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과 ‘페미니즘’. 대척점에 선 것 같은 두 표현을 이름에 넣은 단체가 있다.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이다. ‘남성 연대에 균열을 낸다’는 목표로 ‘남성 페미니스트’를 위한 교육과 세미나, 책읽기 모임 등을 꾸준히 하고 있는 단체다. 

‘남함페’의 이한 활동가는 ‘성평등 교육 활동가’이기도 하다. 성인 남성 페미니스트들과 소통하는 것을 넘어 학교를 찾아 다니며 남성 청소년들 앞에 선다.  “페미니스트 역겹다” “여가부 해체해야 한다”는 등 당돌한 반응 앞에 매번 마주 서고 있다. 지난 8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이한 활동가를 만나 페미니즘과 페미니즘 교육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 ‘남함페’는 어떤 단체인가요.
“‘남성연대’에 균열을 내기 위해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단체입니다. 2017년 ‘남성을 위한 페미니즘’ 책 모임의 멤버로 활동한 일이 계기였어요. 현재는 독서모임이나 세미나 등을 통해 네트워크를 만들려고 노력을 하고요. 보고서를 쓰거나, 불법촬영 시청 가해 규탄 캠페인 등을 진행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교육에 관심이 있다 보니 교육 활동도 하고 있어요.”

▲ 이한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
▲ 이한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

- 남성들은 어떤 계기로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될까요.
“이와 관련한 인터뷰 형식의 보고서를 여러번 썼는데요. 실제 사례들을 보면 가까이 있는 조력자의 존재가 가장 중요해요. 직장 동료나 연인이 페미니스트였고, 함께 지내며 오해를 깨 가면서 접할 수 있게 된 거죠. 페미니즘을 접한 많은 남성들이 주저하거나 어려워하고, 막막해 하는 일이 많더라고요. 책만 읽으면 되는 건지 등 고민을 하게 되는데 그런 점에서 이를 해소하기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 관심은 있지만 주저하는 경우가 많을 거 같아요.
“나도 뭔가 하고 싶다며 ‘뿜뿜’하는데 한편으로는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어요. 그간 여성혐오적으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저 역시도 페미니즘에 대해 알기 전에 여성혐오적 발언을 해온 과거가 있어요. 내가 이 활동을 했다가 남성이라는 이유로 주목받는 건 아닐까, 내가 괜히 앞장 서서 여성의 마이크를 뺏는 건 아닐까하는 고민이 들기도 하고요. 또 다른 측면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얘기했다가 친구들로부터 고립되고 공격당하거나 집단 내에서 갈등할 수도 있죠.”

- 어떻게 해야 ‘실천’하는 걸까요.
“분명한 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실천을 계속 하는 분들은 ‘말 걸기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강조해요. 친구들이 여성혐오적 발언을 할 때  ‘나는 그런 거 안 좋아해’라고 말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다른 집단과 계속 관계를 형성해나가면서 시도하는 분도 있어요. 손희정님의 ‘다시, 쓰는, 세계’ 책에 ‘뿌리내리면서 옮겨가기’라는 표현이 있어요. 남성 정체성에서 출발하되 여기에 머무르거나 국한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이들과 계속 만나는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남함페' 온라인 교육 홍보 이미지
▲ '남함페' 온라인 교육 홍보 이미지

- ‘이대남’ 얘기 안 할 수가 없겠죠.
“세대론을 좋아하지 않아요. 과거 청년 활동을 했는데요. 청년이 정말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기 좋은 소재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구분하고 타자화하면서 설명하기 좋은 소재죠. 20대 남성은 어떨까요? 페미니즘에 반감이 있는 건 사실이죠. 그런데 페미니즘적 사고에 동의하는 비율이 높다는 한국리서치의 조사도 있어요.”

2019년 한겨레 슬랩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20대 남녀 800명 대상 조사를 보면 ‘스킨십이나 섹스 중에 언제든 파트너의 의사에 따라 행위를 중단하는 게 당연하다’는 데 20대 남성의 85.4%가 동의했다. ‘섹스보다 피임이 더 중요하다’, ‘성적 대상화나 여성혐오적 표현을 조심해야 한다’ ‘맨스플레인을 하지말아야 한다’는 항목에도 70%이상의 남성이 동의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페미니즘 용어에는 반감을 가져도 실제 페미니즘적 사고를 하는 이들이 적지 않음을 드러낸다.

- 왜 그럴까요. 인터넷 커뮤니티 논쟁을 보면 가장 극단적인 사례를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는 거 같긴 하죠.
“페미니즘에 대해 부정적인 친구가 있어요. 이슈가 있으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제게 물어보곤 하는데요. 제가 주변에 있으니 어떤 생각인지 묻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커뮤니티 속에서는 가장 극단적인 견해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죠. 그래서 온라인 소통은 어려워요. 하지만 오프라인에서 이슈에 대해 풀어나가다 보면 오해나 갈등이 해소되는 면이 분명 있어요.”

- 언론과 미디어가 고쳤으면 하는 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인터뷰를 하면 제가 남자라서 마이크를 쥐는 게 아닌가하는 고민이 들어요. 여성 페미니스트였다면 이렇게 주목하지 않았을 거 같아요. 제 주변에 저보다 더 열정적이고 똑똑한 여성 페미니스트가 많거든요. 언론 역시도 자신들이 가진 마이크가 남성중심적이라는 걸 고민할 필요가 있어요. 단순히 ‘갈등’이라고 쓰지 않고 경각심을 가져야 해요. 인종 갈등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것과 같죠.”

