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집회와 코로나19 확진을 연결한 정부 발표를 토대로 민주노총에 대한 마녀사냥식 보도가 확산한 가운데, 강원 원주시에서 파업 농성하는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노동자와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관련 일부 보도는 논리가 사라진 ‘조리돌림’ 수준에 이른 모양새다.

지난 7일 지역감염이 확인된 3명의 확진자에 대해 ‘민주노총 집회’를 감염경로로 단정하고 신상 관련 정보를 노출하거나, 파업 농성하는 노동자들을 좀비에 빗대는 등 앞뒤 맥락을 전하지 않은 채 부정적 이미지를 덧입히는 보도들이 나왔다. 대다수 언론은 ‘기계적 중립’을 취하는 듯하면서도 왜곡된 정부 입장을 주로 전했다.

“킹덤인줄” “우르르 기어올라” 덮어놓고 좀비 비유


지난 23일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지부 노동자들의 집회 사진을 전하면서 ‘좀비’에 비유하는 보도가 연달아 나왔다. 한국경제와 파이낸셜뉴스, MBN, 뉴데일리, 뉴스1, 조선일보는 이날 노동자들이 공단을 둘러싼 경찰 차벽을 피해 언덕길로 집회 장소로 향하는 장면을 좀비물 드라마 ‘워킹데드’ ‘킹덤’ 등에 빗대거나 “기어오른다”고 표현했다.

▲파이낸셜뉴스 웹사이트 갈무리
▲파이낸셜뉴스 웹사이트 갈무리

“깜짝이야~킹덤 찍는 줄”…이번엔 언덕 기어오른 민주노총(한국경제)
“민주노총, 킹덤 찍나”.. 출입 막히자 언덕 넘어 집회 시도(파이낸셜뉴스)
[영상] 민주노총, 언덕 넘어 원주 집회 강행…“워킹데드 같다”(MBN)
“와~! 코리안 워킹데드다”… 언덕 오르는 민노총 시위대, 네티즌 반응(뉴데일리)
‘좀비 영화가 아닙니다’ 언덕 넘어 집회장소로(뉴스1)
원주 건보 대규모 집회 막히자… 민노총, 우르르 언덕 기어올랐다(조선일보)

노동자들의 집회 시도를 ‘좀비 공격’에 빗대면서 폭력적이거나 불결한 이미지를 덧입히는 것 외에 보도 목적을 찾기 어렵다. 이들 기사에 노동자들이 직고용을 요구하며 교섭하다 파업에 나선 배경이나 집회 금지 조치의 정당성 여부를 따지는 대목은 없었다.

보도들은 ‘MLB파크’나 ‘에펨코리아’ 등 커뮤니티에 “좀비가 따로 없네. 워킹데드 한 장면 같다” 등 내용의 댓글을 제목에 썼다. 경찰이 차벽으로 본사 주변을 에워싸면서 조합원들이 이를 우회해 언덕길로 집회 장소로 향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과 영상(GIF)도 첨부했다.

‘집회만 금지’ 지적없이 “불법” “게릴라”


집회를 ‘좀비 공격’에 빗댄 일부 언론 외에도 대다수 언론은 집회 본질을 지적하거나 건보고객센터 노동자 목소리를 전하지 않았다. ‘4단계 위반’을 강조하며 ‘불법’과 ‘확진’, ‘게릴라’를 열쇳말로 한 보도가 주를 이뤘다.

동아일보는 집회 전날인 22일 1면 머리기사와 3면, 사설을 통해 원주시 주민들이 민주노총 집회를 막아달라며 1인 시위와 서명 받기를 한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매일경제는 집회 현장을 보도하며 “경찰에 진입 막힌 민노총, 정부 비웃듯 ‘게릴라 집회’” 기사를 냈다. “민노총, 경찰 피해 언덕까지 넘어 불법집회”(조선일보), “‘불법집회’ 민노총의 적반하장… ‘방역 실패 책임 전가 말라’”(문화일보) 등 불법집회를 강조한 보도가 다수였다.

▲24일 동아일보 2면
▲24일 동아일보 2면
▲매일경제
▲24일 매일경제 3면

언론은 노동자들이 언덕을 오른 배경인 지자체의 ‘차별 행정’은 지적하지 않았다.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노동자들이 건보공단 앞 집회를 하루 앞둔 22일, 원주시가 집회에만 거리두기를 4단계로 격상하면서 이를 전면 금지했다. 그 밖의 시설·활동엔 3단계를 적용했다. 공공운수노조는 3단계 기준인 49명씩 500m 거리를 띄우고 집회를 하려 했으나 공단 인근이 경찰 차벽으로 봉쇄됐고, 이들은 결국 언덕을 오르게 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후 27일 원주시장에 “집회에만 별도 기준을 적용해 전면 금지 행정명령을 발동한 것은 헌법과 국제인권기준에 따른 집회 자유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그러나 원주시는 현재까지 집회 전면 금지조치를 유지하고 있다. 백신 접종자 ‘거리두기 예외’도 집회에만 적용하지 않고 있다.

