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PD수첩’은 과거 이명박 정부 이후 언론 탄압의 상징과도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2010년 국가정보원 문건에 “환골탈태” 대상으로 기재된 PD수첩은 실제로 이후 대대적인 PD 교체, 작가 전원 해고 등 풍파를 겪었다. ‘낙하산’ 경영진이 물러나고 PD수첩 앵커 출신이자 해직자였던 최승호 PD가 사장에 취임한 뒤 2017년 12월, 제작거부 5개월만에 재개된 PD수첩은 그간 MBC가 저지른 과오에 대한 반성문으로 문을 열었다.

그렇게 4년여가 지났다. 복귀 이후 진행을 맡아온 한학수 PD는 CP가 됐고, 올해 1월부터 서정문 PD와 전종환 아나운서가 공동 MC를 맡고 있다. PD 1인 앵커라는 기존의 방식을 벗고 ‘투 톱 체제’로 전환됐다. 취재 후기는 유튜브로 풀고, 타 언론 매체와의 협업이 확대되고 있다. 1990년 첫방송 이래 31년차를 맞은 PD수첩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진단에서다. 새로운 진행 체제로 반년을 보낸 지금, 어떤 성과와 과제를 체감하는지 두 진행자에게 물었다. 26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몰에서의 대화, 28일 통화를 정리했다.

2006년 MBC에 입사한 서정문 PD는 PD수첩에서 ‘코리아나호텔 방용훈 사장 부인 사망 사건’ ‘소리박사 배명진 교수의 진실’ ‘명성교회 800억원 비자금 의혹’ 등을 취재·보도했다. 언론인권상, 한국PD대상 ‘올해의 PD상’ 등을 수상했다. 2005년 입사한 전종환 아나운서는 2011년 보도국으로 옮겨 사회부·문화부 기자로 일한 바 있다. 7년 만에 아나운서국으로 돌아온 뒤 ‘생방송 오늘아침’을 진행하고 있다. ‘뉴스콘서트’ ‘뉴스투데이’ 앵커를 맡은 바 있다.

▲MBC 'PD수첩' MC를 맡고 있는 서정문 PD(왼쪽)와 전종환 아나운서 ⓒMBC
▲MBC 'PD수첩' MC를 맡고 있는 서정문 PD(왼쪽)와 전종환 아나운서 ⓒMBC

- ‘PD수첩’ 진행 맡은 지 반년이 지났다. 처음 맡았을 때 기억이 나나.

서정문 PD  “PD수첩은 중요한 프로그램 중 하나고 역대 진행자들이 쟁쟁해 부담이 됐다. 하지만 PD수첩에도 변화가 필요하고, PD가 진행해왔던 나름의 전통은 이어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고민하다가 ‘언제 이런 걸 해보겠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종환 아나운서  “서 PD가 겸손하게 말했지만 늘어가는 실력이 빨랐다. 개인적으로는 사실 부담스러웠다. PD가 해왔던 일에 왜 투입이 되고, 뭘 해야 하는지 고민스러웠다. 둘의 시너지를 어떻게 이룰지 고민이 많았다.”

PD수첩은 MC 체제 변화의 주된 이유를 ‘스토리텔링 강화’라 설명했다. PD 진행자를 유지하면서도 딱딱함을 줄이는 ‘스토리텔러’ 역할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그 일환으로 두 진행자는 지난 1월 ‘재건축의 신 in 펜트하우스’ 편에선 서울 서초구 반포 일대 아파트를 그래픽으로 구현한 버추얼 스튜디오에 섰고, ‘슈퍼카와 꾼들’ 편은 실제 슈퍼카에 탑승했던 진행자들이 내리는 장면으로 시작했다.

서정문 PD  “PD수첩은 굉장히 센 아이템을 많이 해왔다. 폭로성 아이템, 사회·정치적으로 중량감 있는 소재를 다뤘다. 제작 PD로서도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더 친절하고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전종환 아나운서  “과거의 PD수첩과 비교하면 유연할 수 있는데, 요즘 우리가 접하는 여러 매체의 유연성은 훨씬 더 많이 변하고 있다. 다른 콘텐츠의 진행들과도 비교해가며 논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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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PD수첩' MC 서정문 PD ⓒMBC

- 기억에 남는 아이템이 있다면.

서정문 PD  “‘국정원과 하얀방 고문-공작관들의 고백’편이다. 본방송엔 제작한 PD가 국가정보원 요원을 어떻게 만났는지 나와 있지 않다. 유튜브 ‘PD수첩’ 채널의 ‘PD수첩 코멘터리’에서 국정원 직원이 MBC에 전화를 걸어왔을 때 허위제보가 아닌가라는 의심을 하던 끝에 장호기 PD가 제보자를 만나러 간 이야기를 했다. 대형건물 주차장에서 만나자고 해서 차를 끌고 나갔더니 제보자가 어떻게 알았는지 PD 차에 들어와 시작한 이야기가 4시간 동안 이어지고, 흔히 생각하는 스릴러 영화 오프닝 같은 장면이 현장에서 벌어졌다. 이런 이야기를 코멘터리로 녹여내니까 훨씬 더 몰입 되더라.”

