전 대통령이 검찰에서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10일 뒤인 5월23일, 노 전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앞서 이인규 전 부장은 “노 전 대통령 수사 중인 2009년 4월14일 국정원 전 직원 강 모 국장 등 2명이 찾아와 원세훈 전 원장의 뜻이라며 ‘노 전 대통령을 불구속하되, 시계 수수 사실을 언론에 흘려 노 전 대통령에게 도덕적 타격을 가하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공모자’가 아니라 국정원 수사 개입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끝내 ‘논두렁’을 누가 창작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 전 부장은 2019년 9월 MBC ‘스트레이트’ 취재진과 만나 “우리가 일부러 정치인을 위해서 갑자기 논두렁을 만들겠나. 검찰이 그렇게 머리가 좋나”라고 반문한 뒤 “검찰이 (언론에) 흘렸다면 밖에 내다 버렸다고 얘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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