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채용 비리 얘기다. 그런데 이 채용 비리 사건에 우리나라 언론, 검찰, 기업, 정부 등 문제가 들어있다. 우리나라 각종 문제를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LG전자 채용 비리는 작년 2020년 5월15일 경찰발 뉴스로 시작한다. 경찰은 채용비리 혐의로 LG전자를 전격 압수수색 했다. 대부분의 언론이 경찰의 압수수색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같은 날 LG전자의 ‘협력사의 안전도 상생의 축’이라는 보도자료도 많은 언론을 장식한다. LG전자의 발 빠른 대응인지, 아니면 그냥 우연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결과적으로 협력사 안전을 생각하는 수십 건의 LG전자 뉴스가 포털에서 LG 채용 비리 뉴스를 밀어내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 LG전자 채용 비리 압수수색 뉴스가 전해진 날 전해진 사회 공헌 뉴스
▲ LG전자 채용 비리 압수수색 뉴스가 전해진 날 전해진 사회 공헌 뉴스

경찰은 수사를 마무리하고 10월22일 전현직 임직원 12명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였다. 역시 많은 언론이 이 소식을 전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같은 날 LG전자가 한국전 참전용사를 지원했다는 훈훈한 사회 공헌 뉴스가 나왔다. 그런데  참전용사에 생활지원금을 전달한 날짜는 19일인데, LG전자가 보도자료를 배포한 날짜는 22일이다. 그래서 공교롭게도 22일 채용비리 뉴스가 다시 터진 날 십 수개 언론이 따뜻한 사회 공헌 뉴스를 전하고, 그만큼 포털 뉴스에서  채용비리 뉴스가 밀려나게 되었다.

▲ 경찰이 LG전자 채용 비리 혐의를 12명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날 전해진 사회 공헌 뉴스
▲ 경찰이 LG전자 채용 비리 혐의를 12명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날 전해진 사회 공헌 뉴스

공은 경찰에서 검찰로 넘어갔다. 검찰은 ‘피의사실 공표금지’를 철저하게 지켰다. 검찰은 원래 법대로 피의사실을 언론에 공표하지 않는 조직이었나보다. 검찰발 뉴스가 없으니 LG전자 채용 비리 관련 뉴스는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러던 2021년 4월 20일 세계일보의 놀라운 단독보도가 나왔다. 반년 넘게 시간을 끌던 검찰은 12명 중, 8명에 그것도 약식기소만을 청구했다고 한다. 검찰은 이전 KT 특혜 채용에 개입한 김성태 전 의원과 이석채 전 KT 회장에는 4년, 2년의 징역형을 구형했다. 그런데 LG전자 채용 비리는 증거가 더 구체적이다. 경찰의 성공적인 압수수색으로 관리 리스트도 확보했다. 그런데 정식 재판에 넘기지 않고 벌금형에 처해 달라고 법원에 약식기소를 했다는 것은 놀라운 뉴스다.

그런데 나는 세계일보의 단독 기사를 인용한 언론이 거의 없다는 것에 더 놀랐다. 우리나라 언론은 타사의 단독 보도를 잘 인용하지 않는 나쁜 버릇이 있다. 인용하더라도 그냥 “알려졌다”로 쓰는 경우도 많다. 특히, 단독 기사를 보도한 매체가 인터넷 언론일 경우엔 “한 인터넷 매체에 따르면”으로 인용하는 사례가 더 증가한다. 타사 단독을 충실히 인용하는 언론환경이 되기를 소망한다.

놀라운 반전이 나타났다. 법원이 검찰의 약식기소에도 불구하고 정식 공판을 청구했다는 사실이 6월17일 세계일보 단독기사를 통해 드러났다. 법원이 검찰의 약식기소를 정식 공판으로 바꾸는 일은 이례적인 일이다. 다른 언론 대부분도 6월17일 첫 공판 사실을 전했다.

그리고 LG전자는 장애 청소년의 IT 역량을 키우는 사회공헌 사업을 6월18일 발표했다. 6월17일 대부분의 언론이 작성한 LG전자 채용 비리 뉴스는 또다시 십 수개 훈훈한 사회공헌 뉴스로 덮이게 되었다.

▲ LG전자 채용 비리 법원의 첫 번째 공판이 열린 6월17일 다음 날 발표된 사회공헌 보도자료
▲ LG전자 채용 비리 법원의 첫 번째 공판이 열린 6월17일 다음 날 발표된 사회공헌 보도자료

그런데 드디어 채용 비리 리스트가 7월19일 세상에 공개되었다. 세계일보는 LG전자 부정 채용 문건을 단독으로 입수했다. LG전자는 관리대상(GD) 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했는데 세계일보에 따르면 “박근혜정부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중앙부처 고위공무원 딸, 국세청 간부 아들, 조달청 고위공무원 딸, 지방법원 부장판사 동생, 문재인정부에서 공공기관장을 지낸 서울대 교수의 딸” 등이 있다고 한다.

