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는 7월8일 정부광고비 책정, 보조금 지원 등 정책집행 기준으로 활용해온 한국ABC협회 부수공사 자료를 더 이상 참고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습니다. ABC협회 자료 신뢰도가 턱없이 부족하며 제도개선 조치 이행여부 점검결과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ABC협회 부수조작 사건은 언론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중대한 사안인 만큼 민주언론시민연합은 2020년 11월 시작된 부수조작 사건 경과를 정리하고, 언론보도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살펴봤습니다.

ABC협회 부수조작 사건 어떻게 진행됐나

ABC협회는 신문·잡지 발행부수를 공식 심사하는 국내 유일 조직으로 소속 공사원들이 각 신문사 표본지국을 방문 조사해 산정한 유가율(발행부수 대비 유료부수 비율)을 토대로 발행부수와 유료부수를 발표합니다. 지난해 ABC협회 내부관계자 고발을 통해 일부 신문의 유료부수가 과장됐다는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조작된 인증부수로 신문 우송료 등 공적 지원과 정부광고비 단가 인상 혜택이 돌아간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게 된 이유입니다.

① ABC협회 내부관계자 부수조작 폭로

2020년 11월9일, ABC협회 내부관계자들은 문화체육관광부 미디어정책과에 “일간신문 공사(부수조사) 결과와 관련한 부정행위를 조사해야 한다”는 진정서를 제출했습니다. 미디어오늘 <단독-ABC협회 내부폭로 “현실에 없는 유료부수 버젓이 발표”>(2020년 11월10일)는 ABC협회 “유료부수에 신빙성이 없다는 지적이 신문업계 ‘침묵’ 속에 이어져” 왔다며 “내부폭로마저 나와 관리·감독 위치에 있는 문체부 대응이 불가피”하다고 보도했습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2020 언론수용자 조사>에 따르면 종이신문 구독률과 열독률은 10년 전에 비해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열 명 중 절반에 가까웠던 종이신문 이용률은 이제는 한 명 정도만 이용하고 있으며 열독 시간도 절반으로 줄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습니다.

▲ 2020 언론수용자 조사 종이신문 열독률, 열독시간, 정기 구독률 추이(2020년 12월15일). 그래프=한국언론진흥재단
▲ 2020 언론수용자 조사 종이신문 열독률, 열독시간, 정기 구독률 추이(2020년 12월15일). 그래프=한국언론진흥재단

그러나 ABC협회는 <2020년도 일간신문 발행·유료부수> 보도자료에서 “2011년~2020년 10년 동안 전국의 일간지 발행부수는 31.10%, 유료부수는 12.0% 감소했다고 밝혔”습니다. 종이신문 열독률이 75%나 급감하는 동안 유료부수는 겨우 12%가 줄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두 수치의 격차만큼이나 ABC협회 부수공사 자료에 대한 의구심도 커졌습니다.

ABC협회 부수조작 의혹 사건은 이후 문체부 현장조사로 이어졌습니다. 미디어오늘 <문체부, 조선일보 유료부수 116만? 부풀리기 정황 잡았다>(2월15일 정철운 기자)는 문체부 현장조사 결과를 입수해 ABC협회 자료와 실제는 큰 차이를 보였으며 “ABC협회 조사가 부실 수준을 넘어 ‘조직적 범죄’에 가까워 보인다”는 문체부 관계자 발언을 전했습니다.

② 문체부 ABC협회 사무검사 결과 발표

문체부는 3월16일 <ABC부수공사의 근본적 개선 위한 제도 개선 권고>를 통해 사무검사 주요 결과 및 조치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문체부가 공개한 ‘신문지국 인터뷰와 관련 입수자료 분석결과’에 따르면 지국별 편차는 있으나 신문지국 평균 유가율은 62.99%, 평균 성실률은 55.37% 수준에 그쳤다며 ABC협회 유가율·성실률 자료와 상당한 차이를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문체부는 이번 표본수와 자료량이 한정되었기 때문에 추가 현장실사를 6월 말까지 계속할 것이고, ABC협회에는 6월30일까지 제도 개선 사항을 권고했습니다.

