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기자(36)는 지난 7월1일 파이낸셜뉴스를 퇴사했다. 더는 의미 있는 기사를 쓰기 어렵겠다는 회의감, 이곳에선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절망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2015년 파이낸셜뉴스 기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2년 뒤 항해사를 하겠다며 회사를 떠났고, 그로부터 다시 2년이 흐른 뒤 매체에 재입사했다.

논문 검증 기사가 퇴사의 결정적 원인은 아니었으나 결심을 부추기는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다. 해당 검증 보도로 인해 회사로부터 인사 불이익이나 퇴사 압박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쯤에서 보도는 중단해줬으면 하는 회사의 바람은 분명하고도 묵직했다.

김 기자는 윤지선 세종대 대양휴머니티칼리지 교수의 논문 “‘관음충’의 발생학: 한국남성성의 불완전변태과정의 추이에 대한 신물질주의적 분석”을 검증했다. 윤 교수는 논문에서 “남아라는 매끄럽고 유연한 미분화 상태의 존재가 어떻게 점진적으로 ‘곤충의 신체의 절편들과 같은’, 폭압적 한국남성성의 ‘주기적 패턴’ 양식이 각인되고 각화된 존재로 진화, 분화되고 있는지를 곤충군집체 은유 모델을 통해 탐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결론에서는 “불완전변태 유충의 잔존 기관 속에서 성충의 날개나 더듬이가 생겨나는 것처럼, 한남유충들이 그들의 교실과 일상 안에서 경험해온 여성혐오 용어 놀이의 즐거움과 성적 우월감의 쾌감은 한남충으로의 진화 과정에서 그들의 성적 공격성, 여성혐오를 강화, 증폭시키는 실질적 계기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2019년 발간한 ‘철학연구’ 127집에 실린 논문으로 한국남성을 벌레로 전제하고 비하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 김성호 전 파이낸셜뉴스 기자가 지난 9일 오후 서울 당산동 미디어오늘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김성호 전 파이낸셜뉴스 기자가 지난 9일 오후 서울 당산동 미디어오늘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김 기자는 지난 4월 검증 기사를 여섯 차례 보도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이 논문을 직접 ‘검증’한 기자는 사실상 그가 유일했다. 김 기자는 논문의 인용 누락 등 기술적 결함뿐 아니라 불완전변태 개념에 대한 몰이해 등 내용에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앞서 윤 교수 논문을 둘러싸고 온·오프라인에선 갈등이 한창이었다. 윤 교수는 논문에 한 유튜버 인사말을 여성혐오 표현이라고 주장했다가 해당 유튜버의 거센 항의에 직면했다. 윤 교수 주장에 반발한 일부 안티 페미니즘 성향의 유튜버들은 항의시위를 열었고 윤 교수 온라인 수업에 접속한 외부인은 욕설과 음란물 테러를 서슴지 않았다. 윤 교수 역시 “논문에 대한 공격은 2021년 상반기부터 시작된,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과 저지의 움직임들의 일환”이라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

김 기자는 윤 교수와 유튜버의 싸움을 중계만 하는 언론, 또 그런 중계 보도들을 꾸짖기만 하는 기자들 모두에 의문을 가졌다. “왜 아무도 논문을 직접 검증하지 않는 걸까?” 김 기자를 9일 오후 서울 당산동 미디어오늘 사무실에서 만났다.

- 왜 퇴사를 결심했나? 검증 보도 이후 사내 압박이 있었나?

“회사는 계속 보도하는 걸 원치 않았던 것 같다. 부장, 국장, 그 위의 분들도 만나봤지만…. 이 보도가 더 지속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다만, 이를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던가 나가라는 압력을 받거나 한 것은 전혀 아니다. 회사는 그동안의 내 성과를 인정해줬고 더 오래 있어 줬으면 했다. 오히려 왜 이런 것으로 나가려고 하느냐는 반응이었다. 기사는 윤 교수 개인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한국 학계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회사가 명확하게 보도를 이어갈 수 없는 이유를 말해줬다면, 난 설득이 됐을 것이다. 회사와 관계가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미래가 안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 논문 검증 보도는 왜 시작했나?

“나는 페미니즘, 젠더 이슈보다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이슈 등에 관심이 컸다. 그런데 가끔 만나는 동료 기자들은 윤 교수와 유튜버의 갈등과 다툼에 적지 않은 관심을 가졌다. 당시 이 이슈는 각 언론사 온라인 팀에서 중계 보도를 쏟아내는 소모적 아이템이었고, 몇몇 기자들은 그런 기사를 쓰는 기자들을 무시하는 모습도 보였다. 왜 아무도 논문을 읽어보지 않고 보도하거나 무시 비판만 할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결국 논문을 읽었는데, 죄송한 말씀이지만 너무 허술했다. 해당 논문은 발생·생물학과 철학을 연계해 논리를 전개하고자 했다. 이 경우 학술적으로 선행연구나 학자를 인용할 수밖에 없다. 첫 보도에서 윤 교수가 수학자 브라이언 굿윈의 논문을 인용한 것을 지적했는데, 이는 논문의 핵심이자 시작점이다. 발생학과 생물학을 철학으로 끌어올 수 있는 다리 역할이다. 그러나 통상적 논문 인용 규칙인 학술지명과 논문명이 모두 빠져 있었다. 직접 윤 교수에게 원전을 문의했으나 ‘연구일지는 이사하면서 소실했다’ 등 납득하기 어려운 말씀을 했다.”