- 청소년을 대상으로 교육 한다고 들었는데, 어떤 계기로 하게 됐나요.
“우리 단체 활동을 하면서 아는 사람만 만나게 된다는 점이 아쉬웠어요. 관심 없는 사람, 낯선 사람을 설득하는 게 중요하다고 보는데 이를 위해선 교육이 가장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운 좋게 폭력 예방 교육 강사 양성과정을 이수하게 되면서 교육을 하게 됐는데요. 단순 폭력 예방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해서 성교육, 성평등 교육을 하고 싶다고 얘기하며 학교를 찾아다녀요.”

- 요즘 학생들 분위기 어떤가요.
“제가 학교에 교육 다닌다고 하면 주변에서 ‘얼마나 힘들까’하며 걱정해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힐링을 해요. 현장에서 만나면 기존에 남자 중학생을 규정해온 것들과 다르게 사람은 입체적이고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고요. 변화가 느껴지기도 해요. 그렇지 않을 때도 있지만요.”

▲ 교육 중인 이한 활동가
▲ 교육 중인 이한 활동가

- 교육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요. 
“논리적인 정확성도 중요하지만, 눈높이에 맞춰서 얘기하는 게 중요해요. ‘선량한 차별주의자’ 책에 나온 특권과 사회적 차별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해요. 어린이 청소년,  특히 남성의 경우 ‘나는 차별하지 않는다’ ‘옛날에는 남녀 차별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역차별이 더 문제다’ 라고 생각하곤 해요. 학업 과정에서 차별을 느끼지 못한다고도 해요. 지금 시점에선 일정 부분 맞는 얘기라고 말하면서도 나중에 사회에 진출한 후 벌어지는 채용 차별, 임금 차별, 유리천장에 대해 알려주며 이런 면에서 의도치 않은 차별이 발생하고 특권이 생길 수 있다고 얘기해줘요.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돼선 안 된다는 거죠.”

- 수업 때 반발하는 경우도 있겠죠.
“남학생 입장에선 아무것도 안 했는데 괜히 잘못한 거 같고, 가부장제의 수혜자라는 말 자체가 불편하게 느껴지고, 반감이 들 수 있어요. 그럴 때는 ‘네가 잘못한 거야’라고 말하기보다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만들어지는 사회적 차별이 문제고 이걸 함께 바꿔나가야 한다고 설명하면 저항이 좀 줄어요.”

- 당돌한 질문을 많이 받을 거 같아요.
“‘여가부’ 얘기는 매번 들어요. ‘셧다운제를 하는 여가부는 나빠’ ‘여가부는 페미니스트고 페미니스트는 나빠’ 이런 얘기를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럴 때는 청소년 페미니스트 단체 위티가 셧다운제에 반대한다고 알려주고요. 근본적으로 페미니스트가 뭔지에 대해 얘기를 나눠요. 이런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또 어떤 질문을 자주 받나요.
“여성도 군대 가야 하는 거 아니냐? 이런 질문도 빠지지 않죠. 그럴 때는 이렇게 다시 질문해요. ‘페미니스트들이 요구해서 남성만 군대에 가게 된 걸까요?’ 남성이 육체적으로 뛰어나니 남성만 가야 한다는 건 일종의 성별 고정관념이고, 이건 페미니즘 관점에서 얘기 나눠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군 가산점제’의 경우 공무원만 혜택을 누린다는 걸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요리사가 꿈인 학생에게는 상관 없는 것’임을 알려줘요. 그러면서 ‘진짜로 여러분에게 필요한 건 공무원만 혜택 받는 제도가 아니라 안전한 군 생활, 그리고 군에서의 노동에 대해 제대로 된 대가가 아닐까요? 그리고 이런 점을 얘기하는 게 페미니스트가 아닐까요?’라고 설명해요.”

- “페미니스트 역겨워”라는 얘기도 들었다고요.
“강의실 들어가자마자 남학생들이 많았던 기억이 나는데, 그 강의 막바지에 그 얘기가 나왔어요. 그래서 ‘저도 페미니스트인데, 저도 역겨워요?’라고 물으니 머쓱해 하며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오히려 저는 이날 강의가 좋았어요.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찾아와서 ‘여가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등을 적극적으로 물어봤어요. 페미니스트가 역겹다고 한 친구는 깊게 사고했다기 보다는 그런 얘기를 하면 박수를 쳐주기에 그랬다고 봐요. 사실 이들의 분노와 혐오가 그렇게 뿌리 깊은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유튜브 섬네일에 나온 이슈를 스치면서 본 정도인데요. 금방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어떻게 답을 하느냐가 중요한 거 같아요.
“학생들이 가진 의문에 제대로 된 답을 들을 기회가 없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여성할당제는 존재하지 않고 양성평등 채용제가 있을 뿐이고, 오히려 더 많은 남성이 혜택 받고 있는 현실이라고 설명을 하면 이해해요. 그동안 한 번도 누구도 이 얘기를 진지하게 해준 적이 없었던 거죠. 그래서 이런 질문을 하면 오히려 고마워요.”

- 교육에 나서면서 가장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요.
“폭력 예방교육으로 주어진 시간이 2차시라 제대로 교육하기 힘들어요. 명확한 추진 체계도 없어요. 교육 수요가 있으면 관련 기구를 통해 강사가 연결돼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거든요. 알음알음 아는 사람 통해 강사를 섭외하는 상황인데, 체계적인 추진 체계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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