이후 언론사 중 유일하게 한겨레 <신문 ‘유료부수 부풀리기’ 의혹에 흔들리는 부수인증제>(3월12일 김효실 기자)가 “현재 부수공사의 인증부수 신뢰도에 흠결이 있고, 부수공사가 애초 출범 취지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공감하며 진상 파악과 제도 개선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냈습니다. 문체부 사무검사 발표 다음날인 3월18일, 한겨레는 지면에 사과문을 내고 “자체적으로 발송 부수의 투명성을 끌어올리는 내부 혁신에 먼저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 3월17일 ABC협회 신문부수 조작에 관해 사과한 한겨레
▲ 3월17일 ABC협회 신문부수 조작에 관해 사과한 한겨레

3월18일 여야 국회의원 29명은 국가보조금법 위반, 형법상 사기죄 등 혐의로 조선일보와 ABC협회를 국가수사본부에 고발했고, ABC협회 부수조작 사건은 ‘수사단계’로 넘어갔습니다. 미디어오늘 <부수 조작사태에 “언론자유 침해” 핏대 올린 신문사>(4월19일 정철운 기자)는 “국가수사본부가 신문부수 조작사태를 수사 중인 가운데 ABC협회의 신문 측 이사들이 현 상황을 ‘언론자유 침해’로 보고 문체부를 비난”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문체부 조사는 언론에 재갈을 물리기 위한 데 불과하다”는 조선일보 이사의 발언과 “ABC협회 신뢰성 회복은 ‘내부자 폭로’라는 잘못된 관행과의 단절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주장한 동아일보 이사의 발언을 전한 뒤 “신문사들이 부수 조작사태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고 개선 노력에 나서기는커녕” 정부의 언론탄압으로 바라보고 있다면서 “정확한 진상규명 말고는 답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③ 국무총리·문체부 장관, ABC협회 부수 조작 언급

ABC협회 부수조작 의혹 사건은 국회 대정부 질문에도 등장했습니다. 미디어오늘 <김부겸 총리 “유가부수 허위였다면 분명히 신문고시 위반”>(6월22일 정철운 기자) 등에 따르면 김부겸 총리는 관련 질문을 받고 “결과적으로 유가부수 자체를 허위로 공시했다면 그 부분은 분명히 신문고시 위반”, “언론들도 투명성·국민의 알 권리 이런 큰 흐름 앞에서 자체 점검을 해야 한다”고 답변했습니다.

이후 민중의소리 <조선일보 100만 유료부수?’ 조작 논란에 존폐 기로에 놓인 ‘ABC협회’>(6월27일 최지현 기자)는 “ABC협회는 지난 17일 문체부에 ‘ABC협회 사무검사 권고사항에 대한 현황 및 조치 보고서’를 제출했”으나 “문체부의 권고사항을 거의 반영하지 않은 내용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습니다. 민중의소리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출석한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ABC협회가 (추가) 조사에 불응했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다”며 “ABC협회가 권고사항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정책적으로 활용하지 않으면 된다’”는 발언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문체부가 제시한 사무검사 권고사항 이행 시한인 6월30일, ABC협회는 ‘사무검사 개선권고사항 조치결과’를 문체부에 제출했습니다. 미디어오늘 <ABC협회 문체부 개선권고 조치결과 봤더니 ‘황당’>(7월5일 정철운 기자)은 해당 문건을 입수해 “주요한 내용을 뜯어보면 기존 부수인증 방식에서 달라진 것이 거의 없어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지적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실제 ABC협회가 제출한 문건은 현행 제도를 설명하는 수준에 그치거나 문제로 지적받은 사안에 대한 해명조차 없었습니다. 미디어오늘 비판처럼 “논란이 된 부수조작 의혹에 대해 시종일관 제대로 된 반박도, 반성도 하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④ 문체부, ABC협회 정책활용 중단 발표

결국 문체부는 7월8일 <신뢰성 논란 에이비시 부수공사 정책적 활용 중단한다>는 보도자료를 통해 사무검사 결과 ABC협회 부수공사 과정 전반에서 불투명한 업무 처리를 확인해 제도개선 조치를 권고했으나 총 17건 중 불이행 10건, 이행 부진 5건, 이행 2건으로 조치 권고를 불이행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ABC협회 부수공사 결과 정책적 활용 중단, 언론 보조금 지원 기준 제외, ABC협회에 지원한 공적 자금 45억 원 환수 등을 추진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문체부 발표는 사실상 ‘ABC협회 사망선고’로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ABC협회가 존재하는 의미에 가까웠던 부수공사의 정부광고, 언론보조금 지원 기준 활용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부정확한 부수공사로 수많은 정부지원금이 지급된 엉터리 행정을 바로잡는 출발이 된다고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언론은 어떻게 보도했나