▲ 윤지선 교수 논문. ‘관음충’의 발생학: 한국남성성의 불완전변태과정의 추이에 대한 신물질주의적 분석.
▲ 윤지선 교수 논문. ‘관음충’의 발생학: 한국남성성의 불완전변태과정의 추이에 대한 신물질주의적 분석.

- 윤 교수가 보도 이후 소송 이야기를 했다고?

“첫 보도 후 소송 이야기를 꺼냈다. 기사를 내려달라는 말씀도 하셨다. 윤 교수는 SNS에 내 기사를 폄하 기사라고 표현하셨는데, 나는 그분을 그런 식으로 재단하지 않았다. 학자가 발표한 논문을 검증했을 뿐이다. 기사의 더 큰 문제의식은 학계에 있다. 논문이 실린 곳은 국비 지원을 받는 기관이다. 유명한 학자들이 투입돼 논문에 대한 피어 체크(peer check)도 이뤄진다. 논문에 오류가 한두 개 있는 것도 아니지만 논문 골격인 굿윈 논문 인용부터 잘못됐다. 이와 같은 오류가 사전에 걸러지지 않았다. 사후 문제 제기가 있으면 철학연구회가 제대로 대응해야 하는데 외면하고 도망가기 바쁘다. 그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 철학연구회가 김 기자 보도에 입장을 낸 적 있나?

“유튜버 측 항의에 입장을 낸 적 있지만, 내 기사에는 입장을 내지 않았다. 보도를 반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각주와 인용, 출처 등 대부분 제기한 문제는 팩트에 관한 것이다. 철학연구회 소속 학자들과 국내 저명한 철학 교수들에게 전화는 물론이고 편지도 써서 입장을 듣고자 했지만 묵묵부답이다. 하루 6시간 이상 기다리며 며칠 동안 찾아다니기도 했다.”

- 철학계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나?

“이충진 한성대 교수(전 한국칸트학회장)가 기고를 통해 비판하신 적 있다. 나머지는 대부분 학생들 목소리였다. 내가 편지를 보냈던 분들이 한 10명은 될 텐데…. 그들이 내 취재를 피하기 바빴던 모습은 실망스럽다. 목소리를 내달라는 학생들 요구도 적지 않았다. 철학연구회가 아니더라도 철학을 공부한 분들이거나 사회학계, 여성학계 교수들도 있지 않나? 이들이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은 의견이 아니라 팩트 문제이기 때문이다. 심사를 통과할 만한 논문이었는지 그 누구도 응답하지 않고 있다. 학계가 이 정도라면, 언론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대로 논문을 검증한 보도도 없었다.”

▲ 김성호 전 파이낸셜뉴스 기자는 지난 4월 윤지선 교수의 논문을 검증하는 기사를 여섯 차례 보도했다. 사진=파이낸셜뉴스 기사 갈무리
▲ 김성호 전 파이낸셜뉴스 기자는 지난 4월 윤지선 교수의 논문을 검증하는 기사를 여섯 차례 보도했다. 사진=파이낸셜뉴스 기사 갈무리

- 기자 사회 반응은 어땠나?

“대놓고 뒷담화하는 기자도 있었고, 블라인드에 험담하는 내용이 게시되기도 했다. 누군가는 ‘한남 기자’라고 농담을 섞어 말하는데, 그게 농담으로 들리겠나? 내가 페미니즘 이슈를 (여성운동 진영에 비판적으로) 적극 다뤄왔다는 식의 이야기도 들은 적 있는데 어불성설이다. 내가 대단히, 투철하게 그런 식으로 다뤄왔다면 억울하진 않았을 것이다. 논문을 두고 두 달 동안 하도 떠들길래 논문을 제대로 읽고 기사를 썼을 뿐이다. 논문을 제대로 읽지 않고 두 달 동안 떠들 수 있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다. 나는 지금도 분명하다. ‘학자는 학자답게, 언론은 언론답게.’ 논문을 학술적으로 심사한 사람들은 모든 비판에 열려 있어야 하고 정당한 비판에 응답할 책무가 있다. 언론 역시 기사 팩트에 문제가 없다면 보도를 장려해야 한다. 결함 없는 기사를 못 나가게 하려고 이런저런 이유를 대기보다…. 전반적으로 다 망가져 있다는 절망감이 컸다.”

- 검증 보도를 읽는 독자들도 반으로 나뉜 듯하다.