전종환 아나운서  “‘각하의 빚 970억원, 전두환 일가 세습의 비밀’ 편도 재밌었다. 다 나왔던 얘기인가 싶었는데 실제로 전두환의 아들에서 3세까지 권력과 부가 세습되고, 3세의 경우 그저 재벌집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유학파 CEO처럼 활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해결됐다고 생각하는 문제가 여전히 현실에 존재하고,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과거를 돌아보게 해줬다.”

- ‘PD수첩 코멘터리’는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서정문 PD  “취재 AS 같은 것이기도 하고, 시청자와 소통하자는 취지다. 예전처럼 일방적으로 방송을 내놓는 방식이 아니라, 내놓은 콘텐츠에 대한 반응을 살펴보고 대응하자는 거다. PD수첩은 ‘하드보일드’ 장르이지 않나, ‘스핀오프’랄까 다른 장르로서 코멘터리를 해보려 했다.”

2017년 12월, 5개월간 중단됐던 PD수첩이 재개될 당시 진행을 맡은 한학수 PD는 소위 ‘적폐’에 집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구체제’에서 이뤄졌던 잘못된 부분들”, 예컨대 “국정원 개혁, 국민 안전, 법원의 권위주의, 지방 토호들의 적폐 등”을 우선순위에 둔다는 취지였다. 10년 가까운 제작자율성 침해 논란, 무분별한 징계·전보·해고에서 벗어난 제작진의 다짐이었다. 이는 한편으로 시청자들이 탄압에 시달리던 언론을 응원하고, 기다려줬던 시간이 끝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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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PD수첩' MC 전종환 아나운서 ⓒMBC

- 2017년과 비교하면 여러 환경이 바뀌었는데, 아이템 선정 기준에도 변화가 있나.

서정문 PD  “PD수첩 자체에 큰 변화가 있지는 않다. 천안함, 국정원, 하나고 등은 PD수첩이 해왔던, 다른 탐사보도에서는 하지 않는 이야기다. 다만 이런 이야기를 투박하게 폭로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야기의 배경과 정서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해서 몰입하도록 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제작진으로서는 다수 시청자의 피부에 와닿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최근 다룬 주식, 부동산, 재개발 이야기가 그런 사례들이다.”

전종환 아나운서  “시청률 면에서도 그런 분야 관심이 높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하면 떠오르는 아이템들이 있는데 PD수첩은 그런 스토리텔링을 취하지는 않는다. 정치적 분야에서 벗어난 사회, 문화, 경제 이슈 등을 PD수첩을 통해 바라볼 수 있지 않은가 생각하고 있다. PD로도 젊은 분들이 유입되고 있고,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 같기도 하다.”

- PD수첩은 거대 권력을 다룬다는 인식이 있다. 다만 최근 아이템 중에선 지난 집권세력 시기 발생한 사안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서정문 PD  “소위 ‘적폐 청산’ 콘텐츠를 많이 제작하진 않았지만 그런 흐름이 있었던 건 사실인 거 같다. 현실 정치 권력에 대한 비판 수위가 낮은 것 같다는 지적도 가능할 거 같다. 하지만 부동산의 경우 정책 실패에 대해 몇 차례에 걸쳐 보도했다.”

전종환 아나운서  “진영논리 극복은 우리 사회 모든 언론이 극복할 문제이고, PD수첩이 더 노력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할 수 있다. ‘성에 차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면 사회·정치권력에 대한 비판이 더 많이 활발하게 자유롭게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도 맞다.”

서정문 PD  “PD수첩 댓글을 보면 사랑해주시는 분들이 많지만 그만큼 순수하게 미워하시는 분들도 많다. ‘너는 왼쪽이지, 오른쪽이지’ 식의 오해를 받는 걸 알기에 의식적으로 아니라는 걸 이야기로 보여주려 노력한다. 결과적으로 올해 방송들 색깔이 그런 편인 것 같다. 천안함이야말로 각 진영에서 180도 다른 해석을 하는 사건인데, 생존자 이야기를 오롯이 들은 적이 없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에 집중하면 돌파구가 되는 좁은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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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PD수첩' 방영분 갈무리

- 최근 MBC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가 ‘검언유착’ 의혹(채널A 사건)이다. MBC ‘뉴스데스크’ 보도로 시작됐지만 처음에는 PD수첩 측에 제보가 들어왔다. 관련 아이템 계획은 없나.

서정문 PD  “당시 ‘장자연 사건’ ‘검찰기자단’ 편을 연출했던 김정민 PD에게 여러 제보들이 들어왔고, 채널A 이동재 전 기자가 취재원을 협박했다는 내용이 그 중 하나였다. 앞서 PD수첩에서도 밝혔지만 당시 김 PD는 준비 중인 방송이 있었기 때문에 보도국(통합뉴스룸)에 전달을 해줬다. PD수첩에서 다룰지 당장 구체적 논의가 이뤄진 상태는 아니다.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 있다.”