ABC협회 관계자 부수조작 의혹 폭로, 문체부 사무검사 진행 및 결과 발표, 김부겸 국무총리와 황희 문체부 장관의 언급, 문체부 ABC협회 정책활용 중단 발표로 이어진 과정은 부수조작이 사실인지 밝히고, 조작이 있었다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언론이 관심 갖고 보도해야 할 사안입니다. 네 가지 사안에 대한 보도 유무는 언론이 얼마나 적극 보도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준이기도 합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네 가지 사건이 일어난 시점을 기준으로 1주일간,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ABC협회’로 검색했을 때 나온 보도를 분석했습니다. 관련 보도는 모두 240건으로 집계됐습니다.

‘모른 척’ 하다 ‘모른 척’ 할 수 없게 되자 보도

ABC협회 부수조사에 부정행위가 있다는 폭로가 나온 뒤 1주일간 관련 기사는 2건으로 전체 240건의 0.8%에 불과합니다. 미디어오늘 단독 보도 이후 중앙일보만 이 사실을 전했습니다. 4개월 뒤인 3월16일 문체부가 ABC협회 유료부수 부풀리기 정황을 일부 확인했다는 내용의 사무검사 결과를 발표했는데요. 관련 기사는 86건입니다. 문제가 처음 알려졌을 땐 침묵한 언론사들이 문체부가 의혹을 확인한 결과를 내놓자 기사를 쓰기 시작한 겁니다.

▲ 네이버 기준 ‘ABC협회 부수조사 조작의혹’ 관련 전체 보도량(2020년 11월9~15일, 2021년 03월16~22일, 2021년 06월22~28일, 2021년 07월8~13일), 7월13 오전 11시5분 기준. 그래프&표=민주언론시민연합
▲ 네이버 기준 ‘ABC협회 부수조사 조작의혹’ 관련 전체 보도량(2020년 11월9~15일, 2021년 03월16~22일, 2021년 06월22~28일, 2021년 07월8~13일), 7월13 오전 11시5분 기준. 그래프&표=민주언론시민연합

정치권에서도 공론화되면서 6월21일 황희 문체부 장관, 6월22일 김부겸 국무총리가 관련 질의를 받고 ABC협회 부수공사 정책적 활용 중단, 신문고시 위반 가능성 등을 언급했는데요. 이 내용을 전한 보도는 27건입니다. 7월8일 문체부는 ABC협회 제도개선 등에 관한 권고사항 미이행 결과를 발표하면서, 사실상 ABC협회 퇴출을 선언했습니다. 이를 다룬 기사는 125건(52.1%)으로 ABC협회 부수조작 사건 보도 절반 이상이 문체부가 ABC협회 자료 정책활용 중단을 발표한 이후 쏠려있습니다.

ABC협회 부수조작 폭로부터 사실상 퇴출 결정이 되기까지 주요 시기별로 보도량을 살펴보면, 사건 초기 ‘모른 척’ 하다 ‘모른 척’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겨우 보도를 내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문체부 관련 내용 발표로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렵게 되자 기사를 쓴 것입니다. 이번 보도에서도 ‘언론계 침묵의 카르텔’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ABC협회 내부관계자 폭로가 나왔을 때 ABC협회 인증대상 매체 중 이를 전한 언론사는 중앙일보 한 군데뿐이었기 때문입니다.

ABC 유료부수 상위 30개사 중 15개사 ‘침묵’

ABC협회는 7월1일 ‘2020년도 일간신문 발행 유료부수’를 홈페이지에 공개했습니다. 인증매체는 전국일간지 27개사, 지역일간지 107개사, 경제지 16개사, 영자지 3개사, 스포츠지 7개사, 소년지 2개사, 무료일간지 1개사 등 총 163개사라고 밝혔습니다. 이 중 유료부수 상위 30개사가 ABC협회 관련 주요 네 가지 사안 발생일을 기점으로 1주일 동안 관련 보도를 했는지 살펴봤는데요. 분석 결과 절반인 15개사가 관련 보도를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네이버 기준 ‘ABC협회 부수조사 조작의혹’ 관련해 보도한 언론(2020년 11월9~15일, 2021년 03월16~22일, 2021년 06월22~28일, 2021년 07월08~13일). 표=민주언론시민연합
▲ 네이버 기준 ‘ABC협회 부수조사 조작의혹’ 관련해 보도한 언론(2020년 11월9~15일, 2021년 03월16~22일, 2021년 06월22~28일, 2021년 07월08~13일). 표=민주언론시민연합

