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의 취재진담] ‘일본인 증오 말고 포용’ 보도했다가 토착왜구로 몰렸죠
[김도연의 취재진담] ‘일본인 증오 말고 포용’ 보도했다가 토착왜구로 몰렸죠
‘26일 동안의 광복’ ‘신냉전 한일전’ 저자 길윤형
맹목적 낙관 대신 ‘냉정한 현실’ 고민하는 외교전문 기자
“차기정권도 ‘정념외교’하면 신냉전 한일전 2라운드 펼쳐질 것”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포용적인 역사의식’을 강조하며 조선의 비타협 민족주의자 안재홍을 소환했다.

“해방 다음날인 1945년 8월16일, 민족의 지도자 안재홍 선생은 3000만 동포에게 드리는 방송 연설을 했습니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이었던 선생은 패전한 일본과 해방된 한국이 동등하고 호혜적인 관계로 나아가자고 제안했습니다. 식민지 민족의 피해의식을 뛰어넘는 참으로 담대하고 포용적인 역사의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해방으로 민족의식이 최고로 고양된 때였지만 우리는 폐쇄적이거나 적대적인 민족주의로 흐르지 않았습니다.”(제76주년 문재인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 中)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오전 옛 서울역사에서 진행된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밝히고 있다. 사진=청와대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오전 옛 서울역사에서 진행된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밝히고 있다. 사진=청와대

이번 경축사에 취임 후 다섯 차례 광복절 경축사 가운데 가장 유화적이라는 평가가 나왔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문재인 정부의 강경 일변도 대일 정책이 그동안 어떠한 성과도 내지 못했다는 방증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길윤형 기자(45·現 한겨레 통일외교팀장)는 지난해 8월14일자에서 문 대통령이 언급한 안재홍의 경성중앙방송국 연설을 한 해 앞서 주목했다. “우리 민족에게 고합니다. 일본인 증오 말고 포용을”이라는 기사였다.

길 기자는 기사에서 “안재홍의 호소대로 한·일은 해방 후 극심한 혼란 속에서도 무모한 유혈 충돌을 벌이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열성 지지자들은 길 기자를 ‘토착왜구’, ‘기레기’로 몰아갔다. “차라리 역사를 잊으라 해라. 이 기레기야.” ‘숙적’에 포용을 요구하는 기사에 대한 거친 반발이었다.

해방 직후 일본의 치안 유지 협조 요청을 수락하고 좌우 합작에 사활을 걸었던 여운형과 안재홍의 분투는 지난해 8월 출간된 ‘26일 동안의 광복’에 세밀하게 담겨 있다. 이 책의 저자는 길윤형 기자다.

길 기자는 지난 7월 출간한 책 ‘신냉전 한일전’을 통해서는 자가당착에 빠진 문재인 정부의 대일 외교를 분석하고 해법과 대안도 제시했다. 2001년 11월 한겨레에 입사한 그는 2013년 9월부터 3년 반 동안 도쿄 특파원으로 재직했다. ‘한겨레 기자 같지 않은’ 한겨레 기자인 길 기자를 지난 13일 오후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국방부 인근에서 만났다.

▲ 길윤형 한겨레 기자가 지난 13일 오후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국방부 인근 카페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길윤형 한겨레 기자가 지난 13일 오후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국방부 인근 카페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지난해 ‘26일 동안의 광복’을 쓴 계기는 무엇인가?

“책 서문에도 밝혔지만 2019년 2월28일 하노이 북미 2차 정상회담 결렬이 결정적이었다. 스스로 굉장히 좌절했다. 문재인 정권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끝내는 결실을 맺을 것으로 봤다. 하노이에서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지금과 굉장히 다른, ‘냉전의 굴레’를 해소할 기회였다. 우리나라는 왜 이 모양 이 꼴인가. 왜 냉전의 굴레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가. 그 원인과 배경을 찾다 보니 1945년 해방 공간에 관심을 갖게 됐다.”

- 왜 여운형인가?

“여운형 선생은 1945년 8월15일 즈음 국내 영향력이 가장 컸던 사람이다. 국내에 있으면서 변절하지 않고 민중에게 존경받던 사람은 세 명 정도. 몽양 여운형, 민세 안재홍, 고하 송진우. 우파 민족주의자 송진우는 개량주의적이었다. 반면 안재홍은 비타협 민족주의자, 여운형은 리버럴 좌파에 가까웠다. 책은 안재홍과 여운형이 모여 만든 건국준비위원회의 결성과 실패, 좌절을 다룬다.”

