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질식’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판적 주장이나 보도가 나오면 허위사실유포죄, 명예훼손죄, 후보비방죄 등을 총동원해 소송을 걸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했던 MBC PD수첩 제작진에 소송을 걸었다. 당시 수사를 맡았던 부장검사는 국가는 국민을 상대로 한 명예훼손 소송의 주체가 될 수 없다며 검사 옷을 벗었다. 그러고 나서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개인 자격으로 고소했고, PD수첩 제작진은 기소됐다. 팟캐스트 ‘나는꼼수다’팀은 수많은 고소로 고초를 겪었다. 이아무개 대위는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을 트위터에 올렸다는 이유로 상관 모욕죄로 기소됐다. G20 행사를 새마을운동과 같이 구시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며 쥐 그림 포스터를 그린 대학 강사는 어땠는가. 경찰은 G20 행사를 방해하는 배후를 캔다며 대학 강사의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검찰은 징역10월을 구형했다. MB정부에서 표현의 자유는 살아남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의결하고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있다. 가장 큰 쟁점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 문제다.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 구제책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않기 때문에 구제액을 높이자는 취지를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를 악용해 언론 입을 틀어막을 수 있다는 우려도 상당하다.

특히 명예훼손과 같은 형사처벌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표현의 자유를 사전 규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위험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력과 자본을 갖고 있는 개인과 집단은 명예훼손죄 처벌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쥐고 소송을 통해 검열 효과를 얻고 있다. 협박죄, 모욕죄와 같은 형벌 규정이 존재하는 현행 형법 체계 안에서 명예훼손죄를 비형벌화하자며 사전규제 효과의 법적 처벌을 강하게 반대해왔던 게 진보진영이었다.

▲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원회(위원장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가 7월27일 오후 언론중재법 개정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원회(위원장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가 7월27일 오후 언론중재법 개정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기성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는 당연히 사회적 지탄을 받아야 하고 언론사도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징벌적 손배제를 악의적·전략적 봉쇄 소송의 창구로 활용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대다수 시민에게 돌아간다. 권력자의 배액배상제 가용성에 대응·보완 장치를 갖춰야 한다는 지적에 답을 내놔야 한다. 대다수 언론 현업단체들이 표현의 자유를 언급하며 민주당 법안을 ‘졸속’이라고 평가하는 대목을 곱씹어야 한다.

징벌적 손배제에 가려 있지만, 기사열람차단청구권 조항도 대단히 위험하다. 언론 보도가 진실하지 않거나 사생활을 침해할 경우, 그리고 인격권을 침해했을 때 기사열람차단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조항이 발동하면 보도 결과물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 기사열람차단 청구 요건을 보면 자의적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많다.

지난해 한국언론진흥재단 설문조사를 보면 기자 94%가 기사 삭제 요청을 받은 적 있다. 비판 대상자는 어떻게든 활자화한 보도를 대중이 보지 못하도록 유무형 압박을 가한다. 기사열람차단청구권 조항은 이런 압박의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언론중재법상 정정보도 청구 절차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기사열람차단청구권을 행사해 기사를 삭제하는 쪽으로 모든 자원을 집중할 게 뻔하다. 언론 보도 피해자를 위한다는 목적이지만 법 적용을 ‘선의’에 기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공인에 대한 검증 보도로써 충분히 요건을 갖춘 기사에도 사생활 침해 정도가 크다며 기사열람차단청구권을 행사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과거 개혁에 대한 언론의 수구성이 언론개혁을 막아서는 ‘공고한 기득권’으로 군림해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합리적 지적과 우려마저 외면한 채 귀를 닫고 밀어붙인다면 ‘언론자유 퇴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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