부수조작 관련 보도를 하지 않은 매체 중 유료부수가 가장 많다고 조사된 곳은 농민신문입니다. 인정받은 유료부수는 42만 2282부로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매일경제 다음으로 많습니다. 반면 농민신문은 최근 <‘농민신문’ 유료부수 4년 연속 5위>(6월16일 정단비 기자)에서 “2018년 처음으로 유료부수 부문에서 5위에 오른 이후 꾸준히 5위를 기록하고 있다”고 전하며 자사 영향력 근거로 들었던 ABC협회 부수공사 조작 의혹은 다루지 않았습니다. 상위 30위권에 오른 지역신문인 부산일보, 매일신문, 영남일보, 강원일보도 다루지 않았습니다.

문체부가 3월16일 내놓은 사무검사에 따르면, ABC협회 부수공사 과정 전반이 부실하게 관리됐고 신문 유료부수는 최소 30% 이상 부풀려졌을 가능성을 알 수 있는 결과를 내놨습니다. 신문사들이 자화자찬하듯 독자에게 알린 ABC협회 유료부수 순위가 잘못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하지만 인증부수 상위 30개사 중 관련 보도를 하지 않은 15개사 독자들은 오류가 있는 정보만 전달받았고, 국민 세금이 낭비되고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없었습니다.

6년간 수백억 정부광고 9개 매체, 얼마나 보도했나

미디어오늘 <지난 6년간 정부광고 많이 받은 중앙일간지는>(2019년 5월8일)에서 2013년부터 2018년 말까지 9개 종합 일간지 6년간 정부광고 집행 현황을 공개했는데요. 정부광고 액수가 가장 높은 곳은 552억9000만 원을 받은 동아일보였습니다. 다음으로 조선일보 493억8500만원, 중앙일보 488억4900만원, 서울신문 307억6700만원, 한겨레 274억2500만원, 한국일보 267억4700만원, 경향신문 264억3700만원, 국민일보 229억5200만원, 세계일보 228억7000만원의 순이었습니다.

9개 신문사가 ABC협회 유료부수 자료를 기반으로 지난 6년간 수백억 원대 정부광고 지원을 받아온 것인데요. 이들이 ABC협회 유료부수 조작 관련 보도를 얼마나 실었고, 필요한 보도를 했는지 살폈습니다. 비교를 위해 지상파 3사와 신문사와 같은 계열사인 종합편성채널 4사의 저녁종합뉴스 보도 여부도 함께 분석해봤습니다.

▲ 네이버 기준 ‘ABC협회 부수조사 조작의혹’ 관련 9개 종합일간지, 지상파3사, 종편4사 시기별 보도량.  표&그래프=민주언론시민연합
▲ 네이버 기준 ‘ABC협회 부수조사 조작의혹’ 관련 9개 종합일간지, 지상파3사, 종편4사 시기별 보도량. 표&그래프=민주언론시민연합

분석 결과 ABC협회 발행부수 자료가 조작됐다는 폭로가 나온 2020년 11월9일부터 1주일 동안 관련 소식을 보도한 곳은 9개 매체 중 중앙일보가 유일했습니다. 경향신문은 지난 7월8일 문체부가 ABC협회 부수공사 결과를 공식 지표로 활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하고 나서야 1건 기사를 실었습니다. 폭로가 있은 지 8개월 만이고, 9개 매체 중 가장 적은 보도량입니다. 동아일보, 조선일보도 문체부 발표 후 3건의 보도를 실었습니다. 국민일보, 서울신문은 문체부 발표가 있던 시기에만 관련 보도를 냈습니다.

신문사와 자매사 관계에 있는 종합편성채널4사의 무보도도 눈에 띕니다. 지상파3사가 관련 보도를 3개 이상씩 했음에도 종합편성채널4사는 ABC협회 부수공사 조작 의혹을 전혀 다루지 않았습니다. 중앙일보를 제외한 대다수 신문은 소극적 보도를, 종편 채널은 외면을 택한 것입니다. ABC협회 부수공사 결과를 토대로 정부광고를 받은 당사자와 자매사가 언론으로서 양심보다 자사 이익을 먼저 택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드는 대목입니다.