▲원주시는 집회·시위에만 4단계 거리두기를 적용하는 한편, ‘예방접종 완료자를 집합 인원 산정에서 제외하는 조치’도 집회에만 적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원주시는 집회·시위에만 4단계 거리두기를 적용하는 한편, ‘예방접종 완료자를 집합 인원 산정에서 제외하는 조치’도 집회에만 적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파업·집회 본질은 수면 아래로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선 이유는 수면 아래로 잠겼다.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노동자들은 7월 초 건보공단에 ‘성실한 교섭’을 요구하며 세 번째 파업에 들어갔다. 이들은 건강보험 가입자들을 상담하면서 국민의 개인·민감정보를 다루지만 고용 형태는 민간위탁업체 소속 간접고용 노동자들이다. 건보공단의 고객센터 재공영화, 즉 직접고용을 요구한다.

차미현 공공운수노조 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대구지회 정책부장은 “건보공단이 당초 문제를 해결했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텐데 정치권과 언론이 이 부분은 묻지 않는다. 우리는 좀비나 떼쟁이가 아닌,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공약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최저시급 여성 노동자들”이라며 “건보공단의 외면과 원주시의 ‘정치방역’엔 비판 없이 노동자들이 소리를 내는 것만 막으려고 하는 데에 가슴이 무너진다”고 했다.

▲지난 29일 경찰이 강원 원주시 건강보험공단 앞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파업 농성장에 펜스를 설치한 상황. 사진=공공운수노조
▲지난 29일 경찰이 강원 원주시 건강보험공단 앞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파업 농성장에 펜스를 설치한 상황. 사진=공공운수노조
▲지난 23일 건강보험공단 농성장에서 단식에 돌입한 이은영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수석부지부장이 고객센터 비정규 노동자 직접고용을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노동과세계 제공
▲지난 23일 건강보험공단 농성장에서 단식에 돌입한 이은영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수석부지부장이 고객센터 비정규 노동자 직접고용을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노동과세계 제공

차 부장은 “공단은 코로나19 시국에 재난소득, 백신예약 관련 업무를 지시하며 ‘대통령 지시니 자부심을 가지라’고 했다. 노동자들은 16년 간 뼈가 부서져라 시키는 대로 일해왔다”며 “그러나 정작 노동자들이 업무에 걸맞은 공영화·직영화를 요구하자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건보공단은 4대보험 공단 중 유일하게 고객센터 노동자 정규직 전환 협의기구조차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있는 곳이다. 근로복지공단과 국민연금공단은 일찍이 고객센터를 직영화(직접고용)했다.

그는 “방역 기준에 맞춰, 원주시 3단계 격상에 맞춰서라도 농성하고 싶었지만, 집회에만 부당하게 ‘4단계’ 봉쇄를 하면서 외칠 데가 사라졌다.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엊그제만 해도 없던 차벽과 철조망이 공단을 에워쌌고, 언론은 농성 중 확진자가 없었는데도 우리를 코로나 확산의 주범인 양 얘기한다. 농성장의 노동자들은 보도와 댓글을 보고 우울감과 상처를 느끼고 있다”고 했다.

확진자 주거지 밝히며 ‘낙인’, 정부가 포문


건보고객센터 파업 비난은 코로나19 확진자 3명의 감염 원인을 민주노총 집회에 돌리는 주장과 맞물려 일어났다. 정부가 ‘낙인’ 포문을 열고 언론 전반이 확대재생산했다. 김부겸 총리가 17일 가장 먼저 확진 사실을 알리며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감염경로가 밝혀지지 않았고 질병관리청이 평균 잠복기에 미뤄 ‘집회를 통한 감염 가능성이 낮다’고 밝힌 시점이다.

공성식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실장은 “1차 조사에서 확진자들이 가장 먼저, 거의 유일하게 받은 질문이 ‘집회 다녀왔느냐’였다. 그 날 바로 김 총리가 이 사실을 먼저 알리며 ‘깊은 유감’ 입장을 냈고, 본격 조사는 이후에야 이뤄졌다”며 “확진자가 실제 감염과 무관한 것부터 답변을 요구받은 뒤 본격 조사도 전에 정부가 이를 알린 것은 엄청난 문제”라고 했다.

▲김부겸 국무총리. 사진=국무총리실
▲김부겸 국무총리. 사진=국무총리실

일부 언론은 확진자 주거 지역도 노출했다. 국민일보와 경인일보의 “민주노총 집회 확진자 3명 중 1명 인천시민”, “서울집회 참가 ‘인천 민주노총 조합원’ 코로나 걸렸다” 기사다. 공 실장은 “확진자 3인을 집회 참가와 연결 지으며 인권침해하는 보도가 나오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4차 진원지인 것처럼 매도되니 고통스러워했고, 정신적으로 힘들어했다”고 했다.

▲YTN, 국민일보, 경인일보 보도 제목 갈무리
▲YTN, 경인일보, 국민일보 보도 제목 갈무리

YTN은 민주노총 집회와 무관한 사건·사고를 다루며 ‘민주노총’을 강조하기도 했다. 방역 수칙을 지키라는 카페 업주에게 욕설한 50대 A씨가 모욕 혐의로 기소의견 송치될 예정이라는 사건을 전달하면서, 제목과 기사에 A씨가 ‘민주노총 조합원’이라고 밝혔다.

공 실장은 정부와 원주시, 언론이 왜곡된 주장으로 상승 작용을 일으키면서 집회·시위를 입막음하기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그는 “김 총리는 확진자에 대한 ‘유감 표명’ 뒤 21일 공공운수노조가 신고를 마친 집회마저 철회를 요구했다. 적법한 집회를 ‘위험한 집회’로 규정해 언론에 확전을 시킨 셈”이라며 “이 같은 민주노총 때리기의 가장 큰 피해자는 건보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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