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해 기자실을 가지 않는 기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기업 기자실은 대부분 폐쇄됐다. 청와대를 제외한 정부 부처는 대다수 기자실이 열려 있다. 출입도 통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언론사 자체적으로 재택근무 빈도를 높이고 있다.

한국 기자들은 통상 출입처 기자실을 중심으로 업무를 해왔다. 기자실 폐쇄에 대한 각종 논란과 별개로 기자들은 출입처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지난달 11일 오전 폐쇄된 청와대 춘추관 기자실에서 관계자가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지난달 11일 오전 폐쇄된 청와대 춘추관 기자실에서 관계자가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몇몇 매체 내부에서는 기자실을 가지 않는 만큼 출입처 기자실 중심 취재 문화를 바꿔보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국 언론의 고질적 문제로 꼽혀왔던 출입처 중심의 받아쓰기 문화를 이번 기회에 탈피해보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일선 기자들은 오히려 코로나19로 업무가 가중되면서 새로운 취재는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한다. 일선 기자들이 문제 삼는 부분은 온라인 대응과 기존의 취재 관행이다.

출입처 탈피해보자는 주문에 한계 느끼는 현장 기자들

일선 기자들은 자신들이 기자실에 가 있지 않은 것을 ‘노는 것’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고 전했다. 그렇다 보니 온라인 대응이라도 하라는 지시가 내려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될 경우 기자실을 벗어나 새로운 취재를 하려고 해도 온라인 대응용 보도자료 받아쓰기 수준의 기사만 양산하게 된다. 출입처를 벗어나 자신이 담당하는 부처 관련 취재를 해보려고 해도 시간이 나지 않는다는 것. 

A종합일간지 소속 기자는 “코로나19 전부터 온라인 클릭 수, 트래픽에 대한 압박이 커졌지만 최근 기자실이 닫히면서 ‘기사라도 뽑아내라’라는 주문이 있다”며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해도 온라인에 출고할 기사가 안 나오면 마치 노는 것처럼 보는 경향이 윗선에 있다”고 지적했다.

B경제지 소속 기자는 “전화를 받거나 카카오톡으로 업무 지시를 받을 때 ‘어디서 뭐 하냐’는 이야기를 제일 먼저 듣는다”며 “코로나19 전부터 내가 기자인지 포털에 기사를 입력하는 직장인인지 헷갈렸지만 기자실을 가지 않게 되면서 온라인 기사 양산 빈도가 더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C온라인매체 소속 기자는 “특히 온라인매체의 경우 클릭이라는 지표가 있지 않나”라며 “코로나19로 인해 광고 매출이 떨어졌으니 클릭 수라도 높이라는 이야기가 회의 때 종종 나오기도 한다”고 했다.

▲지난 6월30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윤석열 예비후보가 국회 소통관을 찾아 기자들과 인사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노컷뉴스
▲지난 6월30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윤석열 예비후보가 국회 소통관을 찾아 기자들과 인사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노컷뉴스

“온라인 대응, 연합뉴스 받아쓰기 주문에 지친다”

예전부터 이어져 오는 취재 관행이 새로운 시도를 막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연합뉴스 받아쓰기다.

주니어급 기자들 사이에서는 데스크 급 기자들을 비판할 때 ‘연합뉴스 맹신론’을 늘 언급한다. 연합뉴스에서 속보가 나가거나 출입처 관련 기사가 나가면 즉각 받아쓰라는 지시가 내려오기 때문이다.

D경제지 소속 닷컴사 기자는 “연합뉴스에서 썼는데 안 쓰고 뭐 하냐는 문화는 코로나19 전이나 후나 마찬가지”라며 “새로운 시각으로 무언가 해보려는 고민 없이 연합뉴스가 썼으니 일단 그대로 쓰고 보자는 지시가 새로운 도전을 막고 있다”고 진단했다.

E경제지 소속 기자는 “일개 유튜버보다 못하다는 소리를 왜 우리라고 듣고 싶겠나”라며 “온라인 대응에 연합뉴스 기사 받아쓰기에 그러다 보면 하루에 취재 기사는 1건도 없이 기사 5건, 6건을 받아쓰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꼬집었다.

F종합일간지 소속 기자는 “아직 나도 주니어급 일선 기자이지만 어느덧 연합뉴스 속보를 보고, 연합뉴스에서 뭐가 나왔나 보게 돼 버렸다”며 “몇 년을 이 같은 데스크 지시로 지내왔나 보니 말 그대로 낡은 취재 관행에 나 역시 매몰된 것”이라고 했다.

▲▲사진=Getty Images Bank
▲사진=Getty Images Bank

“여유 생긴 지금, 출입처와 연관된 이해당사자 찾아 나서야”

코로나19 팬데믹도 분명 언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긍정적인 방향으로, 새로운 취재 환경을 조성하기보다는 기사 양산에 매몰되는 등 오히려 더욱 악화했다.

온라인 대응과 연합뉴스 받아쓰기를 벗어나 기자실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새로운 취재법, 기존에 의존하던 기사 작성이 아닌 새로운 기사 작성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팬데믹이 한국 언론 사회에서도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바라봤다. 출입처에서 정보가 나오는 시스템을 완전히 탈피할 수는 없지만 기자 개인의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시간적 여유가 생기는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실험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기존의 관행적 지시가 있기는 하지만 출입처에 가서 보도자료를 받고 그쪽의 설명만을 듣고 기사 쓰는 것을 넘어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와 공간적 여유가 생긴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며 “출입처가 아닌 출입처 밖 이해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하는 과정이 이뤄지고 있는지 언론사 스스로 자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또다시 근본적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지만, 포털에 의존하는 방식에서 발생하는 단신 기사가 아닌 심층적 기사가 소비되는 시장환경을 만드는데 정책적 도움을 줘야 한다”며 “분명 몇몇 일선 기자들은 조금 더 좋은 기사를 생산하고 있는데 관행에 맞는 기사를 생산하라는 압박에 시달리고도 있지 않겠나. 결국 근본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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