조선일보 “일부 신문이 정부광고 더 받아” 황당 해명

문체부가 ABC협회 부수공사를 정책에 반영하지 않겠다고 발표하자 유료부수 1위로 조사된 조선일보는 반발에 나섰습니다. 조선일보 <ABC 유가부수 대비 정부집행 광고액 봤더니… 본지보다 동아 2배, 중앙 1.9배… 한겨레는 4배 더 많았다>(7월10일 신동흔‧장근욱 기자)는 문체부 결정을 두고 “2009년 정부가 발행부수 검증에 참여한 신문‧잡지에 대해 정부광고 우선배정 규정을 신설하면서 정부 ‘공인’ 부수인증기구로서 가져왔던 한국ABC협회의 위상을 한순간에 무력화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자사 유료부수가 부풀려졌다는 의혹을 반박하는데도 집중했습니다. 주된 근거는 “지난해 정부 광고 집행액 규모를 보면, 유료부수 비율에 따라 집행되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자사와 한겨레의 유료부수와 광고액을 비교하며 유료부수 1부당 “조선일보는 6552원”, “한겨레의 1부당 광고액은 2만 6393원으로 조선일보의 4배가 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유료부수가 부풀려졌다는 의혹에 ‘다른 신문사가 정부광고를 더 많이 받았다’고 답한 겁니다.

▲ 7월10일 BC협회 부수조작 의혹과 관련해 “일부 신문이 인정받은 유료부수에 비해 정부광고는 더 많이 받아갔다”고 반박성 기사를 낸 조선일보
▲ 7월10일 BC협회 부수조작 의혹과 관련해 “일부 신문이 인정받은 유료부수에 비해 정부광고는 더 많이 받아갔다”고 반박성 기사를 낸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이런 주장을 펼친 뒤 문체부 발표를 “언론 줄세우기”로 규정했습니다. 문체부가 언론진흥재단에 매체영향력 조사를 맡기겠다고 발표하자 “정부 산하의 언론진흥재단에 (매체 영향력 조사를) 직접 맡겨 언론 시장에 직접 개입하겠다는 것”이라며 정부가 언론에 개입하려는 듯 묘사한 것입니다. 또한 “정부는 곳곳에서 신문 시장에 직접 개입하고 언론 줄 세우기를 시도해왔다”더니 “지난 3월 문체부는 ABC협회에 부수조사 표본지국 선정 과정에서 공무원이나 언론재단 관계자, 소비자 단체, 학자 등 제3자가 참관할 것을 요구했다”는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이어 “미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선 ABC협회 등 민간단체가 주축이 되어 영향력을 측정한다”며 해외 사례까지 이용해 ‘언론 길들이기’ 주장을 펼쳤습니다.

한국경제 <정부 “ABC 신문부수 대신 여론조사”… 언론 직접 줄세우나>(7월8일 성수영 기자)도 유사한 주장을 펼쳤습니다. “선진국 중 정부가 직접 언론의 영향력을 측정하는 국가는 극히 드물다”며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를 언급했습니다. 마치 ABC협회는 문제가 없는데 정부가 언론개입 의도를 갖고 결정을 내린 것처럼 인식하게 만드는 보도입니다.

조선일보는 왜 유료부수 조작을 언급하지 않나

조선일보는 자사보다 타사가 유료부수 대비 광고액이 높았다며 정부의 결정을 “언론 줄세우기”로 규정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가장 중요한 사실인 부수공사 조작을 외면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문체부 ABC협회 사무검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조선일보 지국 성실률은 49.89∼86.73%(평균 55.36%), 2020년 지국 유가율은 58~98%(평균 67.24%)입니다. ABC협회가 발표한 조선일보 2019년 성실률 98.09%, 2020년 유가율 95.94%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조사 대상이 한정돼 있지만 ABC협회 부수공사 과정이 부실했음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자사보다 타사가 광고료를 더 많이 받았다고 주장할 뿐 ABC협회 부수공사를 신뢰할 수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해외에서는 ABC협회와 같은 민간기구가 조사를 하고 있다는 점만 내세우고 있습니다. 조선일보가 정부 결정을 “언론 줄세우기”로 규정하고자 한다면 ABC협회 부수공사가 조작되지 않았다는 점부터 입증해야 합니다.