- 송진우는 “경거망동을 삼가라”며 여운형의 좌우합작 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다.

“‘조선일보 광산왕은 자가용으로 납시고, 동아일보 송진우는 인력거로 꺼떡꺼떡, 조선중앙일보 여운형은 걸어서 뚜벅뚜벅’이라는 당대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송진우와 여운형은 현실 대응 관점과 행동 양식은 물론, 계급의 위치도 크게 달랐다. 둘은 견원지간에 가까웠다. 일제 항복 직후 총독부 2인자 엔도 정무총감이 조선인과 일본인 충돌을 우려해 여운형에게 치안 유지 등에서 협력을 요청했고, 이를 수락한 여운형은 바로 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한다. 송진우 입장에서 광범위하게 민의를 반영해 정치체를 만들어야 하는데 몇 사람이 만든다고 하니까 거부감이 클 수밖에 없다. 송진우는 기본적으로 ‘무대책이 대책’이라는 입장이었다. 일본에 협조하면 몸을 더럽힌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두 사람은 달랐다.”

- 책에 비춰보면, 당시 한반도 내에서 독립운동을 하거나 송진우로 상징되는 우파 인사들의 정세 판단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충칭 임시정부는 해방을 목전에 둔 순간까지도 미국과 중국 국민정부의 승인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국제정세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던 인물은 여운형이었다. 그는 중국 공산당 초기 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웠고 이를 파악한 일본이 그에게 대중 공작을 회유하기도 했다. 국제감각이 있던 것이다. 당시 국제 소식은 도메이 통신이나 단파 방송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다. 송진우는 임시정부에 기대를 걸었지만, 훗날 송진우 암살 배후로 김구가 꼽히는 건 아이러니하다. 끝내 손을 잡지 않았던 송진우와 여운형, 두 사람이 살아있다면 지금 대한민국 모습을 보고 후회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 송진우와 여운형이 손을 잡았어도, 좌우가 합작했어도, 미소라는 거대한 냉전의 흐름을 우리가 역행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26일’ 동안 잘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 가능성을 쓴 것이지만 조선 반도를 둘로 찢어놓으려는 거대한 원심력은 우리가 하나로 뭉쳐 독립적 통일국가를 만들고자 했던 구심력을 압도했다. 만약 여운형과 송진우가 합작했어도, 그뒤 김구와 이승만, 박헌영까지…. 이름만 들어도 피곤하지 않나? 난 벌써 피곤하다.(웃음) 또 북쪽에는 소련의 강한 영향력 아래에 있던 김일성이 스탈린 지시에 따라 ‘북한에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권’을 수립해야 했다.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미소는 최대 5년의 신탁통치에 합의했으나 우리는 거대한 정념으로 신탁을 부정했다. 해방의 길이 사라졌다.”

▲ 26일 동안의 광복/저자 길윤형/출판사 서해문집
▲ 26일 동안의 광복/저자 길윤형/출판사 서해문집

길 기자는 해방 이후 75년 동안 한반도 정세를 상이하게 바라보는 두 세력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첫 번째는 조선 독립은 연합국의 승리에 따른 결과라는 ‘해방의 국제성’을 받아들이는 이들이다. 이승만으로 상징되는 지금의 보수진영이다. 또 다른 세력은 ‘해방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세력이다. 여운형, 김규식, 김구의 좌우합작 운동과 남북협상 실패를 안타까워하는 이들의 후예는 햇볕정책(DJ)과 동북아균형자론(노무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문재인)로 상징되는 진보진영이다.

길 기자는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 손을 들어주진 않는다. “3000만 조선동포는 과거 36년간 유혈의 투쟁을 계속해 왔으므로 오늘날 자주독립을 획득했다”고 말하는 여운형에 대해서도 “그 말씀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일본을 패망시킨 것은 무엇인가. 2차 세계대전에서 셀 수 없이 자국민을 희생시킨 미소가 한반도에서 자국 국익을 앞세우는 건 안타깝지만 냉혹한 현실”이라고 지적한다.

- 지난 7월1일 펴낸 ‘신냉전 한일전’ 이야기를 해보자. 큰 틀에서 보면, 남북 정상회담을 매개로 기존 현상을 변경해보려는 문재인 정부(‘현상 변경’)와 한미일 3각 동맹을 강화해 북한과 중국을 억제해야 한다는 ‘현상 유지’ 전략의 일본이 충돌한다고 분석했다.

