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PD연합회와 한국방송작가협회가 역사 왜곡 논란으로 방송 2회 만에 종영한 SBS TV 드라마 ‘조선구마사’ 사태와 관련해 약 5개월 만에 공론장을 만들었다. PD연합회와 방송작가협회는 지난 17일 오후 ‘역사적 진실과 콘텐츠의 상상력’이라는 주제로 온라인 토론회를 개최했다. 

지난 3월 SBS ‘조선구마사’는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악령과 구마사 이야기를 드라마화했지만 역사 왜곡 논란과 중국풍 소품 사용 등으로 시청자의 거센 비난을 받고 2회 만에 폐지됐다. 

▲조선구마사 포스터.
▲조선구마사 포스터.

전성관 PD연합회장은 조선구마사가 도마 위에 올랐을 때 공론장을 만들지 못하고, 5개월여가 지나서야 토론회를 연 것에 사과했다.

전 회장은 “지난 3월 SBS 조선구마사가 방영 2회 만에 종영됐다. 당시 여러 함의를 얻을 수 있었는데도 (공론장을 열지 못해) 기회를 놓치게 됐다”며 “왜 이제와서 토론회를 여냐는 우려도 있지만 논의가 없으면 같은 일이 또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토론회를 열었다”고 설명했다. 

토론회 말미에도 전 회장은 토론회가 너무 늦게 열렸다는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지적에 “사실 당시 매우 두려웠다. 여론 상황을 감당할 수 없었다”며 “지금은 돌아보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땐 그렇지 않았고 두려웠다. 그런 것 때문에 지체한 부분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어 “PD연합회는 PD나 작가를 위한 곳이기도 하지만, 콘텐츠에 관한 시대적 이야기를 하는 공론장을 만들어야 할 소명이 있다.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며 “지체한 부분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했다. 

▲전성관 PD연합회장.
▲전성관 PD연합회장. 사진출처=한국PD연합회 유튜브 영상 캡처. 

이날 토론회에는 주창윤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정현민 드라마 작가, 윤창범 KBS 드라마 PD,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등이 참여했다. 토론회는 조선구마사 폐지 사태가 ‘대중 억압’으로 인한 잘못된 결정이라는 의견과 제작진과 시청자의 소통이 부족했다는 의견 등으로 나뉘었다.

주 교수는 “조선구마사는 시청자 개입으로 폐지된 최초의 드라마”라며 “역사 왜곡 문제보다 재현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실존 인물인 태종, 양녕대군, 충녕대군(세종)이 등장하면서 시청자들로 하여금 조선구마사를 완전한 허구로 볼 수 없게 만든 점이 있고, 중국풍 소품을 쓰거나 태종의 양민학살 등 재현 방식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주 교수는 조선구마사 사태를 통해 당대 대중 정서가 역사장르 소비나 해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고 짚었다.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는 자신의 의견을 “과격한 의견”으로 전제하면서 “소비자가 촌스러워 감식력이 없었던 것으로 사극에선 지식보다 상상력이 중요한데 이를 억압했다”고 주장했다. 민족감정을 앞세우며 조선구마사를 폐지하게 한 시청자들을 비판한 것이다. 김 교수는 “사람은 현실과 꿈에서 사는 존재인데 (시청자들이) 꿈을 억압했다. 대중 억압, 대중 독재, 사회적 병리 현상”이라며 “소비자 의식 교육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드라마 ‘정도전’, ‘녹두꽃’을 집필한 정현민 작가는 조선구마사 사태 이후 큰 위축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정 작가는 “조선구마사 사태를 보면서 고구마를 1000상자를 먹는 기분이었다”며 “조선구마사는 민족 감정을 건드렸고, 동북공정이라는 프레임이 굳어져 백약이 무효했다. 다른 이야기를 하려는 시도가 완전히 먹혀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현민 작가는 “1, 2화만 나간 상황에서 대사 하나하나에 왜곡 논란이 일어났다. 이렇게 되면 창작자는 굉장히 위축된다”며 “다만 이번 사태로 인해 방송사와 창작자들이 역사 고증을 더욱 철저히 해야 한다는 성찰을 얻어야 한다”고 밝혔다. 

윤창범 KBS 드라마 PD는 “대중 억압이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시청자들은 소비자이며 권리자”라며 “다만 잘못된 지적에 대해서는 창작자들이 왜곡을 바로잡고 논쟁하는 데 힘써야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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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조선구마사 사태는 동북공정 논란 등 민족 감정을 건드린 것이 핵심이다. 이는 PPL 논란으로 이어졌다. 사극만의 문제가 아닌 모든 드라마 제작의 문제”라며 “당시 동북공정 문제가 여러 드라마에서 터졌고 사회적 쟁점이 됐었다. 이는 외교적 문제로 풀었어야 했지만 조선구마사에 투사된 경향이 있다”고 짚었다. 

정 평론가는 “대중은 우매하지 않다. 제작자들이 역사와 다른 사실에 대해선 유튜브 등을 통해 대중과 소통했어야 했다”며 “논란이 터졌을 때 대중과 제대로 소통하지 않았다. 토론회, 코멘터리, 인터뷰 등으로 적극 소통하려는 시도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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