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이 종사자의 권리 구제를 위한 기구 ‘예술인 신문고’의 실효성을 두고 강도 높은 비판을 내놨다. 신문고가 운영된 7년 간 신고 1000여건이 누적됐지만 과태료 처분은 2건에 불과하다는 게 문제의 방증이다. 종사자들은 “소관부처 문체부를 포함해 사건 해결에 보다 진보적인 자세를 갖추길 바란다”고 밝혔다.

문화예술노동연대는 지난 29일 오후 ‘문화예술 불공정 피해신고사례 및 신고센터 운영방안’을 모색하는 온라인 집담회를 열었다. 문화예술노동연대는 문화예술계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출판, 방송, 영화, 음악, 만화, 연극 등 다양한 영역의 종사자들이 모인 연대기구다.

논의는 예술인 신문고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실태에 쏠렸다. 예술인 신문고는 예술인복지법에 근거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운영하는 피해 구제 기구다. 2014년부터 운영됐고, 크게 불공정 행위와 서면계약 위반에 대한 신고를 받고 피해자에 법률 지원을 해준다.

▲영화산업노조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인한 예술인신문고 신고 및 처리 결과별 통계. 사진=문화예술노동연대 자료
▲영화산업노조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인한 예술인신문고 신고 및 처리 결과별 통계. 사진=문화예술노동연대 자료

7여년 운영된 기구의 시정명령 횟수는 지극히 드물었다. 홍태화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사무국장은 2014~2020년 신고 누적 건수는 1005건이고 이 중 종결된 사건은 798건이지만, 과태료가 부과된 사건은 단 2건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종결 사건 중 대부분은 소송지원(411건)으로 끝났고 화해조정은 16건이었다. 권고를 내리기 전 시정이 완료되는 등 별도조치가 불필요한 사건은 227건이었다.

헐거운 감독 기능은 최근 방송작가 사건에서도 확인됐다.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는 지난해 8월 예술인신문고를 통해 과태료 부과 결정을 받았던 외주제작사가 올해 4월까지 이행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 지난해 원진주 전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장이 서면계약서를 쓰지 않았다고 신고한 제작사였다.

과태료 부과 조치는 지난 6월 중 완료됐다. 방송작가지부가 ‘왜 과태료 부과가 지연됐느냐’고 소관부처 문체부에 공문을 보낸 이후였다. 문체부는 답변에서 ‘코로나19 장기화로 제작사 재정 상황의 어려움을 고려해 유예했다’며 과태료 부과 조치를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김순미 방송작가지부 사무국장은 이날 “위법이 적발됐음에도 정상적인 행정권을 행사하지 않은 직무유기”라고 지적했다.

▲'서면계약 위반' 신고 사건에 2020년 8월 과태료 결정이 났으나 올해 5월까지 과태료 처분 집행이 이뤄지지 않았다. 방송작가지부의 항의 공문에 문화체육관광부가 답변한 공문 중 일부. 사진=문화예술노동연대 자료
▲'서면계약 위반' 신고 사건에 2020년 8월 과태료 결정이 났으나 올해 5월까지 과태료 처분 집행이 이뤄지지 않았다. 방송작가지부의 항의 공문에 문화체육관광부가 답변한 공문 중 일부. 사진=문화예술노동연대 자료

종결 사건의 과반을 차지하는 소송지원(411건)을 둘러싸고도 비판이 나왔다. 김순미 사무국장은 “행정기관의 사실 조사와 적극 중재 등으로 임금체불 같은 불공정한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하다”며 “소송지원 중심으로 운영돼 소송을 결심한 사건들만 신고 안내를 하게 된다는 게 매우 아쉽다”고 비판했다.

종사자들은 신고 사건의 최종 심의·의결기구인 ‘문화예술공정위원회’(문예공정위)의 존재감도 느끼지 못했다. 홍태화 사무국장에 따르면 문예공정위는 7년간 44회 회의를 열었다. 매년 6~7회 정도다. 이마저 ‘분과회의’를 뺀 ‘조정회의’는 16회밖에 되지 않는다.

홍 사무국장은 초기 문예공정위원 중엔 예술인이 한 명도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예술인복지재단이나 문체부 사이트 검색해도 이들 위원 명단조차 공개돼있지 않다”며 “위원 명단 뿐만 아니라 관련한 통계 등 기초자료도 공개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현 문화예술공정위원회 위원 명단. 이들은 예술인신문고에 접수되는 신고 사건의 최종 심의·의결 기구다. 사진=문화예술노동연대 자료
▲현 문화예술공정위원회 위원 명단. 이들은 예술인신문고에 접수되는 신고 사건의 최종 심의·의결 기구다. 사진=문화예술노동연대 자료

직접 정보공개 청구를 한 결과 현재는 위원 16명 중 11명이 회계사·변호사·교수·연구원 등의 전문가이고, 1명은 일간지 문화부 기자였다. 현직 예술인이라 볼 수 있는 위원은 4명이었다. 한국방송실연자협회 이사장, 연극배우,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 이사, 시인 등이다.

“지각비는 싸워봤자 이길 수 없다. 작가 분들이 사회생활 안 해봐서 그렇다.” 2017년 레진코믹스 불공정 행위 논란 당시 웹툰작가 20여명이 단체로 신문고를 방문해 들었던 말이다. 하신아 웹툰작가노조 사무국장은 미온적인 신문고의 대응을 접한 사례 3건을 발표했다.

하 사무국장은 “신문고의 역할은 동네 1차 병원과 같다. 감기 같은 질병은 여기서 맡아 주길 바라는데 이게 안되니 당사자들은 좌절 후 ‘뺑뺑이’를 돈다”며 “콘텐츠진흥원 공정상생센터, 서울시 눈물그만센터, 국회 등으로 간다. 이것마저 안되니 SNS에 부당함을 호소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 사무국장은 이에 “문체부의 신고창구 일원화와 실질적 지원시스템 구축이 필요하고, 상담 전문가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며 “이는 당사자단체와 긴밀한 협의를 통해서 상담 전문가로 하여금 문제 해결에 보다 진보적인 자세를 갖추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노동조합 등 대표 단체가 신고 주체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도 나왔다. 개인이 개별로 문제제기를 하기 쉽지 않은 상황인데 현재 신고 시스템은 신고자가 자기 신원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다. 방송작가지부는 지난해 ‘서면 계약 위반’ 집단 신고 시도가 무산된 사례를 들었다. 애초 20명 이상의 작가들이 모였으나 개인 정보와 소속, 사업장에서 일했던 자료를 모두 제출해야 했기에 대부분이 포기해 결국 지부장만 신고서를 제출할 수 있었다.

문체부의 소극적 태도도 지적됐다. 표준계약서 작성을 의무화하거나 불공정 행위 전력이 있는 사업체는 정부 지원 사업에서 불이익을 주는 방식은 충분히 집행할 수 있음에도 의지를 보이지 않는단 지적이다.

홍태화 사무국장은 이밖에 “신고 상담엔 예술 현장의 실태를 파악하고 있는 예술인이 참여해야 한다. 차라리 예술 현장을 잘 아는 노조가 신고센터를 운영하는 걸 지원하는 방식도 가능하다”며 “다른 행정처분 사건과 마찬가지로, 예술인 신문고 신고 사건도 처리 기간을 정해야 한다”고 보완점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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