오히려 조선일보가 내세운 방식은 객관적이지 않다는 게 지적됐습니다. 미디어오늘 <‘ABC협회 사망 선고’가 싫었던 조선일보의 무리수>(7월13일 정철운 기자)는 조선일보 계산법을 두고 “반박하기 민망할 정도로 허술하다”고 표현했습니다. 미디어오늘은 “박근혜정부 시절인 2014년 조선일보 유료부수는 129만4931부, 2015년 정부광고액은 79억7300만원으로 ‘기적의 계산법’을 대입하면 이 신문의 1부당 정부광고 수주액은 6157원”인데 “같은 조건으로 같은 해 동아일보는 1만2773원, 중앙일보는 9599원”이라며 과거 사례를 조선일보식 계산법에 대입했습니다.

이어 “5년 전에 비해 조선일보는 약 395원, 중앙일보는 약 2743원 올랐고, 동아일보는 210원 떨어졌다. 조선일보 논리대로라면 문재인 정부는 중앙일보와 조선일보의 1부당 광고 수주액을 올려준 것인가”라며 조선일보 논리가 부실함을 지적했습니다. 즉, 조선일보가 정부 결정을 비판하고, 자사에 대한 비판을 옹호할 자의적인 계산법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등 신문’을 자처하는 신문사가 보여야 할 최소한의 책임감도 찾아볼 수 없는 태도입니다.

언론관련 법안 ‘언론 재갈법’으로 비판한 중앙일보

ABC협회 부수공사 조작 의혹을 제대로 다루지 않은 신문 중 중앙일보 등 보수신문은 언론관련 법안을 문제 삼기도 했습니다. 중앙일보 <‘언론 재갈법’ 강행 처리 연기한 여… “막무가내식” 비판 의식>(7월16일 김준영 기자)는 제목부터 ‘언론 재갈법’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습니다. 본문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언론관련 법안 처리를 미루자 “어떻게든 대선 전에 언론 규제법을 통과시키려 혈안이 돼 있다”고 비판한 국민의힘 주장을 인용했습니다.

특히 중앙일보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법안에 이상직 의원이 적극 나선 것을 두고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강하게 주장하던 민주당 의원도 있었다”, “언론사 처벌을 요구하는 강경한 주장을 쏟아낸 이는 당시 언론으로부터 이스타항공에 대한 횡령‧배임 의혹을 받던 이상직 의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의 “오로지 지금은 구속된 한 분 의원님만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목소리를 높였다”는 페이스북 글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법안의 타당성, 발의 배경은 짚지 않은 채 법안에 대한 불신을 야기하고, 악의적 의도가 있는 듯한 주장을 강조한 셈입니다.

비판만 하는 게 언론 역할은 아니다

문체부나 국회에서 내놓은 안에 대해선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고, 보완이 필요한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ABC협회 부수조작 의혹과 다양한 미디어 법안과 관련해 필요한 보도는 하지 않은 채 무시로 일관하다가 안이 제시되면 ‘언론 길들이기’, ‘표현의 자유 위축’으로 반박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자사에 불리한 사안은 축소하고, 유리한 방향만 내세우는 진정성 없는 태도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ABC협회 부수공사 자료를 토대로 정부광고를 받았다는 점에서 다수 신문사는 이번 논란의 당사자이기도 합니다. 앞서 확인한 것처럼 대다수 신문사는 ABC협회 내부고발과 문체부 사무검사로 부수 부풀리기 정황이 드러났음에도 사과는커녕 보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신문사의 비판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ABC협회 부수공사 조작 의혹 보도에 소홀했던 사실을 인정하고 자사는 책임이 없는지부터 밝히는 게 먼저입니다.

언론관련 법안을 ‘재갈’, ‘길들이기’, ‘언론자유 침해’로 비판만 하는 것도 제대로 된 해결책으로 볼 수 없습니다. 언론은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성역이 아닙니다. 사회 부조리와 부정부패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게 언론의 주요 역할이라면 본인 문제에 대해서도 제대로 짚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언론관련 법안과 관련해 당사자로서 기자 스스로가 가진 비판적 인식은 무엇인지,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 모니터 대상 : 2020년 11월9~15일(ABC협회 내부 관계자 부수조작 폭로 이후 일주일), 2021년 3월16~22일(문체부 ABC협회 사무검사 결과 발표 이후 일주일), 2021년 6월22~28일(김부겸 국무총리‧황희 문체부 장관 ABC협회 의혹 언급 이후 일주일), 2021년 7월8~13일(문체부 ABC협회 자료 정책적 활용 중단 발표 이후 6일) 포털사이트 네이버 ‘ABC협회’로 검색된 보도 전체. (7월13일 오전 11시49분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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