세계일보 특종 이후 몇몇 언론이 ‘GD리스트’ 소식을 전했다. 그런데 또다시 LG전자는 7월21일 지속가능 보고서를 발표했다. 수십개의 언론이 이를 받아쓰면서 GD리스트가 밀려나게 된 것은 물론이다.

작년 5월에 시작된 LG전자 채용 비리는 우리나라 다양한 문제를 정리하여 한 눈에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다. 문제를 요약해 보자.

▲ LG전자 채용 비리 리스트(GD 리스트)가 보도된 직후에 발표된 사회공헌 관련 보고서
▲ LG전자 채용 비리 리스트(GD 리스트)가 보도된 직후에 발표된 사회공헌 관련 보고서

첫째, 구조적 취업 비리. 사기업인 LG전자는 도덕적 책임은 있지만 회사에 끼친 피해는 없다고 주장한다. 일부 맞는 말이어서 더욱 큰 문제다. 실력 있는 직원을 뽑는 것 보다 고위 공직자 자녀를 뽑는 것이 LG전자 발전을 위해 더 좋을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방식의 현대판 음서제도는 LG전자 발전에는 좋을 수는 있지만 우리나라 전체 효율성을 감소시킨다. ‘그들만의 리그’에 속한 그들만의 이익과 국가 전체의 효율성을 맞바꾸는 구조란 얘기다. 청년들의 허탈감과 분노는 말할 필요조차 없다.

둘째, 검찰의 봐주기 기소. 경찰의 효과적 압수수색과 기소 의견 검찰 송치 과정은 수 백건 이상 언론에 보도될 정도로 떠들썩 했다. 그러나 검찰은 6개월이 넘도록 가지고 있다가 약식기소만을 청구한다. 오죽하면 법원이 정식재판으로 돌렸을까. 검찰의 기소독점주의의 폐해가 여실히 드러난다.

▲ 2020년 5월15일 LG전자에서 부정 채용이 있었다는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이 서울 중구 LG전자 영업본부를 압수수색하고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 연합뉴스
▲ 2020년 5월15일 LG전자에서 부정 채용이 있었다는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이 서울 중구 LG전자 영업본부를 압수수색하고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 연합뉴스

셋째, LG전자의 놀라운 사회공헌 보도자료 배포 시점. 기업에 불리한 뉴스가 나오면 몇시간 만에 훈훈한(?) 사회공헌 뉴스 보도자료가 나온다. 그리고 대단히 많은 언론은 이를 받아쓴다. 사회공헌 등 훈훈한 뉴스를 담은 뉴스 제목을 보면 “XX이 사회봉사 활동을 했나 보군”하고 그냥 지나치는 일이 많다. 그러나 이제는 가끔 그 기업을 검색해보고 그 봉사활동의 참뜻(?)을 한 번 느껴보도록 하자. 운이 좋으면 봉사활동의 진정한 참뜻을 깨닫고 우리나라 대기업의 효율성을 체감할 수도 있다.

[관련기사 : 이재용 연관어가 ‘재판’ 아닌 ‘코로나’인가]

넷째, 타사 단독보도를 인용하지 않는 우리나라 언론의 옹졸함. LG전자 채용 비리 관련 세계일보는 엄청난 단독을 수없이 터뜨렸다. 그런데 검찰의 약식기소 단독 기사는 거의 인용 되지 않았다. 세계일보의 관리대상 리스트(GD리스트) 특종은 몇몇 방송 말고는 타 일간지는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일부 인용한 방송도 ‘세계일보’라는 사명은 표시하지 않는다. ‘언론인권센터’는 “언론은 LG채용비리를 왜 적극보도하지 않나”는 논평을 통해 재벌 기업 비리를 소극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타 언론의 GD리스트 비보도는 비겁함보다 옹졸함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즉, 재벌 기업 비리에 눈을 감는 것뿐만 아니라 타 언론 단독 기사를 쓰기 싫어한 이유가 더 크다. 실제로 경찰발 뉴스, 법원발 뉴스는 거의 모든 언론이 기사를 썼다. 백여 건이 넘는 기사가 검색된다. 그러나 ‘세계일보발 뉴스’는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

원래 종이 신문 단독은 방송매체는 인용해도 타 종이 신문은 다루지 않는다. 그리고 방송 단독은 종이 신문에는 나오지만 타 방송에는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만한 사람은 안다.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 ‘더 포스트’는 특종이 아니라 낙종한 워싱턴 포스트의 멋진 후속보도를 찬미한다.

[관련기사 : 팩트도 틀린 이 단독기사는 어디가 단독일까]

너무 우리나라의 모든 부분을 비판한 것 같다. 그럼 칭찬도 하자. 수많은 단독 기사를 쏟아내면서도 다른 언론의 외면으로 덜 알려진 세계일보 기자를 칭찬하자. 조현일, 박현준, 김청윤 기자. 앞으로도 멋진 단독을 기대해본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