“한일관계가 이전과는 다른 관계가 됐다. 흔히 1998년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많이 한다. 좋았던 한일관계로 돌아가자는 것인데 그때와 달리 지금은 중국이 크게 부상하고 있고 북한의 핵 개발도 점점 고도화하고 있다. 이에 한일의 시각과 전략에 큰 차이가 생겼다. 일본은 한미일 동맹을 더 강화해 중국을 봉쇄하고 북한은 말려 죽여야 한다고 판단한다. 우리는 남북 협력과 대화가 기본 기조다. 다수의 국민이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권은 ‘일본 패싱’이 상징하듯 남북 대화와 이를 뒷받침하는 한미 협력으로 일본을 뛰어넘고자 했다. 그러나 하노이 회담은 실패했고, 일본의 ‘비토 파워’는 상당했다. 만약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안착하고 하노이 회담이 성공했다면 일본도 섣부르게 경제 보복에 나서지 못했을 것이다.”

- 문재인 정권의 대일 외교에 비판적이다. 특히 2019년 7월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응하는 여당의 인식을 강하게 비판했는데?

“한일 현안에서 일본의 불만을 일정 부분 해소하고 눌러주는 자세와 역할도 필요하다. 일본의 화만 돋우다가 일본이 툭 때리니 그제야 놀라서 과잉대응하는 모습이었다.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 조치에 민주당 86세대 의원들은 ‘한반도에 대한 침략 의도’, ‘아베는 히틀러의 길로 가고 있다’ 등 지나치게 반응했다. 굳이 꺼낼 필요 없는 지소미아(GSOMIA·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중단 카드를 들었다. 문재인 정권의 일본 패싱 전략이 모두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전략은 남북관계가 개선돼 영변 핵 시설 해체 등 비핵화 프로세스가 현실화하고, 경의선·동해선이 연결되는 등 우리가 주도권을 확실히 쥐었을 때나 가능하다. 석 달 뒤 지소미아 종료 결정마저 스스로 거둬들이며 수모를 겪는다. 당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일본을 향해 우리말 ‘덤벼봐’에 해당하는 ‘트라이 미’(try me) 발언을 했는데, 한국 외교 70년사에서 길이 남을 명장면이다. ‘정념 외교’로 망신을 당한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우금치 전투, 칠천량 해전이라고 부를 만한 참패였다.”

- 문재인 정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일본과의 관계가 더 나아질 가능성은 적지 않나?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대선후보들은 지지자 결집을 위해서라도 일본을 겨냥한 센 발언을 이어갈 텐데?

“최근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도 ‘올림픽 보이콧’ 발언으로 논란을 자초했다. 그는 동아일보 일본 특파원도 하셨던 분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세게 나오니까 ‘친문’에게 어필하려다가 망신을 당했다. 주한 일본대사관 소마 히로히사 총괄공사 발언 등으로 문 대통령은 도쿄 올림픽 개막식에 불참했다. 남은 임기 동안 관계 개선은 힘들어 보인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도 9~10월 중의원, 자민당 총재 선거가 남았다. 이재명 지사 주변에 있는 분들은 ‘매운 맛’ 인사들이다. 최근 국립외교원장에 임명된 홍현익 원장은 2019년 세종연구소에 ‘아베의 배은망덕’ 등의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 중요한 싱크탱크 보고서에 그런 표현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분들이 모여 ‘정념 외교’를 하겠다면 신냉전 한일전 2라운드가 펼쳐지는 것이다. 대선주자들이 일본을 면밀히 공부할 필요가 있다.”

▲ 지난해 8월14일자 길윤형 한겨레 기자의 기사.
▲ 지난해 8월14일자 길윤형 한겨레 기자의 기사.

-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르겠으나 정치인들이 반응하는 건 ‘반일’이라는 국민 정서가 있기 때문 아닌가?

