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올림픽 3관왕에 오른 양궁 금메달리스트 안산 선수가 ‘페미니스트 논란’에 휩싸였다. 일부 남성 커뮤니티가 안산 선수의 숏컷 머리 스타일과 ‘오조오억’, ‘웅앵웅’ 등 안 선수가 소셜미디어에서 사용했던 몇몇 어휘를 ‘페미니스트의 증거’라며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심지어 ‘페미니스트인 안산 선수의 금메달을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러한 황당한 주장은 언론으로 옮겨져 해외까지 수출됐다. 로이터통신이 ‘한국 양궁 선수의 짧은 머리가 반페미니스트 정서를 자극했다’는 제목으로 이 논란을 자세히 다뤘고, 미국 UPI통신과 영국 인디펜던트도 뒤이어 보도했다. BBC는 안산 선수의 페미니스트 논란을 ‘온라인 학대’라 칭했다.

올림픽이라는 전 세계적 이벤트와 맞물려 국가적 망신으로 소개되지 않았다면, 안산 선수의 페미니스트 논란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여성 혐오주의자들의 승리로 끝났을 터였다. 안산 선수 이전에 GS25 손가락 모양 페미니스트 논쟁이 있었고, 그보다도 전에는 게임 업계와 디지털 창작 공간에서의 페미니스트 사상 검증과 여성 퇴출이 있었다. 이들 주장은 세력을 갖춰 공격 대상자 해명까지 끌어내는 수준으로 성장했었다.

▲ 양궁 3관왕을 차지한 안산이 7월30일 일본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전 시상식을 마친 뒤 금메달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 양궁 3관왕을 차지한 안산이 7월30일 일본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전 시상식을 마친 뒤 금메달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온라인에서 시작된 여성 혐오주의자들의 ‘페미니스트 검증’에 이러한 승리의 경험을 만들어줬던 건 다름 아닌 언론이었다. 언론은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취재원으로 해 그들의 주장을 여과 없이 따옴표로 옮겼다. 언론으로 옮겨진 주장은 인터넷에 떠돌 때와 달리 공론장에 입성할 권위와 영향력을 지니게 된다. 온라인에서 허물어질 수도 있었던 이러한 여러 페미니스트 논란들은 언론에 오르내리며 하나의 ‘세력화한 의견’이 됐고, 혐오를 기반으로 한 온라인 폭력에 정당성을 만들어주는 계기가 됐다.

언론이 혐오를 그대로 옮기는 이유는 조회 수 때문이다. 혐오는 그 자체로 자극적 콘텐츠라서 사람들 관심을 끌기 적합하다. 언론은 사람들 관심을 모아야 하고, 온라인 속 혐오주의자는 언론이 만드는 공론장에 입성하길 원하니, 일종의 ‘공생 관계’ 같은 것이 형성된 것이다. 그래서 최근의 페미니스트 논쟁은 예외 없이 일정한 패턴을 따랐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에서 생산되고, 언론을 통해 전달돼 확산하고, 이것을 정치권에서 받아 표몰이 수단으로 써먹기도 한다.

언론은 우리 사회 공론장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우리 사회 다양한 목소리를 균형 있게 싣고 생산적 논의를 끌어내는 역할을 담당한다. 하지만 그 역할은 누군가를 향한 혐오 표현을 그대로 옮기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언론은 판단했어야 했다. 무분별하게 옮긴 혐오 표현이 남성 또는 여성 혐오 현상을 오히려 부추긴 건 아니었는지. ‘페미니스트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이 논의가 혐오의 구조적 문제를 정말 해결할 수 있는 문제 제기였는지 말이다. 그러한 판단 없이 여과되지 않은 의견을 따옴표로 전달한 언론은, 혐오의 발화자나 다름없었다.

우리 언론에 제안하고 싶다. 이제 혐오의 자극성에 기대어 조회 수를 얻는 일은 그만하자. 아무리 조회 수가 중요해도, 최소한 보도하지 말아야 할 것을 보도하지는 말자. 만약 혐오의 문제를 다루고 싶다면, 맥락을 함께 보도하자. 혐오 이면에 존재하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살펴보고, 그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함께 제공하자. 혐오를 따옴표로 그대로 전달해 혐오에 권위와 정당성을 실어주는 일은 이제 없게 하자. 이는 국가적 망신으로 끝나지 않을, 우리 사회 품격과 건강함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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