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논의는 사실 오래된 이슈다. 배금자 변호사는 2002년 3월 국민일보 칼럼에서 “언론의 허위보도로 중소기업이 완전히 망해버린 경우 법원이 인정한 손해배상 액수는 2000만 원에 불과하다”며 “이렇게 배상액이 적기 때문에 잘못을 범한 가해자가 응징되지 않고 도리어 피해자에게 큰소리치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적었다. 언론보도에 따른 피해구제 ‘현실화’ 문제는 19년 전에도 있었다. 

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는 2003년 7월 경향신문 칼럼에서 당시 논란이었던 동아일보 ‘굿모닝시티 오보’를 언급하며 “선진국에선 동아 같은 보도 행태는 용납되지 않는다”면서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 사실이 분명해지면 변호사가 소송으로 가기도 전에 뭉칫돈을 준비해 피해자를 찾아가 사과한다. 신문사 사주들이 천사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이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안상운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변호사)는 같은 해 9월 경향신문 칼럼에서 “하급심의 언론 관련 판결이 언론자유를 매우 폭넓게 확대해석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허위보도에 면죄부를 주고, 억울한 보도 피해자의 피해구제를 방치해 피해구제에서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는 법원의 역할을 크게 기대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2004년 6월, ‘쓰레기 만두’ 파문이 논의에 불을 지폈다. 

언론은 경찰 브리핑을 취재 없는 받아썼고, 선정주의가 더해지며 “쓰레기 만두” 프레임이 지면과 화면을 덮었다. 보도 일주일 만에 만두 업체 사장이 한강에 투신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이후 식약청이 ‘쓰레기 만두’ 관련 업체로 거론했던 곳들이 잇따라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 대다수 보도가 왜곡·과장으로 드러났지만, 만두 업체들은 소송에 나서지 못했다.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소송보다 언론이 제시한 만두 소비 캠페인 기사를 선택했던 것이다. 

이 무렵 총선에서 대승을 거둔 열린우리당은 언론발전특별위원회를 구성, 그해 7월22일 언론의 악의적 보도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명령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 언론피해구제법 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당시 위원회 소속 노웅래 의원은 “징벌적 손해배상은 언론의 악의적 보도를 경계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7월25일자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이 같은 언론피해구제법 신설에 당시 국회 문광위 소속 의원 과반인 13명이 찬성했다. 

▲2004년 10월15일 국회에서 가진 열린우리당 언론개혁 관련 법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정청래(왼쪽)의원의 발언 모습. ⓒ연합뉴스
▲2004년 10월15일 국회에서 가진 열린우리당 언론개혁 관련 법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정청래(왼쪽)의원의 발언 모습. ⓒ연합뉴스

2004년 8월10일 국회에서 ‘언론피해구제법의 방향’이란 주제의 토론회가 열렸다. 안상운 상임이사는 “언론사의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되는 경우라 하더라도 언론사의 배상금액이 평균 2000만원이나 3000만원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허위보도로 인한 피해 회복이 쉽지 않다”며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주장했다. 반면 이강택 한국PD연합회장(현 TBS 대표)은 “징벌적 손배가 기득권 세력의 위력적 무기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고, 국민의 알 권리를 심각하게 저해할 것”이라며 반대했다. 

당시에도 언론 3단체(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와 신문협회는 “언론자유 침해”를 우려하며 반대했다. 동아일보는 그해 8월11일자 사설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두고 “언론의 목을 죄고 입을 틀어막으려는 것이다. 언론에 아예 비판을 그만두라는 협박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다른 언론의 논조도 비슷했다. 당시 언론특위 간사였던 정청래 의원은 8월31일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용어에 거부감과 오해가 없도록 ‘악의적 보도에 관한 손해배상 제도’로 용어를 바꿔 입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 해 10월15일 열린우리당은 언론피해구제법에 ‘악의적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배제’를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법안 명칭도 ‘언론 중재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으로 변경했다. 이 법이 2005년 제정된 오늘날의 언론중재법이다. 당시 신문법 등 열린우리당의 ‘언론개혁’ 법안들이 일제히 후퇴했다는 비판 속에서, 언론계는 징벌적 손배제가 빠진 언론중재법 제정에도 “언론자유 침해”를 주장하며 강하게 반대했다. 조선일보·동아일보 등은 언론중재법을 상대로 헌법소원까지 청구했으나 대부분 합헌이 나왔다. 

그리고 17년이 흘러, ‘징벌적 손해배상’이 포함된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오늘(19일) 상임위를 통과했다. 

▲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도종환 문체위원장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도종환 문체위원장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6월9일 자신의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징벌적 손해배상과 정정 보도 시 동일분량 원칙 등을 담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정 의원은 19일 통화에서 “2004년은 인터넷신문이 생성되던 시기였고, 지금은 그때와 언론 보도피해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담긴 법률안도 20개 가까이 된다. 17년 전엔 언론만 (징벌배상을) 도입하면 형평성에 안 맞는다고 했지만, 지금은 왜 언론만 빼느냐는 지적이 가능한 상황”이라며 징벌배상 도입이 가능한 환경이라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17대 국회 때부터 (징벌배상제) 시도해왔다. 과거엔 우리 당에서도 큰 호응이 없었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다르다”고 전한 뒤 “(개정안처럼) 국회의원은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 대상에서 빼더라도, 구의원이나 시의원 등 다른 선출직 공무원까지 다 (청구 대상에서) 빼는 건 아닌 것 같다”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국민의힘의 ‘졸속 처리’ 비판에 대해선 “졸속 주장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일을 하지 않는다. 발의한 지 1년이 넘은 법안”이라면서 오히려 국민의힘의 “입법 파업”을 비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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