“지난해 광복 75년을 맞아 쓴 기사가 ‘토착왜구’로 몰렸다. 민세 안재홍 선생의 1945년 8월16일 연설을 보도했다. ‘양 민족은 지리상의 관계로 무슨 형식으로든지 영구한 병존호영(竝存互榮) 관계를 깨뜨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으로 독립투사가 일제에 대한 보복이 아닌 화해와 협력을 이야기한 것이다. ‘26일’에도 언급했지만 실제 조선인이 일본인을 상대로 보복하거나 대량학살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만약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당시까지만해도 온존해 있던 일본군의 보복도 이어질 수 있었다. 조선사람들은 성숙한 자제력을 보여줬다. 나도 일본이 너무 싫을 때가 있다. 역사에 대한 반성도 없고, TV에 한심한 사람들이 나와서 한국에 망언을 쏟아내는 걸 보면, 정말 몸져누울 것 같다. 상스러운 욕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그들을 비난한다고 해서 저들이 바뀌는 게 아니라면, 보다 현실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최근 유튜브에 한일 커플들이 영상 콘텐츠를 많이 찍던데, 재밌고 보기 좋더라. 인간 대 인간, 민간인들끼리는 문제가 없는데 정치가 자꾸 반감을 유발하는 건 아닌지…. 일본 시민사회가 노력하는 부분도 있다. 우리 목소리를 제대로 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다만, 일본이나 일본 사람을 혐오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아야 한다. 이는 당연히 일본에도 해당하는 말이다.”

- 야권의 대선후보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선조의 친일 논란에 문재인 대통령 부친 역시 친일파라고 맞서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친일 논쟁’이 한창이다.

“우리 대다수는 선조들이 과거 어떤 일을 했는지 잘 모르지 않나? 공인은 유권자에게 올바른 역사 인식을 보여주는 정도면 되는 것 아닐까? 어려운 문제다. 우리 재야에는 박정희 같은 친일파가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게 맞느냐는 정서가 있다. 해방 직후 친일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한국사회의 집단적 트라우마도 크다. 우리도 나름 노력을 했다. 노무현 정권 때 민간이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하고 정부 차원으로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도 운영했다. 친일파 땅 찾기 소송도 진행됐다. 이런 조치가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더 할 게 없는 것도 사실이다.”

- 역사적 인물이나 현안에 친일과 반일이라는 이분법적 잣대만 들이대면, 납작한 평가만 남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이들도 있는데?

“내가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내 결론은 너무 원리적 주장이나 극단적인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일본의 경제 보복에 ‘죽창가’로 지지층을 자극하고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것보다 일본 의도가 무엇이고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냉정히 계산하는 게 정치인의 자세다. 집권 여당의 86세대 역사관은 민족주의적이고 과거에 머물러 있다. 그들은 공부를 게을리했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지 못했다. 2019년 한일 갈등 때는 전쟁이라도 벌일 기세였다. 일본사회에 이상한 사람들이 많은데, 젊은 학생들이 해코지라도 당하면 어쩔 것인가? 50~60만명의 재일동포들이 입을 수 있는 피해는 고려했던 것일까? 지소미아 종료 카드 꺼냈다가 철회하고, 외교 책임자가 ‘트라이 미’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과연 지금은 반성했는지 잘 모르겠다.”

- 길 기자는 페이스북에 외교 기사를 많이 공유한다. 눈에 띄는 칼럼이나 매체, 기자들이 있나?

“시간 등 문제로 조선, 중앙, 동아, 한겨레, 경향 위주로 본다. 확실히 조중동 외교 안보 기사가 양과 질에서 진보언론을 압도한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방향과는 다르다. 어쨌든 그들은 주류 시선에서 미국 동향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분석한다. 중앙일보 오피니언면이 그래도 여러 전문가 견해를 잘 소개하는 편이다. 나도 지금 통일외교팀장이지만, 팀은 3명뿐이다. 나만 해도 국방부의 각종 사건 사고, 위안부, 북핵 등 이것저것을 다루다보니 전문성을 키우기 어렵다. 반면 조선일보의 경우 국방부 2명, 외교부 2명을 배치하고 특파원도 여러 명 보낸다. 인력 풀에 큰 차이가 있다. 외교안보 분야는 기자 양성이 힘들다. 어학 능력이 있어야 한다. 물적 토대 차이가 결과로도 나타나는 것 같다.”

▲ 신냉전 한일전/저자 길윤형/출판사 생각의힘
▲ 신냉전 한일전/저자 길윤형/출판사 생각의힘

- 지금까지 나온 발언과 생각이 보통의 한겨레 논조에 100% 부합하진 않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한겨레는 ‘햇볕정책 선생님’ 이종석 전 장관, 문정인 전 특보 생각과 판단에 궤를 같이 하는 편이다. 나는 조금 생각이 다르다. 그때는 맞지만 지금은 틀리다. DJ정권 때 햇볕정책은 맞는 것이었지만 현재 북은 핵 무력을 완성했다. 한겨레의 전통적 견해와 모순을 느낄 때도 있다. 우리 윗세대가 놓친 것이 ‘냉정한 현실’이라면 나는 좀더 현실을 고민한다. 그래서 기사가 냉정하고 현실적인 편이다.”