- ‘검언유착’ 의혹은 이미 2019년 ‘검찰기자단’ 편에서 제기했다. 검찰과 언론을 주목하는 이유는.

서정문 PD  “PD수첩 자체가 ‘검사와 스폰서’를 비롯해 검찰 입장에서 불편한 프로그램 중 하나일 거다. 검찰이 PD수첩을 과도하게 공격한 경우도 있다. 실제로 취재를 하다 보면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는 경우도, 수사 내용이 언론과 ‘협공’을 통해 들어오는 경우도 많이 봤다. 검찰권력은 일반 시민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사법체계인데 그 지점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PD수첩에는 핵심 제보자부터 일반 시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일부 제보자의 자질을 의심하는 반응이 이어지거나, 실제 크고 작은 문제들로 비판받기도 했다. ‘검찰기자단’ 편에서 검찰청 대변인실 직원을 ‘대변인’으로 표기하거나, 무주택자로 나온 시민이 이후 서울 아파트를 보유하게 된 사실이 확인된 사례 등이다.

- 내러티브를 위한 연출이 가미될 때가 있다. 소위 ‘PD저널리즘’ 한계 등의 지적도 있는데.

서정문 PD  “개인적으로 ‘PD저널리즘’이라는 용어가 멸칭이라고 생각한다. 학자들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보편적 저널리즘’과 구분된다고 해석하려는 장치가 아닌가 싶다. 저널리즘 기본 요소가 객관적인 증거·물증·증언을 통해서 사실을 찾아나가는 작업이라고 한다면, ‘PD저널리즘’과 대비되는 다른 저널리즘이라는 게 있다는 걸까. PD들이 만드는 탐사보도물에 대한 과도한 편견을 보여주는 표현 같다. 그런 맥락에서 연출이란 말이 조작이란 말로 혼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잘못된 거라 생각한다.”

- PD수첩 보도를 언론이 적극 받아주지 않는다는 불만도 있다고 들었다.

서정문 PD  “콘텐츠 산업은 많이 봐야 하고 유통이 돼야 하는데 부족한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조선일보 방용훈 일가 이야기 같은 경우 시청률도 잘 나오고 반향도 굉장히 뜨거웠음에도 다른 언론의 노골적 외면이 있었다. 언론 시장 안에서 우리가 하는 이야기가 독특하다 보니까 의도적 외면을 받는 게 아닌가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전종환 아나운서  “지금 시대에 다른 언론 매체가 받는 게 그렇게 중요한가라는 생각도 든다. 미디어 시장의 독과점 시대에 탐사보도를 시작한 게 PD수첩이다. 미디어 환경은 급격하게 변화했고, 모든 방송사가 탐사저널리즘을 추구한다. 어떻게 시대에 맞게끔 변화시켜가느냐를 더 고민해야 한다.”

PD수첩은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이 ‘예고 기사’가 되거나, 방송이 끝난 뒤로도 소송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PD수첩을 상대로 한 소송, 조정신청, 내용증명은 총 25건에 달한다. 73편의 방송을 기준으로 보면 3편 중 1편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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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MBC PD수첩' 채널에 게시된 'PD수첩 코멘터리' 콘텐츠들

- 요즘도 소송이 많은가.

서정문 PD  “줄소송은 마찬가지다. 소송이 들어와도 이길 수 있는 정도로 취재를 하고 방송을 하기에 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은 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홍보된 효과도 있고, 소송 과정에서 취재로는 찾아내지 못한 자료들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 타 매체와 협업 사례가 이어지고 있는데 협업의 기준이 있나.

서정문 PD  “김영미 PD 도움을 받은 스텔라데이지호, 세이브미얀마 편처럼 우리가 해야 할 이야기에 대한 네트워크나 노하우가 쌓이지 않은 영역이 있다. 이런 것들을 충실히 다룬 곳이 있다면 다시 이야기를 확장해서 플랫폼에 태워보자는 거다. 지상파 방송사의 대표적인 탐사보도 프로그램이라는 플랫폼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이야기를 끌어와서 확장할 계획이다.”

전종환 아나운서  “기존에 취재를 해왔던 매체는 조금 더 한 주제에 천착할 수 있을 거고, MBC는 MBC만의 네트워크나 더 많은 제작진이 있다. MBC 안의 PD수첩을 넘어서 대한민국의 PD수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하반기에 준비 중인 아이템들을 소개해준다면.

서정문 PD  “국정원 하얀방 고문 관련 두 번째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고, MBC 사장 마치고 뉴스타파에서 일하고 있는 최승호 PD와 4대강 10주년 방송을 준비 중이다. PD수첩과 4대강은 떼어놓기 힘든 이야기다. MBC 탄압의 중요한 계기이기도 하다. 10년 전 MBC에서의 4대강 아이템 불방 사태 이후 저와 최승호 PD가 10년 만에 공동 연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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