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제 MBC 사장이 도쿄올림픽 중계 연출 과정에서의 타 국가 조롱 논란에 “MBC 콘텐츠의 최고 책임자로서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박성제 사장은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에서 ‘올림픽 개회식 방송 논란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날 박성제 사장은 고개 숙여 사과한 뒤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는 말로 약 3분간 입장을 밝혔다. 박 사장은 “저희 MBC는 전세계적인 코로나 재난 상황에서 지구인의 우정과 연대, 화합이라는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는 방송을 했다”며 “지난 23일 밤, 올림픽 개회식 중계 도중 각국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일부 국가와 관련해 대단히 부적절한 화면과 자막이 방송됐다. 25일에는 축구 중계를 하면서 상대국 선수를 존중하지 않은 경솔한 자막이 전파를 탔다”고 설명했다.

박 사장은 “신중하지 못한 방송, 참가국에 대한 배려가 결여된 방송에 대해 마음에 상처를 입은 해당 국가 국민들과 실망하신 시청자 여러분께MBC 콘텐츠의 최고 책임자로서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지난 주말은, 제가 MBC 사장에 취임한 이후 가장 고통스럽고 참담한 시간이었다”고 덧붙였다.

▲ 7월26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본사 사옥에서 박성제 사장이 도쿄올림픽 중계 관련한 논란에 사과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MBC
▲ 7월26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본사 사옥에서 박성제 사장이 도쿄올림픽 중계 관련한 논란에 사과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MBC

박 사장은 “급하게 1차 경위를 파악해보니 특정 몇몇 제작진을 징계하는 것에서 그칠 수 없는 기본적인 규범 인식과 콘텐츠 검수 시스템의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철저하게 원인을 파악하고, 책임도 반드시 묻겠다”며 “대대적인 쇄신 작업에도 나서겠다”고 했다. “방송강령과 사규, 내부 심의규정을 한층 강화하고, 윤리위원회, 콘텐츠 적정성 심사 시스템을 만들어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계획이다.

나아가 “스포츠뿐 아니라 모든 콘텐츠를 제작할 때 인류 보편적 가치와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고, 인권과 성평등 인식을 중요시하는 제작 규범이 체화될 수 있도록 전사적인 의식 개선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그동안 저희는 콘텐츠 경쟁력 강화, 적자 해소를 위해 애써왔지만,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를 다하고, 시청자들의 신뢰를 반드시 회복하겠다”고 했다.

부적절한 방송으로 피해를 입은 나라들에 대해서는 한국 주재 대사관 등을 통해 서한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박 사장은 “오늘 이 시간 이전에 부적절한 화면과 자막이 사용된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대사관에 사과 서한을 전달했다. 우크라니아 대사는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직원들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어서 메일로 전달했고, 루마니아 대사관은 메일과 인편으로 사과 서한이 전달됐다”며 “아이티 대사관은 국내에서 철수했기 때문에 아직 전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외신 매체들에도 사과문과 기자회견을 보낸다는 설명이다.

▲ 7월26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본사 사옥에서 박성제 사장이 도쿄올림픽 중계 관련한 논란에 사과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MBC
▲ 7월26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본사 사옥에서 박성제 사장이 도쿄올림픽 중계 관련한 논란에 사과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MBC

다만 구체적인 경위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박 사장은 문제의 이미지, 자막과 관련한 일부 인물은 업무에서 배제됐다면서도 “올림픽 중계방송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끝나는 대로 조금 더 정밀한 조사를 해서 확실한 책임소재와 재발 방지 대책까지 마련하도록 하겠다”면서 “반복해서 말씀드리지만 추가조사가 돼야 후속조치와 징계의 경중도 나올 것”이라 말했다.

일각에서는 올해 초 MBC 본사 스포츠국을 기획 중심으로 재편하고 제작 기능을 자회사(MBC플러스)로 이관한 조직개편 여파가 사고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그러나 박 사장은 “조직개편으로 내부 갈등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조직개편이 문제 원인이라는 분석은 동의하기 힘들다”면서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올림픽 정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참가국을 존중하지 못한 규범적 인식이 미비했던 점이 근본 원인이라고 본다. 시스템적으로 걸러내지 못한 점이 일차적 문제 원인으로 파악한다”고 했다.

▲ 왼쪽은 7월23일 ‘2020 도쿄올림픽’ 개회식 당시 논란이 된 MBC의 우크라이나 선수단 입장 중계 화면(MBC 중계 영상 갈무리), 오른쪽은 영국 출신의 한국 주재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라파엘 라시드가 트위터에 올린 7월25일 남자축구 B조 대한민국 대 루마니아전 스코어 자막
▲ 왼쪽은 7월23일 ‘2020 도쿄올림픽’ 개회식 당시 논란이 된 MBC의 우크라이나 선수단 입장 중계 화면(MBC 중계 영상 갈무리), 오른쪽은 영국 출신의 한국 주재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라파엘 라시드가 트위터에 올린 7월25일 남자축구 B조 대한민국 대 루마니아전 스코어 자막

앞서 MBC는 지난 23일 도쿄올림픽 개회식의 선수단 입장 화면에 나라별 대표 이미지를 붙이면서 우크라이나에 ‘체르노빌 원전 사고’ 사진을 썼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의 핵 원자로가 폭발한 대형 참사다. 비트코인을 법정 화폐로 지정한 뒤 반대 시위가 잇따르는 엘살바도르 선수단 화면엔 비트코인 사진을 썼다. 마셜제도 ‘한때 미국의 핵실험장’, 아이티 ‘대통령 암살로 정국은 안갯속’, 시리아 ‘10년째 진행 중인 내전’ 등의 자막이 나가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나라별 백신 접종률과 국민소득을 소개하는 등 불필요한 고정관념을 부추기고 올림픽 정신에 반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MBC가 24일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라며 공식 사과문을 낸 다음날에도 남자 축구 경기 자막으로 논란이 불거졌다. MBC는 B조 대한민국 대 루마니아 경기 전반전 이후 광고화면의 우측 상단에 1대0 스코어와 함께 “‘고마워요 마린’ 자책골” 문구를 띄웠다. 비판 여론이 가라앉기도 전에 자책골을 넣은 루마니아 대표팀의 라즈반 마린 선수를 조롱하는 듯한 자막을 사용해 또 다시 질타를 자초한 것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 언론도 MBC의 올림픽 중계 태도를 비판한 가운데 MBC가 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에도 논란 끝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중징계를 받은 사례가 오르내리고 있다. 박 사장은 당시 논란 이후 시스템 개선이 되지 않은 것이냐는 질문에도 “그런 부분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 완벽하게 조사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재차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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