- 2019년 10월 KBS ‘시사직격’에 출연했다. 한일 특파원들이 대담을 나눈 자리였다. 일본 측 패널로 출연한 구보타 루리코 산케이신문 해설위원이 “한일문제 원인은 문재인씨의 역사관”이라고 주장했다가 논란이 일었다.

“KBS는 날 섭외할 것이 아니었다.(웃음) 아마 내 생각에 KBS 측은 내가 한겨레 기자로서 민족주의 관점에서 구보타와 치열하게 싸우길 바라지 않았을까? 그런데 나는 구보타에게 ‘선배님’이라는 말까지 꼬박 붙여가면서 이야기하니 시청자들은 성에 안 찼을 것이다. 한국 대 일본이 7대3, 못해도 6대4로 우세하게 끝나는 토론이길 바랐을 텐데 말이다. 내 생각에도 구보타를 시원하게 눌러주고 끝났어야 했지만 5대5 정도로 끝나니 뒷맛이 개운하진 않았다. 5대5로 중립을 맞춘 KBS PD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 차기 정부의 외교 핵심인사들이 대일관계에 자문을 구해온다면?

“아까도 언급했지만 ‘어떤 동아시아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한일의 견해 차이가 커졌다. 일본에 있어 한국은 안보협력에서 중요한 나라다. 일본 주류가 생각하는 대한 외교의 목표는 역사 문제를 봉합하고 안보협력을 심화하는 것이다. 한일 간 군사협력을 강화해 일본의 불안감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일본 역시 한국의 남북관계 개선 열망을 이해하고 인정해야 한다. 우리로서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시행하는 데 난관이 됐던 일본의 ‘비토 파워’를 줄이기 위해 일본을 포섭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짜야 한다. 이처럼 서로에 대한 전략적 의존성을 키우면 역사 문제에 대해서도 협력의 여지가 생기지 않을까?”

▲ 길윤형 한겨레 기자가 지난 13일 오후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국방부 인근 카페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길윤형 한겨레 기자가 지난 13일 오후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국방부 인근 카페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길 기자는 ‘신냉전 한일전’ 끝부분에 위안부와 강제동원 판결과 해법 등을 제시했다. 그는 위안부 문제에서의 정부 역할에 대해서 “전시 하 여성에 대한 씻을 수 없는 국가 범죄라는 굽힘 없는 원칙만 유지하면 된다”고 말했다. 앞서 한일 양국의 12·28 합의와 이후 한국의 합의 무력화 시도 등 우여곡절이 있었고, 더 이상은 외교적 해법이 불가하다는 냉철한 진단이기도 하다. 지난 2~3월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교수 사건에서 알 수 있듯 위안부 문제를 보는 국제 여론이 한국에 유리하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피고 기업의 사과’를 입구로 하는 한일의 역사적 화해”라며 “일본기업들이 몇 명 남지 않은 고령의 원고들과 만나 진심으로 사과하고 손을 잡아준다면, 그들의 마음속에 응어리진 미움이 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이후의 구체적 대안도 책에 담겨 있다. 여·야 대선주자들이 길 기자 책을 읽어봐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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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열 2021-09-14 17:59:31
이상주의자네.. 현실을 외면하고 꿈속엣 헤매는 딱한 양반..
그런 논조로 일본애들한테 얘기해봐라.. 걔들이 당신을 어떻게 이용해 먹는지..
상대를 봐가면서 꿈을꾸야지~

소시민 2021-09-12 15:16:51
한겨레가 맛이간 이유를 이 기자를 통해서 잘 알 수있다 . 가슴에 손을 얻고 생각해보라, 그 당시 정부의 판단이 틀렸으며 잘못된 결과가 나왔는지. 입으로만 하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 것이 오늘날 한겨레의 현주소이다.

미쳤군요 2021-08-23 13:46:26
미디어 오늘 드디어 마각을 드러내는군요.
인터뷰를 빌미로 하고 싶은 얘기가 일본에 굴복해야 한다는 거라니...
그냥 덴노 반자이 하는게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