“양쪽 모두 기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솔직히 의문이 들기도 한다. 기사를 6번 통과시켜준 데스크들도 ‘김성호는 원래 믿는 놈이니까’라서 가능했던 거지, 내 과거 기사처럼 ‘말이 돼서’ 통과한 게 아닌 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세계 유수의 언론들은 공적 영역에서 발표된 논문을 적극 검증한다. 독자들도 유의미하게 지켜보고 평가를 내린다. 일반의 반응과 달리 일부 철학과 학생들은 기사를 읽고 피드백을 주기도 했고, 김우재 교수나 홍기빈 박사 등 몇 분은 제대로 이해하고 반응을 보여주셨다.”

- 수술실 CCTV 설치 법제화 이슈를 오랫동안 보도했다.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들은 수술실 CCTV 설치 법제화를 압도적으로 찬성한다. 64개월 간 드러난 유령수술만 112건에 이른다. 무자격자가 700건 넘는 대리수술을 한 사례가 1건으로 포함돼 있다는 걸 고려하면 실제 사례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의사협회는 결국 ‘의사를 믿어달라’는 것이다. 믿어줄 수 없다. 국민들은 의사에게 대가를 지불하고 의료 서비스를 맡긴 것이다. 그렇다면 보다 안전하게 제어하고 감시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 의료사건을 취재한 경험에 비춰보면, 의무기록, 진료기록부, 관련자 증언 등은 시간이 지나 흔들리곤 했다. 의료사고에 양심선언을 했던 젊은 의사들과 간호사, 간호조무사들도 재판에선 환자의 반대편에서 싸우곤 했다. 입증책임까지 지게 되는 의료사고의 피해자는 ‘흔들리는 증거’로는 소송에서 이길 수 없다. 지금은 어린이집이나 버스에 CCTV와 블랙박스 등이 설치돼 있지 않나? CCTV가 제공하는 혜택이 더 크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만큼 수술실 CCTV 설치 법제화는 필요하다.”

▲ 김성호 전 파이낸셜뉴스 기자가 지난 9일 오후 서울 당산동 미디어오늘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김성호 전 파이낸셜뉴스 기자가 지난 9일 오후 서울 당산동 미디어오늘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의사들은 CCTV 설치가 자유를 제한하고 어려운 수술을 마다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데?

“일부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정책이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다. 그러나 지금은 폐해가 너무 크다. 현재 수술실 CCTV 도입을 주장하는 쪽에서 의사 얼굴을 세세하게 다 인식할 수 있을 정도의 화질과 선명도를 요구하는 건 아니다. 유령수술을 하고 있는지, 병원 소속이 아닌 영업사원들이 대신 수술하는지 등을 파악하기 위함이다.”

김 기자는 ‘고 권대희 사건’에 주목해달라고 했다. 검찰은 지난달 22일 성형 수술 중 피를 흘리는 권대희씨를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성형외과 원장 장모씨와 동료 의사에게 중형을 구형했다. “장씨에게 징역 7년6개월과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해달라”고 한 것이다. 1심 선고는 오는 19일이다. 김 기자는 이 사건이 수익 극대화를 목적으로 ‘공장식 유령수술’을 하다가 발생한 의료사고였다고 말했다. 그는 “유령수술 피해자가 수술실 CCTV 원본을 확보해 법정에서 다툰 첫 사례”라며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도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검찰, 성형외과의사회 의사들과의 실랑이가 계속됐다”고 술회했다.

- 향후 계획이 있나?

“내년 소설, 평론 쪽으로 신춘문예를 준비하고 있다. 기간과 수준을 맞출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퇴사하면 꼭 하고 싶던 일이다. 출판사에서 에세이 제안을 받아서 오는 11월 출간을 예정으로 글을 쓰고 있다. 그동안 취재한 내용과 고민을 담아 정리해볼 생각이다. (기자 질문: 생계에는 지장이 없나?) 아직은 여유로운 편이다. 그래도 1년은 버티지 않을까. 가족은 없으니까. 막상 회사를 나와 글쓰기 과외를 몇 번 해보니 돈은 더 벌 수 있겠다 싶다. 과외 어플리케이션에 가입해서 보니까 현직 기자들이 과외를 엄청 하더라. 아는 기자들이 너무 많았다.(웃음)”

김 기자는 “학자면 학자답게 언론인이면 언론인답게”라고 했다. “기명 논문이 학술지에 공개됐으면 학자로서 비판과 검증은 감내해야” 하고 “표현의 자유를 누리려면 그에 걸맞은 책임감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보도에 대한 비판도 경청하겠다고 했다.


윤지선 교수는 11일 오후 통화에서 “이미 김성호 기자에게 논문에 관한 이야기와 답변을 충분히 전달했다”며 “그럼에도 김 기자 관점에 의해 (내 논문 기사가) 너무 많이 왜곡됐다”고 주장했다. 윤 교수는 “더 이상 기자들과 학술 논문을 이야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윤 교수는 “가톨릭대와 철학연구회에서 학술 검증 차원으로 몇 차례 조사하고 결론이 난 사안”이라며 “(논문에 대한 논의는) 학술 전문가들과 이야기할 문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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