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기 빛이 된 내 아들, 영원히 빛나리.”

지난 3월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의 부모는 충북 괴산 한 산골짜기에 소나무를 심었다. 주변엔 관목과 꽃을 심어 화단을 만들었다. 화단 사이엔 표지석을 뒀다. “너의 꿈이 한 줄기 빛이 되어 영원히 빛나리.” 아들을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돌에 새긴 문구다.

소나무는 ‘이재학 PD의 추모공간’ 중앙에 심었다. 유족은 괴산군 어귀의 한 조용한 마을에 작은 쉼터를 마련했다. 지난 3월 첫 삽을 떠 7월에야 완연한 모습을 드러냈다. 가족들은 ‘J.P하우스’라고 이름 붙였다. ‘재피(재학피디)’라 불렸던 이재학 PD의 별칭에서 땄다.

▲고 이재학 PD 가족이 쉼터 내 세운 표지석. 사진=손가영 기자.
▲고 이재학 PD 가족이 쉼터 내 세운 표지석. 사진=손가영 기자.

 

이곳은 열린 쉼터다. 가족들은 지난해 2월 이재학 PD가 숨진 후 그를 추모하고 그의 명예회복을 함께 바랐던 이들을 생각하며 쉼터를 지었다. 대문에도 “이재학 PD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쉼터”라는 현판을 걸었다. 이 PD의 아버지 이명희씨(70)는 “재학이 도와준 사람들, 친구들, 동료들, (소송 대리했던) 변호사님, 청주방송 대책위 분들, 모든 고마운 분들 다 필요할 때 언제든 쉬고 가시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쉼터는 단출한 이동식 주택과 작은 정원으로 구성됐다. 주택 안엔 지난 1년 반 동안 이 PD가 받은 상이 진열돼있다. ‘33회 PD대상 특별상’부터 ‘이용마언론상 특별상’, ‘언론노조 명예조합원 위촉패’, ‘제6회 성유보 특별상’ 등 7개 상패가 5층짜리 진열대에 나란히 놓였다. 쉼터 맞은편엔 작은 밭도 일궜다. 이씨 부부는 블루베리, 아로니아, 사과나무, 고구마 등을 키운다.

지난 2월4일 이 PD의 1주기에 맞춰 완성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쉼터 곳곳엔 가족들 손길이 배어 있다. 이씨와 이 PD의 어머니 이정숙씨(64)는 지난 3월부터 매일같이 괴산을 들러 땅을 다지고 나무를 심었다. 규모가 큰 공사만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렸다. 험악한 산지를 사람이 드나들 수 있게 만드려고 연일 땅을 고르다 어깨, 무릎, 허리, 몸 구석구석에 피로가 쌓여 몸져 눕기도 했다.

이 공간은 원래 아버지 이씨의 ‘로망’이었다. 학교에서 물리를 가르쳤던 이씨는 퇴직하면 농촌에 가족들이 쉴 집 한 채 짓고 싶다고 자주 생각했다. 그런 바람이 아들을 추모하는 공간으로 바뀔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이씨 부부는 공간을 꾸미는 내내 “재학이”가 생각났다. 쉼터를 만들게 된 이유도 “재학이라면 이렇게 했겠지”란 생각이 들어서다. 이정숙씨는 “자기 속 얘기도 잘 안 하고 자기 거보다 친구들, 후배들 더 챙기고 잘 퍼주는 애였다”며 “가족들끼리 ‘재학이라면 분명 이리 했다’며 얘기하곤 했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잘했다’ 하고 있지 않겠나”라고 말하며 웃음지었다.

▲쉼터 대문에 걸린 현판. 사진=손가영 기자
▲쉼터 대문에 걸린 현판. 사진=손가영 기자
▲고 이재학 PD가 수상한 상패가 쉼터 한 켠에 놓여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고 이재학 PD가 수상한 상패가 쉼터 한 켠에 놓여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가족이 이 PD의 명예회복을 둘러싸고 그나마 한시름 놓게 된 지는 세 달도 채 지나지 않았다. 이 PD는 지난 5월에야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항소심에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을 인정받았다. 청주방송에서 부당해고된 사실도 법적으로 인정됐다. 그가 사망한 지 1년 3개월 후다.

가족들은 전엔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투쟁’도 해봤다. 이 PD의 누나와 매형, 동생 등은 항소심 선고 전까지 청주 시내에서 “방송계 비정규직을 철폐하라” “이재학 PD를 잊지 않겠습니다” 등의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했다. 집회가 열릴 땐 영정사진을 들고 청주 길거리도 걸었다. 누나의 SNS 프로필 사진엔 아직 이 PD의 항소심 판결문이 걸려있다. 어머니 이씨는 지난해 2월 4일 후부터 지금까지 매일 일기를 쓴다. 아들을 추억하고 애도하는 글이다.

이 PD의 사건 이후 방송계는 변하고 있다. 청주방송의 협조로 사상 최초 방송국 내 비정규직 고용 실태가 조사보고서로 확인됐다. 방송계 비정규직들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던 고용노동부는 방송국 근로감독에 나섰다. 청주방송에 이어 지금은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를 감독 중이다. 올해엔 ‘무늬만 프리랜서’로 치부됐던 방송작가들이 사상 최초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도 됐다. 이 과정을 가족들도 다 지켜봤다. 표지석에 이재학 PD를 ‘빛’이라 새긴 이유다.

이씨는 방송계의 변화가 반갑지만 가슴도 아리다. “재학이가 좋은 일하고 갔다고 생각해요. 재학이같은, 부당한 일을 겪는 방송계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재학이는 이리 갔지만 더 많은 분들이 자기 권리를 찾았으면 좋겠고 문제도 해결되길 바랍니다. 그래도 참고 싸우지….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고, 슬픕니다.” 이씨가 말했다.

"저희 쉼터는 '감사함'입니다. 재학이를 기억하는 누구든 편안히 여기서 쉬었다 가세요." 이정숙씨는 “생전 재학이 곁에 있어 준 분들, 사고 후 재학이 겪은 부당함에 함께 목소리 내 준 분들, 수소문해서라도 일일이 인사드리고 싶은데 그러지 못했다"며 "그 마음을 담아 쉼터를 지었다. 이 공간을 빌어 감사 인사 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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